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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33화 (134/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성전(1) >

    성전

    성녀 샬로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신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완벽하다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상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반갑다.”

    “당신은 신입니까?”

    “아직 아니다.”

    샬로트가 의아함을 느낄 때 그의 앞으로 다가온 엘하르트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너는 신이 선택한 아이다.”

    “예. 저는 선택 받았습니다.”

    “그러니 신에게 기도해보렴.”

    “하지만 신은 제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십니다.”

    엘하르트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아니다. 그는 너의 기도를 듣는다. 다만 대답하지 않을 뿐이지.”

    샬로트가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엘하르트는 그런 샬로트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지만, 그의 눈에는 보인다.

    그녀의 머리에서 시작한 빛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본 엘하르트는 씨익 미소를 짓고는 그 빛줄기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빛줄기가 향하는 방향을 읽었다.

    이것을 따라가면 엘드라고를 찾을 수 있다. 아직 봉인이 두 개나 남았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엘드라고와 사도들을 죽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신살검을 얻었고, 제이슨의 실력도 몰라보게 늘어나는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읽어가는 중에 반대쪽에서 강렬한 의지가 밀려왔다. 그리고 그 연결이 끊어졌다.

    엘하르트의 시선이 샬로트를 향했다. 그녀가 눈을 떠서 엘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더는 샬로트의 눈빛이 아니었다.

    “나를 찾고 있는가?”

    엘하르트는 그 목소리를 기억했다. 샬로트의 성대로 얘기하지만, 본인의 목소리다.

    “그래. 너를 찾고 있었다.”

    샬로트의 시선이 엘하르트의 위아래를 훑었다.

    “많이도 풀었군. 이제 두 개 남은 건가?”

    “이제야 좀 쫄리냐?”

    샬로트는 픽 웃고는 말했다.

    “아직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니 손을 써야겠군.”

    “손을 써?”

    “그래. 기대해도 좋아.”

    말을 마친 그녀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스걱.

    샬로트의 목이 날아갔지만, 조금 늦었다.

    콰콰쾅!

    강렬한 폭발과 함께 샬로트의 몸이 폭발했다. 엘하르트가 왼팔을 휘둘러 봉인의 사슬로 휘감아 그 폭발의 힘을 줄였지만, 그 폭발의 여파가 어찌나 강한지 봉인의 사슬이 끊어졌다.

    “미친놈이 여기다 신력을 쏟아부었군.”

    차갑게 쏘아붙인 엘하르트가 밖으로 나오자 라마란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봐. 이런 시험을 할 거면 말을 해놔야지. 마탑이 삐걱거렸잖아.”

    엘하르트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흔적도 남지 않은 샬로트가 있던 공간을 바라보던 엘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엘드라고가 먼저 눈치채고 그녀의 몸을 터트렸다.”

    “미친놈인건 여전하군.”

    “그러니 신의 행세를 하고 있겠지.”

    엘하르트의 시선이 라마란스를 향했다.

    “그보다 시간을 끌겠다고 했다.”

    “시간을 끌겠다고?”

    “아직 준비가 덜 된 모양이더군.”

    “그 말은 아직 사도들을 다 모으지 못했단 말이군.”

    “다 모았다면 분명히 싸우자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담담히 말한 엘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우선은 제이슨에게도 알리고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지.”

    “그러던지. 나도 준비하겠다.”

    “그래. 무슨 일이 벌어져도 막을 수 있도록 준비하자고.”

    엘하르트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리고 제이슨을 만나러 갔다. 그 짧은 사이에 아이젠을 찾아가 시시덕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엘하르트가 다가가자 아이젠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와서 케이크를 함께 먹어요.”

    엘하르트는 고개를 돌리려다가 코를 킁킁거리고는 다가와 앉았다.

    “티라미슈인가?”

    “예. 7왕국 연합 중 에사르 왕국의 맛집에서 사 온 거예요.”

    “너 그런데 가도 되는 거냐?”

    엘하르트의 시선에 제이슨이 씨익 웃었다.

    “라마란스에게 특별히 부탁한 물건이야. 원하는 곳으로 곧장 공간 이동이 가능해.”

    “대단하군.”

    고작 케이크 하나를 사기 위해서 대륙을 오가는 것에 감탄하면서도 직접 먹어 본 티라미슈는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티라미슈를 먹던 엘하르트가 불쑥 말을 꺼냈다.

    “엘드라고가 시간을 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뭔가 수작을 부릴 것 같다.”

    너무 담담히 얘기해서 별 이야기가 아닌 줄 알았던 제이슨이 당황해서 바라보자 엘하르트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놈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했고, 오히려 경계심만 일으키게 만들었으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손해를 따질 때가 아니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지?”

    “간단해. 봉인을 푸는 거다.”

    제이슨은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신살검을 이용한 대련을 해야 했고,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했다.

    엘하르트는 그가 성장하기를 바라서인지 무시무시할 정도로 그를 몰아쳤다.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봉인을 풀기 위해서 대련이라는 길을 택한 이상 쉽지 않은 길이 앞을 막고 있었다.

    “그래야 하겠지?”

    “그래야만 한다.”

    제이슨이 울상을 지을 때 아이젠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제이슨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각오를 다졌다.

    신성 교국의 교황 발데르크는 자신을 찾아온 소녀를 보고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자신의 방 침대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소녀.

    그녀는 발데르크와 눈이 마주치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교황 발데르크.”

    “누구냐?”

    소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발데르크를 바라보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느냐?”

    그제야 발데르크는 상대가 뿜어내는 신성력을 감지했다. 이건 생각도 못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성력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한 명 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는 100일 기도 중이었다.

    소녀는 가볍게 고개를 내젓고는 말했다.

    “성녀는 납치되어 죽었다.”

    “예?”

    “마스터 제이슨 대공. 그가 성녀를 납치했고, 죽였다.”

    “그녀는 100일 기도 중입니다.”

    소녀는 손을 휘 내저었다. 자신의 말에 의문을 표하는 이 하찮은 것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은 표정이었다.

    “제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확인해라.”

    발데르크가 뛰쳐나와서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성녀가 납치당했다고 한다. 그녀를 찾아라!”

    황급히 성기사들이 움직였고, 그들은 성소를 찾아보고는 돌아와서는 발데르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성녀님이 안 계십니다. 지금 조사 중에 있습니다.”

    발데르크는 그 말을 듣고는 질끈 눈을 감고 돌아섰다.

    “알겠다. 당분간 비밀로 하고 찾아봐라.”

    “예.”

    발데르크가 다시 방으로 돌아갔을 때 소녀는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발데르크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자 소녀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이제 의심은 거두었느냐?”

    “예. 성녀님.”

    “그래. 그렇다면 신탁을 내리겠다.”

    이번 성녀는 다르다. 단순히 신탁을 받은 모습이 아니라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마치 그 목소리 하나에 신성이 담겨 있었다.

    “성전이다.”

    “성녀님?”

    발데르크가 놀라 고개를 들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목표는 하르트 공국. 제이슨 대공의 목이다.”

    저번에 받은 신탁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규모가 달랐다. 발데르크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마스터입니다.”

    광휘의 검이 없는 지금은 상대할 수 있는 이가 없다.

    “마스터가 너희를 찾아올 것이다. 그와 함께 성전을 준비하라. 그리고 성전에서는 나도 힘을 빌려줄 것이니 겁먹을 필요 없다.”

    성녀의 말을 들은 발데르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말씀은.”

    “신벌을 아끼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신벌이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마스터를 내준다고 하니 그것이라면 충분히 전쟁을 치를 수 있다. 나머지 외교적인 문제는 자신이 할 일이다.

    “그럼 나는 잠시 잠들겠다. 이 아이를 통해 직접 지켜볼 테니 걱정하지 마라.”

    “따르겠습니다.”

    소녀는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잠에 빠졌고, 발데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성전을 치른 적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신탁에 의한 것은 더더욱.

    지금은 신이 자신을 돕는다.

    발데르크는 침대에 누워 잠든 성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성기사들이 다가오자 발데르크가 빠르게 말했다.

    “대주교들을 모아라. 신탁이 내려왔다.”

    턱을 괴고 있던 펠레드 황제는 자신 앞에서 보고를 올리는 칸트 공작을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그 늙은 여우가 이렇게 활발히 움직이는 것은 또 처음이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칸트 공작은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트랑 왕국과 저희는 우방입니다. 그런데 신성 교국이 7왕국 연합을 거쳐 이번에 만들어졌던 연합국의 패전국들을 규합해서 전쟁을 치르겠다고 했습니다. 경로 상으로 저희와 닿는 곳은 없지만, 돕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다.”

    칸트 공작이 입을 다물자 펠레드 황제는 인상을 굳힌 채 말했다.

    “트랑 왕국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아. 이쯤에서 한 번 꺾여야 한다.”

    칸트 공작이 그 말에 답을 못하고 슬쩍 샤이드 대공에게 눈짓했다. 샤이드 대공은 그 눈빛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펠레드 황제가 그 모습을 보고는 샤이드 대공을 돌아보았다.

    “자네 생각은 다른가?”

    “제가 어찌 폐하의 뜻에 반대하겠습니까?”

    “특히나 자네는 제이슨을 좋아했잖은가?”

    “개인적인 마음이 기우는 것과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기울지만 내 뜻에는 따른다는 말이군.”

    “예.”

    펠레드 황제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다만 준비는 하자고.”

    “어떤 준비를 말입니까?”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다. 우리가 호시탐탐 노리는 것을 알면서도 저 늙은 여우가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이유가 궁금하지만, 언제든 그들을 노릴 수 있음을 알려주면 된다.”

    “실제로 나서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를 풍기겠다는 거군요.”

    “그래. 그리고 실제로도 나설 거다. 저들이 양패구상하면 좋겠지만, 설령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나서서 우리가 신성 교국을 삼킨다.”

    “알겠습니다.”

    칸트 공작이 물러가자 펠레드 황제가 샤이드 대공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먼저 알아챈 것 같으니 그들에게 알려는 주도록 하지. 자네가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나?”

    “제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내가 갈 수는 없으니까.”

    샤이드 대공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펠레드 황제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너무 컸어. 카이트 국왕.”

    바닥에 대자로 쓰러진 채 긴 숨을 토해낸 제이슨에게 엘하르트가 인간형으로 돌아와 손을 내밀었다.

    “손님이 찾아왔군.”

    제이슨은 엘하르트의 손을 잡고 일어나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단단한 기운이 느껴졌다. 제이슨은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 그 기운을 따라 걸었다.

    마침 시종장의 안내를 받아 다가오는 샤이드 대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제이슨을 보고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지금까지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여겼었는데 다시 만난 제이슨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가늠하기 힘든 경지에 올라 있었다.

    마스터가 되고 나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충격적인 상대와의 격차에 놀라워할 때 제이슨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십니까?”

    샤이드 대공은 담담히 답했다.

    “전해줄 소식이 있어서 왔네.”

    “전해줄 소식이라시면 어떤 것입니까?”

    샤이드 대공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신성 교국에서 7왕국 연합은 물론이고, 패전국들을 모아서 트랑 왕국을 향해 성전을 선포할 계획이라고 하네.”

    제이슨은 그 말에 엘하르트를 돌아보았다. 엘하르트는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시간은 제대로 끌겠군.”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성전(1)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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