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9화 (9/171)
  • #9. < [무공 수련] ch.4 축기(蓄氣)에 돌입하다 - 1 >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기의 덩어리, 어디 한군데 허점이 보이지 않는 안정된 자세. 왕기의 눈에 비치는 척무관은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상대로 보였고 그런 생각이 온몸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대련을 준비하고 있던 왕기가 반야심공을 운공하며 정기신을 일제히 깨웠다. 그러자 중단전에서 전투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아드레날린과 분노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하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혈압이 급격히 치솟아 올랐으며 폐가 최대한 확장하여 숨을 쉴 때마다 막대한 산소를 혈액 속으로 공급해 주기 시작했다. 서있는 왕기의 동공이 확장되면서 더 많은 혈액들이 팔과 다리 근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몸속의 포도당 치수가 최고치로 단숨에 뛰어올라갔다. 동시에 하단전인 고환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맹렬하게 분비되면서 원시시대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인간의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천하의 그 누구와 붙어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왕기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도 왕기의 눈동자는 차분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상단전인 신에서 세로토닌을 뇌 속으로 대량 분비하여 너무 흥분하지도 않게, 불안한 감정도 갖지 않게 하여 평온한 상태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압!"

    몸은 전투에 더없이 적합한 신체로 바뀌었고, 머리는 냉정한 지휘관처럼 최적의 판단력을 갖춘 왕기가 척무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며 기합을 내지르면서 빠르게 돌진했다. 정기신 합일에 성공한 왕기가 빠르게 발을 놀리며 척무관이 항상 강조하던 팔보다 발이 먼저라는 걸 몸으로 직접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 쾅,

    가볍게 앞으로 내뻗은 왼 발바닥 쪽으로 내공을 뿜어내면서 땅을 지르밟자 단단한 돌바닥에 부딪친 내공이 반발력으로 튀어 오르면서 하체의 경락에 위치한 내공들을 빠른 속도로 위로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운기행공을 할 때보다 몇 배나 빠른 스피드로 치솟아 올라오는 내공을 손에 잡힐 듯 훤히 느끼고 있던 왕기가 적절한 타이밍에 허리를 회전시켰다. 그러자 상승 운동을 하고 있던 내공이 허리에 휘감기며 회전운동으로 바뀌면서 마치 구렁이가 온몸을 감듯 왕기의 몸통을 휘감으며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런 회전력을 통째로 오른쪽 어깨로 넘긴 왕기가 목검을 든 팔을 뒤로 젖혔다가 무서운 속도로 척무관을 향해 내려쳤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척무관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냉정했다.

    "멋들어진 진각(震脚)이십니다. 저하."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왕기에 대한 칭찬을 하며 척무관이 들고 있던 목검을 위로 올려치자 막대한 회전력을 품고서 거세게 휘둘러진 왕기의 목검이 마치 나무젓가락처럼 가볍게 튕겨나가 버렸다.

    - 꽝.

    목검과 목검이 격돌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폭음과 함게 자신이 휘두른 목검이 맥없이 튕겨났지만 왕기는 차분하게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번 막혔다고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척무관을 관찰하면서 풍차처럼 계속 공격을 해나가며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대는 나보다 한참 윗길인 고수이다. 임독양맥까지 뚫은 천하의 십대고수라고. 그런 자를 힘으로 찍어누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보다 빠르게, 보다 간결하게 휘둘러야 수비를 뚫을 수 있을 것이야.'

    진각을 밟으면 밟을수록 익숙해져 가는지 왕기가 휘두르는 목검의 스피드가 점점 빨라져 갔고. 목검이 그리는 궤적이 점점 날카로워져 갔다. 하지만 척무관의 수비를 뚫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도중 왕기는 거대한 기의 덩어리로 보이던 척무관의 몸에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기의 일부분이 어깨 쪽으로 빠르게 옮아가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꼈고, 목검을 들고 있는 척무관의 팔꿈치가 펴지면서 목검이 앞으로 쭉 찔러들어오는 것을 눈으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대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었다.

    '지금이다!'

    이를 악문 왕기가 젖 먹던 힘까지 끓어올리며 자신의 명치를 향해 찔러오는 목검을 향해 빠르게 후려쳐 갔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척무관의 목검이 왕기의 명치를 먼저 쩔러버렸다.

    - 퍽.

    "지금 저하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후우..."

    또다시 척무관의 목검을 막는 것에 실패한 왕기가 긴 한숨을 내쉬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분명히 읽었는데 말이야. 목검이 날아온다는 것을 사전에 알아차렸다고. 그런데도 왜 막지를 못하는 것이지?"

    "시간 때문이지요."

    "시간 때문이라고? 내가 목검이 날아온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목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인가?"

    다급히 물어오는 왕기의 말에 척무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 옵니다. 저하. 지금 저하께서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심각한 불균형 상태라고?"

    "그렇사옵니다. 저하의 무공 진경을 육체가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이는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저하께서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저하께서는 믿기지 않는 진경을 보이셨지요. 감기를 하고, 기경팔맥을 뚫고, 정기신 합일까지 이루어 내셨습니다. 소인뿐만이 아니라 천하의 그 누구도 그런 진경을 보인 자가 없었습니다. 무공을 중원에 전수했다는 달마나 검의 조종이라는 장삼풍도 그런 진경을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옵니다. 일전에 저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무공 이론에 따른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하의 육신은 그런 식으로 일조일석에 확확 바뀔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저하의 진경에 맞춰 근육이 제자리에 자리를 잡고 신경이 발달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러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옵니다. 저하."

    "그럼 균형을 맞추려면 어떡해야 하는 것인가?"

    "특별히 하실 것은 없사옵니다. 육신이 저하의 경지를 쫓아올 때까지 지금처럼 꾸준하게 수련을 하고, 식사를 잘 챙겨드시면서 진득하게 기다리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소관이 보기에 짧으면 3개월 길어야 4개월이면 균형을 이룰 것입니다. 저하께서는 한창 성장기이시니까요. 그때가 되면 방금 전에 보았던 소인의 찌르기 정도는 눈 감고도 막으실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럼 난 앞으로 뭘 해나가야 하는 것이지?"

    "일단 본격적인 축기를 하셔야지요. 저하께서 이룬 경지에 비해 내공의 양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니까요. 동시에 검법을 공부하셔야 할 것입니다. 기초적인 베기와 찌르기는 이미 습득하셨으니까요. 물론 지금처럼 베기와 찌르기는 매일 연습하셔야만 합니다. 온몸의 근육과 신경에 인이 박힐 정도로 말입니다."

    "축기와 함께 검법을 공부해라는 소리로군."

    "그렇사옵니다. 본 무관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 비급들을 읽어보고 연구해 본 적이 있사옵니다. 그런 소인이 추천해드릴 만한 검법으로는 무당과 화산 그리고 종남의 검법입니다. 무당은 공수의 조화가 완벽하면서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원리를 담고 있고, 화산의 검법은 더없이 화려하여 변검(變劒)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검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자세히 알려줄 것입니다. 검기를 이용해 매화를 만들 정도로 섬세한 검법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종남의 검법은 진정한 쾌검(快劒)이 무엇인지를 저하에게 알려드릴 것입니다. 그 정도면 기초 검법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이지요."

    "무당과 화산 그리고 종남이라. 그럼 불가해무공이라는 무당의 칠성검을 익혀도 되겠군?"

    "익힐 수만 있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아무리 불세출의 무공 기재인 저하라고 해도 당장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검법의 기본적인 이론들을 잘 모르시는 상태이니까요."

    "걷지도 못하면서 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로군. 잘 알겠네. 내 척무관의 말을 충고 삼아 오늘부터 진득하게 축기를 하면서 검법들을 연구해 보지."

    [고려각]

    밤이 되자 왕기가 자신의 방에서 반야심공 비급을 앞에 두고서 깊은 사고에 빠져 있었다.

    '반야심공이 내공을 쌓는데 탁월한 공능을 발휘하는 원리 그 자체는 더없이 간단하다. 기는 대기 중에 언제나 존재하고, 운기행공을 할 때 보다 많은 대기를 몸속으로 흘려보내면 필터링을 통해 쌓이는 기의 양이 증가한다는 아주 단순한 덧셈이지. 문제는 그러한 대기를 몸속으로 많이 흘려보내는 방법이야. 여기에서 혜능의 천재적인 면모가 다시 드러나니 그것이 바로 백팔번뇌와 추상반야라는 구절이다.'

    - 턱.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는 듯 반야심공의 비급을 덮은 왕기가 중얼거렸다.

    "대력반일과 회회연회는 이미 해석을 끝마쳤고 몸으로 직접 시험까지 해보았다. 만일 백팔번뇌와 추상반야 마저 내가 해석한 것이 맞는다면 난 소림으로부터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야. 물론 조심 또 조심해야겠지만 말이야."

    반가좌를 튼 왕기가 눈을 감고 자신이 나름대로 해석한 내용을 검토했다.

    '혜능이 주장한 바대로 몸속의 기가 흐르는 것이 유체의 흐름이라고 일단 가정을 한다. 거기에 혈도의 개념을 대입하는 것이야. 무공에서 말하는 혈도란 것은 기가 흐르는 경맥보다 넓은 공간을 지닌 경맥 중간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일종의 저장소와 같은 개념이다. 경맥이 끊임없이 흐르는 시냇물이라고 하면 혈도는 그물을 담아놓은 저수지와 같은 것이야. 저수지를 꽉 채우고 흘러넘친 시냇물이 다시 또 다음 경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지. 그래서 혈도가 막히면 기가 흐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림에서 말하는 점혈법(點穴法)이라는 것이고.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흐흡... 하아... 흐흡... 하하..."

    욍기가 길게 호흡을 하며 반야심공의 운기행공을 하면서 마지막 결론을 내렸다.

    '모든 유체는 또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가지게 된다. 그건 바로 와류(渦流) 현상이지. 유체가 폭이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폭이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흘러 들어갈 때도 와류 현상이 발생한다. 이건 데카르트의 와류 이론까지 갈 필요도 없어. 이런 현상은 비 오는 날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만 봐도 누구나 알 수가 있는 것이니까. 기도 유체의 일종이기 때문에 와류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혜공은 그러한 와류 현상을 발견하고서는 번뇌라는 이름을 붙였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것이 마치 번뇌를 겪는 인간의 의식과 같다고 생각을 한 것이겠지. 혜능은 몸 전체에 그러한 번뇌 현상이 108군데에서 발생한다고 관찰하였다. 그것이 백팔반뇌의 진정한 의미이지. 반야심공이 축기에 탁월한 공능을 발휘하는 것은 번뇌 현상이 일어나는 곳에서 발생하는 와류로 인해 외부 공기가 강제로 빨려 들어오기 때문이야. 기가 흐름으로써 발생하는 와류가 마치 환풍기처럼 외부의 공기를 강제로 몸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이지. 따라서 동일 시간에 보다 많은 대기를 빨아들여 그 결과물인 기를 최대한 빨리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이건 단순한 더하기에 불과해서 개념이 틀리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든 왕기의 몸 주변에서 하나둘씩 대기가 회오리치는 와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와류 현상으로 인해 외부의 공기들이 왕기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입고 있는 의복들이 온몸으로 쫙 달라붙기 시작했다. 소용돌이 특유의 문양을 만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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