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25화 (25/171)

#25. < 임독양맥(任督兩脈)의 타통(打通) - 1 >

서기 1345년 10월 8일

- 크르릉.

병기고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우두머리가 왕기가 들고 있는 은패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 문을 활짝 열어주자 동행했던 척무관이 물었다.

"저하. 좋은 검을 고르는 법을 알고 계십니까?"

"내가 그런 쪽으로는 또 일가견이 있지. 걱정 말고 내가 준비하라고 알려준 거나 잘 준비해 줘."

말을 하며 걱정 말라는 듯 가볍게 손을 흔 든 왕기가 병기고 안으로 들어가며 뇌까렸다.

'명색이 내가 금속공학을 전공한 공돌이라고. 아버지의 철공소를 물려받기 위해서 말이지. 좋은 검을 고르는 방법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시대의 철기문명은 내가 살던 2020년과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품질의 철기들이 사용되고 있어. 각종 병기들은 물론 농기구들조차도 충격에 쉽게 깨지는 백주철(白鑄鐵) 대신 유화처리(柔化處理)를 한 가단주철(可鍛鑄鐵)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뭐 그럴 만도 하지. 중국은 춘추 말기 즉 기원전 6세기에 주조 철기를 생산했다. 이는 유럽에 비해 약 2000년 정도 빠른 시기에 주조기술을 발전시킨 것이야. 하지만 한(韓)민족의 철기 기술도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고조선과 관련된 유적에서 쇠도끼 거푸집이 발견될 정도이니까.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 백제, 가야 등이 모두 발달된 제철기술을 바탕으로 고대 국가로 성장하였고 이러한 철기 무기를 통해 정복전쟁을 수행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문무왕이 통일의 상징적 조치로 전국의 철기 무기를 모아 농기구를 만든다. 이로 인해 철기 공예품을 제작하는 철유전(鐵鍮典)이 설치되어 다양한 공예품이 만들어졌지. 이를 바탕으로 통일신라 후기에는 초대형 철불상(鐵佛像)이 제작되는 등 주조기술이 급격히 발전했다. 지금 이 시대의 고려에는 철 생산을 담당하는 중앙 관청인 '장야서(掌冶暑)'가 따로 있을 정도이고 전국 곳곳에 '철소(鐵所)'들이 존재하고 있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창고(槍庫)와 도고(刀庫)를 지나친 왕기가 검고(劒庫) 앞에 발걸음을 멈춘 다음 생각을 마저 정리했다.

'이 시대의 뛰어난 검들은 강철을 가열하여 여러 번 접어 두들기는 백련강(百鍊鋼)으로 제작된다. 자동화가 되지 않아 철장(鐵匠)들이 일일이 손으로 두들겨 만드는 바람에 가격은 턱없이 비싸지만 현대의 제검 기술과 비교해도 그 품질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것들이야. 하지만 이 시대에도 부족한 기술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포항제철과 같은 대량생산 기술이 부족해. 하긴 2020년에도 그 정도의 제철소가 없는 나라들이 허다하니까. 둘째는 여러 종류의 중금속 원소들을 집어넣는 합금(合金) 기술이다. 이 또한 당연하다. 이 시대에는 아직 여러 원소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 시대에도 부족한 합금기술을 보강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해. 그건 바로 철질운석(鐵質隕石)을 사용해서 제작하는 방법이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철질운석은 주로 니켈-철 합금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중금속인 니켈(Ni)이 다량 함유되어 존재한다. 좋은 검을 고르는 방법은 간단해. 백련강을 여러 번 접은 물결무늬가 있는 검들 중에서 운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고르면 되는 것이야.'

- 드르륵.

검고의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간 왕기가 거치대에 보관되어 있는 50여 자루의 검을 모조리 검집에서 뽑아내었다. 그리고는 검날의 물결무늬를 일일이 확인하여 백련강으로 제작된 십여 자루의 검을 선정했다. 그런 다음 검을 들어 무게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눈으로는 운철이 사용된 검을 찾아내기가 힘들어. 하지만 운철을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검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당연하겠지. 니켈의 밀도는 9에 가깝고 철의 밀도는 7.87에 불과하니까.'

잠시 후 최종적으로 선정된 두 자루의 묵직한 검을 양손에 쥔 왕기가 마치 게임에서 처음으로 무기 아이템을 구입한 유저처럼 기분이 한껏 업이 되어 한참 동안 검을 좌우로 바꿔가면 휘둘러댔다, 마침내 좌우를 결정했는지 왕기가 호기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왼쪽에 든 검은 앞으로 삼삼(三三)이라고 부르고, 오른쪽에 든 검은 칠칠(七七)라고 부른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좌삼삼 우칠칠이 기본 아니겠어?"

양쪽 허리춤에 쌍검을 차고서 병기고 밖으로 나온 왕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척무관에게 자랑을 하려는 듯 쌍검을 빼들어서 넘겨주었다. 그러자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척무관이 쌍검을 다시 되돌려주며 말했다.

"저하. 뛰어난 보검을 쌍으로 장만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검을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시군요. 그리고 저하께서 말씀하신 것을 준비하라고 이미 지시를 내려놨습니다. 근데... 의원들이나 사용하는 걸 어디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봐도 저하께서 어딘가가 불편하신 걸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순금(純金)으로 만든 것들로 준비하려면 제법 지출이 심할 테고요."

곧바로 약재고로 이동하던 왕기가 대답했다.

"구하는 데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얼마 전에 은자 천 냥을 얻었으니 말이야. 내가 다 쓸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내가 말한 대로 소독이나 잘 하라고 해."

"네. 저하. 깨끗이 씻어서 독주에 한참을 담갔다가 펄펄 끓는 물에 넣어서 확실하게 소독을 하라고 말해두었습니다."

이윽고 약재고 앞에 도착하자 척무관이 금패를 들고 안으로 향하는 왕기에게 소리쳤다.

"저하. 제가 한 말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또다시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간 왕기가 각종 약재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영약고 앞에 도착했다. 영약고 앞에 경비를 서있는 두 명의 무인을 보며 왕기가 뇌까렸다.

'뛰어난 무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은 구대문파도 아니고 오대세가도 아니며 원나라 황실이라는 말이 딱 맞군. 십대고수라는 척무관과 비슷한 경지에 오른 무인 둘이 창고 경비나 서고 있다니.'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며 창고 안에서 영약을 복용하는 것도 금지입니다. 여러 개를 복용하고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그랬다가는 이 자리에서 목이 날아갈 것이니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경비의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영약고 안으로 들어가자 10개의 목함이 보였다. 그중  5개의 목함은 이미 내용물이 비었는지 뚜껑이 활짝 열려 있었고, 나머지 목함 위에는 굳게 닫힌 뚜껑 위에 보관 중인 영약의 이름들이 각각 적혀져 있었다.

[인형설삼(人形雪蔘) 천년], [하수오(何首烏) 천이백 년], [구지삼엽초(九枝三葉草) 천백 년], [공청석유(空淸石乳) 천년]. [천년금구(千年金龜)의 내단(內丹)]

'죄다 천년 이상 묵은 것들이로군. 이미 비어있는 것들은 바얀 승상이 가져가서 팔비신장과 사이좋게 나눠먹었겠지? 팔비신장이 강호 제일의 내공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영약을 많이 복용해서라는 말이 사실이었어.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공이 많으면 유리하겠지만 무인의 승패는 내공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니까. 맘 같아서는 모조리 다 취하고 싶지만...'

마음을 차분히 다스린 왕기가 척무관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저하께서는 이미 산삼을 많이 복용하셨으니 같은 풀 종류의 영약은 피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동물의 내단은 그 기가 광폭해서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으니 피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어떤 영약을 취할지 결정을 내린 왕기가 공청석유라고 적혀있는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목함 안에 들어있는 입구가 밀봉된 조그마하고 새하얀 도자기를 집어 든 왕기가 영약실을 나와 밖으로 걸어갔다.

[홍성궁의 방 안]

손에 들고 있는 공청석유가 담겨있는 백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왕기가 뇌까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맘 같아서는 당장 영약을 복용해 임독양맥 타통에 도전하고 쉽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했어. 내가 지금부터 운기 할 뇌전벽력공(雷電霹靂功)은 전기와 관련된 것이야. 전기의 무서운 점은 그 위력에도 있지만 속도 때문이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야. 일단 기본적인 안정장치부터 하고 진행해야만 한다. 전기를 만지는 자는 감전에 주의해야만 하고, 감전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올바른 접지(接地)라는 것이 상식이야.'

백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왕기가 조그마한 구리 대야에 담겨있는 머리카락처럼 가는 순금 재질의 세침(細針)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뇌전벽력수 비급에 나와 있는 패러데이의 새장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접지를 통해 감전을 예방한다."

순금으로 제작된 세침을 온몸 구석구석과 뇌전벽력공에 의한 생성된 뇌전지기가 모일 단전 부위를 빙둘러서 깊숙이 찔러 넣은 왕기가 단전 부위의 세침들을 길게 연결하여 끝부분을 구리 대야에 담겨 있는 물에다가 깊숙이 담갔다.

'순금은 전기전도도가 극도로 뛰어난 금속이다. 뇌전지기가 설사 단전에서 벗어나더라도 세침을 따라 흘러 갈테니 내가 감전되는 일은 없을 것이야. 물이 담겨 있는 구리 대야 정도면 접지로 충분해. 남은 건 이제 몸으로 직접 겪어보는 것이다. 내가 비급을 보고 해석한 내용이 정확한지를 말이야.'

반가좌를 트는 대신 가부좌를 틀은 왕기가 본격적으로 뇌전벽력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왕기의 전신에서 생체전기가 극도로 발생하는지 몸 곳곳에 박아놓은 세침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스파크들이 점점 강력해지더니 기경팔맥의 통로를 따라서 온몸을 둘러싸며 마치 새장처럼 연결되기 시작했다.

- 번쩍.

눈을 뜬 왕기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새장 형태의 전기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장은 내가 해석한 것이 올바르다는 증거이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신체 내부에도 조그마한 새장들을 무수히 만들어야만 해. 마치 전자기판에 복잡한 회로를 깔듯이 조심스럽게 말이야. 그래야 내부에서 발전기를 돌려도 내가 다치지 않아. 그리고 공청석유를 이용해 단숨에 임독양맥을 타통한다.'

"후우..."

긴장이 되는지 한숨을 길게 내쉰 왕기가 새장 사이로 손을 뻗어 백자를 집어 들며 자신이 세운 무공 이론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임독양맥을 타통한다는 것은 임맥과 양맥이 만나는 백회혈(百會穴)을 뚫는다는 뜻이야. 이것이 위험한 것은 조금만 잘못되어도 뇌가 다치기 때문이지. 잘못되면 뇌출혈로 풍을 맞아 반신불수가 되거나 식물인간이 되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야.'

- 꿀꺽.

뽀얀 우유처럼 보이는 공청석유를 단숨에 들이킨 왕기가 다시 뇌전벽력공을 운기하며 자신만의 이론을 정리했다.

'이 시대의 무인들은 인간의 뇌에 대해서 참으로 무지한 상태이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지. 2020년에도 다 밝혀지지 않은 게 뇌라는 부위니까. 하지만 난 뇌의 기본적인 구조와 역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인간의 뇌는 크게 좌뇌(左腦)와 우뇌(右腦)로 나누어진다. 무인들이 말하는 백회혈의 타동이란 건 간단히 말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腦梁)에 내공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는 터널을 만드는 작업이야. 척수를 타고 올라와 숨뇌와 소뇌를 거쳐 대뇌로 향하는 등 쪽의 독맥(督脈)과 턱과 인중을 거쳐 전두엽을 통과하여 대뇌로 들어가는 임맥(任脈)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지. 마치 양쪽에서 파고들어와서 중간에 만나는 터널 공사처럼 말이지. 이렇게 터널을 뚫어 임맥과 독맥을 이어주면 신체를 흐르는 내공의 회로가 완벽하게 완성된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무는 뱀인 우로보로스(Ouroboros)처럼 내공이 무한히 돌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그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들은 나도 직접 겪어보지를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고 있다. 잠시 후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복용한 공청석유가 효과를 발휘하는지 뱃속에서 청량한 기운이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것을 감지한 왕기가 조금씩 무아지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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