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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48화 (149/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바뀐 운명(1) >

    바뀐 운명

    엘젠트는 판톤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었다. 맹약자와 일체가 되었던 것.

    하지만 제이슨과 엘하르트는 달랐다.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못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맹약이 이뤄졌다. 그걸 깨달은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간다!”

    제이슨이 컨트롤러를 밀며 외치는 소리에 맞춰서 엘하르트가 치달렸다. 그도 지금 당장은 제이슨의 컨트롤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저 그 호흡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제이슨이 달려들자 신은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점점 거대해졌다. 마치 자신만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엘하르트와 같은 크기로 변했다.

    빛을 뿜어내는 광휘의 기간트 형상. 어쩌면 신의 진짜 모습은 저런 것이 아닐까? 다만 얼굴은 인간의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엘하르트가 가지고 있는 신살검이 가진 신살의 기운조차 신이 가진 신력에 비하면 바닷물에 바가지 하나 퍼붓는 꼴이다. 신살의 기운만으로 뭔가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가진 실력으로 승부를 본다.

    그렇게 처음 검을 뻗던 제이슨은 신이 휘두르는 신력으로 뭉친 검과 부딪치는 순간 깨달았다.

    꽈앙!

    뒤로 튕겨 날아간 제이슨은 하늘 신전의 기둥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방금 그건 뭐냐?”

    “보이기는 했냐?”

    “응.”

    “그럼 됐어.”

    운명을 결정짓는 궤적. 그걸 지우고 자신만의 승리를 결정짓기 위해 새로이 운명을 결정짓는 궤적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던 제이슨은 조금 전 압도적인 운명을 보았다.

    신도 일검에 승부를 낼 생각은 없었는지 맛보기를 보여줬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운명의 궤적. 그 굵기가 어찌나 굵은지 과연 지워질까 싶을 정도였다. 단 일검에 그런 것을 담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굉장했다.

    괜히 신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길게 숨을 토하며 말했다.

    “다시 한번 가보자.”

    제이슨이 다시 한번 달려나가며 검을 뻗었다. 신이 마주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깨달았다. 이런 압도적인 운명 앞에서 과연 자신의 능력이 통할까 의문이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엘하르트가 처음으로 개입했다.

    쩌엉!

    뻗어가던 검을 틀어서 흘려내려고 했지만, 압도적인 힘 앞에서 뒤로 튕길 뿐이었다. 뒤로 주룩 밀린 엘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알겠냐?”

    “알겠네.”

    뒤로 주룩 밀려났지만,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힘을 흘려냈다. 제이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 저런 녀석하고 싸울 생각을 했냐?”

    제이슨의 물음에 엘하르트가 미소를 지었다.

    “부조리했으니까.”

    “하긴 존재 자체가 부조리하긴 하다.”

    제이슨은 차갑게 말하고는 컨트롤러에 오러를 밀어 넣으며 힘껏 밀었다.

    “이번에는 내가!”

    제이슨은 이미 엘하르트와 하나가 된 상황. 정확히 그가 펼쳤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와의 대련을 통해서 배울 때와는 달랐다. 엘하르트가 개입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그렇게 달려든 제이슨과 엘하르트를 향해 다시 한번 신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크가가각!

    이번에는 처음으로 공격을 흘려냈다. 그러나 그 힘의 여파에 밀려 옆으로 두 걸음을 내디딘 통에 제대로 된 반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신은 씨익 웃으며 검을 돌렸다.

    쩌엉!

    아직 제대로 몸을 가누기 전에 들어온 반격에 뒤로 밀려났던 제이슨은 마음을 다스렸다. 단 한 번의 격돌이지만 적의 공격을 흘려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신은 검이 흘려내졌을 때 쏟아내던 신력을 다시 갈무리할 수 있을 정도로 신력에 대한 지배력이 강했다. 그렇지만 조금은 희망이 보였다.

    다시 한번 돌진한 제이슨은 처음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되받아치기로 날려 보냈다. 그건 신조차 놀랐던 것.

    신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딘가 흐뭇해 보였다.

    제이슨은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알았다. 지금 상황에서도 신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엘하르트가 달려나가려고 할 때 제이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유가 뭐냐?”

    신은 제이슨이 뭘 궁금해하는지 깨닫고 답해주었다.

    “아직 부족해. 더 끌어올려 봐라.”

    제이슨은 신이 자신과 엘하르트를 시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싸움을 통해서 더 실력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

    그것이 자존심을 긁었지만, 상대를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신이 품고 있는 저 끔찍할 정도로 강대한 신력을 보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근처에도 갈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제이슨이 열 받아 하는 것과 반대로 엘하르트는 침착했다.

    “저런 술수에 놀아나면 안 돼.”

    엘하르트의 목소리를 듣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이 언제든 세계의 인간을 모조리 멸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을 아는 이상 저 흥미가 떨어지기 전에 죽여야 한다.

    엘하르트와 하나가 된 지금이라면 구속은 면할 수준이 됐지만, 아직 제대로 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이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저 신을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이 그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제이슨이 컨트롤러에 오러를 주입하며 말했다.

    “다시 한번 가자.”

    제이슨과 엘하르트가 동시에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신은 전과 마찬가지고 검을 휘둘렀다. 굳이 다른 검이 필요 없다는 듯 단순하면서도 빠른 공격이었다.

    제이슨은 그걸 바라보며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러자 날아드는 검이 느리게 느껴진다.

    모든 시간이 느리게 움직인다. 신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 것을 보았을 때 제이슨은 검을 뻗었다. 신이 휘두른 검은 압도적으로 거대한 운명을 결정짓는 검이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저걸 받아내는 것만으로 끔찍한 피해를 입을 공격이었다. 그런 검이 느리게 보였다.

    그렇다면 반응할 수 있다.

    신살검이 그 궤적을 자르고 들어갔다. 신살검에 제이슨이 품은 신력을 밀어 넣었고, 처음으로 신의 검이 미끄러져 궤적이 빗나갔다.

    신살검은 신의 검을 타고 들어가 신의 가슴을 베었다. 신은 자신의 가슴이 베인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제이슨은 뒤로 물러난 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와 엘하르트가 맹약을 맺어 너의 대적자가 되는 미래를 보았다면 그 결과도 보았나?”

    신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오랜 삶에 하나의 추억이 될 운명이지.”

    무료할 정도의 강함. 전지전능한 그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무료함에 눌릴 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신에게 있어 대적자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만으로 삶에 활력소가 되고 기다림을 가지게 할 존재였다.

    엘하르트가 수천 년을 살아왔다고 했는데 그를 창조한 신은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아왔을까? 만, 십만, 백만? 그 추정조차 어려운 시간을 살아왔을 그의 삶에 한 줄기 추억이 될 거라는 말.

    제이슨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과 엘하르트가 가진 능력. 그것은 유일하게 저 신이 내린 운명을 비틀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걸 가지고 있기에 대적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아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여기는 신이었다. 가슴을 베였지만, 이미 그 상처는 회복된 상황.

    저 여유.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럼 이건 어때?”

    제이슨이 엘하르트와 완벽하게 공명하며 그의 기술을 온전히 습득하는 것처럼 조금 전 제이슨이 집중한 세계 속에서 상대가 느려지는 기이한 감각을 엘하르트도 느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

    맹약이라는 것을 만들어 자신의 대적자를 만드는 순간까지만 해도 신은 그걸 알았을까? 아니면 그것까지 계산해도 자신에게는 영겁의 시간에 추억으로 삼을 만한 것으로 여긴 걸까?

    제이슨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지웠다. 지금은 오직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상대였으니까.

    제이슨은 마음을 가다듬고 전력을 다해서 상대를 향해 돌진했다.

    신은 제이슨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 공격을 펼쳤다. 제이슨이 검을 흘려내고 반격을 가할 때 신의 왼손에는 어느새 또 다른 검이 들려 있었다.

    꽈앙!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닌 신이다. 그가 양손을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쌍검을 든 신은 제이슨을 향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전부라면 실망이군.”

    제이슨은 그 순간 알았다. 자신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았지만, 그건 신에게도 없는 능력.

    전지전능한 줄 알았던 신에게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지라고 여겼던 상대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제이슨의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한없이 0에 수렴했던 승산이 조금씩 커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거리가 좁혀졌다. 검을 차례대로 흘려내면서 제이슨은 새삼 깨달았다. 제대로 힘을 쓰는 신은 신력의 방출을 마음껏 뿌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늘 신전이 빠르게 부서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얼마 안 가 하늘 신전은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하늘에서 싸워야 할 판.

    “너 하늘은 날 수 있지?”

    “하늘에서 놈을 이길 생각은 하지 마라.”

    엘하르트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해도 신만큼 자유롭지는 않을 거라는 말.

    제이슨은 그럼 더는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신력 덩어리인 신이 과연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인간의 약점이 신에게도 약점일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머리부터.”

    마음을 다잡은 제이슨과 엘하르트는 느려진 시간 속에 검을 흘려내면서 신이 그려내는 운명의 궤적 사이로 검을 집어넣었다.

    신살검이 신의 목을 꿰뚫었다.

    신은 자신의 목을 꿰뚫은 신살검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둘의 시너지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 대가는 네 목이다.”

    제이슨이 신의 목을 잘라냈다. 떨어져 나간 신의 머리가 허공에 떠오른 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몸이 반격을 가해왔다.

    쩌저정!

    그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검을 받아냈지만, 그 대가로 하늘 신전은 박살 났다. 발 디딜 곳 하나 남지 않고 하늘 신전이 조각나 떨어져 내렸다.

    하늘 신전이 영지 위에 떠 있던 것을 생각하면 밑에 있는 이들이 걱정되었지만, 카젠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 믿었다.

    제이슨은 엘하르트가 허공에 뜬 것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목이 잘려도 안 죽네.”

    “저번보다는 나은 상황이야.”

    엘하르트는 찬탈자로서 신에 도전했고, 당시에는 이보다 더 처참하게 패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신의 목을 잘라냈지만, 아직 승산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하늘에서 싸워야 하는데 제이슨도 공중전은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그때 제이슨의 몸에서 쉐일링이 빠져나가 엘하르트의 등뒤로 움직여 날개가 되었다.

    “쉐일링?”

    굳이 말하지 않아도 쉐일링이 보조하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엘드라고와의 전투에서 함께 해 본 적이 있었기에 제이슨은 쉐일링을 믿었다.

    신은 그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허공에 떠 있는 머리를 가져와 제자리에 붙이고는 말했다.

    “그림자 일족이군. 다른 차원에서 실험체에 불과했던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나마 대접을 받는군.”

    신의 말에 제이슨은 쉐일링은 사도가 만든 것이 아님을 떠올렸다. 그렇게 몇몇 종족들은 사도들이 만든 이들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 말은 다른 곳에서 만들었던 인간과 같은 피조물. 그 피조물 중 일부를 이곳에 가져왔었다는 걸까?

    그에 대한 고민보다는 쉐일링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마음은 제이슨도 마찬가지였다. 저 잘난 체하는 신은 오늘 죽는다.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바뀐 운명(1)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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