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38화 (139/151)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비행정(1) >

비행정

최초로 성전에서 신성 교국이 패했다. 단순히 패한 것이 아니라 신처럼 굴던 성녀가 죽었고, 교황 발데르크가 항복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신이 죽는 것 같은 참담함에 무릎을 꿇었다. 신을 믿는 자들은 그날 그렇게 패했다.

그리고 제이슨은 그랜드 마스터만이 아니라 이번에 신살자라는 별칭을 새로 얻었다. 신성 교국의 항복을 얻어낸 것은 물론이고 그날 평원에 있던 자들 모두가 신은 죽었다고 여길 만큼 충격적인 실력을 선보였다.

게다가 뇌속의 창까지 죽였고, 묵룡검이라고 부른 마스터도 죽였다.

홀로 전장을 끝낼 수 있었던 제이슨을 더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어서 그에게 신살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성전을 이기고 돌아오는 제이슨에 대해 보고하는 칸트 공작을 바라보던 펠레드가 고개를 돌려 수호검 샤이드 대공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뭘 말입니까?”

“성녀가 신처럼 신벌을 떨어트리고 전장을 주물럭거렸다고 하잖아.”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제이슨이라면 충분히 쓰러트렸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그렇겠지.”

펠레드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어떻게 이길 수 있겠나?”

샤이드 대공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은 분명 몸이 회복되면서 어떤 벽을 넘었다. 제이슨이 없었다고 한다면 자신이 그랜드 마스터라는 칭호를 받아도 될 것 같았다.

벽을 넘기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자신이라고 해도 전쟁을 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자신은 지금도 신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제이슨은 그 신벌을 베어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 자신은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없습니다.”

“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이야.”

펠레드 황제는 지금 트랑 왕국을 견제하고 있었다. 샤이드 대공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과연 그럴까요? 트랑 왕국에서는 이번에 신성 교국의 인원 중 7할이 넘는 인원을 며칠 만에 죽인 흑마법사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 전장에서 나타난 20미터짜리 골렘, 그리고 용마인. 그들을 생각하면 저희의 전력이 압도적이라는 말은 못할 겁니다.”

펠레드의 시선이 칸트 공작을 향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분석가의 말을 빌리자면 성녀가 죽으면서 항복했지만, 항복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합군은 패했을 거라고 합니다.”

“그 정도인가?”

“예.”

한숨을 내쉰 펠레드가 칸트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사절로 자네가 직접 다녀오게. 그리고 불가침 조약을 맺어 오게.”

“제국과 트랑 왕국이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되면 우리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손을 댈 수 없습니다.”

“그건 맞아. 그래서 말인데.”

펠레드가 샤이드 대공을 돌아보았다.

“성전이 끝났지만, 아직 신성 교국이 트랑 왕국의 손에 들어간 건 아냐. 우리가 신성 교국을 먹도록 하지.”

“나머지는 모두 내주는 것입니까?”

“카이트 국왕의 욕심을 생각한다면 그는 충분히 7왕국 연합과 패전국들을 흡수할 거야. 그중 가장 큰 파이인 신성 교국을 우리가 가져야 하지 않겠나?”

“그럼 또 하나의 제국이 되는 겁니다.”

“인정해야지. 어쩌겠어?”

펠레드의 시선이 칸트 공작을 향했다.

“자네 역할이 그래서 중요해. 알지?”

“카이트 국왕도 마다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이슨 대공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저희와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잘하고 와. 전권을 위임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칸트 공작을 내보낸 펠레드 대공이 긴 한숨을 토했다.

“정말이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처음 제이슨을 만났을 때는 흔한 오러 유저일 뿐이었다. 샤이드 대공이 조금 특별하다고 했지만, 그래 봤자 오러 유저였는데 이제는 마스터도 죽이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영지로 돌아온 제이슨은 엘하르트를 만날 수 있었다. 뚱한 표정의 그를 보고 제이슨이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미치겠군. 사도가 열이 모이니 내가 그 흔적을 쫓아갔을 때 이미 모두 도망친 후였다.”

“네가 못 쫓은 거야?”

엘하르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열 명이 모였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신력으로 나와 싸우지는 못하지만 도망가는 건 가능하더군.”

“추적 방법은 없는 거야?”

엘하르트의 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력으로 흔적을 지우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어.”

담담히 말한 엘하르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엘렌을 죽였다는 것이 다행이군.”

“신살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야.”

제이슨은 자신이 기간트에 탈 때는 격이 더 높아짐을 알았다. 그런데도 상대를 죽이는 데는 신살검이 필요했다. 신살검이 없으면 신력을 쓰는 사도를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리라.

제이슨이 작아진 신살검을 뽑아들고 엘하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찾아간 곳. 하늘이지?”

“어떻게 알았냐?”

“느낌이 그랬어. 그래서 비행정을 만들 생각이야.”

“비행정?”

“라마란스라면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엘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것은 없지. 그보다 비행정을 만든다고 놈들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그렇겠지.”

제이슨이 고민할 때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 퀸은 그들에게로 다가와서는 말했다.

“그건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엘하르트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어떻게?”

“비행정을 만든다면 제가 축복을 내려주죠. 그리고 저도 도움을 준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퀸의 축복이라면 도움은 될 테지만 모르겠군. 놈들을 찾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퀸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답했다.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퀸은 신력을 다룰 수 있는 여인. 그녀의 말을 들은 엘하르트가 씨익 웃었다.

“좋아. 믿어보지.”

엘하르트의 시선이 라마란스를 향했다.

“비행정 성공해야 할 거다.”

“해보도록 하지.”

라마란스는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다만 많은 골드가 들 거야. 아주 많은 골드가.”

제이슨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골드라면 걱정하지 마.”

대공이 되고 공국의 주인이 되었다. 공국에서 세금을 면제해준다고 하지만 지금 가진 골드도 넘치도록 많았다. 게다가 전장에서 얻은 기간트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번에는 뇌속의 창이 가지고 있던 에고 기간트까지 손에 넣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고도 에고 기간트가 없는 이들이라면 그걸 천금을 주고라도 사려고 할 터.

골드는 걱정이 없었다.

라마란스는 그 말에 씨익 웃었다.

“그런 자세 좋아.”

그리고 라마란스는 공국의 재정이 휘청일 정도로 많은 골드를 요구했다.

엘드라고는 멍하니 앉아 있는 판톤을 내려다보았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판톤이 고개를 돌려 엘드라고를 바라보았다. 엘드라고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엘렌이 너를 보내주지 않았다면 너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다.”

“그랬겠지. 어쩌면 그래야 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아.”

엘드라고는 인간의 형태로 변해 판톤의 앞에 섰다.

“판톤. 너는 최초로 사도와 맹약을 맺은 인간이다. 그리고 엘렌은 사도로 태어나 처음으로 희생했다.”

판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희생. 목숨을 걸고 다른 이를 살리는 고귀한 행동. 엘렌이 자신에게 그렇게까지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엘드라고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너를 원망했다.”

판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엘드라고는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들어보였다. 그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건 분명 신력이었다.

“사도가 처음으로 한 명이 줄었다. 그런데 우리가 가졌던 신력은 오히려 늘어났어.”

“무슨 뜻이지?”

“희생이라는 것. 맹약자를 대신해 죽는다는 것. 그것이 뭔가 작용한 것 같더군. 그래서인지 아직 사도가 부족한 데도 전보다 더 강한 신력을 부릴 수 있다.”

판톤이 인상을 와락 구기고는 엘드라고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넌 엘렌의 죽음을 고작 신력을 키우는 데 쓰고 있는 건가?”

엘드라고는 손을 올려 판톤의 손목을 쥐고는 천천히 그것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서늘한 시선으로 판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실력이 부족했음을 탓해라.”

엘드라고는 그런 판톤의 손목을 밀치고는 말했다.

“판톤. 엘렌이 널 위해 희생했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기에 널 여기 둔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 더는 네가 필요하지 않아.”

“그럼 내버려 두라고!”

엘드라고는 그런 판톤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물러났다.

“그래. 패배자는 그렇게 찌그러져 있어라. 엘렌의 복수는 우리가 하지.”

말을 마친 엘드라고가 사라지자 판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복수?

당연히 하고 싶다. 엘렌 대신 자신이 죽고 싶었을 만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크다.

하지만 싸워봐서 안다. 제이슨은 자신과 격이 다른 자였다.

마스터가 되고 이제 무서울 것이 없다고 여겼다. 엘젠트와 대련하며 더 높은 곳에 올랐기에 거침이 없었는데 막상 싸워보니 제이슨은 자신은 물론이고 엘젠트조차 어쩌지 못할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 짧은 인생에 그만한 경지에 들었나?

질투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 판톤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판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곳에서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판톤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를 내려다보는 것은 엘젠트였다. 지금까지 그와 대련하며 많은 것을 받았기에 냉정하게 따지지 못했다.

“여기는 어쩐 일이지?”

엘젠트는 판톤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판톤이 바라보던 호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뭘 보고 있나?”

판톤은 담담히 눈에 보이는 것을 답했다.

“호수.”

“뭘 보고 있나?”

판톤은 그제야 엘젠트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나?”

판톤은 다시 호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돌아오고 나서 계속 바라보고 있던 것. 그것은 호수가 아니라 자신의 심상에 기억된 제이슨의 검이었다.

“그의 검.”

“보이던가?”

“아니.”

판톤은 제이슨의 검을 떠올렸지만, 실제로 그걸 보지 못했다. 볼 수가 없었다고 해야 했다. 참격을 떠나서 그 검을 마주했을 때는 어떤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벽을 만났군.”

“그래. 벽을 만났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엘젠트가 호수를 향해 돌맹이를 하나 주워 던졌다. 물수제비를 뜬 엘젠트가 입을 열었다.

“넘고 싶나?”

“아니. 부수고 싶어.”

엘젠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도들이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엘렌은 달랐다. 그녀는 다른 사도들을 챙겼지. 그래서 엘렌에게 사도를 탐색하는 일을 맡긴 것이기도 하다.”

판톤이 돌아보자 엘젠트는 말을 이었다.

“아마 모든 사도에게 사랑을 받는 건 그녀가 유일했을 거다.”

“너도?”

“나야 검을 사랑했지.”

피식 웃으며 답한 엘젠트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도 중에서 그녀를 가장 아꼈다.”

엘젠트가 판톤을 돌아보았다.

“판톤. 그러니 나와 함께 복수하자.”

“복수?”

“나와 맹약을 맺고 그 벽을 부수자.”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비행정(1)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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