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55화 (55/171)
  • #55. < 대계(大計)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다 - 1 >

    하늘로 높이 솟아 오른 왕기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두고 잠시 고민을 했다. 머릿속에 담겨 있는 리스트를 살펴보며 왕기가 뇌까렸다.

    '일단 중국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후추와 고무나무 그리고 사탕수수부터 확보를 한다. 그러려면 인도를 거쳐 인도네시아를 들려야만 해. 그런 다음 남프랑스로 간다. 그런 후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옥수수의 종자를 확보한다. 고려를 부흥시키려면 만성적인 식량부족부터 해결해야만 해. 백성들의 배가 불러야 문화도 융성할 수가 있는 것이지. 특히 안데스산맥에 있는 감자가 중요해. 추운 날씨에도 잘 자라고 생육기간이 짧은 감자를 대량으로 재배해야만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다. 흑사병의 창궐로 절반으로 줄어들었던 유럽의 인구 수가 16세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도 감자 때문이었지.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 수가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이 대항해시대를 개척하며 식민지들을 건설할 수 있었던 거야.'

    마음을 굳힌 듯 왕기의 몸이 인도 쪽을 향해 비스듬하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유선형 호신강기를 두른 채 7갑자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내공을 이용해 아득한 상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왕기의 스피드는 어지간한 현대식 전투기보다 더 빨라 보일 정도였다. 불과 한 시진만에 만년설이 잔뜩 덮여 있는 히말라야산맥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오자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산맥만 넘어가면 인도가 나올 것이야.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이동속도이다. 내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고, 항해기술을 충분히 발전시키더라도 부하들을 안데스산맥까지 보내서 감자를 가지고 돌아오게 하려면 최하 3~4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야. 하지만 난 그런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알고 있는 현대 기술들을 반발력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상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말이지. 빌어먹을... 어지간한 기술들은 다 반발력이 불러일으키니 쓸만한 게 거의 없어. 화약을 개선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총과 대포의 본격적인 개발도 불가능해. 끽해야 최무선(崔茂宣)이 화약국(火藥局)에서 개발한 신기전(神機箭) 정도가 전부이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산업혁명도 불가능하고, 기차를 만들고 대륙에 철도를 까는 것도 안 된다. 비행기를 만드는 것도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다고 했어. 빡빡한 제약 속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산맥을 단숨에 넘어가고 있는 왕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반발력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고려를 부흥시킬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한반도는 땅이 너무 좁고 산지가 대부분이야. 고려가 세계를 주름잡으려면 일단 일본과 중국의 정복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만 한다. 영토 확장이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인구 수가 딸리는 상황에서 총도 대포도 없이 두터운 성곽으로 대도시들을 보호하고 있는 중국을 정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방법을...'

    왕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그때, 대도에 위치한 심왕부에서는 고용보와 척무관의 전격적인 면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도에 위치한 심왕부]

    부서졌던 정문이 모두 복구된 심왕부의 정문 쪽으로 농사꾼 차림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자들이 말을 타고 있는 박별장의 구령에 맞춰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왕기의 명령에 의해 심주와 요양에 있는 농부들 중 젊고 건장한 남자들로 추려서 심왕부로 집결시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사람을 놓치지 말고 따라가거라. 곧바로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을 것이야. 심왕부는 넓어서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어. 너희들이 고향을 떠나오기 전에 받은 재물을 기억하거라. 장차 고려의 왕이 되실 심왕 전하께서는 수하에게 내리는 재물을 아끼지 않는 분이시다. 군사 교육을 잘 받고 정식으로 군병으로 임명이 되면 농사를 짓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녹봉을 받을 것이니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 네. 알겠습니다.

    심주와 요양에서 머나먼 대도까지 행군을 하는 동안 제법 교육을 받은 듯 건장한 청년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며 심왕부의 정문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척 무관이 자신의 거처로 찾아온 고용보에게 차를 대접하며 물었다.

    "미리 기별도 없이 이리 찾아오셔서 놀랐습니다. 황실의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심왕부의 행사에 반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심왕부 아래로 들어간 앙리라는 자가 병사들과 상인들을 대대적으로 꾸려 서역으로 떠난 건 아무런 문제가 없소이다. 서역과의 교역은 황실에서도 권장하는 일이니까 말이오. 그리고 농사꾼 천 명을 한자리에 모은다고 해서 눈 하나 깜빡할 황실이 아니오. 정예병 천명 아니 만 명이 들이닥쳐도 거뜬히 막아낼 병력이 대도에는 있소이다."

    "그럼 우리 쪽에게 별다른 간섭을 가하지는 않겠군요?"

    "심왕 전하께서 자신의 근위병으로 삼을 병력 천명을 심왕부에서 훈련시키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소이다. 숫자도 적고 훈련시키는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니까. 걱정은 심왕부 쪽에서 해야 하겠지요. 장정 천명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데 들어갈 재물이 장난이 아닐 테니까."

    고용보의 말을 듣고 있던 척무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시다시피 재물이야 심왕부에 넉넉하게 있습니다. 자장원사의 말씀은... 심왕부가 아니라 다른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것 같습니다."

    - 후루룩.

    목이 메는 듯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삼킨 고용보가 입을 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고려 쪽에 문제가 생겼소이다."

    "고려에서 말입니까?"

    "그렇소. 고려에 있는 충목왕 전하의 병세가 깊어지고 있다고 하오. 가을이 깊어가니 날이 쌀쌀해지고 건조해져서 기침이 멈추질 않고 있다고 들었소이다. 어의의 소견으로는 올겨울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하오이다."

    "으음... 큰일이로군요. 그럼 조만간 다음 왕위 결정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기겠군요. 당연히 심왕 전하께서 되시겠지요? 일전에 전하와 황후마마께서 약조를 하셨잖습니까?"

    "당연히 황후마마께서는 심왕 전하를 밀어 드릴 것이외다. 근데... 고려에 있는 왕후마마의 친정 오라비가 연판장을 돌렸다는 소문이 자자하오."

    "왕후마마의 오라비라면... 고려 조정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기철이 아닙니까? 그자가 어떤 연판장을 돌렸다는 것입니까?"

    "다음 왕으로 왕기 전하를 추대하라는 왕후마마의 뜻을 거역할 속셈인 것 같소이다. 자신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정동행성을 폐지하고, 차기 왕까지 황후마마께서 일찌감치 정해버리니 자신들의 권력이 위태롭다고 느낀 것 같소이다."

    척무관이 비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고려에 있는 부원배들이 본인들의 권력이 어디서 나온 건지 잊어버린 모양이로군요."

    "권력을 잡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 것 같소이다. 고인 물이 썩은 것이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약속을 어기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전하의 성품을 모르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부랴부랴 척무관을 찾아온 것이 아니겠소?"

    척무관이 고용보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소관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다. 전하께서는 본인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왕위를 차지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부원배들을 정리할 능력이 없으셔서 황후마마와 협약을 맺은 게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온 것이오. 곤경에 처한 황후마마께서 다급히 새로운 일을 진행 중이시오. 심왕 전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외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원나라 황족들의 공주들을 모두 대도로 초대하여서 큰 연회를 베풀 것이외다."

    고용보의 말에 척무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꾸했다.

    "설마... 전하의 결혼을 추진하시려는 것이옵니까?"

    "바로 그것이오. 공주들 중 가장 뛰어난 여인을 심왕 전하의 짝으로 맺어주실 생각이오. 잘 아시잖소? 고려는 부마국이며 안정적으로 고려를 지배하려면 원나라와의 통혼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전하께서 황실의 부마가 되시면 기철을 포함한 부원배들이 제아무리 용을 써도 차기 왕위는 전하가 되실 것이오."

    "뭐 나쁘지 않은 계획인 것 같습니다. 전하의 나이도 해를 넘기면 17세가 되니 성혼을 하실 때가 되었지요. 어찌 보면 늦은 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황후마마의 명을 받고 척무관을 찾아왔소이다. 척무관이 옆에서 오랜 기간 보필을 하셨으니 잘 아실 것이 아니오? 전하께서 좋아하는 여인상이 있소이까? 이왕이면 전하가 좋아하실만한 여인으로 뽑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고용보의 물음에 척무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말해 저도 모릅니다. 전하께서는 가까이 있는 시녀들을 건드리시지도 않으셨고, 일전에 선물로 받은 홍패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전하의 취향이 그쪽이신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일전에 전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아니라 여인을 좋아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전하가 잠자리를 같이 한 여인이 있습니다. 대도에 있는 춘향각주이지요. 하지만 그 관계는 두 사람의 사랑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고용보가 돌아가자 박 별장이 방으로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중랑장 나리. 심주와 요양에서 모은 천 명의 장정들을 심왕부로 모두 데려왔습니다."

    "고생했다. 오는 길에 특별한 일은 없었느냐?"

    "네. 나리. 다들 건장하고 식량도 충분히 충분했기에 무탈하게 도착했습니다."

    "알겠다. 오늘 길이 힘들었을 테니 며칠간 배불리 먹이고 푹 쉬게 하도록 해라. 체력이 회복되면 본격적인 군사 교육을 시작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박 별장이 돌아가자 혼자 남은 척 무관이 중얼거렸다.

    "전하의 배필로 어느 분이 되실지 궁금하군. 어지간한 여인으로는 전하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빠르게 일주일이 흘렀다.

    서기 1345년 11월 1일

    왕기가 전 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품종의 곡물과 나무들을 수집하고 있는 가운데 하남성에서 출발한 무지와 무장이 심왕부의 정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심왕부에 위치한 척 무관의 거처]

    - 촤르륵.

    척무관이 왕기가 새로운 수하로 받아들였다는 무지와 무장을 맞아 그들이 들고 온 서찰을 펼쳐서 읽어보고 있었다. 먼저 무장이 받은 서찰을 펼쳐본 척무관의 눈에 조직도가 들어왔다.

    [천 명 군사들의 조직도]

    - 근위대 : 충성심이 가장 뛰어난 자들로 200명을 선정하여 근위대로 뽑는다. 대장은 척무관으로 한다.

    - 돌격대 : 체격조건이 가장 뛰어난 자들로 500명을 선정하여 돌격대로 양성한다. 대장은 무장으로 한다.

    - 해병대 : 물질을 할 줄 아는 자들로 200명을 선정하여 해병대로 양성한다. 대장은 아직 미정이다.

    - 통신대 : 머리가 뛰어난 자들로 100명을 선정하여 통신대로 양성한다. 대장은 무지로 한다.

    * 각 부대의 자세한 훈련 방법과 운영 방법은 무지가 가지고 있는 서찰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길 바람.

    조직도가 잘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던 척무관이 서찰 말미에 적혀 있는 글에 두께가 제법 두꺼워 서찰이라기보다는 한 권의 책에 더 가까운 무지가 들고 있는 서찰을 빠르게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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