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31화 (31/171)
  • #31. < 대공(大功)을 이루고 비무에 나서다 - 3 >

    - 찌지직.

    소년의 몸을 가지고 있던 과거의 자신과 작별을 알리는 듯한 단말마(斷末魔)와 같은 소리와 함께 왕기는 탈태환골이 마침내 끝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눈을 뜨고 하룻밤 사이의 급작스러운 신체 성장에 견디지 못한 의복들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것을 발견한 왕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지춤을 벌려 자신의 양물(陽物)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한 마리 구렁이처럼 보이는 양물을 확인한 왕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행히 나쁘지 않군. 다른 건 다 자랐는데 이것만 크기가 그대로라면 곤란하다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활짝 미소를 지어 기존의 누런 치아 대신 갓 태어난 것 같은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왕기가 자신의 몸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키가 20cm 정도는 자란 것 같아. 대충 180 정도는 되는 것 같으니 이제는 어디 가서 꼬맹이 소리는 듣지 않겠군. 아니지. 발육상태가 안 좋은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거인에 가까운 키라고. 거기에 맞춰 골격과 근육들도 자리를 잘 잡아있고 말이야. 헐크 정도는 아니더라도 잘 관리한 몸짱 정도는 되어 보여. 더 중요한 것은...'

    전신에 넘쳐흐르는 성인 남성의 강력한 힘을 느끼고 있던 왕기가 갑자기 양발을 앞뒤로 쫙 뻗어 바닥에 엉덩이를 찰싹 붙였다. 그리고는 양손을 맞잡고서 어깨 위로 치켜 올리며 360도로 회전을 시켜보았다. 마치 잘 훈련된 체조선수처럼 또는 숙련된 요가강사처럼 유연하게 돌아가는 자신의 팔다리에 감탄을 하며 왕기가 뇌까렸다.

    '근육과 관절이 더없이 유연해지며 가동 범위가 넓어졌어. 같은 내공을 지닌 무인끼리 붙으면 외공이 뛰어난 자가 이긴다. 이제는 덜 자란 신체 때문에 받았던 불리함이 완전히 사라졌어. 이 정도면 척무관과 정말로 한판 붙어볼 만하겠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왕기가 전문 복서처럼 주먹을 내지르며 태권도 선수처럼 쭉쭉 올라가는 발로 발차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 훅. 훅...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새로 얻은 성인의 건장한 신체에 적응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끼는 법이라고 하였든가. 왕기는 자신의 신체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탈태환골을 하기 위해 밤새 운기를 하는 동안 빠른 속도로 뇌전지기를 빨아먹던 반야심공의 기운이 분명히 운기를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뇌전지기를 갈아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두 기운의 힘이 이미 비슷해졌다. 여기서 더 뇌전지기를 잃었다가는 균형이 완전히 깨져 버린다고. 그럼 뇌전지기가 반야심공의 기운에 완전히 흡수되어 버릴지도 몰라. 그랬다가는 힘들게 성취한 분맥, 분공의 의미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당장 멈춰!'

    분명히 왕기가 멈추라고 지시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반야심공은 뇌전지기를 흡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회회연회(回回然回)라. 돌리고 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속 돌게 된다는 반야심공의 구결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반야심공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분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맥을 타고서 스스로 끊임없이 흘러가며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어째 너무 잘 풀린다 했다.'

    이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감한 왕기가 빠르게 가부좌를 틀고서는 뇌전벽력공만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멈춰있던 뇌전지기가 분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맥을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하자 반야심공의 기가 주춤하며 마치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흡수를 포기하고 뇌전지기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때야 마음을 놓은 왕기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뇌까렸다.

    '반야심공의 기가 왜 이렇게 뇌전지기에 집착을 하는 거지? 비록 똑같은 기이기는 하지만 각각의 특성이 다르다고. 잘못해서 두 기가 섞였다가는 내가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어. 분맥을 더 강하게 만들던지 무슨 수를 써야 하겠군.'

    그때였다. 뇌전지기의 속도를 따라집지 못하고 있던 반야심공의 기가 경맥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갑자기 분맥을 뛰어넘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뛰어 넘어가는 듯한 반야심공의 기운을 보며 화들짝 놀란 왕기가 경악과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반야심공의 그런 행태가 보물을 탐내어 담장을 뛰어넘는 도둑 같다기 기보다는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분단된 장벽을 뛰어넘는 사람처럼 애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화입마의 위기에 마음이 다급해진 왕기가 두 기운을 가르고 있는 분맥을 더 강화하며 뇌전벽력공을 더 빠르게 운기하려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양의검법 비급 맨 마지막에 별다른 설명도 없이 태허진인이 낙서처럼 휘갈겨놓은 단 하나의 구절이 왕기의 뇌리를 강타했다.

    [양의시발혼일야(兩儀始發混一也)]

    '양의란 것은 본디 혼일에서 태어난 것이다'라는 구절이 떠오르자 왕기가 정 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반야심공을 말리기는커녕 전력을 다해 운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탄력을 받은 반야심공의 기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분맥을 뛰어넘어가 뇌전지기를 휘감아가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이 흔히들 말하는 대오각성(大悟覺醒)의 순간이자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것을 직감한 왕기가 정신을 하나로 모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기가 하나로 섞이되 마구잡이로 섞여서는 절대 안 된다. 그랬다가는 내가 주화입마에 들 것이야. 두 기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만 해.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하다. 단단한 수도관 속을 흐르는 물처럼, 피복된 전선 안에 있는 구리 선을 따라 흐르는 전기처럼, 내가 수도꼭지를 틀고 잠그고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간단한 조작만으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만 해.'

    왕기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자체적으로 회전력을 가지고 있는 반야심공의 기가 뇌전지기를 완전히 감싸버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버렸고, 야생마 같은 특성을 지닌 뇌전지기가 반야심공의 품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치 어미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얌전해지더니 어미의 행동을 따라 하는 아기처럼 같이 맹렬하게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이 하나이고 하나가 둘이 되는 순간 왕기는 자신의 백회혈이 또다시 환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사고의 영역이 팽창되고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이전보다 선명해지며 뇌 전체가 또 한 번 각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동안 장애물로 가린 듯 떠오르지 않던 과거로 넘어왔을 때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왕기의 양쪽 옆구리에서 마치 진동으로 설정해 놓은 핸드폰이 울리는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드르륵. 드르륵...

    고비를 넘기고 대공을 이루었다는 것을 직감한 왕기가 눈을 뜨며 뇌까렸다.

    '이건 태허진인이 말년에 깨우쳤던 무공 이론일 것이다. 하지만 태허진인조차 달성하지는 못한 경지일 것이야. 그럼 비급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놨을 테니까. 분맥과 분공을 뛰어넘은 이 경지를 합공(合功)이라고 명명해야 하겠다.'

    차분하게 자신의 몸속을 관조하며 왕기는 척무관이 말했던 약점 하나를 가뿐하게 극복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둘로 나누어져 있어서 내공으로는 자신에게 여지없이 밀릴 것이라는 척무관의 말이 무색하게 합일된 2갑자에 가까운 진기가 호호탕탕 경맥을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둘을 따로 분리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왕기가 옆구리에 찬 검이 왜 연신 진동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온몸을 휘감아 돌며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는 뇌전진기가 자신의 몸 전체를 거대한 솔레노이드(Solenoid)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류를 흘려주면 자기장이 발생하는 전자석(電磁石)의 원리에 따라 뇌전지기가 양쪽 옆구리 부근을 흐를 때마다 쇠로 만든 검을 연신 잡아당겼다 놓았다 하는 바람에 끊임없이 진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턱. 턱.

    양손을 검의 손잡이에 가까이 대면서 자기장을 극대화하자 검집에서 뛰쳐나온 검이 왕기의 손에 쏙 들어왔다. 자신이 전기와 더불어 자기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왕기가 중얼거렸다.

    "엑스맨의 매그니토(Magneto)가 된 기분이로군."

    생각지도 못한 대공을 이루어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뇌전지기를 훨씬 더 자유롭고 세밀하게 조종할 수 있고 되었고, 그에 따라 전기장과 자기장을 마음먹은 대로 발생할 수 있게 된 왕기가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꿈꾸던 것을 실행해 보았다.

    - 쿵.

    가볍게 발을 굴려 바닥에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시킨 왕기가 자신의 몸 전체에도 같은 극을 지닌 자기장을 둘렀다.

    - 부웅.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는 척력(斥力)이 발생하며 왕기의 몸이 공중으로 가볍게 떠올랐다. 그러자 왕기가 오른팔을 휘둘러 자신이 조종 가능한 최대 거리인 3장(약 10m) 정도 떨어져 있는 허공에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켰다. 자신의 몸을 두른 자기장과 정반대되는 극으로 말이다.

    - 스르릉.

    그 순간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은 왕기의 몸이 마치 유령처럼 허공에서 빠르게 미끄러지며 이동했다. 자석에 달라붙는 철가루처럼 말이다.

    '나쁘지 않군. 이걸 잘만 이용하면 보법(步法)과 신법(身法)에 약하다는 나의 약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다면 굳이 이 시대의 보신공(步身功)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겠지. 내가 하는 방식이 더 뛰어날 것이 자명하니까.'

    - 팍. 팍. 팍...

    양손을 빠르게 휘둘러 여러 개의 자기장을 허공에 동시에 발생시킨 왕기가 발을 옮겨 자기장을 순서대로 밟으며 허공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화경에 달한 고수만이 시전할 수 있다는 허공을 마치 평지처럼 밟고 걸어 다닌다는 보신공의 최고 경지인 능공허도(凌空虛道)를 너무나도 손쉽게 펼쳐 보인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합공의 위력이 더 뛰어나다. 생각보다 지속시간이 길고 척력(斥力)과 인력(引力) 또한 강력해. 그렇다면 내가 시험해 볼 것이 있지.'

    자기장을 해제해 가볍게 땅바닥으로 뛰어내린 왕기가 칠칠이를 뽑아들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검에 진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검강(劍罡)의 원리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검기를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아올려 만든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여러 겹의 검기를 순간적으로 동시에 쌓아 올릴 정도의 내공과 정밀한 조종 능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일찍 발산된 검기가 사라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어야만 가능한 일이지. 쉬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충분한 내공이 있고 그걸 입안의 혀처럼 자유롭게 조종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검기를 지속시키는 능력은 전기를 다루는 나에게는 일도 아니지. 매화검법 때처럼 말이야.'

    - 쉬리리리리링...

    새파란 검기가 순식간에 검을 둘러싸며 층층이 쌓아지기 시작했다.

    "크흑..."

    2갑자에 달하는 내공으로도 버거운지 왕기의 입에서 새된 신음성이 흘러나올 때였다. 일정한 두께 이상으로 쌓인 검기에서 갑자기 오색찬란한 빛이 터져 나왔다. 북두칠성을 뜻하기도 하고 별을 뜻하기도 하는 강(罡)자의 뜻처럼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란한 빛을 내고 있는 자신이 만들어낸 검강을 보며 왕기가 뇌까렸다.

    '검강의 색깔은 그 사람이 지닌 내공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들었다. 나의 검강은 오색찬란한 것이 마치 극광(極光 : 오로라) 같군. 전기가 함유되어 있는 나의 내공 때문에 플라스마 현상이 일어나서 그런 것일 거야.'

    무지개처럼 빛나는 검강으로 둘러싸인 검을 석벽 쪽으로 휘두른 왕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단단한 석벽이 마치 두부처럼 물렁하게 느껴지며 간단하게 잘려나갔기 때문이었다.

    '검강이 이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이제는 나도 구현이 가능하니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하겠군.'

    검에서 진기를 거둔 왕기가 연공실을 벗어났다. 그러자 자신과 눈높이가 비슷해진 척무관이 하룻밤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진 왕기의 모습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저하께서는... 절 계속 놀라게 만드는군요. 단 하룻밤 사이에... 또 이렇게 달라지시다니 말입니다. 소관은 이제... 저하가 무섭기까지 합니다."

    - 툭. 툭. 툭.

    손을 치켜들자 이전과 달리 간단하게 닿는 척무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긴 왕기가 입을 열었다.

    "약속된 비무는 내일이니 오늘도 피 튀기는 실전 대련을 해야 하겠지? 넘 걱정 말게나. 본 대군이 다치지 않도록 살살 패줄 테니까. 그럼 가볼까?"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왕기의 뒤를 따라 척무관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기적 거리며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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