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고려제국건국기-1화 (1/171)
  • #1. < 불가해무공(不可解武功)의 탄생 >

    서기 1345년 8월 1일

    이 해는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혜종(惠宗 : 훗날 명나라에서 순제라는 호를 주어 원순제라고 불리게 될 인물)이 재위하고 있는 지정(至正) 5년이면서, 원으로부터 심왕(瀋王)이라는 작위를 받고 충목이라는 시호를 받은 고려의 29대 왕인 충목왕(忠穆王)의 재위 2년째가 되는 해이다.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大都 : 현재의 북경)에 위치한 한 전각.

    전날 승마 연습을 하다가 낙마해 뇌진탕을 입어 하루 가까이를 기절해 있다가 깨어나 아직도 기억이 오락가락한다는 강릉대군 왕전(王顓)이 현시대의 강호 무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말에 호위무관인 척노리가 멸망한 제갈 세가의 마지막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제갈총명(諸葛聰明)이 집필한 '원대무림기(元代武林記)'를 한 권 구해서 건네주었다.

    - 스르륵. 스르륵..

    책 넘기는 소리와 함께 훗날 공민왕이 될 왕전이 책 속으로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강호(江湖)]

    도산검림(刀山劍林)이라고 불리는 강호. 예로부터 인간은 물가 근처에서 살기를 좋아했으니, 강과 호수의 합성어인 강호의 명칭에서 나타나듯 거대한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와 포양호(鄱陽湖) 그리고 대륙의 젖줄인 양자강(揚子江)과 황하(黃河) 인근에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고,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익힌 무공(武功)을 과시하며 검 한 자루, 칼 한 자루에 인생을 걸고 아슬아슬한 생사(生死)의 줄타기를 타며 생활을 영위해나가던 사람들을 무림인(武林人) 또는 강호인이라고 불렀다. 무공의 경지가 높아서 천하무적의 강자가 되면 본인의 명성 하나만으로도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가 있지만, 약자가 되면 아침이슬처럼 허무하게 죽어나자빠져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잔혹한 세상이 바로 강호이다.

    아득한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때 갈대를 타고 중원으로 건너와 선종(禪宗)의 시조가 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소림사에 남겼다는 역근경(易筋經)과 세수경(洗髓經)의 전설이 어려있고, 송(宋) 나라 때 양산박(梁山泊)에 모여든 호걸들의 활약상이 아직도 살아서 숨 쉬며, 도사 진희이(陳希夷)가 송태조 조광윤(趙匡胤)과의 내기 바둑에서 이긴 대가로 면세 혜택을 받은 화산(華山)에서는 여러 도사들이 모여들어 죽을 때까지 오로지 검 하나만을 수련한다는 이야기가 생생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강호. 그런 강호에 존망(存亡)의 대위기가 닥치게 되었으니, 그 이유는 바로 몽골족에 의한 원(元)나라의 건국이었다.

    [정림방(征林幫)의 탄생]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양과 염소나 치던 유목민들을 대통합한 칭기즈칸의 후손이 세운 원나라. 싱싱한 풀을 찾아 죽을 때까지 말을 타고 대초원을 끝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특성상 승마에 능할 수밖에 없는 기마민족의 탁월한 기동성을 바탕으로 몽골족은 거침없이 남침전쟁을 벌였으니, 제일 먼저 여진족이 세운 금(金) 왕조를 몰락시켰고 그 후에도 계속 남하를 하여 금(金)나라에 의해 수도인 개봉(開封)을 빼앗기고 남하하여 항주(抗州)에 새로운 도읍을 세운 한(漢)족의 국가인 남송(南宋)마저 끝끝내 멸망시키고 대륙을 일통한 원나라는 한족을 영구히 지배하고자 하층 계급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1등급 몽골인, 2등급 색목인. 3등급 한인, 4등급 남인의 계급사회를 만들고 한족을 3, 4 등급에 해당되는 하층민으로 격하시킨 원나라가 한족의 반란을 걱정하여 취한 여러 가지 조치 중에 하나가 한족은 무기류를 일체 가질 수 없고, 무술을 배우거나 사냥을 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조치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것은 강호라는 곳에서 살아가던 무림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무림인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구파일방(九派一幇)과 오대세가(五大世家)는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를 괘심하게 여긴 원나라 황실은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본보기로 구파일방 중에 하나인 점창(點蒼)을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불태워 버렸고, 오대세가 중에 하나인 제갈세가(諸葛世家)를 개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몰살시켜버렸다. 이에 화들짝 놀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생존을 위해 원나라 황실과 하나의 협약을 맺게 되었으니, 이러한 협약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정림방이다.

    [협약의 내용]

    - 한족이 자유로이 무술을 익힐 수 있는 곳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한정한다. 단 일정 이상의 숫자로는 세력을 확대할 수가 없다.

    - 구파일방은 소림, 무당, 화산, 곤륜, 공동, 청성, 아미, 종남과 멸문한 점창을 대신하여 들어온 모산파를 구파로 하고, 일방은 거지들의 연합인 개방(丐幫)을 일컫는다. 오대세가는 안휘의 남궁가(南宮家), 하북의 팽가(彭家), 사천의 당가(唐家), 진주의 언가(彦家) 그리고 제갈세가를 대신해 들어온 산동의 벽력가(霹靂家)로 정한다.

    - 단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무공의 개발과 발전을 위해 원나라 황실이 세운 정림방에 모든 무공 비급을 제공하고, 정림방과 공동으로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 특정 문파나 세가에서 정림방에 제공하지 않은 무공 비급이 발견되거나 그러한 무공을 익힌 자가 적발될 시에는 그에 대한 책임으로 멸문지화를 당한다.

    -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보유하고 있는 진산 절기들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정림방에 연구 자료로 제공하는 대신 그들의 영약, 재물, 토지, 신병이기 등의 재화는 건드리지 않으며 이전과 다름없는 정상적인 강호 활동을 보장한다.

    [강호의 변화]

    원 황실과 상기와 같은 협약을 맺게 되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공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몽골족의 무공 고수들과 한족의 무공 고수들이 강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진행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런 세월이 80여 년 가까이 지속되자 강호에 도드라진 몇 가지 변화가 발생하였다.

    첫째, 강호인들의 분류가 익힌 무공의 경지에 따라 좀 더 세분화되었다. 기존에 있던 일류고수와 절정 고수, 초절정 고수, 화경이라 칭하던 분류가 사라지고 새로운 분류법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범인, 비범, 초인, 절정, 초절정, 화경, 절대지경의 경지로 새롭게 나뉘게 되었으며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항목들도 상세하게 규정된 것이다. 그로 인해 강호에서의 서열이 명확해지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둘째, 음으로 양으로 빼돌려진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들의 무공 비급들이 강호에 널리 풀리게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이미 멸문하여 주인을 잃은 점창과 제갈세가의 무공 비급들은 낮은 가격으로 부담없이 살 수가 있게 되었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진산 절기들도 적당한 가격만 지불하면 누구라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실질적인 무인의 숫자는 그렇게까지 급증하지를 않았다. 이는 무공 비급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다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강호의 속설이 증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무공 비급의 자구 하나하나와 구결들을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 익힐 수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무공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불가해무공(不可解武功)이라 칭하게 되었으며 3개의 무공 비급에 그런 판정이 내려졌다. 불가해무공의 비급들은 점창과 제갈세가의 비급들보다 더 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으니, 해당하는 비급의 주인인 문파들에서는 불가해무공을 익힐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자에게 거창한 포상을 내걸게 만들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호기롭게 도전하였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한 자가 없었다.

    [불가해무공의 종류]

    인간의 능력으로는 익힐 수가 없다는 불가해무공의 종류는 총 3가지로 통칭 일공(一功), 일검(一劍), 일수(一手)라고 불리는 하나의 심공과 하나의 검법 그리고 하나의 수법이다.

    - 일공 :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天下 : 천하의 무공들은 소림에서 나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림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내공 심법이 존재하나 그 모든 것들의 기원은 달마대사가 남긴 역근경과 세수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림에서 가장 뛰어난 다섯 가지 내공 심법을 소림 오공(五功)이라고 칭하는데 각각 대력(大力), 금강(金剛), 혜광(慧光), 무량(無量) 그리고 반야(般若)이다. 소림의 내공 심법은 이들 오공의 절묘한 조합 또는 개량 발전을 시킨 것으로 대력과 금강은 역근경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혜광과 무량은 그 기원을 세수경에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반야심공만은 그 기원을 달리하고 있으니 이는 소림의 중시조(中始祖)라고 불리는 혜능(慧能)이 창안한 심법으로 혜능 이후로 그 누구도 제대로 익힌 자가 없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도 혜능이 직접 집필한 비급이 온전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나 핵심 구결을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기에 불가해무공중에 하나인 일공으로 선정하였고 이를 혜능지공(慧能之功)이라고 부른다.

    - 일검 : 강호에서 태산(泰山)이라고 불리는 소림과 함께 북두(北斗)라 불리는 무당의 검법 중 하나이다. 무당의 검법은 1에서 9까지의 숫자로 불리니 1검인 태극혜검(太極慧劍), 2검인 양의(兩儀), 3검인 삼재(三才). 4검인 사상(四象), 5검인 오행(五行), 6검인 육합(六合), 8검인 팔괘(八卦), 9검인 구궁(九宮) 검법들 모두 해석이 가능하고 익히는 것도 가능하지만 7검이라고 불리는 칠성검(七星劍)만은 그 누구도 제대로 익힐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칠성검을 완벽하게 익힐 경우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전설이 무당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에 무당의 칠성검을 불가해무공 중에 하나인 일검으로 선정하였고 이를 신선지검(神仙之劒)이라고 부른다.

    - 일수 : 몰락한 제갈세가를 대신해 오대세가로 들어온 벽력가의 수법으로 뇌전벽력수(雷電霹靂手)라고 불라는 수법이다. 벽력가는 터질 경우 반경 1장안에 있는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벽력탄의 제조가로도 유명하지만, 벽력가를 세운 시조가 손에서 벼락을 열 번 이상 뿜어내어 벽력탄을 탐내어 협공을 하던 당시의 절대 고수 십여 명을 통구이로 만들어버렸다는 전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벼락을 몸에서 열 번 이상 뿜어낸다는 건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을 열 번이나 두들겨 맞고도 살아남는다는 뜻과 똑같기에 인간의 몸으로는 익힐 수 없는 무공으로 분류되었다. 역대 벽력가에서도 그 누구도 익힌 자가 없기에 이를 불가해무공 중에 하나인 일수로 선정하였고 이를 천뢰지수(天雷之手)라고 부른다.

    <제갈총명의 원대무림기에 대한 고찰>중에서 일부 발췌.

    - 턱.

    자신이 궁금한 내용들을 파악했는지 책을 덮은 강릉대군이 호위무관을 보며 물었다.

    "척무관. 그럼 이 불가해무공이라고 불리는 비급들은 나도 구해서 볼 수가 있겠군요?"

    "당연합니다. 불가해무공은 멸문된 점창과 제갈세가의 비급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니까요. 다 합쳐서 은자 열 냥이면 흑점에서 구매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필사(筆寫)한 노임과 종이값보다 조금 더 처 주는 정도이지요. 그 누구도 익힐 수 없는 무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에게 그 정도의 돈은 있겠지요?"

    "당연하신 말씀이시지요. 비록 '뚤루게(원나라에 잡힌 볼모를 일컫는 말)'의 신분이시기는 하지만 저하께서는 엄연한 고려의 적통 왕자이십니다. 그런 분이 그 정도의 돈도 없다면 말이 안 되지요."

    "그럼 당장 흑점으로 갈 차비를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저하. 지금 바로 채비를 하겠사옵니다."

    "아... 그리고 책을 읽다 보니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어요."

    "무엇이옵니까?"

    "무공을 익히는 게 많이 어렵나요? 설사 비급이 있다고 해도 쉬이 익힐 수가 없다고 나와 있던데..."

    강릉대군의 말에 척노리가 살짝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하께서 내일부터 한번 익혀보시겠습니까? 그러면 금방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요. 얼마나 어려운지 내일부터 내가 한번 익혀보도록 하지요."

    흑점에 갈 채비를 하기 위해 무관이 방에서 물러나자 강릉대군이 속으로 빠르게 뇌까리며 다짐했다.

    '이 시대는 내가 살던 한국처럼 법치 시대가 아니야. 칼과 폭력이 난무하는 미개한 시대이지. 내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공이 필수일 것이야. 난 절대지경의 고수가 되어야만 한다. 이 무법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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