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43화 (43/171)

#43. < 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 2(2권 끝) >

"...본 검왕은 내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외다. 동도 여러분들과의 약속처럼 도왕의 목을 잘라서 이렇게 들고 왔소. 춘향각 처마 아래에 매달기 위해서 말이오."

말을 하며 왕기가 도왕의 잘린 머리통을 가볍게 흔들자 모여있던 강호인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허공에 뜬 채로 양팔을 활짝 벌려 강호인들의 환호성을 잠시 만끽하던 왕기가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강호동도 여러분들은 지난밤 팽가가 저지른 악행을 살아남은 증인들의 입을 통해서 똑똑히 들었을 것이오. 이에 본 검왕이 약속하는 바이오. 정도의 탈을 쓰고 힘없는 고려 양민들을 학살한 팽가를 멸문시켜 강호에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드리겠소이다. 여기 계신 그 누구도 본인을 말릴 수가 없을 것이오. 원죄가 팽가에게 있다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고, 아무 죄 없는 고려인들을 죽인 그 대가는 팽가인들의 목숨으로 갚아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외다."

환호성을 내지르던 강호인들이 팽가를 멸문시키겠다는 왕기의 말에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신들끼리 의견을 나누느라 분주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기가 뇌까렸다.

'그럴 줄 알았다. 강자인 나를 무서워하기는 하지만 한낱 고려인인 내가 역사가 오래된 한족의 오대세가를 멸문시키는 건 영 맘에 안 든다 이거지?'

모여있는 강호인들 중에 강호에 이름이 난 명숙(名宿)을 찾던 왕기의 눈에 비무대 공증인이었던 비천신개가 들아왔다.

"비천신개 대협. 본 왕의 말이 잘못된 것이오? 어디 한번 말해보시구려."

왕기에게 지목을 당한 비천신개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쭈볏거리며 앞으로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고려검왕 아니 고려검황 대협의 말이 맞긴 하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들을 납치하고 살해한 팽가에게 그 죄를 반드시 물어야만 할 것이외다. 하지만 그 형평성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고 보이오. 납치된 고려 양민들의 수는 22에 불과하오. 하지만 팽가의 식솔은 무려 300이 넘어가는 걸로 알고 있소이다. 그 수가 10배가 넘지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도왕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다 죽이겠다는 것은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겠소? 본 거지가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강호의 명숙들로 구성된 조사단을 꾸려 그들의 죄를 명확히 가린 다음 고려검황과 팽가가 협상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인 것으로 보이오."

비천신개의 발언에 대다수의 강호인들이 동의를 표시하듯 고개를 끄덕일 때 한껏 비웃음을 지은 왕기가 물었다.

"그 반대도 그리했을 것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도왕에게 져서 목이 잘리고 납치를 당한 고려인들과 함께 이름 모를 야산에 다 파묻혔어도 비천신개 대협께서 그리했을 것이냐고 물은 것이오. 죄 없는 고려인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조사단을 꾸려 팽가에 그 죄를 물었을 것이오? 아니겠지. 유야무야 그냥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라는 것을 그대도 알고 본인도 알고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외다."

"으음..."

비천신개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왕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그딴 개소리는 집어치우시오. 도왕과 생사결을 할 때 도왕이 그리 말하더이다. 살인멸구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이오. 본인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강호에서는 약한 것이 죄이며 강자가 정의이니 억울하면 강해지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외다. 따라서 나도 한마디 하겠소. 화근을 없애는 데는 삭주굴근(削柱掘根)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였소이다. 팽가와 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소. 그런 마당에 내가 팽가의 사정을 일일이 봐줘야 할 이유가 어디 있소이까? 팽가의 구성원들을 다 죽여버려서 화근을 뿌리째 없애버리는 것이 마땅한 처사일 것이오."

그때였다. 100여 명이 넘어가는 일단의 무리가 질서정연하게 춘향각 쪽으로 접근해오자 강호인들이 신이 나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하북의 맹주인 팽가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 하북지도(河北智刀) 팽영호(彭永豪)가 맹호대와 벽력대를 모조리 끌고 왔어.

- 소가주가 팽가의 전력을 끌고 온 걸 보니 고려검황과 한판 붙을 모양인데? 이거 재밌게 되었군.

홍해가 갈라지듯 강호인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자리를 비껴주자 하북지도 팽영호가 감사하다고 여기저기 포권을 하며 왕기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강호동도 여러분들이 대거 모인 자리에서 팽가의 소가주인 본인이 분명히 밝혀드리리다. 고려검왕 대협께 본 팽가가 큰 죄를 지었소. 그걸 인정하오. 그에 대한 대가로 세 가지를 약속하겠소. 첫째, 팽가가 모은 재물 중 절반을 드리겠소이다. 둘쨰, 무림사미 중에 하나이자 본인의 여동생인 팽도일미를 대협께 드리겠소. 여동생을 첩으로 삼든 하녀로 부리든 상관하지 않겠소이다. 셋째, 조부이신 도왕이 저지른 죄를 참회하는 뜻으로 본가는 30년간 봉문(封門)을 하겠소. 이 정도로 본가가 지은 죄를 용서하시길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이오."

강호인들이 팽가가 내놓은 백기투항에 가까운 협상 조건을 곱씹으며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허공에 떠있던 왕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팽가가 대낮에 고려촌을 습격해 인질들을 잡아서 마음대로 고문을 하고 서슴없이 살인까지 저지른 것은 고려인이 오랑캐라서도 아니고 그들의 목숨이 천해서도 아니다. 그런 만행을 별생각 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너희들이 강자라는 믿음 때문이었지. 강하기에 뒤탈이 없을 것이고, 고려인들이 복수도 하지 못할 거라는 굳은 믿음이 깔려있었기 때문인 것이야."

- 치리링. 치리링.

왕기의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가고 있을 때 왕기의 옆구리에 차고 있는 쌍검이 칭얼거리는 아기처럼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너희들과 똑같은 생각이다. 팽가의 식솔들을 다 처 죽여도 그 누구도 감히 나에게 시비를 걸지 못할 것이고 복수도 하지 못할 거라는 굳은 믿음이 내게 있다는 것이야. 그 이유는 내가 절.대.강.자.이.기. 때문이지. 어설픈 협상 조건 따위는 필요 없다. 팽가를 멸문시키면 팽가의 재물은 당연히 다 내 것이 될 것이고, 난 나이가 어려 아직까지 여자에게 큰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황제가 내린 향당(鄕堂)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홍패(紅牌)도 부하에게 건네준 사람이라고. 그리고 30년 뒤라고 해봐야 내 나이 46이야. 무림인으로서 한창때이지. 그때까지도 팽가가 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삭주굴근이 내 뜻이다. 그런 나의 뜻에 반하는 강호인들은 팽가와 같이 힘을 모아 나를 치도록 하거라. 내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없었던 일로 돌아갈 테니까."

- 촹. 촹..

왕기의 목소리가 절정에 도달했을 때 검집 속에서 울어대던 쌍검이 호쾌하게 검집을 벗어나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물속을 유영하는 오색찬란한 물고기처럼 검강을 뒤집어쓰고 자연스럽게 허공을 날아가 하북지도(河北智刀) 팽영호(彭永豪)의 좌우에 우뚝 섰다.

"지금 이 순간 내 말을 직접 증명해 주겠노라."

하루 사이에 항주까지 다녀오고 도왕과의 생사결을 치른 이후 미처 흡수하지 못했던 영약의 기를 완전히 흡수해 내공이 더욱 증가했고, 전기와 자기를 다루는 솜씨가 더욱 향상된 왕기가 전력을 끌어올리며 양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하북지도 좌우에 둥실 떠있던 쌍검이 마치 엿장수가 빠르게 가위를 놀리듯 좌우로 정신없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 쑹덩. 쑹덩...

하북지도가 끽소리 한번 못 내보고 김밥에 들어가는 잘게 잘린 햄처럼 동강동강이 나면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러자 쌍검이 곧바로 맹호대와 벽력대를 빠르게 덮쳐갔다. 삼삼이는 오이밭에서 오이를 따듯 팽가 무인들의 목을 빠르게 따기 시작했고, 칠칠이는 꼬치를 꿰듯 팽가 무인들의 몸통을 연속적으로 꿰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 전설의 이기어검술이다.

- 살아생전에 이기어검술을 볼 줄이야. 역시 검황이라고 불릴만해.

- 맹호대와 벽력대가 전멸하면 팽가 전력의 8할이 날아가는 거라고. 검황이 정말로 팽가를 멸문시키기로 작정한 모양이야.

강호인들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무시한 채 왕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해동제일검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팽가 무인들 뒤쪽에 고려 병사들과 함께 서있던 척무관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하. 소인 여기 있사옵니다. 명령만 내리옵소서."

"해동제일검은 고려 병사들과 함께 팽가 무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철저히 퇴로를 막도록. 한 명이라도 도망치면 그대들에게 그 죄를 묻겠노라."

그 순간 척무관과 고려 병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저하의 명을 받습니다.

척무관이 검을 뽑아들고 팽가 무인들의 뒤를 막아섰고 그 옆을 말을 탄 고려 병사들이 일자진(一字陳)을 펼쳐 퇴로를 물샐틈없이 막아섰다. 빠른 속도로 팽가 무인들을 처죽이고 있던 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척무관의 검에서 이전과 다르게 눈처럼 새하얀 빛이 발산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척무관이 영약을 먹더니 드디어 한 계단 올라선 모양이로근. 내충법의 한계를 뛰어넘으면 고려의 검에서도 빛이 난다고 하더니 사실이었어. 아직은 뭔가 어설퍼 보이지만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태백심법을 익혔다고 하더니 색깔이 하얀색이야. 도왕은 푸른색이고 난 무지개 색이지. 익힌 심법에 따라서 색깔이 달라진다라. 이건 한번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겠어.'

왕기가 속으로 뇌까리는 그때 척무관이 도망치는 팽가 무인 두 명의 몸을 한 번의 칼질에 그들의 무기와 함께 두 쪽으로 도륙을 내고 있었다.

'잘 먹은 놈이 힘쓴다더니... 이제는 척무관을 어딜 보내더라도 죽을 염려는 없겠어.'

- 치리링. 치리링.

하늘을 날기 시작한 지 불과 반각만에 100여 명의 팽가 무인들을 모로지 참살한 쌍검이 또 다른 제물이 없냐는 듯 입맛을 다시며 칭얼대고 있을 때 왕기가 4층 높이의 춘향각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본 검황의 행사에 불만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도전하시길 바라오. 본인은 그 누구의 도전도 절대 피하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오."

- 짝. 짝. 짝...

믿기지 않는 왕기의 무력에 전율이 오는지 몸을 부르르 떨던 강호인들이 힘차게 박수를 치기 시작할 때였다.

- 띵디딩. 띵띵...

난데없는 악사들의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4층에 이르는 춘향각의 모든 창문들이 일제히 열렸고, 각 층에서 기녀들이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아래쪽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1층에서 30명, 2층에서 20명, 3층에서 10명, 4층에서 5명 도합 65명의 기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자 전원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던 무림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 30여 년 만에 춘향각의 창문이 모두 열렸다. 춘향각 전통의 부군초대식(夫君招待式)이 시작되었어.

- 춘향각주의 부군으로 아마도 고려검황이 결정되었나 본데? 설마하니 다른 사람은 아니겠지?

- 그럴 일이 있겠어? 당연히 고려검황이지. 고려검황 덕분에 동추하춘(冬秋夏春) 4등급으로 나뉜 기녀들을 다 구경하게 생겼는걸. 난 평생 동(冬)급 이상의 기녀를 본 적이 없다고.

얼떨떨한 표정의 왕기가 안에 입고 있는 새빨간 속옷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잠옷 같은 옷을 걸친 채 잘린 머리통이 나뒹굴고 목이 잘린 시체와 몸뚱어리에 바람구멍이 난 팽가 무인들의 시체들 사이에서 칼군무를 추고 있는 한 무더기의 기녀를 보며 뇌까렸다.

'이 시대에도 씨수르(See-Through)가 있었나 보군. 핏구덩이 속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무희들이라. 피가 잔뜩 묻은 발을 치켜들 때마다 새빨간 팬티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게 무슨 공포영화라도 보는 듯한 기분이로군. 근데 부군초대식이라는 것이 뭐지? 첨 들어보는데...'

그 순간 춘향각 맨 꼭대기에서 얼굴을 가리는 면사포를 쓴 여인이 깃털처럼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며 외쳤다.

"강호동도 여러분들께 고려검황 대협께서 본 춘향각의 부군으로 점지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화경에 들었다는 도왕의 목을 자르고 팽가를 멸문하겠다는 고려검황의 호기로움에 감동받은 당대의 춘향각주인 소녀가 오늘 밤 고려검황을 모시겠사옵니다."

'4층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태연하게 말까지 한다 이거지? 지닌 무공이 제법이로군.'

왕기가 속으로 춘향각주의 무공을 평가할 때 면사포를 두른 여인이 사뿐사뿐 왕기 쪽으로 다가왔다. 배꼽이 훤히 보이는 시스루를 입은 그녀의 몸매는 한마디로 황홀했다. 개미처럼 잘룩한 허리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복근은 섹시함을 물씬 풍기고 있었고, 무공을 익혀서 그런지 곧게 쭉 뻗은 다리의 각선미는 더없이 황홀했지만 가냘픈 몸매와 달리 앞쪽으로 잔뜩 돌출되어 있는 풍만한 가슴은 언밸런스를 넘어 괴기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가까이 다가온 춘향각주가 별다른 말도 없이 갑자기 왕기의 팔짱을 끼었다.

- 물컹...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말랑하면서도 묵직한 질량감을 지닌 춘향각주의 젖무덤 감촉에 왕기가 몸을 움찔할 때 각주가 왕기의 귀에 입술을 가져가며 물었다.

"대협께서는 춘향각의 전통을 알고 계십니까?"

"전혀 모르고 있소이다."

그러자 춘향각주가 면사포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단발머리 여고생처럼 어깨까지 오는 비교적 짧은 머리, 우유 같은 뽀얀 피부, 조막만 한 얼굴에 조화롭게 모여 있는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절세미인이라는 걸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고, 개구리 왕눈이처럼 커다란 눈에 새하얀 치열과 선홍빛 입술 그리고 오뚝한 콧날이 왕기로 하여금 한 여인을 떠올리게 하였다.

'젊은 날의 하지원을 닮았는걸.'

"역사가 200년이 넘는 춘향각은 하북을 비롯한 섬서, 산서, 산동, 하남 등지에 20여 개의 분점을 지니고 있는 여인만의 문파에 가깝습니다. 하북에 위치한 춘향각 본점의 각주는 당대의 최고 영웅을 부군으로 모시어 그 씨를 받는 것이 의무이지요. 아들을 낳으면 숙수(熟手)나 호위무사로 키우고, 딸을 낳으면 차기 각주로 키우는 방식입니다. 춘향각의 부군께서는 각주에게서 딸을 볼 때까지 춘향각에서 무위도식을 하며 지낼 자격이 있고, 마음에 드는 다른 기녀들과도 자유로이 동침을 할 수도 있지요. 본 소녀는 당대의 춘향각주이며 다른 남자와의 경험이 없는 순백지신(純白之身)입니다. 오늘 영웅이신 고려검황을 부군으로 맞아 더없이 기쁜 마음입니다만 한 가지 걱정이 앞섭니다."

"어떤 걱정이오?"

"아까 무림사미 중에 하나인 팽가일미를 거절하실 때 아직 나이가 어려서 여자에 관심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얼핏 들었습니다. 사내 나이 16이면 한창때인데 그럴 리가 없지요. 혹시..."

춘향각주가 매끈하고 가냘픈 섬섬옥수로 왕기의 서혜부(鼠蹊部)를 부드럽게 더듬으며 귓가에 대고 끈적하게 속삭였다.

"고자(鼓子)이신 것이옵니까?"

반드시 확인을 하고야 말겠다는 듯 춘향각주의 새하얀 옥수가 자신의 서혜부를 넘어 사타구니 쪽으로 접근하자 깜짝 놀란 왕기가 다급히 허리를 뒤로 뺐지만 그녀의 손은 집요하게 쫓아왔다.

- 덥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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