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7화 (7/171)
  • #7. < [무공 수련] ch.2 기경팔맥의 타통 - 2 >

    그런 척무관을 보며 왕기가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겐가?"

    "제 앞에 서계시는 저하가 정말 사람인가 싶어서 말입니다. 저하. 대맥(帶脈 : 허리를 종횡으로 지나가는 맥)을 뚫으셨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는가? 기경팔맥을 완전히 다 뚫은 후 그대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저하. 소관은 명색이 현 강호의 십대고수입니다. 저하께서는 아직 본신의 내공을 숨길 수 없는 경지이고요. 빤히 보고서도 모르면 나가죽어야지요. 정말로 타통을 하신 것입니까?"

    "맞네. 아무래도 중단전과 가까이 있는 것이 대맥이다 보니 거기부터 뚫리더군. 나머지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야.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긴 하옵니다만... 제가 익히고 있는 내공 심법은 반야심공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인데 배울 수가 있는 것이옵니까?"

    "척무관의 머리가 좋다면 충분히 배울 수가 있을 것이야."

    "그럼 포기하지요. 전 태어나서 머리 좋다는 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어차피 전 이미 임독양맥까지 다 뚫은 상태이기에 딱히 필요도 없고요. 저하. 이제 그만 마보를 취하시지요."

    척무관의 말에 왕기가 제법 능숙해진 자세로 마보를 실시하며 말했다.

    "반야심공이 경맥을 잘 뚫는 것은 딱히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야. 혜능은 몸속의 경맥을 따라 흐르는 내공을 일종의 유체(流體)가 흐르는 것이라고 인식을 했다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지."

    필요가 없다면서도 호기심이 드는지 귀를 쫑긋 세운 척무관이 되물었다.

    "기가 흐르는 것이 유체의 흐름이라고요?"

    "그렇지. 항상 흐르려는 성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변형이 쉽고 형상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유체라고 부르지 않나? 흐르는 강물이 그러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가 또 그러하지."

    "그렇긴 하지요."

    "불세출의 천재인 혜능은 그러한 유체가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네. 그걸 반야심공에 적용시킨 것이야."

    "그 특성이 무엇이옵니까?"

    자신의 설명에 척무관이 관심을 가지자 신이 난 왕기가 속사포처럼 떠뜰어댔다.

    "그건 바로 전향력(轉向力)이라는 것이지. 코리올리가 발견한 전향력이란 것을 그대가 처음 들어보겠지만 분명히 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 힘이라네. 땅 위에서 운동하고 있는 모든 물체가 북반구에서는 오른쪽으로,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향하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 불세출의 천재인 혜능이 그 현상을 발견하고서는 몸속의 내공을 운행하는 방식에 그걸 적용시켰어. 기를 유체라고 정의한 후 유체를 회전 운동시킬 때 코리올리의 전향력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회전을 시키면 회전력이 더욱 증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소리일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이 말이야."

    왕기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척무관을 보며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했다.

    "음... 내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였군. 원리 자체는 아주 간단하다네. 기는 유체이다. 유체이므로 항상 어딘가로 흐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유체에 회전력을 주면 장애물을 뚫고 나가려는 관통력이 증가한다. 단 회전 방향을 반드시 전향력이 가해지는 쪽으로 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높은 관통력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체의 회전은 전향력에 의해 딱히 운기를 하지 않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쉽게 말해 사람이 자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회전을 하기에 짧은 시간 내에 경맥을 뚫을 수가 있게 된다는 뜻이지. 이게 핵심인 것이야. 따라서 반야심공은 다른 어떤 무공보다 경맥을 빠르고 쉽게 뚫을 수가 있는 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 이해가 되는가?"

    척무관이 골이 아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전향력에 코리올리에 북반구니 남반구니... 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들입니다. 굳이 더 알고 싶지도 않고요. 단지 저하가 평범한 분이 아니시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틀 만에 감기를 하셔서 절 놀라게 하시더니, 오늘은 일주일 만에 기경팔맥 중에 하나를 뚫고 떡하니 나타나셨으니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반야심공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저하께서 뛰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불세출의 무공 기재인 것으로 보이다는 소리이지요."

    - 촤아앙.

    말을 하던 척무관이 갑자기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자 새파랗게 날이 서있는 진검(眞劒)의 칼날이 햇빛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빛을 내뿜었다. 척무관이 그런 칼을 돌려 손잡이를 왕기 쪽으로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런 기재에게 계속 마보만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지난 일주일 간의 수련으로 자세가 제법 많이 안정된 것 같으니 오늘부터는 검을 쓰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디 한번 쥐어보시지요."

    잠시 후 검을 잡는 법을 자세하게 알려준 척무관이 몸소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안정된 자세 속에서 휘둘러진 검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궤적을 그리면서 대기를 날카롭게 갈라내며 연신 파공성을 내고 있었다.

    - 쉬이익. 쉬익..

    "저하. 천하의 모든 검법은 자신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어차피 베기와 찌르기 그리고 막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당분간은 방금 전 제가 시범을 보여드린 수직 베기, 수평 베기, 앞으로 찌르기만을 수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제대로 되어야만 본격적인 검법 수련에 들어갈 수가 있으니까요."

    왕기가 결연한 각오가 서린 눈빛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하지. 모든 것은 기초가 중요한 법이니까."

    - 휙. 휘익. 픽.

    잠시 후 왕기가 진검을 들고서 수직 베기와 수평 베기 그리고 찌르기의 연계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척무관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진검의 압박감 때문인지 몇 번 휘두르지 않고서 한숨을 길게 내쉰 왕기가 척무관을 보며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고 있나?"

    "저하께서는 계속해서 본 무관을 놀라게 하는군요. 평생 몸쓰시는 일을 해보신 적이 없으시고, 검을 오늘 처음 잡아본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천하의 무공 기재가 검을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휘두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척무관의 말에 민망한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왕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난 천하의 무공 기재 따위가 아니니까. 단지 내가 살던 세상의 지식으로 무공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이 있을 뿐이라고. 한국에서 살면서 격투기를 따로 배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런 내가 검을 잘 놀릴 리가 없잖아?'

    왕기가 물었다.

    "내가 몸을 잘 못쓴다는 것은 인정하겠네. 하지만 수련을 하다 보면 점차 좋아지지 않겠나?"

    "그렇긴 하지요. 뭐든 계속하다 보면 느는 법이니까요."

    "혹시 빠른 시일 내에 몸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제일 빠른 방법은 당장이라도 임동양맥을 뚫어서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몸으로 탈태환골(奪胎換骨)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내공이 최하 일갑자(60년)는 넘어야 하고 영약의 도움도 필요하지요. 당연히 운도 따라줘야 하고요. 괜히 생사현관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니까요. 또한 탈태환골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한순간에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생으로 찢어지는 것이니 아프지 않을 리가 없지요. 그래서 단계별로 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경팔맥만 다 뚫어도 몸 전신에 진기가 퍼지면서 무공을 익히기 좋은 몸으로 조금씩 바꿔어 나갈 것입니다. 거기에 정기신 합일까지 하시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저하께서는 아직 성장기이시니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임독양맥의 타동은 먼 미래의 일이니 당분간은 신경 쓸 필요가 없겠지요."

    말을 마치며 척무관이 손을 앞으로 내밀자 왕기가 물었다.

    "그 손은 또 뭔가?"

    "소관의 검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저하께서는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진검을 잡으시면 안 됩니다. 자신이 휘두르는 검에 다치가 딱 좋으시니까요."

    잠시 후 수련용 목검 두 자루를 구해서 돌아온 척무관이 진검을 빼앗겨서 입이 댓 발 튀어나와 있는 왕기를 보며 달래듯 말했다.

    "저하. 목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다칠 위험이 적기 때문에 대련을 하기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요. 제가 알려드린 베기와 찌르기를 이용해서 제게 공격을 해보시지요. 혹시 알고 계시는 검법들이 있으면 다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전 방어만 하다가 딱 한 번 공격을 하겠습니다. 목은 위험하니 명치를 이 목검으로 가볍게 찌르지요. 만약 그 공격을 막아내시면... 저하 전용의 진검을 맞추어 드리겠습니다. 시내로 모시고 나가서 멋진 놈으로 한 자루 사드리지요."

    "공격 부위를 미리 알려준다고?"

    의아해하는 왕기의 물음에 척무관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공격 부위를 알려줘서 막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저하의 수준에서는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잠시 후 두 사람의 연습 대련이 시작되었다. 몸 쓰는 법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내공을 익혔고 기맥까지 하나 뚫은 왕기가 제법 빠르고 강하게 공격을 해나갔다.

    - 딱. 딱. 딱...

    몇 번 목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왕기가 들고 있던 검이 저 멀리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저하. 공격을 하시다가 검을 놓쳐버리시면 어떡하십니까? 실전에서 그랬다가는 당장에 목이 날아갈 것입니다."

    "척무관의 검과 부딪칠 때마다 반탄력이 장난이 아니라서..."

    "검을 휘두를 때 어깨와 팔로만 휘두르시니 반탄력을 감당하지 못하시는 것이지요. 손보다 발이 먼저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어깨보다 허리와 하체에 힘을 단단히 주시고 휘두르셔야 합니다. 저하에게 마보를 시키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다시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잠시 후 다시 대련이 시작되자 왕기의 입에서 신음성이 연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왕기의 일방적인 공격을 가볍게 막으면서 가끔씩 찌르는 척무관의 목검이 왕기의 명치를 계속해서 명중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퍽.

    "지금 저하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공격을 하는 중에서도 수비를 같이 신경 쓰셔야죠."

    "크흑... 알았네. 내가 더욱 집중을 하지."

    - 퍽.

    "지금 저하는 이미..."

    "빌어먹을... 날아오는 검이 보여야 막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집중하시면 보실 수 있으십니다. 명치로 날아올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퍽.

    "지금 저하는..."

    "켁... 아무리 집중을 해도 안 보인다니까."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이실 겁니다. 좀 더 집중력을 끌어올려 보세요. 목숨이 걸려있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 퍽.

    "지금 저하는..."

    "씨팔..."

    "화가 나신다고 욕은 하지 마시고요."

    목검에 같은 자리를 찔려 매일같이 명치에 시퍼런 멍이든 왕기는 죽어라 반야심공의 운기에 매달렸고 그런 날이 또 일주일이 흘렀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발목과 다리 그리고 허벅지를 통과하는 음교맥과 음유맥이 뚫렸다.

    서기 1345년 8월 19일

    - 딱. 딱. 딱...

    제법 힘차게 부딪치는 목검의 충격에도 왕기가 제법 잘 버티고 있었고, 이전과 다른 날렵하면서도 경쾌한 발 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왕기를 보며 척무관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좋습니다. 저하. 하체에 있는 기경팔맥이 뚫리셔서 그런지 자세가 많이 안정되셨습니다."

    - 픽.

    "저하께서는 이미..."

    "염병..."

    서기 1345년 8월 26일

    다시 일주일이 흘렀고 척추 안을 상행하는 충맥이 뚫렸고, 겨드랑이를 지나 어깨를 통과하는 양유맥마저 뚫렸다.

    - 딱. 딱. 딱. 딱.

    "좋습니다. 이제는 허리와 어깨를 제대로 사용하실 줄 알게 되셨군요. 검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어요. 제법 검사(檢士)다운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 픽.

    "저하께서는 이미..."

    "젠장..."

    서기 1345년 8월 30일

    낮에 또 척무관의 목검에 두들겨 맞아 시퍼런 명치 부위를 보며 왕기가 독기가 잔뜩 서린 눈빛으로 뇌까리고 있었다.

    '기경팔맥의 타통은 거의 끝이 보이고 있어. 오늘 밤중으로 기경팔맥을 모두 다 뚫는다. 그런 후 곧바로 정기신 합일에 들어갈 것이야. 이대로 가다간 샌드백 신세를 면할 수가 없어. 정기신 합일과 관련된 무공 이론은 현대 과학과 의학을 접목하여 이미 정립해 놓았다. 실행에 옮기가만 하면 되는 것이지.'

    이윽고 반가좌를 한 왕기가 반야심공을 운기하자 남아있던 기경팔맥마저 시원하게 뚫리는지 온몸에서 퍽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운기가 끝나자 조심스럽게 눈을 뜬 왕기가 자신의 주변과 아래를 슬쩍 바라보았다.

    '비급에서는 기경팔맥이 다 뚫리면 백팔번뇌에 의한 추상반야 현상이 서서히 시작된다고 했는데 그런 현상이 전혀 보이지를 않는군. 그게 시작되어야 내공이 쭉쭉 쌓일 텐데 말이야. 뭐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척무관의 말처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게 좋아.'

    왕기가 아쉬움을 떨쳐내려는 듯 가뿐해진 몸을 가볍게 흔들며 자신이 세운 정기신 합일에 대한 가설을 마지막으로 신중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기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운공에서 깨어날 때 하체 쪽에서 미세하게 공기가 회오리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달라붙는 호복의 특성상 눈에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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