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30화 (30/171)
  • #30. < 대공(大功)을 이루고 비무에 나서다 - 2 >

    왕기가 정신을 집중하며 집요하게 탈태환골의 이론에 매달렸다. 마치 그것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동아줄인 것처럼 말이다.

    '탈태환골을 하면 몸의 골격과 근육이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게 바뀐다고 한다. 심지어는 빠졌든 머리카락도 다시 자라며 치아도 다시 나서 마치 회춘을 한 것 같다고들 말하지. 그런 이유로 탈태환골을 겪은 고수 중에서는 대머리가 없다는 것이 강호무림의 정설이다. 내가 탈태환골에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야. 신(神)이 아닌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무생물인 지구와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도 수소 원자의 융합체로 형성된 것이야. 수소라는 재료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는 뜻이지. 하지만 탈태환골에는 기(氣) 외에는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기가 영양소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의 생각을 바꿨지. 영약고에서 본 천년금구의 내단이 그 근거였기도 했고 말이야. 하지만 난 탈태환골에 실패했다. 그럼 두 가지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어. 인간은 기를 영양소로 사용할 수가 없거나 천년금구처럼 기를 먹이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체 내에 특별한 소화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 그런 소화기관을 특별하게 타고난 생명체만이 영물로 자라나게 되는 것으로 말이야. 아무도 먹지 않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소화할 수가 있어서 평생 유칼립투스 나뭇잎만 먹는 사는 코알라처럼 말이지.'

    탈태환골에 대한 이론을 수정하고 있던 왕기가 어느 정도 배가 꺼진 것 같자 다시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먹기 시작했고,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그럼 모든 게 간단명료해진다.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이다'라는 오컴의 면도날처럼 말이야. 문제는 내가 너무 어리다는 것이야. 다 큰 성인이 탈태환골을 하는 데에는 별다른 영양소가 필요 없을 것이야. 이미 다 자란 상태이니까 근육과 골격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을 테지. 기껏해야 머리카락과 치아만 생성시키면 되는 것이니 그 정도면 밥 한 끼만으로도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해 줄 수가 있어. 하지만 난 다르다. 어리기 때문에 새로이 근육과 뼈를 만들어줘야만 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탈태환골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야. 몸속의 영양소가 너무 부족해서 말이지. 해결책은? 간단하지. 근육의 주성분인 단백질과 뼈의 주성분인 칼슘을 계속 공급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럼 조만간 탈태환골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지 비무를 치르기 전이냐 아니면 후냐가 문제인 것이지.'

    왕기가 이틀 후에 있을 비무를 대비해 탈태환골에 목을 매고 있을 때 또 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도에 위치한 대흥로(大興路)]

    원나라 황실의 고관대작들이 주로 모여사는 대흥로에 위치한 한 저택.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는 저택 안에서는 당대의 권력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바얀 승상이 심각한 얼굴로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자신의 조카인 '토크토아'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토크토아. 벗어날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바얀 승상의 물음에 어릴 때부터 백부인 메르키트 바얀의 손에 의해 길러졌고, 무주의 유학자인 오직방(吳直方)에게 학문을 사사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대궁(大弓)을 가볍게 당겨 타고난 용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얀의 조카이자 현재 원나라 황실의 감찰기구인 어사대(御史臺)의 수장인 어사대부(御史大夫)를 맡고 있는 토크토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습니다. 백부님. 증거가 너무 명확합니다. 기황후의 침실 천장에 숨어있던 자객이 정림방의 사대당주 중에 한 명인 은형암귀라는 것이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황제가 사람들 몰래 불러들인 개방의 대도지부장(大都支部長)이 직접 시체의 얼굴을 보고 확인을 해주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품에서 나온 주머니에서는 한 알만으로도 일주일간 허기를 면하게 해준다는 최상급 벽곡단(辟穀丹)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벽곡단은..."

    "내가 약재고에서 직접 꺼내어 은형암귀에게 건네준 것이지."

    "어사대의 조사 결과 이미 그러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황제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습니다. 백부님. 조카가 아무리 손을 쓰려고 해고 더 이상 손을 쓸 방법이 없습니다. 조만간 황제가 직접 백부님의 죄를 물으려고 들 것입니다. 황제가 아직까지 참고 있는 것은..."

    "행여 내가 칼자루를 거꾸로 쥐고 반역이라도 일으킬까 봐 두려운 것이겠지. 내 손아귀에 쥐고 있는 병사들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말이야."

    "하지만 이미 황실에서 출발한 파발마들이 대초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서찰을 받은 각 부족장들이 백부께서 기황후와 황자 전하를 시해하려고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백부와 관련된 모든 끈들이 일제히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백부님 슬하에 있는 병사들 또한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게 될 테지요."

    조카의 말에 몽골 제일주의자로 알려진 바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것 참... 천한 고려 년 하나 때문에 일이 꼬여도 더럽게 꼬였구나. 내가 기황후를 죽이고자 했다면 진즉에 죽였을 것이야. 단지 다음 황제가 될 황자 전하 때문에 정보 수집 차원에서 은형암귀를 보낸 것뿐인데 말이야. 지금에 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테지. 정말로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겠는가? 가령 무공이 뛰어난 고수들을 선발하여 황궁으로 쳐들어가 황제를 시해(弑害)한다든지..."

    "백부님. 황실에는 강호의 절정고수들이 부지기수로 몸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이 황실과 계약을 한 것은 전쟁이나 세력 싸움에 그들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황실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런 그들도 싸움에 나서야 되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듯 바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에 적들이 쳐들어 오거나 누군가가 황제를 시해하려고 들 때이지."

    "그렇사옵니다. 우리 쪽 고수들의 숫자로는 그들의 호위를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회유하면 어떻겠느냐? 너도 알다시피 그들 대부분이 한족(漢族)이다. 당연히 원나라 황제를 싫어하고 있을 테지."

    "이런 말을 드리기 죄송하지만... 그들은 황제보다 백부님을 더 미워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백부님이 내리신 명 때문이지요."

    바얀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랬지. 내가 한족의 세를 위축시키고자 전국에 도살령(屠殺令)을 내린 적이 있었지. 장(張), 왕(王), 유(劉), 이(李), 조(趙) 성을 가진 한인들을 모조리 학살하도록 말이야. 나의 과거가 내 발목을 잡는구나. 토크토아. 도저히 방법이 없겠느냐?"

    "조카가 생각했을 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입니다."

    바얀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다급히 물었다.

    "토크토아. 그것이 과연 무엇이더냐?"

    "백부님께서 이번 일을 끝까지 부인하시는 것이지요. 기황후의 침실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약재고에서 벽곡단을 반출한 기록은 조작을 하면 그만이고요.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으면 아무리 황제라고 해도 백부님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나라 전체가 텡기스 때처럼 또다시 내전에 휩싸일 테니까요."

    "그러기에는 증인이 너무 많지 았나?"

    "많다고는 하지만 다 합쳐봐야 백을 넘지 않습니다. 다들 나인에 환관에 하급 병사들이지요. 미천한 것들이라 그 정도는 조카가 얼마든지 다 처리할 수가 있사옵니다. 문제는... 고려에서 온 강릉대군이라는 자가 핵심이온데 그자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강호에서 십대고수로 불리는 해동제일검이 그자를 호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시 원점이 아닌가?"

    "백부님. 하늘이 백부님을 도와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그자가 이틀 뒤에 비무를 하기로 되어 있으니까요. 백부님의 절친이신 팔비신장께서 마치 예측이라도 하신 듯 자신의 제자인 삼수사비(三手四譬)를 대도로 파견해 놓은 상태이지요. 아마도 위급한 상황이 되면 백부님을 모시고 대도를 탈출하여 항주에 있는 정림방으로 모실 계획이었을 겁니다. 삼수사비가 이틀 뒤의 비무에 참가신청을 해놓았습니다. 비무 중에는 해동제일검도 감히 참견을 할 수가 없지요. 삼수사비가 비무 도중에 강릉대군만 죽여버리면 조카가 곧바로 손을 써 증인들들 모조리 죽여버리고 약재고의 장부를 불태워버리겠습니다."

    "만약 강릉대군이 삼수사비를 이기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삼수사비는 팔비신장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대제자입니다. 늦어도 10년 이내에 화경에 들 거라고 팔비신장이 말할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지요. 그에 반해 강릉대군은 이제 겨우 16세이며 소문으로는 무공을 익힌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런 걱정을 하시는 것입니까?"

    "나도 나름 무공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지. 그런 나조차 은형암귀의 은신을 발견할 자신이 없어. 나조차도 못하는 걸 해낸 자라서 걱정하는 것이야."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카가 자세히 알아본 결과 강릉대군이라는 자가 은형암귀의 은신을 발견한 건 뛰어난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고 하니까요. 냄새를 맡고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코가 개코라고 하더군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강릉대군이 삼수사비를 꺾으면... 백부께서는 그 즉시 귀중품들을 챙겨서 대도를 탈출한 다음 팔비신장의 본거지인 항주로 도망치셔야 할 것입니다. 그 길만이 유일한 살길입니다."

    무거운 표정의 바얀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때 연공실에 있는 왕기의 몸에서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식량창고를 개조한 연공실]

    반야심공과 뇌전벽력공을 동시에 운기하고 있는 왕기의 몸 주변으로 그 어느 때보다 세찬 회오리가 주변의 대기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런 현상을 관조하며 왕기가 뇌까렸다.

    '반야심공의 기가 마치 질투심에 몸부림치는 것 같군. 자신보다 세력이 뛰어난 뇌전지기에 밀리기 싫다는 듯 외부의 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갈구하고 있어. 분맥을 뛰어넘어 뇌전지기를 갈아먹는 것도 더 심해졌고 말이야.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야. 지금 당장은 나도 어떻게 손을 쓸 방도가 없다. 당장은 탈태환골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급하더라도 하나씩 순서대로 해결해 나가야만 해.'

    그 순간 왕기는 자신의 몸에서 발생하는 이상신호를 감지할 수가 있었다. 자신이 특별히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벽에서 대량의 위산들이 분비되어 위 속으로 울컥울컥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자에서 이자액을 대량으로 제조해 십이지장 속으로 힘차게 밀어 넣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현대인의 지식을 이용해 머리를 굴리던 왕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건 좋은 징조이다. 내가 대량으로 섭취한 고기를 소화해서 근육을 만들기 위한 단백질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몸속에 있는 소화효소가 작동을 해야만 한다. 위액 속에 있는 소화효소인 펩신(Pepsin)이 1차적으로 그 역할을 하고, 이자액에 있는 소화효소인 트립신(Trypsin)과 키모트립신(Chymotrypsin)이 그 2차 역할을 한다. 그렇게 분해를 해야만 작은창자 상피세포 내로 흡수가 되는 것이지. 이건 내가 섭취한 고기를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이 마침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잠시 기뻐하던 왕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뇌까렸다.

    '탈태환골을 위해서는 단백질만 필요한 것이 아니야. 뼈를 만들기 위한 대량의 칼슘이 필요하다. 칼슘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D가 필수적이야. 하지만 비타민 D는 신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해. 비타민 D는 체내의 스테롤(Sterol)이 피부에서 자외선 빛반응 때문에 생성된다.'

    그 순간 왕기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땡볕에서 척무관과 대련을 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미 내 몸속에는 충분한 비타민 D가 생성되어 있을 것이야.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그때였다. 왕기의 온몸에서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극통이 엄습했다.

    - 찌직. 찌지직. 부드득. 부득...

    그와 함께 신체의 방어기제(防禦機制)가 동시에 작동되었는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쾌락 호르몬이 뇌 속에서 대량으로 분비되기 시작했다.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멍한 눈빛의 왕기가 끊임없이 운기에 빠져 있을 때 왕기의 신체가 서서히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대해 마지않던 탈태환골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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