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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49화 (150/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바뀐 운명(2) >

    쉐일링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 뜬 제이슨은 앞에 선 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격을 높이고 있는데도 상대는 느긋했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게 끝인가?”

    제이슨은 더 기다릴 생각도 없었다. 공중전에 자신이 없지만, 자신이 할 일은 느려진 시간 속에서 상대를 베는 일이다. 그것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 약점이 어디야?”

    신력의 덩어리. 기간트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약점이 따로 없었다. 엘하르트는 그 말에 입맛을 다셨다.

    “나도 죽여보지 못해서 모르겠네.”

    제이슨은 픽 웃음을 터트리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각 내보자.”

    “가능하겠냐?”

    “응.”

    제이슨은 담담히 말했다. 신은 자신이 가진 힘이 너무나 강해서인지 기교가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충분히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이슨이 허공을 박차고 거리를 좁힐 때 신이 껄껄 웃으며 쌍검을 휘두른다. 거리가 먼 상태에서 날아드는 가공할 신력.

    제이슨은 엘젠트가 휘두르던 신력의 파도를 떠올렸다. 다만 엘젠트가 휘두른 것이 신력의 파도였다면 이건 태산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 끝도 알 수 없는 태산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끔찍할 정도의 공격. 제이슨은 날아드는 공격은 참격으로 베어낼 수도 없고, 흘려내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공격이었다.

    제이슨은 신이 작정하고 펼친 검격을 마주하고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이 지금까지는 자신과 놀아줬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작정하고 펼치는 검격은 운명을 비트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이 일검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이대로 당해줄 마음은 없었다.”

    제이슨은 그 상황에서 집중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해도 피할 곳 하나 없는 공격이었다. 이 공격을 어떻게 부수고 넘어가야 하는가?

    정면으로는 승산이 없다. 그건 엘하르트도 함께 느꼈다.

    제이슨은 무리하지 않고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받아냈다. 정확히는 그 힘의 격류를 피하지 않고 날아드는 신력을 이용해 되받아치면서 그 힘의 반동을 이용했다.

    신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멀리까지 밀려났다. 제이슨은 그곳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상태는?”

    엘하르트는 자신의 몸을 점검하고는 답했다.

    “받아치고 힘을 타고 왔는데도 에너지 손상률이 20%나 된다.”

    “맞으면 안 된다는 얘기네.”

    그때 까마득히 먼 곳에 있던 신이 공간 이동을 해서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는 엘하르트의 상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와중에도 용케 살아남았구나.”

    “이 정도에 죽을 줄 알았어?”

    “그 정도에 너는 저번에 패했었지.”

    담담히 말한 신이 재차 검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가 제이슨에게만 말했다.

    “이대로는 안 돼.”

    “알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쉐일링을 다른 차원에서 끌고 온 것이라면 이곳에 인간들도 한 줌만 남기고 그들을 다른 차원으로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

    그런 꼴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전력을 다해서 상대할 생각이다.

    제이슨은 다시 한번 떨어지는 가공할 검격을 보면서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기운을 컨트롤러에 밀어 넣었다. 단순히 오러가 아니라 신력과 신살의 기운까지.

    그 모든 기운이 더해지자 엘하르트도 전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전력을 기울인 제이슨은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검을 보면서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상대가 보여준 운명의 길에 눌려왔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압도적인 위력의 검격이 보여주는 운명의 빛 때문에 보지 못했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 길이 보였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은 저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신력 때문에 그사이에 있는 길을 못 보았었다.

    제이슨은 그 길을 따라 검을 뻗었다.

    “제정신이냐?”

    엘하르트의 외침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믿어!”

    다른 말을 해줄 수 없었다. 엘하르트도 다른 말 하지 않고 제이슨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제이슨은 그대로 검을 뻗어 산사태와 같은 신력을 갈라내기 시작했다.

    그 힘에 압도되어 밀려나는 것 같았지만, 제이슨은 굳게 마음먹었다. 이대로 상대의 신력을 가로질러 상대를 벤다. 자신이 본 길을 만든다.

    콰콰콰콰!

    제이슨의 검을 따라 갈라진 신력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하늘에서 거센 폭풍이 일었다. 아마 지상에서는 난리가 났을 테지만, 그걸 볼 겨를도 없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퍼덕거리면서 신살검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신의 입에 미소가 그려졌다.

    “재미있구나!”

    크게 소리친 신이 왼손에 들린 검을 내리쳤다. 산사태와 같은 신력을 갈아서 올라가는 중에 떨어져 내린 검. 그 검에서 또 일어나는 거대한 신력의 파도.

    신의 입가에 그려진 진한 미소. 그것은 함정을 파놓고 그 안으로 들어온 제이슨과 엘하르트를 비웃고 있었다.

    제이슨은 다음 기회는 없음을 알았다. 그때 제이슨의 귓가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미약하지만 도움이 됐으면 해요.]

    제이슨은 자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한줄기 신력을 읽었다. 그것은 퀸이 내려준 축복.

    그 힘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다잡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제이슨이 그 힘을 읽었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저 밑. 제이슨의 궁이 있는 곳에서부터 날아오는 거대한 뼈의 창이 눈에 들어왔다.

    길이만 1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창. 날아오르는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음차원 에너지를 읽을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라마란스가 온 힘을 다해 만들어 쏘아 올린 뼈의 창이다. 신에게 있어서 그것은 미약하다고 할 만한 일이나 그의 정신을 잠깐이지만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신이 신력을 일으켜 만든 방패가 거대한 창을 막아낼 때 제이슨은 검을 쭉 뻗었다. 신이 만들어 놓은 함정 안쪽에 보이는 길을 따라 검이 뻗어 나갔다.

    라마란스가 만들어 보낸 뼈의 창 덕분에 만들어진 신력의 틈을 따라 뻗어 나간 검이 신에게 닿았다. 신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일검을 맞는다고 해도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목이 잘려나가도 죽지 않을 것이니 설령 자신의 함정이 실패했다고 해도 크게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검을 받아내겠다고 했을 때 제이슨이, 엘하르트가 들고 있던 신살검에 신살의 기운이 강하게 맺혔다. 그렇게 검이 신에게 꽂혔을 때 그는 그 검을 손에 쥔 채 엘하르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대적자가 과연 네가 처음이겠느냐?”

    신살검이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제이슨이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이미 수많은 대적자가 지나갔다. 그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아있지. 그리고 그중에는 신살의 기운이라고 만든 것으로 날 공격했던 이들도 있었다.”

    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 모두는 내게 추억이 되었을 뿐이다.”

    신이 쥐고 있던 신살검이 박살 났다. 신은 손을 뻗어 엘하르트의 목을 쥐었다. 엘하르트가 가지고 있던 신력과 제이슨이 가지고 있던 신력이 모두 신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크윽!”

    신음을 흘리는 엘하르트에 타고 있던 제이슨은 느낄 수 있었다. 엘하르트는 자신이 발버둥 쳤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의미해졌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느끼는 엘하르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제이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엘하르트는 손을 놓고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다.

    “엘하르트.”

    제이슨이 부르자 엘하르트는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힘겹게 답했다.

    “왜?”

    “이대로 포기할 거냐?”

    엘하르트는 대답이 없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힘은 물론이고 그의 육신마저 빛이 되어 신의 손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제이슨은 투명해져 가는 엘하르트의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온 마음을 다해서 소리쳤다.

    “엘하르트!”

    제이슨의 외침이 더해졌지만 엘하르트의 몸은 이미 사라졌다. 신은 그제야 제이슨처럼 작아져 그의 앞에 서서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이런 식이었다.”

    신은 마치 제이슨에게 비밀을 알려주듯 말을 이었다.

    “나는 차원을 넘나들며 사도를 만들고, 대적자를 만들어 놓는다. 사도들은 자신들만으로 부족하다 여겼는지 꼭 이렇게 생명체를 창조하더군.”

    제이슨은 자신의 목을 틀어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하긴 창조의 힘을 손에 넣은 이들이 어찌 그 힘을 써먹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이들이 번성하면서 세상에는 신력이 풍부해진다. 그리고 그건 결국 대적자의 손에 들어가더군.”

    제이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모인 신력은 내게 대적자와의 추억을 남기고 손에 들어오지. 그렇게 나는 점점 더 큰 힘을 손에 얻게 된다.”

    제이슨은 이 모든 것이 신의 의도대로 굴러갔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저 안쪽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모습에 신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지. 네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구나.”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들어 신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신은 자신의 손목을 틀어쥔 제이슨의 손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 네 분노를 더 끌어올리려면 인간들을 다 죽이면 될까?”

    신이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그으려고 할 때 제이슨이 반대 손을 들어 그 손목도 잡았다. 그 모습에 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좋다. 네가 저들을 대신해 죽겠다면 너 하나만 거둬가고 이 차원은 가만두겠다.”

    제이슨은 그 말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 하나 포기하면 가족과 모두가 살 수 있다고 하니 잠시지만 마음이 흔들렸다.

    -제이슨.

    그때 아련하지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엘하르트의 목소리. 빛의 입자로 화해서 빨려 들어간 줄 알았는데 그 목소리가 들릴 줄은 몰랐다.

    제이슨은 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쪽 깊디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한줄기 빛.

    그걸 느낀 제이슨은 자신을, 엘하르트를 믿기로 했다.

    제이슨은 손목을 놓고 신의 목을 틀어쥐었다. 신이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모두 죽기를 바라는 거구나.”

    “아니. 죽는 건 너다.”

    “미친 건가?”

    “아니.”

    단호하게 말한 제이슨이 외쳤다.

    “엘하르트!”

    제이슨의 외침에 신이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안쪽에서 울림이 전해졌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것.

    신이 제이슨의 목을 놓고 뒤로 밀었다. 그런 신의 가슴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왔다.

    신이 그 손을 잘라냈다. 그때 등 뒤에서 튀어나온 손에 신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신의 등 뒤로 솟구친 엘하르트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게 물든 엘하르트는 신이 당황하며 뿌리치려고 할 때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 말대로다. 너는 수많은 대적자를 스스로 몸에 품었더군. 독이 될지도 모르고.”

    “헛소리!”

    신이 격을 드높였다. 하늘이 진감하고 빛이 났다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존재 자체를 이 세계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의 몸에서는 엘하르트의 손만이 아니라 수많은 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검은 손들이 신의 팔과 다리를 붙들었다.

    신의 몸이 우그러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손을 들어 올렸다.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았지만, 손 위로 제이슨의 마음이 그려낸 검이 만들어졌다. 오러와 신력, 그 모든 것을 담은 혼신의 검.

    그걸 쥔 제이슨의 시선이 엘하르트를 비롯해 수많은 대적자가 부수고 있는 신을 바라보았다.

    신살검은 아니지만, 제이슨은 지금이라면 자신이 마음으로 날카롭게 가다듬은 이 검이 신을 벨 수 있다고 여겼다. 제이슨의 눈에 선명하게 운명의 길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운명의 길을 따라 검을 뻗으면 신만이 아니라 엘하르트도 죽는다.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제이슨!”

    엘하르트의 외침에 제이슨은 검을 쥔 손에 핏줄이 일어나도록 꽉 쥐었다.

    “베라!”

    신은 제이슨이 주저하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그래. 그대로 멈춰라. 그렇다면 이 차원만큼은 손을 대지 않겠다.”

    신은 부러지고 비틀렸던 몸을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그 강대한 신격 앞에서 제이슨은 자신이 보고 있던 운명의 길이 점점 가늘어지는 것을 보았다.

    “미안하다.”

    한마디 말과 함께 제이슨의 마음의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 펼친 그 어떤 참격보다 뛰어난 참격이 펼쳐졌다. 제이슨의 검이 그려낸 궤적으로 세상이 반으로 갈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이, 엘하르트가 있었다. 신이 입을 쩍 벌린 채 제이슨을 바라보았고,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엘하르트는 비명을 지르는 신의 입을 틀어쥔 채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엘하르트.”

    제이슨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엘하르트와 신은 갈라진 세상의 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세상이 원래 대로 돌아왔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조금 전의 일검은 제이슨이 가진 모든 것.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오러는 물론이고 신력까지 담긴 혼신의 검이었다.

    떨어지는 제이슨의 몸에는 오러 한 점 남아있지 않았다.

    점점 멀어지는 하늘. 그리고 가까워지는 지상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불쑥 그의 허리를 감싸는 손이 있었다.

    제이슨이 눈을 뜨자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뭐야? 너 왜 이래?”

    “카젠.”

    카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은? 엘하르트는?”

    제이슨은 잠시 침묵했다가 답했다.

    “죽었다.”

    “누가? 신이? 조금 전에 세상이 일그러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죽은 거야?”

    제이슨은 입술을 깨물었다.

    “둘 다 죽었다.”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바뀐 운명(2)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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