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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39화 (140/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비행정(2) >

    제국의 칸트 공작이 찾아왔고, 불가침 조약은 어렵지 않게 맺어졌다. 카이트 국왕도 오직 제이슨에게 의지해서만 전쟁의 승리를 얻어왔기에 제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은 대공으로 그의 공국이 따로 있다. 사사로이 그를 불러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만 했는데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 기대지 않고 트랑 왕국이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지금은 내실을 다져야 할 때.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다른 왕국을 집어삼키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오히려 제국의 도움을 끌어냈다. 신성 교국을 넘겨 줄 테니 기간트 공방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달라고 전했다. 이미 영지가 몇 배나 커진 트랑 왕국은 영지 내의 기간트 공방들만 꾸준히 돌려도 몇 년 안에 충분히 급성장할 수 있지만,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펠레드 황제가 노렸던 신성 교국을 넘기고 그들의 지원까지 끌어내는 것이 좋았다.

    대륙을 양분하는 계획.

    카이트 국왕이 내놓은 의견에 칸트 공작은 자신이 전권을 받아왔음에도 잠시 주춤했다. 어차피 불가침 조약을 맺으면 신성 교국을 침략할 생각이었다.

    이미 그들의 국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이라 얼마든지 손에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이트 국왕이 그걸 조건으로 내건 이상 상황이 달라졌다.

    “뭘 원하십니까?”

    “이번에 성전에 합류한 다른 왕국들을 손에 넣을 생각이오.”

    칸트 공작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가만둬도 결국 카이트 국왕의 손에 들어갈 곳들이었다.

    카이트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대륙에 또 하나의 제국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농담처럼 들었었는데 본격적으로 비행정을 제작하면서 들어가는 골드가 천문학적이었다. 제이슨이 가지고 있던 아공간이 텅텅 빈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구했던 고대 던전들의 물건들도 암시장에 처분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히어로급 기간트에나 들어갈 코어가 무려 64개가 필요했다. 8개의 코어를 하나로 만들어서 도합 여덟 곳에 배치한다.

    그건 단순히 코어뿐이었고, 기타 들어가는 재료까지 더하니 제이슨이 전장에서 얻었던 것들이 다 필요할 정도였다. 그렇게 제이슨이 탈탈 털어 준 결과 흑색 마탑에서는 빠르게 비행정의 제작에 들어갔다.

    고대 던전에서 나왔던 설계도가 아니라 그보다 더 뛰어난 성능의 물건을 만든다고 했다. 퀸까지 가세해서 만드는 것을 보니 뭔가 물건이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이슨은 엘파이트에 올라 엘하르트와 마주 섰다. 엘하르트와 신살검을 이용한 대련으로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신력이 증가하면서 엘하르트의 봉인도 풀리고 있었기 때문에 멈출 수 없는 대련이었다.

    제이슨과 엘하르트의 대련은 보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다 보니 카젠과 폴, 펠릭스도 나와서 그 대련을 지켜본다. 카젠은 돼지 등갈비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뭐가 좀 보이냐?”

    폴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카젠은 슬쩍 펠릭스를 보았다. 오러 유저로 이곳에 낄만한 재목이 안 된다고 여겼지만, 제이슨은 그에게도 와서 보라고 했다.

    어쩌다 한 가닥 기연이라도 얻게 되면 그것만으로 마스터가 될 수도 있는 대련이었다.

    그런데 펠릭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게 안 보인다는 건가?”

    그 말에 이건 또 무슨 미친 소린가 싶어서 바라보는 카젠과 폴의 시선에 펠릭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펠릭스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제이슨과 엘하르트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펠릭스를 바라보던 카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카젠이 뭔가를 얻고 있다는 것에 괜히 질투가 일었다.

    “폴. 진짜일까?”

    [진짜인 것 같군.]

    그들의 눈에 펠릭스의 변화가 느껴졌다. 그가 성장하는 것이 보였다.

    “흥. 그래 봤자 도움은 안 돼.”

    [모를 일이지. 저들의 경지는 나조차 짐작 못 하는 수준이니까.]

    단순히 마스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고대 마스터의 수준을 넘어서 찬탈자의 수준에 다가가고 있었다. 상대와의 대결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운명의 검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수준.

    그것은 운명을 스스로 결정짓는 수준으로 고대의 마스터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다.

    오직 찬탈자만이 도달했던 경지. 그런 그도 신을 이기지 못했었기에 봉인이 되었었는데 지금 그런 수준의 인물 둘이서 대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고 배울 것이 있다고 한다면 펠릭스는 일반적인 마스터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될 터였다.

    그래서 폴과 카젠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둘의 대련이 끝나고 제이슨이 바닥에 쓰러져 헉헉거릴 때 엘하르트가 그를 붙잡고 일으켰다.

    “많이 늘었군.”

    “그럼 뭐해. 도저히 못 이기겠는데.”

    “겁도 없군. 네가 날 이길 날은 오지 않아.”

    제이슨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펠릭스가 다가왔다.

    “부탁이 있네.”

    제이슨이 돌아보자 펠릭스가 자신의 도끼를 꺼내며 말했다.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아. 붙어보자.”

    자신들의 대련을 살펴보라고 한 것은 요행으로라도 뭔가를 얻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뭔가를 얻었다고 하니 신기했다.

    제이슨이 검을 들며 말했다.

    “대련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펠릭스에게 당했던 것에 대한 분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뒤끝이 있었나 싶었지만, 제이슨은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제이슨은 펠릭스가 휘두르는 공격을 보고 잠시 멍하니 그걸 바라보았다.

    혹시나 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보는데 다시 한번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펠릭스가 어렴풋하게 운명의 길을 본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지금 제이슨과 펠릭스의 실력 차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운명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한 격차가 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운명의 길을 스스로 찾아낸 것을 보면 그의 재능이 벽을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제이슨은 그걸 깨닫자 펠릭스의 도끼를 이끌었다. 마치 엘하르트가 자신을 이끌었던 것처럼. 지도 대련이 되어갔다.

    언제나 갈구기만 하던 것과 다르게 세심하게 그의 길을 이끌어 주다 보니 펠릭스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하르트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카젠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게 저리 쉽게 배울 수 있는 거야?”

    “아니. 펠릭스는 그간 수많은 전장을 오가며 스스로 토대를 쌓았다. 그것에 나와 제이슨의 대련을 보면서 그 일부를 엿본 거겠지.”

    “그래서 고대 마스터 수준까지는 오르겠다는 건가?”

    “그래.”

    “그럼 에고 기간트를 내주면 단숨에 마스터가 되겠군.”

    “맞아.”

    제이슨은 펠릭스의 한계까지 그를 끌어올렸고, 펠릭스는 마지막 도끼질을 끝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헐떡이는 그를 바라보며 제이슨은 손을 내밀었다.

    “처음이 어렵지 다음부터는 쉬울 겁니다.”

    펠릭스는 제이슨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자네가 보는 세상인가?”

    “아뇨. 저는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있죠.”

    펠릭스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동안 그를 이끌어 줬던 것은 제이슨이었다. 그런 지도 대련을 했다는 것만으로 제이슨이 지금 자신이 비벼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를 탈탈 털면서도 에고 기간트 한 기를 팔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뇌속의 창이 탔던 에고 기간트.

    에고 기간트 수준으로 올라가면 타입을 가리지 않는다. 그걸 탈 정도의 수준에 다다랐느냐 아니냐만 중요할 뿐.

    제이슨은 퀸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해서 기간트의 성능을 끌어올려 줄 생각이었다. 자신처럼 극적인 성장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다른 에고 기간트보다 성능은 좋아질 수 있었다.

    제이슨은 펠릭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스노우 기사단장이 마스터는 되어야죠.”

    “마스터가 되어도 스노우 기사단장이라는 건가?”

    “그럼 나가시려고요?”

    펠릭스는 그 말에 픽 웃음을 흘렸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마스터라고 해서 이들 중 누구 하나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니 마스터가 되었다고 해서 굳이 이곳을 박차고 나갈 필요는 없었다.

    펠릭스는 제이슨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알려줘도 될 때가 된 거 아닌가?”

    “뭘 말이죠?”

    “이만한 이들이 모여서 싸우려는 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제이슨은 그 말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인외의 존재들이 모여 있는 곳. 이들이 상대하려는 것은 신이 되어버린 사도들이었다.

    “사도와 싸우는 중이에요.”

    “사도?”

    제이슨은 펠릭스의 팔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말했다.

    “꽤 긴 이야기니까 술이나 한잔하면서 얘기하죠.”

    사도들은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마치 뭔가 준비라도 하려는 것인지 아무것도 없는 동안 이쪽에서도 준비가 끝나갔다.

    제이슨은 흑색 마탑의 지하에 있는 거대한 공동에서 눈앞에 있는 거체를 보았다. 길이만 200미터가 넘었고, 높이는 30미터 폭은 100미터나 되는 거체였다.

    “이게 뜬다고?”

    “그래. 마법의 힘이지.”

    마법 공학의 결정체가 기간트라고 여겨왔던 시절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물건을 만들었다. 제이슨이 중얼거렸다.

    “우리 인원이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크게 만든 거야?”

    사도와의 싸움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 안 된다. 제이슨과 엘하르트, 라마란스와 카젠, 퀸과 폴, 펠릭스 정도가 전부다. 그 정도 인원이 타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물건이었다.

    라마란스는 담담히 답했다.

    “저거 사실 탈 수 있는 공간은 넓지 않아. 대부분은 이동에 쓰이고 무기도 탑재하느라 여유 공간이 많지 않았거든.”

    “이거 얼마나 오랫동안 뜰 수 있어?”

    “무한.”

    “응?”

    제이슨이 돌아보자 라마란스는 담담히 말했다.

    “코어 순환을 통해서 무한동력을 만들었어. 떠 있는 것은 무한히 떠 있을 수 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물건이었다. 제이슨이 다가가 바라보자 퀸이 다가왔다.

    “잠깐 나와봐요. 축복을 내려야 하니까.”

    제이슨은 그 말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퀸이 다가가 손을 내밀어 비행정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비행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행정 위로 나타나는 고대 룬어들이 아름답게 빛나다가 사라졌다. 외형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제이슨은 퀸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축복을 내린 거예요.”

    “내 신력을 조금 나눠줬어.”

    라마란스는 퀸을 지나쳐 비행정에 손을 올리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미쳤군. 이러면 내가 공들여 만든 게 뭐가 되나?”

    엘하르트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그렇게 고생해서 만들어 줬으니 이 정도로 성능이 향상된 거다. 자신감을 가져.”

    라마란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거라면 이제부터 추적이 가능할 거야. 비행정만 만든 것이 아니라 퀸의 신력을 이용해서 신력을 탐색할 방법을 알아냈다.”

    “진짜?”

    엘하르트도 놀라서 바라보자 라마란스의 눈에서 귀광이 번뜩였다.

    “뭐 신력이라는 것이 워낙 여러 가지 방향성이 있어서 숨기고자 한다면 숨길 수 있겠지만, 놈들도 이 정도로 광범위한 탐색이 가능할 줄은 몰랐을 거야. 게다가 엘하르트. 네가 그 탐색기를 사용하면 찾을 수 있을 거다.”

    엘하르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이 잔챙이들을 처리하러 가자.”

    엘하르트. 그의 봉인도 이제 단 하나 남았다.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비행정(2)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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