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 칠성(七星)과 뇌전(雷電) - 2 >
[자고로 고기라 함은 종류를 불문하고 신선함이 생명이다. 특히 상전의 명령을 받아 인육을 사러 온 자들은 갓 잡은 신선한 인육을 사길 원했다. 내가 다른 인육 상인들 보다 장사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파는 고기들을 신선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부위인 팔과 다리 등을 잘린지 반나절이 지나지 않으면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리게 만들 수 있는 재주를 난 가지고 있었다.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팔 다리의 잘린 단면을 내가 움켜쥐고 힘을 강하게 주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던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난 선천적으로 강력한 뇌전지기(雷電之氣)를 타고난 존재였다.]
비급을 읽고 있던 왕기의 머릿속으로 현대 과학사(科學史)에서 아주 유명한 '루이지 갈바니(Luigi Galvani)'의 개구리 해부 시험이 스쳐 지나갔다. 개구리 해부시험을 하다가 개구리 뒷다리에 해부용 나이프를 갖다 대었을 때 뒷다리 근육이 수축하는 현상을 발견하고서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한 결과 이것이 전기로 인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낸 갈바니는 동물의 뇌에서 전기가 만들어져 신경을 통해 근육으로 흘러들어간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전기를 동물전기(動物電氣)라고 주장하였다. 갈바니의 동물전기 이론은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전기(電氣)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전자(電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정리한 왕기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건 틀린 이론이라는 것이 배터리의 원조 격인 볼타 전지를 개발한 '볼타(Volta)'에 의해서 밝혀졌지. 생체전기(生體電氣)란 것이 갈바니의 착각에서 유래된 것이기는 하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며 이는 갈바니의 주장처럼 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신경세포에서 전해질인 칼륨이나 나트륨, 칼슘 등의 이온 농도에 따라 세포막의 안팎으로 이온물질이 유출입을 하는 데에 따라 발생하는 전위차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상당히 놀랍군. 갈바니는 무려 18세기의 사람이야. 14세기에 이러한 발견을 해내다니. 개구리 대신 인간을 사용했다는 것만 다를 뿐이지 발견한 내용 자체는 갈바니와 다를 것이 없어.'
왕기가 다시 비급을 읽어내려갔다.
[난 이러한 뇌전지기에 매료되었고 도축 직전의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수많은 실험들을 해보았다. 내가 인육 상인이었던 것이 행운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일반적인 강호인이었다면 무림의 공적(公敵)으로 몰려 제대로 된 연구도 하기 전에 사망했을 테니까 말이다. 뇌전지기는 천성적으로 흉포하며 거칠고 주인의 뜻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만의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만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 양날의 검과 같아서 뇌전지기가 상대방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난 몇 가지 사실들을 더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기를 이용해 몸속에서 뇌전지기를 발생시키는 방법이었고, 또 하나는 이러한 뇌전지기를 안전하게 몸밖으로 방출시키는 방법이었다. 뇌전지기는 본인이 지나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로만 다니려는 습성이 있다. 수많은 인체시험 결과 뇌전지기에 적중당한 자는 마치 나무뿌리와 같은 복잡한 문양을 피부에 남기게 되는데 이는 뇌전지기가 인간의 혈관을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혈관을 흐르고 있는 피는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뇌전지기의 습성을 잘 이용하면 신체 내부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도 뇌전지기를 외부로 방출할 수 있는 방법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비급을 읽고 있던 왕기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나무뿌리와 같은 문양이라면... '리히텐베르크 무늬(Lichtenberg Figure)'를 말하는 모양이로군. 이 문양은 고전압 방전이 일어날 때 최단 경로로 방전되려고 하는 특성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맞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문양이지.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도자기나 플라스틱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기기도 한다. 이 비급은 내가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어. 전기의 성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막연하게 꿈꾸던 제논을 이용한 이온 분사 엔진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이온 분사 엔진에서 중요한 건 원료인 제논뿐만이 아니다. 제논이라면 몸속에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40년의 내공을 지니고 있으니까. 결정적인 것은 제논 가스에 전압이나 자기장을 걸어 전자와 양이온으로 분리한 뒤 무거운 양이온을 빠른 속도로 가속시켜 내뿜어 낼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수적이야. 만약 내가 몸속에서 자유자재로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난 우주소년 아톰처럼 하늘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유롭게 날 수가 있게 될 거라고. 산소통만 있으면 어쩌면 우주도 날 수가 있겠지. 아톰이라기보다는 슈퍼맨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군. 발에서 불꽃 대신 제논 이온을 분사하니까 말이야.'
마음이 조급해진 왕기의 눈이 초조함으로 물들었고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책장을 넘겼다. 다음 책장에는 뇌전을 안전하게 방출시키는 방법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지만 그러한 방법을 설명하는 특별한 구결 없이 난데없는 복잡한 도형들과 수식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강호인들이 뇌전벽력수를 익히는 걸 포기하게 만드는 내용이었지만 현대인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공돌이 출신의 왕기는 복잡한 도형을 보자마자 무엇을 뜻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런 왕기의 입에서 신음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으음... 이건 '패러데이의 새장(Faraday Cage)'이로군."
경악에 찬 눈빛의 왕기가 빠르게 뇌까렸다.
'도체 또는 도체 그물로 둘러싸인 구조를 뜻하는 패러데이의 새장은 외부의 전기장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새장으로 전기를 흘려도 새장 안의 새가 안전하듯이 상공을 나는 비행기가 벼락을 맞아도 탑승한 승객들이 안전한 이유인 것과 동일한 것이지. 여기에서는 도체 대신 뇌전지기를 띄고 있는 기를 새장처럼 만드는 방식이로군. 이러면 뇌전을 시전하는 본인은 안전할 수가 있게 되겠지."
기대감에 잔뜩 부푼 왕기가 다시 비급을 넘겼다. 그러자 또다시 복잡한 도형과 수식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문양과 수식의 뜻을 한눈에 알아본 왕기는 강호인들이 왜 뇌전벽력수를 불가해무공으로 선정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건 발전기의 원리와 유사한 개념이다. 결론적으로 뇌전벽력수는 고도의 과학 이론들이 결합된 총 사단계로 이루어진 불가해무공인 것이야. 첫째, 평상시에는 기를 이용해 생체전기를 극대화한다. 둘째, 그러한 생체전기를 마치 배터리에 충전시키듯 단전에 집결시킨다, 셋째, 전투 중에 뇌전지기를 사용하다가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가 다 방전되듯 단전에 있는 뇌전지기가 소모되면 기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 즉 뇌전지기를 빠르게 발생시켜 급속 충전을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넷째, 패러데이의 새장 효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집적된 전기들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초대 벽력가주가 수많은 인체실험을 통해 얻은 경험들로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어 놓은 것이야.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이 시대의 무림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시대를 앞선 지식들이다.'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무공 이론에 왕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 무공을 창안한 자는 나처럼 미래에서 끌려온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야.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선택한 직업이 너무 이상하다. 기껏 과거로 와서 인육 상인이나 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뇌전벽력수의 이론들은 완벽하지가 않아. 내가 보완해야 할 점들이 몇 가지 있어 보인다. 중요한 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왕기가 빠르게 방을 나서며 속으로 뇌까렸다.
'이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라면 반야심공에 꿀릴 것이 하등 없다는 것이지. 지금 당장은 분공(分功)에 적합한 무공을 찾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야. 오늘 중으로 양의검법의 분맥(分脈)을 끝내고 내일 당장 약재고로 가서 영약을 구해 복용한 후 뇌전벽력수를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해야만 한다. 뇌전벽력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무공이야. 그리고 이를 잘 이용하면 이온 분사 엔진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엔진을 사용할 수가 있다. NASA에서 꿈의 엔진이라고 부르는 ‘바시미르(VASIMR)'를 내가 몸으로 구현해 낼 수가 있는 것이지. 플라스마를 분출해서 얻는 힘으로 우주선을 움직여 초속 50km의 속도로 지구에서 화성까지 불과 5개월 만에 주파할 수가 있다는 최신형 엔진. 물론 지구상에서는 그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엔진이 다양해서 나쁠 건 하나도 없다. 그만큼 나를 상대하는 적들이 혼란에 빠질 테니까.'
결심을 굳혔는지 식량창고를 개조한 운공실로 뛰어간 왕기가 빠르게 반가좌를 취했다.
- 위이잉...
본격적으로 반야심공을 운기하자 선풍향검이라는 별호를 얻게 만든 회오리가 왕기의 주변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상승 기류에 휘말려 공중에 떠있는 왕기의 몸에서 마치 비단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찌이익. 찍. 찌익.
밤이 새도록 운공을 한 왕기가 눈을 떴다. 자신의 몸을 차분히 관조한 왕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분맥이 생각보다 잘 이루어졌군.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있다. 양의검법이 나에게는 그래. 강릉대군은 오른손잡이이며 현대인인 왕기는 왼손잡이이다. 그리고 난 강릉대군의 기억과 현대인의 기억을 각각 다른 하드에 저장하는 것처럼 분리를 하는 것이 가능한 몸이야. 그 말인즉슨 현대인의 자아로는 뇌전벽력수를 운공할 수 있고 강릉대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자아로는 익숙한 반야심공을 동시에 운용할 수가 있다는 거야. 양의검법을 대성하면 어지간한 적들에게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남은 건... 이제 실천에 옮기는 것뿐이다.'
홍성궁으로 돌아간 왕기가 자신의 방 앞에 서있는 척무관을 보았다. 한 무더기의 배첩들을 들고 있는 척무관이 왕기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저하. 밤새 운공실에 계셨나 봅니다?"
척무관이 내민 한 무더기의 배첩들을 받아들며 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않는가? 반야심공을 운기하려면 운공실이 편하다는걸. 근데... 이것들은 다 뭔가?"
"각지에서 날아온 초대장과 비무첩들입니다. 저하께서 황후마마와 가깝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여러 곳에서 초대장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하께서 검향지경에 들었다는 소문이 퍼져서 저하와 비무를 하고 싶다는 비무첩도 날아들고 있지요. 일전에 말씀드렸잖습니까? 저하께서 시비를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해지지가 않는다고요. 날이 갈수록 비무첩들이 더 많이 날아들 것입니다. 그나마 저하께서 황궁에 머물고 계시기 때문에 개수가 적은 것이지요."
왕기가 척무관에게 다시 배첩들을 건네며 말했다.
"일전에 척무관이 말한 대로 몇 놈의 목을 쳐야 이 소동이 잠잠해지겠지? 난 무림인들을 잘 모르니 척무관이 가장 뛰어난 놈으로 열 놈만 골라서 불러주게. 단 사흘 뒤에 말이야."
"저하. 이 중에는 소관처럼 강호의 십대고수에 속해있는 화산파의 매화신검(梅花神劍)도 끼어 있습니다. 자신도 달성하지 못한 검향지경을 저하께서 달성했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비무를 요청한 것이지요. 그런 자와 붙었다가는 저하의 목숨이 위험해지십니다."
"상관없네. 사별삼일즉갱괄목상대(士別三日則更刮目相對 : 선비는 헤어져서 사흘 만에 다시 만나게 되면 눈을 씻고 다시 보아야 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흘 뒤라면 난 척무관하고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게다가 나에게는 매화검법을 손쉽게 꺾을 수 있는 비장의 방법까지 있다고. 그러니 염려 말고 불러주시게."
걱정스러운 표정의 척무관을 뒤에 남겨두고 방 안으로 들어간 왕기가 은패와 금패를 챙겨서 빠르게 다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