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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46화 (147/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조우(1) >

    조우

    라마란스를 불러올 필요는 없었다. 엘드라고의 죽음으로 하늘이 노랗게 변해버렸으니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간을 열고 나타난 라마란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신력이 이렇게 세상에 깔리는 걸 보면 확실히 죽였나 본데.”

    “맞아. 죽였어.”

    담담히 답하는 제이슨의 말을 들은 라마란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저것 내가 가져도 되나?”

    제이슨은 하늘 신전이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보았다. 지금 그곳에서 일어난 충격 때문에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었다. 바다에 떨어진 통에 사방으로 해일이 밀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대로라면 대재앙이 일어날 것으로 보였다. 그런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하늘 신전을 보며 제이슨이 말했다.

    “그럼 저것들 좀 막아 봐. 가능하지?”

    “내가 저쪽을 맡지. 카젠이 반대편을 맡아라.”

    “그러지.”

    카젠과 라마란스 둘이 동시에 움직이자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이제 다 끝난 건가?”

    “너한테는.”

    “무슨 소리야?”

    엘하르트는 굳이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제이슨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퀸을 바라보았다.

    “퀸은?”

    퀸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답했다.

    “사도들이 죽었으니 다시 골렘 족을 부흥시켜야겠지.”

    “그래야겠군.”

    폴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만들어 준 기회를 잊지 않고 있었기에 제이슨은 다시 한번 그녀가 골렘 족을 만들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골렘족을 우리 영지에서 다시 부흥시키는 것은 어때? 영지에 남는 땅 많은데.”

    아무리 노른자위 땅으로만 받았다고 해도 그중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다. 골렘들이 뭘 먹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르트 공국이 가장 잘 어울릴 터였다.

    괜히 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서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다만 그 전에 대륙을 돌아다니고 싶어. 사도들 때문에 숨어 지내느라 제대로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편한대로 해.”

    퀸이 엘하르트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언제죠?”

    “곧.”

    “당신에게 무운이 있기를 바랄게요.”

    그렇게 말한 퀸이 사라졌다. 단순히 신력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력을 다룰 수 있는 그녀에게 공간 이동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용언 마법보다 더 높은 격을 지닌 신력을 이용한 마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퀸의 자리를 바라보던 제이슨은 저 멀리 퍼져나가는 해일을 잠재우는 카젠과 라마란스를 보았다. 그렇게 해일을 잠재운 그들이 돌아왔다.

    제이슨은 그런 라마란스에게 부탁했다.

    “돌아가자.”

    “나는 이곳에 남겠다.”

    제이슨이 바라보자 라마란스가 담담히 말했다.

    “하늘 신전에서는 구할 것들이 많아 보이니까.”

    “흑색 마탑은 어쩌고?”

    “그곳에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이곳과 연결할 수 있는 포탈을 만들어 두도록 하지.”

    “그럼 마음대로 해. 어차피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크기도 아니니까.”

    라마란스가 손을 내밀자 곧 그들의 앞에 공간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들어가.”

    제이슨은 군말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서 엘하르트와 카젠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흑색 마탑의 지하.

    비행정이 있는 곳이었다.

    제이슨이 나타나자 비행정에서 달려 나온 아이젠이 그를 끌어안았다. 제이슨은 아이젠을 꼭 안아주었다.

    “다 끝난 건가요?”

    “응. 다 끝났어.”

    그 말에 아이젠은 긴 숨을 토해내고는 제이슨을 꼭 끌어안았다. 둘의 사이에 낀 스노우가 힘들었는지 끼잉 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제이슨은 흘끔 그런 스노우를 보았다가 아이젠의 어깨를 끌어안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일이 끝났으니 더는 카젠이 자신과 함께 있을 필요가 없었다.

    “카젠.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카젠은 잠시 생각해 보는가 싶더니 말했다.

    “대륙을 정복할 마음도 없고, 느긋하게 이곳에서 식객으로 지내고 싶은데?”

    카젠이 작정하고 나선다고 해도 제이슨 혼자서도 그를 막을 수 있으니 대륙 정복은 불가능한 일이다. 카젠도 그걸 알았기에 농담처럼 얘기를 꺼낸 것.

    제이슨은 그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렇게 해.”

    제이슨은 비행정에서 뒤늦게 나온 펠릭스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아이젠을 지켜주었던 그는 마스터가 되었지만, 지금까지처럼 스노우 기사단장으로 지낼 터.

    제이슨은 그래도 혹시 몰라 펠릭스에게 물었다.

    “사도와의 전쟁이 끝났습니다. 원하신다면 나가서 새로운 공국을 만드셔도 좋습니다.”

    펠릭스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앞으로 스노우 기사단이 이곳저곳 많이 불려 다닐 텐데. 제대로 도움이 되려면 내가 남아있어야지.”

    이제 남은 마스터는 수호의 검 하나뿐. 마스터인 펠릭스가 참전했을 때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없다.

    제국과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제이슨은 쉐일링을 내려다보았지만, 그는 별다른 뜻을 내비치지 않았다. 제이슨은 더는 따지지 않고 엘하르트에게 시선을 주었다.

    인간 형태로 돌아온 엘하르트는 마지막 봉인을 풀었다고 하더니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묵묵히 제이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분간 찾지 마라. 전성기 시절의 힘을 되찾으려면 훈련해야 되니까.”

    “그렇게 해.”

    제이슨은 지금까지 앓던 이처럼 여기던 12사도가 모두 죽은 지금 만족했다. 흑색 마탑을 아이젠과 함께 나온 제이슨은 노랗게 물든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곧 괜찮아지겠지?”

    “그럼요. 그래도 노란 하늘이라니 뭔가 상큼하네요.”

    제이슨은 그 말에 키득거리고는 아이젠을 안은 팔에 힘을 주어 꼭 끌어안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신성 교국의 인물들은 모두 신성력을 잃었다. 그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의견을 교환했고, 그중에는 신이 죽은 것 아이냐는 말도 있었다.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도들은 실제로 인간을 창조한 이들이었으니까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창조주를 잃은 셈이었다. 특히나 신성 교국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들은 하늘이 노했다고 표현했는데 제이슨도 그 말에는 공감했다. 금세 바뀔 거라고 여겼던 하늘은 한 달이 지나도록 노란색이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아이젠을 돌보며 지내는 사이에 트랑 왕국은 무섭도록 주변 왕국들을 쓸어담았다. 신성력이 사라진 신성 교국이 가장 먼저 제국에 복속된 뒤로 칠왕국 연합을 비롯해 패전국들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시작되었다.

    트랑 왕국이 스스로 제국이라는 이름을 달았고, 펠레드 황제가 그걸 인정해 줬다.

    트랑 제국의 카이트 국왕은 스스로 황제 즉위식을 치렀다. 즉위식에 참석한 제이슨은 오랜만에 펠레드 황제를 만날 수 있었다.

    대륙에 두 개의 제국이 함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신성 교국이 그나마 제국에 버금가는 전력을 지녔었지만, 실제로 제국으로 부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신성 교국이 지고 트랑 제국이 새롭게 생겼다.

    “요즘 통 안 보이던데. 공식 석상에는 안 나설 생각인가?”

    펠레드의 물음에 제이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굳이 제가 나서야 할 만한 일도 없고요.”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자네 말이니 수긍이 가는군.”

    펠레드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저히 못 당하겠다고 하더라고.”

    펠레드의 뒤에 서 있던 샤이드 대공이 미소를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제이슨은 샤이드 대공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자신이 없었다면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름을 그가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성장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그 수준을 측량하기 힘든 수준까지 올랐다. 운명을 고쳐 쓰는 수준은 고금을 통틀어 찬탈자가 유일했으니까.

    수호의 검은 에고 기간트를 잘만 고쳐 쓰면 엘젠트와도 견줄 수 있으리라. 그가 신력을 다루지 않을 때는.

    그만큼이나 강해진 샤이드 대공이었지만, 그랬기에 제이슨의 경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자네의 실력을 보면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기를 잘했군.”

    펠레드는 제이슨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런데 걱정되겠군.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나서는 가지고 있던 포션마저 모두 쓸모가 없어졌어. 산모 걱정이 크겠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이미 퀸의 축복을 받은 상황. 사도들이 사라진 지금 유일하게 신력을 다룰 수 있는 퀸이 내린 축복이 있으니 누구보다 건강하게 태어날 터였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카이트 황제가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펠레드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황제의 이름에 걸맞은 위엄을 갖췄군.”

    “이렇게 축하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이트 황제는 이전 국왕 때와는 느낌이 달라졌다. 지금 다스리고 있는 영토의 넓이도 넓이였지만, 그 짧은 시간 전쟁을 거듭하면서 영토확장을 해왔던 그는 정복왕의 분위기를 풍겼다.

    연륜은 부족했지만, 정말로 그는 이제 황제에 걸맞은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좋아.”

    “좋은 충고 감사드립니다.”

    제국이 제국을 견제하지 않는다. 서로 대륙을 나눠 먹기로 했으니 서로 충고도 해준다. 지금까지 제국이 대륙을 집어삼키지 않았던 것은 신성 교국의 견제가 있었지만, 이제 그것이 없어진 상황.

    카이트 황제는 굳이 전쟁을 벌이지 않고 모든 왕국이 알아서 항복하기를 바라고 압박을 가했지만, 그들은 지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제국이 트랑 왕국의 횡포를 막아줄 거라고.

    그들이 마스터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그것만 가지고 굴복하기에는 트랑 왕국은 급격하게 세를 키운 덕분에 아직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왕국들에게 조급하게 노리지 말고 차라리 시간을 들여 국력을 키우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카이트 황제는 순순히 그걸 인정했다.

    길어야 3년. 그 정도면 전쟁으로 얻은 것들을 소화하고 제대로 된 군사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마스터가 없어도 감히 전쟁을 치를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황제의 즉위식에서 간단히 인사를 마치고 돌아간 제이슨은 영지로 돌아온 라마란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지은 채 제이슨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자.”

    “어디를?”

    라마란스는 씨익 웃고는 제이슨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공간이 변하더니 제이슨은 자신이 도착한 곳이 어딘지 알았다.

    “이건?”

    “맞아. 하늘 신전이다. 반쪽으로 잘려나가서 반만 건질 수 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이걸로 뭘 할 생각인데?”

    제이슨은 하늘 신전의 가장자리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구름 아래로 보이는 것은 하르트 공국의 영지였다. 영지 위로 뛰어놓은 하늘 신전.

    너무 높은 곳에 있어 그림자조차 드리워지지 않았다.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돌아보았다.

    “다른 건 뭐 건진 것이 있어?”

    “이곳에서 사도들의 시체를 건졌지. 그래서 말인데 하늘을 원래 색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이 있다.”

    “어떻게?”

    “흩어진 신력을 끌어모으면 돼. 마침 이곳에 있는 사도들의 시체를 이용하면 방법이 있을 것 같더군.”

    “그거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말인데?”

    “엘드라고가 하던 일을 내가 할 수 있지.”

    제이슨은 라마란스의 귀광이 번뜩이는 두 눈을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그런 라마란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신 차려.”

    “왜?”

    “또 다른 엘드라고를 만들 것 같아?”

    제이슨이 검을 쥐며 말했다.

    “그러니 허튼 생각 하지 마.”

    라마란스는 그 말에 가만히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라마란스의 푸른 귀광이 번뜩이는 눈을 바라보던 제이슨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잠깐. 너 누구냐?”

    라마란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용케 알아 보내?”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조우(1)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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