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40화 (40/171)
  • #40. < 도왕(刀王)과의 혈투(血鬪) - 2 >

    - 콰과과광.

    발밑에서 새빨간 불꽃을 내뿜으며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상공을 날아가고 있던 왕기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발견하고 있었다.

    '수통의 물이 줄어드는 속도가 내 예상보다 몇 배는 더 빠르다. 이제야 이해하겠군. 우주비행선인 콜럼버스호나 디스커버리호가 우주선보다 더 큰 연료통을 매달고 날아가는 이유를 말이야. 로켓엔진은 추진력과 가속력이 뛰어난 만큼 연료를 많이 잡아먹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난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보충이 용이하다는 것이지.'

    높은 산들을 단숨에 넘어가고 있던 왕기의 눈에 지상을 흐르고 있는 누런 흙탕물이 보였다. 그 순간 왕기가 대도를 떠나기 전 척무관이 해주었던 설명을 떠올렸다.

    "저하. 항주를 찾아가시는 방법은 간단하십니다. 저하께서는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실 테니 남쪽 방향으로 쭉 날아가시다 보면 누런 흙탕물로 된 강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그게 바로 황하(黃河)이지요. 대도에서 빠른 말을 타고 가도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걸린다는 제남(濟南)까지 다 왔다는 뜻이며 항주까지의 1/3을 가신 것입니다. 황하에서 다시 남쪽으로 쭉 날아가시다 보면 폭이 넓은 도도한 강이 하나 보일 것입니다. 주변에는 동정호와 포양호 같은 거대한 호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것이 바로 양자강(揚子江)이며 항주까지 거의 다 왔다는 뜻입니다. 양자강 물길을 따라 동쪽 그러니까 바다가 있는 쪽으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항주(杭州)가 나올 테니까요. 찾기가 아주 쉽지요?"

    물을 보충하기 위해 황하의 싯누런 물결을 향해 빠르게 수직낙하하며 왕기가 뇌까렸다.

    '대도를 출발한지 1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이런 스피드라면 항주까지 3시간 만에 돌파 가능할 것이야. 이틀 전에 출발한 바얀을 잡는 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먼저 항주에 도착해서 역참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견이 될 테니까. 항주 인근에서 대기를 하여도 괜찮을 테고.'

    오색찬란한 강기를 온몸에 휘두르고서 내공을 보충하기 위해 반야심공을 운기하느라 발생한 선풍을 이끌며 황하의 수면 위로 내려온 왕기는 로켓 엔진의 또 다른 단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선풍에 휘말린 강물이 회오리를 치며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강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용왕께서 강림하셨다며 자신을 향해 절을 하고 난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로켓 신법은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끈다. 나의 행적을 숨길 수가 없다는 뜻이야. 그나마 다행은 정보의 전달 속도보다 나의 이동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지. 항주 인근에 가면 로켓 신법을 사용하면 안 되겠어. 쓸데없이 팔비신장을 자극할 수도 있고 눈치를 챈 바얀이 잠적할 수도 있을 테니까.'

    물을 보충한 왕기가 다시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남쪽 방향으로 계속 날아갔다. 그렇게 중간중간 물을 보충해가며 두어 시간을 더 날아간 왕기의 눈에 도도한 양자강의 물길이 보였다. 그러자 전기분해를 멈추어 수소와 산소 가스의 공급을 멈추자 발밑에서 피어나던 불꽃이 사라졌고 왕기의 몸이 서서히 추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왕기가 자기부상신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먼저 옆구리에 찬 쌍검을 뽑아든 왕기가 허공에 검을 띄웠다. 그런 다음 양쪽 발로 각각 쌍검을 밟고 올라탄 왕기가 손을 휘두르자 오갑자의 내공에 걸맞게 이번보다 춸씬 더 강력해진 자기장에 이끌린 왕기의 몸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허공을 쭉쭉 미끄러지며 양자강 물길을 따라 동쪽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강호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검선(劍仙) 여동빈(呂洞賓)이 검을 타고 하늘을 날았다는 어검비행술(御劍飛行術)처럼 말이다.

    한편 그 시각 황궁에 있는 자신의 처소에서 왕기가 내려준 인형설삼을 먹고 태백심법을 운기 하고 있던 척무관이 자신의 몸 상태를 관조하고 있었다.

    '3갑자의 내공이로군. 이제 정말 나도 화경을 노려볼 수가 있겠어. 강호에 다섯밖에 없다는 화경의 경지라. 하지만... 내가 설사 화경에 도달한다 해도 대군 저하를 이길 자신이 없다. 대군 저하께서는 사람이 아니니까. 무공을 익힌지 3개월 만에 화경에 도달한 자가 사람일 리가 없지. 확실한 것은 대군 저하께서 고려의 왕이 되시면 고려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태평성대를 누릴 것이라는 것이지. 이 한목숨 바쳐서라도 저하를 잘 보필하여야만 한다.'

    그때였다. 처소 밖에서 고려에서의 자신의 직위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랑장(中郎將 : 고려 시대의 중앙군에 있어서 장군 다음가는 계급인 정 5품 무관직의 별칭) 나리. 중랑장 나리. 대도에 있는 고려촌이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하옵니다."

    화들짝 놀란 척무관이 자신의 검을 챙겨 처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원나라에 파견된 고려 병사들 중 고위 계급인 별장(別將 : 정 7품 무관)을 보며 물었다.

    "박별장. 그게 무슨 소리냐? 경비가 엄중한 대도에 있는 고려촌이 습격을 당하다니. 자세히 말을 해보거라."

    "네. 중랑장님. 반시진 전에 20여 명의 무인들이 갑자기 고려촌으로 들이닥쳐서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을 납치해 갔다고 합니다. 다행히 죽은 자는 아무도 없고 재물을 약탈하지도 않았다는 걸 봐서 처음부터 납치가 목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의 소행이라고 하더냐?"

    "다들 복면을 하고 있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북 팽가의 소행이 아닌가 합니다. 습격한 자들은 이미 달아난 상태이고 남겨진 특별한 증거도 없지만 고려촌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니까요."

    "정도(正道)에 속해있는 하북 팽가가 왜 그런 짓을... 저하와 원한 관계가 있다고 해서 굳이 고려촌을 습격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야."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알겠다. 일단 병사들을 고려촌으로 일부 보내어서 2차 습격을 대비하거라. 이에 대한 대응은 대군 저하께서 돌아오시면 직접 하실 테니까."

    "알겠습니다. 중랑장 나리."

    - 쉬이이익...

    자기부상신법으로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항주를 목표로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왕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공이 5갑자에 달한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자기부상신법을 시전하는 게 처음인 왕기는 자기력을 이용해 날아가는 속도에 점점 더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되는 속도야. 단순히 내공이 늘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현상이다. 이건 마치... 레일건에서 쏘아진 탄환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 이런 식으로 계속 가속도가 붙으면 로켓 신법에 뒤질 것이 없어.'

    로켓 신법보다 조용하면서도 속도가 뒤처지지 않는 자기부상신법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자신감이 생기자 왕기가 점점 지상으로 가까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 왕기의 눈에 새빨간 깃발에 하얀 글씨로 '항주일참(杭州一站)'이라고 적혀있는 곳이 보이자 검을 타고 빠르게 하강했다. 어검비행술로 날아오는 자신을 발견하고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참호(站戶)에게 다가간 왕기가 황제가 내어준 최상급 '포마성지(鋪馬聖旨)'를 보여주며 물었다.

    "요 며칠 사이에 항주 일대에서 참치를 이용한 자가 있느냐?"

    검을 타고 허공에 둥실 떠있는 왕기가 두려운지 참호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최근 일주일 이내에는 참치를 이용한 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대도에서 내려오는 반역자를 찾고 있다. 그런 자가 참치를 이용한다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 어딘가?"

    "말이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따지자면 항주 쪽이 아니라 태호(太湖) 인근에 있는 호주(湖州) 쪽 참치를 이용할 것입니다. 호주에서 항주까지는 한 마리 말로도 달려올 수 있는 거리이지만, 남경(南京)이나 상주(常州)에서 말을 갈아탄 자라면 호주에서 반드시 말을 바꿔타야만 하니까요. 대도에서 내려오는 자를 잡으시려면 그곳을 지키시면 될 것입니다."

    "알겠다."

    왕기가 검을 타고 또다시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 쉬이웅.

    왕기가 태호 인근의 참치에서 잠복한지 반나절이 지났고 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 왕기의 눈에 저 멀리서 누런 먼지를 휘날리며 참치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말이 보였다. 감각을 끌어올려 상대방의 내공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왕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품에서 바얀의 초상화를 꺼내든 왕기가 귀신처럼 조용히 달려오는 말을 향해 나아갔다.

    큼지막한 가방 두 개를 안장 양쪽에 매달고서 먼지를 덮어쓴 채 달려오고 있는 바얀 승상을 확인한 왕기가 불문곡직하고 검강을 일으켜 목을 날려버렸다.

    - 쓰으윽.

    허공으로 떠오른 바얀의 목을 잡아채어 미리 준비한 목함에 담은 왕기가 안장에 매달려 있는 가방들을 열어보았다. 가방 하나에는 중통보초(中統寶鈔) 2관문 짜리를 꽉꽉 눌러 담아 있었고, 다른 하나의 가방에는 각종 보석과 금괴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 그렇지. 반군들을 규합하려면 자금이 필수인데 맨몸으로 도망쳤을 리가 없지. 이걸 챙겨오느라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모양이로군. 안 그랬다면 나보다 더 일찍 항주에 도착했을 수도 있었겠지. 대박이로군. 고려의 산업화에 사용하면 딱이겠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왕기가 가방 2개를 어깨에 울러매고 목합을 손에 든 다음 대도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검에 올라탔다.

    [대도 인근의 랑방시(廊坊市)]

    대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랑방시 인근의 한 야산에서 때아닌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산을 넘어가는 모든 길에는 나무에 묶여 있는 남자들이 고문을 당하면서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길바닥에서는 수많은 여인들이 괴한들에게 강간을 당하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런 남녀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고려어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누군가가 들어라는 듯 더 크게 고함과 비명을 지르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자기부상신법으로 비교적 저공으로 날아가던 왕기의 귀에 그런 비명이 안 들릴 리가 없었다.

    쌍검을 타고 하늘에 둥실 떠있는 왕기가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참한 광경을 보며 뇌까렸다.

    '전형적인 함정이로군. 날 잡기 위해서 도왕이 제법 머리를 굴린 모양이야. 죽여달라고 하면 죽여줘야겠지.'

    - 폴짝.

    검에서 뛰어내린 왕기가 허공에 둥실 떠있자 쌍검이 지상을 향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로 쌍검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조작해 고려인들을 고문하고 강간하고 있는 자들의 목을 잘라내던 왕기가 바닥으로 서서히 하강하면서 산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도왕은 어디 있느냐? 지금 당장 썩 나서거라. 네가 찾는 고려검왕이 여기에 있다."

    그러자 왕기의 감각에 누군가가 허공을 밟으면서 자신의 뒤쪽에서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왕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수염을 허옇게 기른 노인이 거대한 도에 새파란 검강을 두른 채 자신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도왕이라는 것을 직감한 왕기가 이기어검술로 날아다니고 있는 검 하나를 불러들여 오색찬란한 검강을 씌워 맞부딪쳐 갔다.

    - 쿠~앙!

    청색의 도강과 오색찬란한 검강이 격돌하자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충격으로 도왕의 다시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고 왕기의 발이 땅속으로 두 치가량 파고들었다. 척무관이나 매화신검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위력에 왕기가 정신을 바짝 집중할 때 도왕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며 중얼거렸다.

    "쥐새끼 같은 놈. 강기를 두른 내 도를 받아내는 걸 보니 제법 한 수가 있긴 하구나. 네놈을 잡기 위해 내가 이 나이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사지의 근맥을 잘라 병신으로 만든 다음 잘근잘근 포를 떠주도록 하마."

    그러자 왕기가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며 대꾸했다.

    "나이를 먹더니 확실히 똥오줌을 못 가리는군.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거야. 그럼 제대로 상대를 해주지. 각오해라.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면 나 하나 잡고자 이런 지옥도를 펼친 팽가를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밀어버릴 것이니까."

    "살아서 돌아가? 네놈이 헛된 꿈을 꾸고 있구나."

    말을 하며 도왕이 왼손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도왕의 고유 병기인 거대한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를 허리춤 뒤로 빙글 돌렸다.

    "오호... 첫수부터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비호출림(飛虎出林)이라. 정말로 날 죽일 생각인가 보군? 황제의 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는 고려의 왕족인 날 말이야.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는 건가?"

    "별 걸 다 걱정하고 있구나. 자고로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살인멸구(殺人滅口)라.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긴 하지."

    쌍검을 모두 불러들인 왕기가 어깨에 울러매고 있던 가방과 목합을 땅에 내려놓은 다음 검을 정면으로 세웠다. 그러자 도왕이 기합을 내뱉으며 숲속을 뛰쳐나온 한 마리 호랑이처럼 빠르게 몸을 날려 일직선으로 쇄도해왔다.

    "하압!"

    앞으로 튀어나온 왼팔을 강하게 잡아당긴 도왕이 그 탄력을 이용해 뒤로 돌아갔던 혼원벽력도를 빠르게 휘둘렀다. 마치 원반을 거세게 집어던진 것처럼 대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혼원벽력도를 냉정한 눈길로 바라보던 왕기가 왼발 발꿈치를 중심으로 빠르게 한 바퀴 빙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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