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6화 (6/171)
  • #6. < [무공 수련] ch.2 기경팔맥의 타통 - 1 >

    - 번쩍.

    한시진 가량을 미동도 하지 않고 반가좌를 한 채 반야심공의 기초 운기법을 운행하던 왕기가 눈을 뜨자, 그의 눈에서 내공을 익힌 자들의 특징인 광채가 미약하게나마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왕기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척무관이 되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경하 드리옵니다. 저하. 이제는 저하께서도 내공을 익힌 무인이 되셨습니다. 비범지경(非凡之境)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리옵니다."

    왕기가 전혀 떨리지 않는 다리로 벌떡 일어나 날아갈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운기조식을 하니 확실히 피로가 빨리 풀리는군. 근데... 비범지경이 뭔가?"

    "현시대 무인의 경지를 자세히 나누어 놓은 것을 원대무림기에서 보셨잖습니까? 그 분류에 따르면 타고난 체력이 좋고 병기술(兵器術)을 습득한 사람들을 범인이라 부르지요. 군문에서 창술을 배운 병사들이나 간단한 도법 등을 익힌 산적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감기에 성공해 몸 안에 단전을 형성하고 내공을 축적한 자를 비범지경이라고 칭합니다. 저하의 현재 단계인 것이지요. 그런 후 하단전인 정(精), 중단전인 기(氣), 상단전인 신(神)을 모두 일깨워서 합일(合一)에 성공한 자를 비로소 인간의 경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하여 초인지경(超人之境)이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검기(劍氣)를 뽑을 수 있는 자를 절정, 검기를 마치 실처럼 여러 가닥 뽑아서 천을 짜듯 엮어서 만드는 것을 검사(劒絲)라 하며 그럴 수 있는 자를 초절정이라고 부르지요. 그런 검사들을 층층이 쌓아 올려 검강(劒罡)이 형성 가능한 자를 화경이라고 합니다. 현 무림에서는 일비와 사왕만이 그 경지에 도달해 있지요. 화경 이상의 경지를 절대지경이라고 칭하는데 현 무림에서는 아무도 도달한 자가 없습니다."

    "말하는 걸 들어보아 하니... 초인지경부터가 제대로 된 무인으로 보는 것 같은데? 맞는가?"

    "그렇사옵니다. 그런 자들을 진정한 고수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내공이 많다고 정기신 합일에 무조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검기를 뽑아낼 수 있는 자들 중에서도 정기신 합일에 성공하지 못한 자들도 제법 많으니까요. 무식하게 내공만 죽어라 쌓은 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런 자들이 초인지경을 거친 자와 붙으면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지는 것이지요. 저하께서 내공을 좀 익히셨다고 눈앞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을 맨손으로 태연히 잡으실 수 있겠습니까? 온몸으로 날아드는 여러 자루의 서슬 퍼런 칼날들을 웃으면서 피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없지."

    "그런 일들을 밥 먹듯 편안하게 하는 게 가능하기에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해서 초인지경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기신 합일이옵니다."

    "척무관은 그걸 이루었는가?"

    "당연히 이루었지요. 저하. 흑점을 갈 때 만났던 맹호폭도란 자와 소관의 내공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무공을 익힌 경력만을 따지자면 그자가 저보다 더 윗길일 겁니다. 하지만 맹호폭도는 초인지경을 거치지 않았기에 소관이 열수도 안되어 제압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더 넓은 무림강호에서도 정기신 합일을 이룬 사람은 백도 채 안 될 것입니다. 초인지경을 이룬 자는 능히 백대고수라고 칭할만하지요."

    "척무관이 이루었다니 잘 알겠군.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게나."

    "중단전인 기는 내공의 기본이면서 무인에게 지치지 않는 체력을 줍니다. 밥을 먹지 않고도 며칠을 싸울 수 있게 만들어주고, 아무리 극심한 피로도 운기조식 한 번으로 금방 풀리게 만들어 주지요. 하단전인 정은 불굴의 용기와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강력한 투지를 불러일으킵니다. 당연히 뛰어난 정력도 주지요. 상단전인 신은 눈이 뜨이고 귀가 트이게 만들어줘서 날아오는 화살을 태연하게 지켜보면서 잡을 수 있게 해주며, 사방에서 협공해오는 적들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게 만들어주지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옵니다. 저하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이니 참고로만 하시고... 더 급한 것이 있사옵니다."

    "그게 무엇인가?"

    "저하께서도 알다시피 반야심공은 불가해무공입니다. 소림에서도 혜능을 제외한 그 누구도 오성(五成) 이상을 익히지 못한 무공이지요. 십이성 중에 오성이면... 잘 익혀봐야 절정의 경지일 것입니다. 지금의 저보다 못한 경지이지요. 이왕 저하께서 무공을 익힐 바에는 더 위를 노려보셔야 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겨우 한번 운공을 하였으니 아직은 다른 내공 심법으로 갈아타시는 것이 가능하옵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내공 심법으로 바꾸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척무관의 정중한 권유를 왕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럴 필요 없네. 난 이미 반야심공을 거의 다 해석한 상태이니까."

    척무관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저하. 이 일은 거짓이나 자만으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무공 요결을 잘못 해석해서 운공을 하다가는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하기가 십상입니다. 잘해야 반신불수요 그 자리에서 즉사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불가해무공이라는 반야심공을 다 해석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니까. 난 반야심공의 불가해 요결이라는 [대력반일(大力反日)]의 진정한 의미를 이미 이해한 상태야. [백팔번뇌(百八煩惱)]와 [추상반야(推上般若)] 그리고 [회회연회(回回然回)]가 뭘 뜻하는지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네. 물론 아직 시험은 해보지 않았지만 말이야. 이제 겨우 기를 느꼈으니까. 하지만 난 내가 한 해석이 맞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혜능은 불세출의 천재일걸세. 당나라 때의 사람이 이런 개념을 가지고 무공을 창안했다니 말이야."

    왕기가 갑자기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더니 발을 들어 연무장을 강하게 구르며 척무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 쾅. 쾅,

    "척무관은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하늘에 떠있는 저 해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저 해가 이 땅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해가 이 땅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것이지요. 아침이 되면 동(東)에서 떠올랐다가 저녁이 되면 서(西)로 지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이 시대의 사람들은 천동설(天動說)을 믿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야. 하지만 그래서는 반야심공을 절대로 해석할 수가 없어. 이건 나 정도 되니까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 다른 무인들은 비급을 붙잡고 백 년을 고민해도 해석할 수가 없다고."

    "저하께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정말로 정확히 해석을 다 하셨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니까. 난 반야심공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라고."

    행여 거짓을 말하는지 확인하려는 듯 왕기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척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시로군요. 그럼 더 이상 다른 내공을 익히라고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그 모든 것은 저하의 책임이시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걱정 말게나. 내가 주화입마에 걸려도 척무관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를 명심하셔야 합니다. 방금과 같은 말은 어디에서도 함부로 하시면 절대 아니 됩니다."

    "그건 또 왜?"

    "저하가 불가해무공 중에 하나인 반야심공을 해석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날로 납치를 당하실 겝니다. 고문을 해서라도 저하의 머릿속에 있는 그 해석본을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제가 최선을 다해서 지켜드리겠지만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이지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듯 왕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새는 모이 때문에 죽고 사람은 보물 때문에 죽는다는 그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감기에 성공하셨다고 마보를 멈추시지 마시고 앞으로 한 달 정도는 계속 저와 함께 마보를 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인상을 찌푸린 왕기가 강하게 반발했다.

    "척무관이 그리 말했지 않은가? 감기에 성공하면 마보는 끝이라고. 이제 와서 약속을 어길 셈인가?"

    "제 잘못이 아니라 이건 저하의 잘못입니다. 세상에 이틀 만에 기를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반야심공을 창안한 혜능도 그리는 못했을 것입니다. 저하께서 너무 일찍 기를 느끼시는 바람에 신체 단련이 아직 덜 끝나셨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마보를 하시면서 무공과 관련된 강의를 더 들으셔야 합니다.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면... 소관이 직접 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보를 하더라도 이전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마보를 끝내고 운기조식을 하면 피로가 금방 풀릴 테니까요."

    왕기가 짜증 어린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운기조식하기 전의 고통은 어떡하고..."

    초인지경을 이루었다는 말처럼 귀가 무척이나 밝은지 척무관이 즉각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안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무인이 되시려면 그 정도의 고통은 감내하셔야지요. 무인이 신체 단련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문인이 책을 보지 않겠다는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

    화들짝 놀란 왕기가 다급해 대답했다.

    "해야지 암. 하고말고. 무림 십대고수인 해동제일검에게 검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그럼 오늘 하루는 푹 쉬시고 내일 다시 이 시간에 연무장에서 뵙겠습니다."

    떠나려는 척무관을 왕기가 붙잡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무엇이옵니까?"

    "보통 사람들이 기경팔맥을 뚫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 물론 타통을 하려다가 잘못되면 죽고 만다는 뜻에서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고 부르는 임독양맥의 타통은 빼고서 말하는 것이라네."

    왕기의 말에 척무관이 손으로 머리통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신체의 앞부분을 관통하는 임맥과 뒷부분을 관통하는 독맥도 자체적으로는 다른 맥과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단지 저하의 말씀처럼 두 맥을 서로 연결해 주는 부위를 뚫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요. 연결 부위가 머리통 속에 있기에 자칫 잘못하면 죽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척무관이 왕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손으로 각각의 맥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양맥을 포함해서 충맥(衝脈), 대맥(帶脈), 양교맥(陽蹻脈), 음교맥(陰蹻脈), 양유맥(陽維脈), 음유맥(陰維脈)을 다 뚫는데 보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요. 늦는 사람은 2년도 걸린다고 합니다. 처음 혈맥을 뚫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가장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일반적으로 세 달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다음부터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고, 뚫린 맥의 개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더욱 쉬워지지요. 근데... 갑자기 그걸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오늘부터 뚫어보려고 하니까 물어본 것이지. 반야심공에 적혀있기를 기경팔맥과 임독양맥을 그 어떤 무공보다 빨리 뚫을 수가 있다고 되어 있다고."

    "저하. 무공은 그런 식으로 성급하게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이 달려있기에 돌다리도 두들겨 보듯이 단계별로 조심조심하며 익히는 것이지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왕기가 속으로 뇌까렸다.

    '내가 해석한 것이 정확하다면 반야심공은 기맥 타통에 탁월한 공능을 가지고 있는 무공이다. 대력반일과 회회연회의 개념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백팔번뇌와 추상반야는 내공을 쌓는데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어서 빨리 그 효과를 확인하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는군.'

    그날 밤 반야심공의 진신운기법으로 운기를 마친 왕기가 잠자리에 들 차비를 하고 있었다.

    "회회연회라는 말뜻처럼 돌리고 돌리되 대력반일 구절이 의미하는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돌려야만 한다. 이걸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가능하게끔 머릿속에 완전히 박아 넣어야만 해. 그래야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야."

    왕기가 마치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대력반일(大力反日)이니 지회여동(地回如動)이고, 미력우향(微力右向)이니 수와여동(水渦如動)이다. 따라서 진신불력(眞身佛力)을 상시여동(常時如動) 해야만 한다."

    그렇게 몇 번을 중얼거린 왕기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왕기의 몸에서 무엇인가가 막힌 벽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퍽. 퍽...

    그리고 빠르게 일주일이 흘렀다.

    서기 1345년 8월 12일

    여느 날처럼 무공을 지도 받기 위해 연무장에 나와 있는 왕기를 척무관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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