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승리?(3) >
신벌의 빛을 가르면서 제이슨은 떠올렸다. 지금 자신이 보는 풍경. 이 풍경이 어쩐지 기억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이의 기억을 읽은 것처럼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제이슨은 그 빛을 모조리 가르고는 상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당황한 눈빛의 엘드라고. 그가 공간 이동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그의 뒤에 나타난 것은 폴이었다. 신벌에 맞고 튕겨 나갔던 그가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 그를 끌어안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전해진다. 자신과 함께 엘드라고를 꿰뚫으라는 뜻이.
제이슨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사고의 속도는 그보다 빠르다. 잠깐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그 모든 마음의 뜻이 전해진다.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닿기도 전에 엘드라고와 거리가 좁혀졌다.
제이슨의 신살검이 그대로 엘드라고와 폴을 관통했다. 폴의 몸을 감싸고 있는 퀸의 축복을 보면 무사할까 싶었지만, 신살검의 위력을 아는 제이슨은 그가 살아남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엘하르트 없이 그를 상대하는 것은 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폴의 각오를 읽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엘드라고의 가슴에 신살검을 박아넣은 제이슨이 엘드라고와 눈을 마주쳤다. 엘드라고의 눈에 깃든 것은 지독한 살기였다.
신이 살심을 품으면 어떻게 될까?
쩌엉!
제이슨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으스러지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튕겨 나간 제이슨은 바닥을 굴렀다. 신살검을 가슴에 꽂은 채 엘드라고가 손을 뒤로 돌려 폴의 목을 쳐냈다.
폴의 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신살검을 부르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검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러기 위해서였다는 듯 엘드라고의 가슴 속으로 녹아들었다.
엘드라고도 뽑아내려던 신살검이 자신의 가슴 속으로 녹아들자 인상을 굳혔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다.
신살의 기운이 대단하다고 하나 이 정도로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쑤셔 넣고는 코어를 뜯어내 바닥에 던졌다.
에고 기간트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이미 신력으로 몸이 이뤄진 엘드라고는 상관없었다. 다만 신살검이 녹아든 부위가 상당히 위험한 부위였다.
뽑아냈다고 하나 신력의 가장 큰 부위를 잃었다. 그건 12사도의 힘을 온전히 자신이 가지기 전이었다면 굉장히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신이 신력으로 이뤄진 영체. 지금 보이는 외형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러니 이만큼 신력을 도려낸다고 해도 전체의 신력이 줄어드는 것은 잠시일 뿐이다.
12사도 모두의 힘을 모았을 때 완전해진 자신에게는 부릴 수 있는 기술의 횟수가 줄어들 뿐, 신력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자신을 따르던 사도들을 처리하고 그 힘으로 얻은 신력을 이용해 미래 예지를 펼쳤다. 그렇게 하나씩 맞춰 놓은 길.
변수가 되는 엘하르트와 그 맹약자 때문에 이렇게 귀찮게 일이 진행되었지만 상관없었다. 엘하르트를 보낸 지금 저 맹약자를 죽인다.
단순히 살심을 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죽인다.
엘드라고가 손짓하자 그의 주위에서 수많은 빛의 줄기가 일어나 그의 몸을 휘감았다. 빛의 갑옷을 두른 엘드라고의 시선이 제이슨과 다른 이들을 향했다.
퀸을 가장 먼저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신살검이 사라진 지금이라면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엘드라고가 퀸을 향해 신벌의 창을 날렸다. 그렇게 날아간 신벌의 창은 퀸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카젠이 앞으로 나와 막으면서 전신에서 노란 전격이 튀었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는 카젠의 몸에 박힌 신벌의 창을 향해 손을 내밀자 신벌의 창이 돌아와 엘드라고의 손에 잡혔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심장에서 왈칵 피를 쏟은 카젠을 퀸이 끌어안은 채 축복을 내렸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제이슨은 그런 상황을 보고는 이를 뿌득 갈았다. 폴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벌였던 일이었다. 그런데 신살검이 박혔던 엘드라고는 그것을 뽑아냈지만, 별다른 피해는 없어 보였다.
코어를 뽑아냈지만, 막상 그의 격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제이슨은 카젠을 감싼 퀸을 향해 신벌의 창을 던지려는 엘드라고를 보며 소리쳤다.
“엘하르트!”
제이슨의 외침에 엘드라고가 신벌의 창을 던지는 대신 고개를 돌려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엘하르트가 나타난 것인가 의문을 가지고 고개를 돌렸던 엘드라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맹약자라고 하나 네 부름을 듣고 올 만큼 가까운 곳으로 보내지 않았다.”
제이슨은 그 말을 무시했다. 자신과 하나가 되었다고 떠들었던 엘하르트라면. 그라면 지금 자신의 부름에 응답하리라 믿었다.
“엘하르트!”
엘드라고는 가볍게 혀를 찼다. 신살검을 잃어 별것도 아니라고 여겼는데 저리 애타게 엘하르트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괜히 짜증이 일었다.
“네 차례는 지금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죽고 싶다면 먼저 보내주마.”
엘드라고는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신벌의 창을 던졌다. 제이슨은 그걸 보면서 이를 뿌득 갈았다. 벼락처럼 빠르게 날아왔지만, 어쩐지 느릿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조금 전 폴의 희생을 통해서 신살검을 꽂아 넣었을 때 느꼈던 시간이 느려지는 기묘한 감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내 맹약자라고 했잖아!”
그렇게 외친 제이슨은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자신의 할 말을 외쳤다. 아마 다른 이들의 귀에는 한 번에 외치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몰랐다.
“돌아와라! 엘하르트!”
제이슨의 외침이 시간의 흐름조차 비켜내며 울렸고, 그 울림에 엘드라고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을 때 제이슨의 앞 공간이 찢어졌다.
콰앙!
날아들던 신벌의 창이 박살 났다. 그리고 제이슨의 앞에 엘하르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핏물을 뒤집어쓴 채 나타났다.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앞에 서서 키득거렸다.
“와 씨. 그렇다고 음차원에 던져 놓다니.”
서늘한 시선으로 엘드라고를 쏘아본 엘하르트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덕분에 마지막 봉인을 풀었다.”
그 말에 엘드라고의 표정이 굳어졌다. 음차원에는 온갖 괴수들이 산다. 그 괴수 중에는 엘드라고조차 손을 대지 못할 괴물들이 있어 그리로 보내놨는데 무사히 돌아왔다.
“용케도 살아 돌아왔군.”
엘드라고의 신살검은 갈 때와 달라져 있었다. 뭔가 다른 것이 묻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뭔가 그 느낌도 달라져 있었다.
엘하르트는 제이슨을 등진 채 말했다.
“용케 살아남았구나.”
“죽는 줄 알았다.”
“살았으면 됐다.”
엘하르트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두 발로 굳건히 바닥을 딛고 섰다. 아무리 힘들어도 엘하르트의 싸움은 보고 싶었다.
엘하르트가 달려들자 엘드라고가 다급하게 신벌을 쏟아냈다. 그런데 엘하르트의 신살검이 그 신벌을 그대로 받아냈다.
되받아치기도 아니고 그저 신살검에 신벌을 머물게 한다. 그건 신검이나 가능했던 일.
제이슨이 놀라 바라보는 사이에 엘하르트는 신벌을 신살검에 머금고 그대로 돌진했다. 그 빠르기에 엘드라고가 인상을 굳히며 공간 이동을 했다.
그때 엘하르트의 몸이 사라졌다. 갑자기 사라진 그의 몸이 나타난 것은 엘드라고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였다. 그리고 그대로 엘하르트의 검이 엘드라고의 가슴을 뚫었다.
이미 제이슨이 신살검으로 뚫었던 곳.
엘드라고는 그 정도로 죽이지 못한다. 적어도 그렇게 알았다.
“크악!”
엘드라고의 처절한 비명에 엘하르트가 신검을 비틀어 뽑아냈다. 엘드라고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집어 넣을 때 엘하르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엘드라고가 신살의 기운을 뽑아내는 것을 보고 엘하르트가 신살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역시 가짜는 가짜군.”
“무슨 소리냐!”
12사도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아 신격을 이뤘다고 여긴 엘드라고는 그 말을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하르트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모든 봉인을 풀었다고 해도 신은 감당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너는 한없이 약해 보이는군.”
“감히!”
엘드라고가 손을 내밀자 엘하르트의 주위가 일렁였다. 엘하르트는 피식 웃고는 신살검을 휘둘러 그 일렁임을 베었다. 엘하르트는 엘드라고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멍청하군. 네가 보낸 차원을 찢고 나온 것을 보지 못했나?”
“하, 하지만···.”
“이곳과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더군. 그래서 개고생했어.”
짧게 말을 한 엘하르트는 흐릿해지는 엘드라고를 향해 검을 베었다.
그러자 저 멀리 나타난 엘드라고가 신음을 토했다.
“크윽!”
그의 다리가 두 개다 잘려나갔다. 엘하르트는 느긋하게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어서라도 도망갈 건가?”
엘드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공간 이동하는 것보다 빠르게 엘하르트의 검이 날아들었다. 그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엘드라고는 이를 뿌득 갈고는 두 손을 모았다.
자신은 지금 창조의 힘마저 가지고 있다. 신의 힘을 손에 넣고 신격마저 얻은 상태로 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엘드라고가 두 손을 모으자 하늘 신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가 가볍게 혀를 찼다.
하늘 신전이 마치 원래 그러려고 그런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괴물처럼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엘하르트가 검을 높이 들었다가 내리쳤다.
엘하르트가 날린 참격은 제이슨의 것을 뛰어넘었다. 그들이 딛고 있던 하늘 신전이 그대로 조각났다. 하늘 신전의 크기가 어지간한 성의 크기만 한 것을 생각하면 엘하르트의 참격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반으로 잘린 하늘 신전에서 떨어지는 지금 상황이었다. 엘하르트와 엘드라고는 하늘에 떠서 서로 싸우고 있었지만, 제이슨은 하늘을 날지 못한다.
떨어지던 제이슨의 곁으로 퀸이 다가와 안아주었다. 그녀의 품에는 카젠이 빈사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고마워.”
“고맙기는. 이제는 축복도 못 거는 데.”
“그럼 카젠은?”
“위독해.”
신벌의 창에 맞은 카젠의 안색은 말 그대로 다 죽어가는 얼굴이었다. 제이슨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엘드라고의 노란 신격과 신살검의 검은 기운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 날 수 있어?”
“아니.”
퀸은 그리 말하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빠르게 다가오는 지상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바닥에 닿기 전에 공간 이동할 힘을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제이슨은 아찔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신화와 같은 치열한 싸움을 바라보았다.
“엘하르트! 죽여 버려!”
제이슨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빛이 노란빛을 찢어 발겼다.
처절한 비명이 들리는가 싶더니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 그것은 엘드라고가 모았던 강대한 신력이 흩어지는 모습.
그걸 보고 퀸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노란빛이 모여들었다. 퀸은 미소를 짓고는 활짝 날개를 펼쳤다. 빛의 날개를 만든 그녀가 제이슨을 품에 안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노란색 하늘을 등지고 내려오는 엘하르트가 보였다.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앞에 와서는 말했다.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도 죽일 생각이었어.”
신격을 지닌 엘드라고를 죽이고도 여상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제이슨은 활짝 웃었다. 지금까지 그들을 괴롭히던 자가 드디어 죽었다.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승리?(3) > 끝
ⓒ 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