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26화 (26/171)

#26. < 임독양맥(任督兩脈)의 타통(打通) - 2 >

위험천만인 뇌전벽력공을 운기하여 임독양맥의 타통에 도전하느라 머리에 쥐가 나도록 집중하고 있던 왕기는 양의검법의 장점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자아가 자신이 운기하고 있는 과정을 마치 TV를 시청하는 시청자처럼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미세한 것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내가 마치 연금술사라도 된 기분이로군.'

공청석유가 공급해 주는 막대한 기를 생체전기로 바꾸고 그 생체전기를 단전에 모아 발전기를 돌려 뇌전지기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간단한 감상평을 한 왕기가 기경팔맥을 휘돌고 있는 뇌전지기를 보며 또 하나의 감상평을 내렸다.

'양치기 개가 된 듯한 기분이로군. 자기 부상열차를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만들어둔 패러데이의 새장으로 촘촘히 도배되어 있는 기경팔맥에서 발생한 전자기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이 강력해지고 야생마처럼 사방으로 날뛰려고 드는 뇌전지기를 마치 자기력을 이용해 열차를 선로의 앞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처럼 경맥 쪽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치기 개에게 몰려 우르르 달려가는 양 떼처럼 순순히 기경팔맥을 통과한 뇌전지기가 임독양맥을 타고 백회혈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자 왕기가 정신을 하나로 모으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긴장할 필요도 없고 서두를 필요 또한 없다. 습자지에 먹물이 스며들듯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뇌전지기로 천천히 적셔가면 되는 거야. 어차피 뇌량도 전기 신호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신경섬유의 집단에 불과해. 뇌전지기의 역할이 달라질 것도 없고 성질 또한 똑같다. 뇌전지기도 결국 생체전기처럼 똑같은 전기의 일종일 뿐이니까 말이야. 뇌가 다치거나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진행하면 되는 것이야.'

임독양맥을 흐르는 뇌전지기가 백회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왕기의 전두엽 중앙에 위치한 머리카락과 뒤통수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들이 하늘을 향해 순차적으로 올올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용케 변발을 피해 남아있던 중앙 부분의 머리카락들이 순차적으로 일어서며 앞에서 뒤까지 하나로 연결이 되기 시작했다. 마치 터널이 관통되듯 말이다. 어찌 보면 닭 볏 같고, 또 어찌 보면 머리 한가운데에 도끼날이 박힌 것처럼 일어선 머리카락들이 하나로 연결되자 하늘을 찌르는 첨탑처럼 빳빳해졌다.

그 순간 왕기는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맛보는 듯했다. 머리 위가 뻥 뚫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하늘로 연결되는 통로가 머릿속에 열린 듯한 기분이 들었고, 빳빳이 일어선 머리카락들이 하늘의 뜻을 수신하는 송신탑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임동양맥을 가볍게 타통한 뇌전지기가 뇌 전체를 천천히 훑고 지나가자 평균적으로 150억 개 정도 된다는 뇌세포 하나하나가 오랜 동면에서 한꺼번에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쾌락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일시에 깨어난 뇌 전체에서 쾌락 호르몬을 폭포수처럼 대량으로 쏟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아아..."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왕기의 입에서는 신음성이 터져 나왔고, 임독양맥을 타통한 뇌전지기가 무한회로(無限回路)로 완성된 몸속의 경맥들을 거칠 것 없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방안에 앉아 있는 왕기를 화려한 조명이 감싸고 있는 듯했다. 절정에 달한 뇌전지기가 온몸을 가득 채우다 못해 몸밖으로 방전되면서 온몸에 박혀있는 금침을 타고서 외부로 방전되며 마치 번개가 치듯 방안을 번쩍번쩍 빛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눈을 꼭 감고 있는 왕기는 그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온몸의 경맥을 가득 채우며 순한 양 떼처럼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는 뇌전지기를 한참 동안 관조하며 어느 정도 안전한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확신한 왕기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이제는 위험할 일이 없어. 뇌전지기를 내가 마음먹은 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막상 임독양맥을 타동하고 나니 척무관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군.'

왕기가 방안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척무관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저하. 왜 황실에 뛰어난 고수들이 많이 모여있느냐고 물으셨습니까?"

"맞아. 아까 내가 본 영약고를 지키던 경비들의 실력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가 있을 텐데 굳이 하찮은 경비 일을 보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 말이야."

"저하. 강호인이란 기생충과 같은 존재입니다."

"기생충?"

"그렇지요. 강호인은 쟁기로 땅을 갈지도 않고, 베틀에 앉아 천을 짜지도 않으며, 돌을 날라 건물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밥을 얻어먹고 사는 존재이니 기생충과 다를 바가 없지요. 특히 소관처럼 일정 수준을 넘어선 고수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건 또 왜 그런가?"

"무공의 경지를 올리는 것에 미쳐있기 때문이지요. 저하께서는 비교적 손쉽게 무공을 익히셨지만 본디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괴롭고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듯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운기조식 그 자체가 엄청난 쾌락을 주며 쾌락의 정도는 경지가 오를수록 더 강해지지요. 거기에 중독된 자는 무공을 익혀서 경지를 올리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의 고수가 되면 아무 곳에나 몸을 의탁할 수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세력 싸움에 휘말려서 시시비비가 끊이질 않게 되니까요. 그래서 고수가 되면 속세와의 인연을 모두 끊고 깊은 산속으로 은거(隱居)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깊은 산속으로 은거를 한다는 것은 삼시세끼를 자신의 손으로 해먹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천하의 고수라도 밥을 굶으면 죽게 되니까요. 제자를 두면 해결이 되겠지만 그것마저 귀찮은 자들은 황실로 오는 것입니다. 힘든 일을 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밥벌이를 할 수 있으며, 감히 시비를 거는 자도 없기에 모든 시간을 수련 하나에 쏟을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고수들이 풍진을 벗어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군. 그럴 수도 있겠어."

"저하가 좀 전에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약고를 경비서는 자들은 1년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저하처럼 영약고를 찾는 사람이 1년에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실에서 녹봉은 꼬박꼬박 나오지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곳은 황실뿐입니다. 설사 본인이 구대문파의 장문인이거나 오대세가의 가주라고 해도 제자를 키우고 타문파와의 세력 싸움에 나서는 등 자신의 밥값을 해야만 하니까요."

"그럼 척무관은 왜 그런 길을 택하지 않은 건가?"

"사람마다 뜻이 다 다른 법이지요.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소관이 대군 저하를 모시는 것은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소관도 별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녹봉을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었던 셈이지요. 그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럼 요 몇 달간은 많이 힘들었겠군. 날 가르치느라 말이야."

왕기의 질문에 척무관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다음 대답했다.

"저하. 저하께서는 한 번씩 스스로를 너무 낮추어 보시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맹자(孟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의 세 번째가 무엇이겠습니까? '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락야(得天下英才而敎育之三樂也)'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에 둘도 없는 기재인 저하를 가르치는 것은 소관으로서는 더없는 즐거움이고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락이었습니다. 그런 말씀은 천부당만부당 하십니다."

"그래? 그럼 내가 앞으로 척무관을 더 괴롭혀도 되겠군? 척무관도 밥값은 해야 할 테니까 말이지."

척무관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즉답했다.

"저하를 가르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옵니다. 자고로 '교학상장(敎學相 :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함)'이라고 하였지요. 저하를 가르치며 소관의 무공 역시 경지가 조금씩 깊어지고 있으니까요."

회상에서 깨어난 왕기가 운기를 멈추고 눈을 떴다. 번개가 치는 듯한 빛나는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던 왕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게 이런 기분이로군. 정기신 합일 때보다 더 예민하고 더 날카롭게 주변 상황을 감지할 수가 있어. 응? 이건 또 뭐야?"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과 어디선가 본듯한 묘한 기시감(旣視感)에 당황한 왕기가 새로이 느끼게 된 감각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사방을 흘러 다니고 있는 미세한 전자기장의 흐름이었다. 마치 전기뱀장어라도 된 듯 왕기는 주변 일대를 흐르고 있는 미세한 전기장과 자기장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고, 방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척무관의 몸을 따라 흐르는 전기적인 신호를 손에 잡힐 듯 훤하게 감지할 수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마치 번쩍거리는 전기들로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했더니... 영화 매트릭스에 나온 네오가 보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로군.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뇌전벽력공의 효능이다. 내 생각으로는 뇌전벽력공을 창시한 벽력가주도 이런 광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야. 그랬다면 비급에 언급을 해뒀을 텐데 이런 현상은 일언반구도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 순간 왕기의 뇌 속에서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솟구쳤다. 주변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게 파악하느라 과부하가 걸린 뇌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임독양맥의 타통으로 일제히 깨어난 뇌조차도 감당을 못하자 이를 악문 왕기가 뇌전벽력공 대신 반야심공을 끌어올려 뻥 뚫린 백회혈로 재빠르게 보내었다. 그러자 전기로 이루어진 같았던 세상이 눈앞에서 깜쪽같이 사라지고 평상시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크흑... 뇌가 폭발하는 줄 알았네. 앞으로 뇌전벽력공을 운기 할 때는 조심해야 하겠군. 뇌전벽력공에는 내가 아직 풀지 못한 비밀들이 많이 숨어있는 것 같아."

- 드르륵.

방문을 열고 나서자 밤새 경비를 서고 있던 척무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하. 대공을 이루신 것을 경하 드리옵니다. 저하께서는 계속 절 놀라게 만드시는군요. 무공을 익힌지 단 3개월 만에 임독양맥을 타통하다니요. 강호에서 떠도는 허황된 전설 같은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하군요. 소관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말을 하는 척무관의 표정이 점점 새로운 장난감을 받아든 개구쟁이처럼 변해가자 왕기가 물었다.

"고맙군.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사흘이면 충분하다고. 근데... 오늘따라 놀랍다고 말하는 척무관의 표정이 왜 이렇게 신나 보이는 걸까?"

"저하. 소관이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당연하지. 나에게는 언제나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네. 그 어떤 경우에도 벌을 내리지 않겠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하지. 이 약속은 내가 고려의 왕이 되었을 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야."

"오.늘.부.터.는. 소관이 대련을 할 때 손속에 사정을 봐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람인지를 실수를 할 수도 있기에 대련을 할 때 항상 조심을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요. 임독양맥을 타통한 자는 12 시진 내내 진기가 몸속을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탄지기(反彈之氣)'라는 것이 생성됩니다. 몸속을 흐르는 내공이 외부의 충격에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지요. 어지간히 강하게 두들겨 패지 않고서는 멍하나 안 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오늘부터'라는 말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하께서 고집을 피우셔서 약속을 잡은 5명과의 연속 비무가 이틀 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소관의 임무는 저하를 안전하게 보필하는 것입니다. 이틀 뒤에 저하가 다치시지 않게 하기 위해서 훈련을 시켜드리는 것이 소관이 해야 할 일이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저와 대련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대련이라. 그건 나도 좋네. 근데... 왜 10명이 아니라 5명인가?"

"하루에 10명은 누가 봐도 무리이지요. 비무를 신청한 자들도 납득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연속적인 비무로 탈진한 저하를 이겼다는 오명(汚名)을 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소관이 대도 근처에 머물고 있는 5명으로 줄였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뛰어난 고수들로만 선정했으니까. 그들만 다 처리하시면 앞으로는 지금처럼 함부로 시비를 거는 자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다들 겁을 먹을 테니까요."

"남은 이틀 동안 촌각을 아껴가며 날 혹독하게 훈련시켜 주겠다는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저하. 지금 저하께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하께서 너무 쉽게 무공을 익히셨기 때문에 발생한 약점이지요. 그걸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강호인들의 꼼수와 승리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 그리고 패배를 당했을 때의 처절함과 무자비한 폭력의 잔혹함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그 상태로 진정한 고수들과 맞붙었다가는 큰 낭패를 보실 것입니다. 제가 한눈에 파악한 걸 그들이라고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요."

말을 하던 척무관이 초봄의 새순처럼 싱그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하의 말씀처럼 소관도 밥값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하의 약점이 무엇인지 소관이 지금 당장 알려드릴 테니 절 따라오시지요."

신이 나 기분이 들뜬 것처럼 보이는 척무관이 연무장을 향해 걸어가자 그런 척무관의 뒤를 따라가며 왕기가 들어라는 듯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날 개 패듯 두들겨 패고 싶다는 뜻이로군. 척무관이 말하는 내 약점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고. 내가 쉽게 당해 주지는 않을 것이야."

잠시 후 연무장에서 누군가가 흠씬 두들겨 맞는 듯 호쾌한 격타음과 함께 왕기의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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