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2화 (12/171)
  • #12. < [무공 수련] ch.5 용기(用氣)를 깨닫다 - 2 >

    '단언컨대 쇠는 금속(金屬)이다. 따라서 상온에서 고체 상태로 존재하며, 일정한 결정 구조를 가진다는 금속 본질의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물론 수은은 예외이지만 말이야. 지금이 고려 시대라고 해서 이러한 기본적인 특성이 바뀔 리가 없지. 무인들이 착각하는 게 쇠가 단단하기 때문에 내부가 가득 차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쇠 그러니까 철은 상온에서 BCC(Body Centered Cubic Structure : 체심입방구조)의 형태로 존재한다. 쉽게 말해 아주 조그마한 박스 한가운데에 철(Fe) 원자가 존재하고 있고 각 모서리마다 또 다른 철의 원자가 달라붙어 있는 구조인 것이지. 얼핏 생각하기에는 꽉 차 보이지만 실제 박스 내부의 원자 충전율은 68%에 불과하다. 이건 내가 따로 계산할 필요도 없어. 금속공학에서 철은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달달 외우고 있는 수치일뿐더러 현대 과학에서 이미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니까. 거꾸로 말하자면...'

    - 따아앙.

    왕기가 쇠막대를 다시 한번 두들기며 생각을 마저 정리했다.

    '이렇게 단단하고 눈으로 보기에 꽉 차 보이는 쇠막대이지만 이 안의 32%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라는 뜻이야. 무려 1/3이나 텅텅 비어있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사람들 눈에 별이 가득해 보이지만 실제의 우주는 대부분이 텅 비어있는 공간이듯이 말이다. 시각적인 효과에 의한 착각일 뿐이지. 난 그런 텅 빈 공간으로 기를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어. 나무보다 쇠가 쉬운 이유는 그런 똑같은 결정 구조가 도미노처럼 끝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 한 번만 밀어 넣는 데 성공하면 그 뒤부터는 똑같은 작업의 무한 반복일 뿐이라는 뜻이야.'

    정신을 집중한 왕기가 장심에서 뿜어낸 기를 쇠막대 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서너 번의 시도 끝에 기가 쇠막대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자 그 느낌을 유지하며 계속 기를 주입했다.

    - 우우웅...

    어느새 기가 가득 찼는지 쇠막대가 가볍게 진동을 하며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기가 내부에 가득 찬 기를 최대한 바깥쪽으로 밀어올렸다. 이윽고 쇠막대 표면으로 푸른빛을 띠는 희미한 밝은 빛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성공했어. 하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는 작업이긴 했지. 근데... 기라는 것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줄이야...'

    마치 잘 연마된 사파이어처럼 아름다운 푸른색을 띠고 있는 기를 한참 동안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왕기가 중얼거렸다.

    "당분간은 이 연습을 계속해야만 해. 지금처럼 느려터진 속도로 기를 집어넣다가는 상대방의 검에 맞아 죽기 딱 좋아. 생각을 하자마자 기를 집어넣고 검기를 발생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연습은 차차하기로 하고 일단은..."

    쇠막대에서 기를 회수한 왕기가 이번에는 나무로 된 막대를 집어 들었다.

    '내가 세운 이론대로라면 나무에 기를 집어넣기 어려운 것도 간단히 설명이 된다. 쇠는 금속이고 체심입방격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지만 나무는 여러 방향으로 복잡하게 배열된 결정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지. 나무 즉 목재라는 것은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그리고 리그닌으로 이루어진 고분자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쇠는 잘 정비된 뻥 뚫린 고속도로와 같고 목재는 곳곳에 장애물이 있고 꾸불꾸불하기까지 한 비포장도로인 셈이야. 그래서 쇠보다 기를 집어넣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기를 집어넣는 그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기는 물이나 바람처럼 자유롭게 흘러가는 유체이기 때문이야. 막힌 곳이 있으면 둘아가면 되는 것이고, 길이 심하게 꾸불꾸불하면 거기에 맞춰서 방향을 꺾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왕기가 나무막대에 기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확실히 쇠막대보다는 난이도가 있는지 십여 번의 시도 끝에 나무막대가 진동을 하더니 적도의 바다색처럼 아름다운 푸른빛의 기를 외부로 뿜어내었다.

    '쇠막대나 나무막대나 뿜어내는 기의 색깔은 똑같군. 이건 아마도 제논이 불활성 원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 아직은 내가 기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 하나씩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끊임없는 연습이다.'

    한 손에는 쇠막대를 다른 한 손에는 나무막대를 든 왕기가 기를 최대한 빨리 집어넣는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밤이 새도록 말이다.

    서기 1345년 10월 3일

    - 번쩍번쩍.

    여느 날처럼 연무장에 나온 왕기가 들고 있는 목검의 날에서 새파란 기가 목검을 뚫고서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고 있었다. 왕기를 향해 다가오던 척무관이 그 광경을 보고서는 눈을 찢어져라 크게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하. 하루 만에... 단 하루 만에 목검으로 기를 뿜어내는 법을 깨달으신 것입니까?"

    왕기가 어깨를 으쓱하면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꾸했다.

    "그냥 하니 자연스럽게 되던데? 어려울게 하나도 없었어."

    척무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소관은 목검에 기를 불어넣기 위해 근 한 달간 피똥을 쌌습니다만...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하. 하지만 이제부터는 손을 씀에 있어서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셔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인가?"

    "축기를 하고 용기마저 깨달은 무인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 행동에 기를 담으려는 습성이 생깁니다. 철없는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여주면 무작정 휘둘려고 하듯이 말이지요. 누군가를 가볍게 꿀밤을 때리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기가 들어가게 되면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이 되는 셈이지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꿀밤을 맞은 상대방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분간은 주의 또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알겠네. 내가 조심하도록 하지."

    "하지만 저하. 저와 대련을 하실 때는 그러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무공을 익히는 저하의 진경이 사람을 초월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저하의 무공이 저에게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도 이제부터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입니다. 아차 했다가는 소관의 팔다리가 잘려서 불구가 될 것이고, 깜빡 실수를 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 우우웅...

    기를 끌어올려 내충법으로 목검에 진기를 불어넣는지 척무관이 들고 있던 목검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 목검을 중단으로 들어 올린 척무관이 왕기를 똑바로 겨냥하며 말을 이었다.

    "저하.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디 한번 전력을 다해 덤벼보시지요.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니까요. 저의 기습적인 찌르기를 막으신다면 약속대로 저하께 질 좋은 진검 한 자루를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왕기가 힘차게 진각을 밟으면서 목검을 휘두르며 척무관을 덮쳐갔다.

    - 쾅, 쾅, 쾅...

    내충법으로 기가 가득 찬 척무관의 검과 외집법으로 어설프나마 검기를 두른 왕기의 목검이 부딪치자 목검과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지는 않는 폭음들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전의 대련 때와 달리 손에 느껴지는 반발력이 크게 줄어들어서 상대하기가 한결 편해진 왕기가 긴장감을 계속 늦추지 않고 있었다.

    '상대는 현 강호의 십대고수로 손꼽히는 자이다. 내가 아무리 현대 과학을 이용해 믿기지 않는 빠른 진경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무공을 익힌지 이제 갓 두 달 된 햇병아리에 불과해. 척무관의 찌르기를 막으려면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그리고... 척무관이 계속해서 자신의 기습적인 찌르기를 막는 연습을 시키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야. 십대고수씩이나 되는 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훈련을 시킬 리가 없지. 그걸 막아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다. 내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그 순간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 있는 왕기의 감각에 척무관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팔로 흐르는 혈류량이 증가하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보다 한 템포 빨라진 발견이었다.

    '지금이다!'

    왕기가 무당파의 삼재검법 초식 중에 하나인 횡소천군(橫掃千軍)으로 자신의 명치로 날아오는 척무관의 목검을 힘차게 맞이해 나갔다. 초식명처럼 수많은 적군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힘차게 횡으로 휘둘러진 왕기의 목검이 척무관의 똑바로 찔러오는 목검과 부딪쳤다.

    - 콰앙.

    폭음과 함께 척무관의 빠르게 찔러오는 목검과 부딪친 왕기의 목검이 예전처럼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 오르려고 하자 왕기의 손목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목검이 부르르 떨며 자체적으로 반발력을 해소하면서 척무관의 목검을 물처럼 휘감으며 계속 전진해 나가는데 성공했다. 목검에 휘말려 목적했던 명치를 지나 왕기의 몸통 옆 허공을 헛되게 찌른 척무관이 감탄스럽다는 표정으로 칭찬을 했다.

    "태극유수(太極流水)의 수법! 멋들어진 화경(化經)이었습니다. 저하."

    "내가 태극검을 허투루 익힌 것은 아니니까. 이제는 진검을 쥘 수 있는 것이겠지?"

    "마땅히 소관이 한 자루 장만해드려야지요. 저하. 그전에... 자신들의 문파나 가문에서 적지 않은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 강호에 출두한 후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야 잘 모르지. 아직 강호에 나선 적이 없으니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독살(毒殺)이지요. 하지만 이는 의심이 가는 음식을 처음부터 먹지 않거나 특별하게 제조된 시독침(試毒針)으로 검사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방비가 가능하지요. 사람을 즉사시키는 극독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무인을 독살했다가는 강호의 공적(公敵)으로 몰리기에 어지간한 원한이 있지 않는 한 잘 시도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기습공격입니다. 강호에는 사람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자들이 많사옵니다. 설마 상대방이 날 공격할까라고 방심을 하고 있다가 방금 소인이 찌른 것처럼 기습공격에 당해서 죽고 마는 것이지요. 저하께서는 이제 막 그 단계를 통과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가 더 남아있지요."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이지요.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수법에 당황해서 죽는 것입니다. 대련에서는 그런 식의 연습을 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런 수법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태산압정(泰山壓頂)입니다. 저하께서 제 명치를 찔러보시지요. 그럼 제가 태산압정의 수법으로 저하의 머리통을 내려치겠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막을 수 있어야만 진정한 무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저하께서 이것마저 해내신다면... 소관이 저하를 저와 같은 동격의 무인이라고 인정해 드릴 것이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수련을 시켜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걸 해보라고?"

    "그렇습니다. 저하. 두려우십니까?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이라고 일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물론 소관이 어느 정도 힘 조절을 하겠지만 잘못했다가는 머리통이 터져 사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우시다면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욍기가 호기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렵기는 뭐가 두렵다는 것인가? 지금 당장 해보세나."

    다시 대련 자세를 잡은 왕기가 삼재검의 선인지로(仙人指路) 초식으로 척무관의 명치를 매섭게 찔러들어갔다. 그러자 척무관이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왕기의 목검을 무시한 채 상단으로 치켜들은 목검을 아래로 세차게 내려쳤다.

    - 쐐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지는 척무관의 목검을 보며 정기신 합일에 성공한 왕기의 머리가 비상식적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더 빨리 찌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저 목검의 기세를 죽일 수가 없어. 상대의 배에 구멍이 나기는 하겠지만 잘 치료하면 살 수는 있을 것이야.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죽는다. 강호초출(江湖初出)인 무림인들이 동귀어진의 수법에 죽어나간다는 이유가 뭔지 알겠군. 저 목검은 태극유수 따위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렇다면...'

    순식간에 결론을 내린 왕기가 찔러가던 목검을 거두며 전심전력으로 반야심공을 운기하면서 목검을 위로 올려쳐갔다.

    - 위이잉...

    왕기의 몸을 둘러싼 회오리가 발생하면서 대기의 기가 몸속으로 왕창 빨려 들기 시작하자 왕기가 올려치는 목검에 기를 최대한 불어넣으며 좌우로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 파바박...

    그러자 기로 이루어진 매화 꽃잎이 허공에서 빠르게 생성되더니 꽃잎을 활짝 피면서 줄줄이 하늘로 올라가며 척무관의 목검과 사정없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연속되는 꽃잎의 공격에 척무관의 목검의 기세가 줄어들자 왕기가 일월성신(日月星辰)으로 이루어져 있는 무당의 사상(四象)검법 중에 하나인 욱일동천(旭日東天)의 초식으로 척무관의 검을 힘차게 후려쳤다.

    - 콰앙.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왕기의 머리통 위에서 우뚝 멈춰 선 자신의 목검을 보며 척무관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십사수 매화겁법의 매류통천(梅流通天)이로군요. 거기에 무당파의 사상검까지... 검을 잡은 지 이제 겨우 달포밖에 안되는 저하가 어떻게 매류통천을 사용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사상검이라면 몰라도 화산파에서도 최하 십수 년을 수련해야 겨우 가능할까 말까 한 매류통천이라니요."

    별거 아니라는 표정의 왕기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