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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30화 (131/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엘젠트(3) >

    공격의 시작은 엘젠트였다. 그가 찔러넣은 창을 보는 순간 제이슨은 깨달았다.

    이 자 또한 운명을 엿보는 수준에 오른 자다.

    그가 본 운명을 비틀고 자신이 본 운명이 결정되도록 하게 만드는 싸움. 이것은 아직 엘하르트를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제이슨에게는 어려운 주문이었다.

    제이슨이 쳐낸 참격을 보고 엘젠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제법이구나!”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린 엘젠트는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짜릿함을 느꼈다. 자신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이만한 상대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오랜만이다.

    엘젠트의 창은 광휘의 검이 쓰는 찌르기만큼 빨랐고, 위력은 몇 배나 되었다. 예전이라면 받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

    하지만 엘젠트와 자신은 다른 점이 있었다.

    엘젠트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적을 만나본 적이 없겠지만, 제이슨은 다르다. 지금까지 카젠은 물론이고, 엘하르트와도 수없이 싸워왔다.

    그래서 강자와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안다. 제이슨은 창이 쳐내는 힘을 거스르지 않고 뒤로 물러나며 베제트를 소환했다. 그런데 베제트가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퀸의 팔찌와 감응하면서 베제트의 성능이 더 올랐고, 제이슨은 순간 자신이 보는 시야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쩌엉!

    엘젠트의 창에 담긴 힘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베제트의 성능이 전과 달라지니 운명이 조금 선명하게 보였다. 제이슨은 복잡하게 그려지는 운명의 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이대로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제이슨은 그 중간중간을 생략했다. 호수에서 물고기를 베어낼 때처럼 사선으로 날리는 참격에 엘젠트의 창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엘젠트는 뒤로 물러나서는 눈을 크게 뜨고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다른 일검이었다.

    “믿을 수 없군. 고대의 마스터조차 이 경지에 든 이가 없었다.”

    “말할 여유도 있고 대단하네.”

    제이슨은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운명의 길을 건너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건 상대와 같이 서로 운명을 엿보는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웠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충격이었지만, 제이슨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엘젠트도 싸우면서 깨달았다. 처음에는 분명 자신이 더 강했다. 본체로 현신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천 년을 인간의 형태로 살아온 그는 이미 인간의 육체로 도달할 수 있는 끝에 도달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홀로 신이 되고자 했다. 엘드라고처럼 가짜 신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신이 되고자 했던 것.

    자신의 길에 회의감이 들기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내온 시간은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수련의 시간만큼 강해졌으니까.

    그런데 이 자는 강자와의 싸움에 익숙했다. 더 강한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만한 강자를 만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마스터들도 몇 번 만나 싸워봤지만, 이만한 경지에 이른 이들은 없었다. 고대의 마스터들처럼 깨달음을 얻어 운명을 엿보는 이들이 아니라 그저 오러를 파고든 자들.

    물론 그들의 실력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었다. 오러라는 것도 사도들인 자신들이 인간들에게 준 무기였으니까. 그걸 이용해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으니.

    그런데 지금 싸우는 제이슨은 달랐다.

    그는 현대의 마스터의 경지에 든 것은 물론이고 고대 마스터들이나 얻었던 깨달음. 그것이 공존했다.

    그건 자신이 이룬 경지였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것은 달랐다. 고대 마스터들조차 운명의 길을 엿보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자신도 그것이 전부였고.

    그런데 상대는 지금 그것조차 넘어서고 있었다.

    고대 마스터도 운명의 길을 자신의 마음대로 써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제이슨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위험했다.

    “건방지구나!”

    운명을 자신의 입맛대로 고쳐 쓴다? 그거야말로 신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길. 그 길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지만, 이건 분명히 신에 다다르는 길이다.

    그걸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가지고 있다는 것에 질투가 일었다.

    쩌저저정!

    그래서 내뻗는 창에 그 마음이 담겼다. 그런데 제이슨은 그걸 모조리 받아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운명을 가로지르며 들어오는 통에 오히려 반격까지 허용했다. 뒤로 물러난 엘젠트는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바라보다가 숨을 길게 토했다.

    “믿기 어렵군.”

    제이슨도 검을 비스듬히 내린 채 엘젠트를 바라보았다. 신력도 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이만큼이나 하는 자는 본적이 없었다.

    본체로 현신한다면 끔찍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저 상태로도 저자는 전장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강한 자였다.

    펠릭스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이 자 때문에 트랑 왕국은 끔찍한 패배를 당했으리라.

    제이슨은 엘젠트를 향해서 검을 들어 겨눴다. 엘젠트도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여겼는지 창을 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향하던 운명의 길이 크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엘젠트가 전력을 다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은 펼쳐지기 전에는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이슨도 검을 들고 상대에게 겨눴다.

    둘이 서로를 겨눈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제이슨은 그렇게 엘젠트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는 사도 중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엘젠트와 싸우면서 목숨을 걸고 수련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사도는 살려둬서는 안 될 존재.

    자신은 이 운명의 길을 또렷하게 볼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니까.

    제이슨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일어났다. 그는 제이슨과 같은 검의 형태를 쥔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엘젠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도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쉐일링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도 이길 수 있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자신과 비슷한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는 제이슨이 쉐일링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다면 승산이 없다.

    지금 보이는 운명의 길도 흐릿해진 것을 보니 승산이 크게 줄었다.

    “비겁하게 이리 나오겠다는 건가?”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지금 우리가 정정당당을 논할 사이는 아니잖아.”

    “흥.”

    가볍게 코웃음을 친 엘젠트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이슨도 살짝 긴장했다. 저 필살기에 잘못 맞으면 쉐일링이나 자신이나 둘 중 하나는 위험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

    제이슨도 긴장한 채 엘젠트를 바라보았다.

    전장의 흐름 따위는 신경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둘은 서로에게 집중했다.

    쉐일링은 그걸 더 못 기다리겠는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건 엘젠트의 일격을 맞을 각오를 했다는 뜻.

    둘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던 엘젠트는 이를 악물고는 창을 뻗었다. 쉐일링이 움직이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엘젠트는 당겨진 시위를 놓듯 창을 뻗었다.

    움직이면서 빈틈을 만들어낸 쉐일링을 향해 뻗어가는 창은 제이슨의 눈으로 쫓기도 버거울 정도로 빨랐지만, 그보다 위험한 것은 그 크기가 주위를 온통 집어삼킬 정도였다.

    마치 세상 전체가 그 창에서 뻗어 나오는 오러에 휩싸여 찢겨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쉐일링도 놀랐는지 자신의 앞으로 몇 겹이나 되는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방패들조차 모조리 짓이겨졌다. 제이슨이라고 해도 저걸 막거나 비켜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을 제이슨은 놓치지 않았다. 제이슨의 사선 찌르기가 엘젠트를 향했다. 엘젠트가 그걸 막기 위해서 창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창이 베이고, 엘젠트의 가슴에 검이 박혔다.

    콰앙!

    그때 엘젠트의 가슴에서 가공할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휘말린 제이슨도 뒤로 튕겨 날아가 한참을 굴러야 했다. 엘젠트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제이슨의 검이 뽑혀 나온 곳으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엘젠트는 그런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허허. 결국 도움을 얻은 건가?”

    그런 엘젠트의 곁으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엘카소와 엘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엘렌의 곁에는 판톤까지 있는 상황.

    제이슨이 그들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제이슨의 곁으로 만신창이가 된 쉐일링이 다가와 함께 섰다. 제이슨은 그런 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고 왔지?”

    “이렇게 요란하게 싸우면서 못 느낄 줄 알았나?”

    제이슨은 엘젠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빛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긴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군. 그러니 다음에 제대로 붙어보자고.”

    “다음? 다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제이슨이 참격을 날렸을 때 판톤이 검을 들어 그걸 막았다.

    쩌엉!

    제이슨의 참격을 판톤이 받아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이슨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는 어느새 마스터에 한 발 걸치고 있었다.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판톤. 제이슨은 그와 싸운다면 승부를 금세 낼 수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길어야 열 번. 그 안에 그를 벨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열 번이 문제였다.

    엘카소가 그려낸 마법진이 그들을 감쌌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 같이 오는 거였는데.”

    사도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진다. 저번에 넷을 구해가서 골치 아픈 상황이었는데 거기에 한 명을 더 더했다.

    제이슨은 쉐일링을 돌아보았다. 그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쉐일링의 방패는 엘젠트의 찌르기 한 번에 모두 부숴졌으니까.

    “괜찮아?”

    쉐일링은 펄럭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고 그림자 아래로 숨었다. 제이슨은 그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몸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었으니까.

    그만큼 엘젠트의 공격은 강했다. 게다가 만약 그가 본체로 공격을 펼쳤다면 그 일격에는 산이 뚫릴 정도로 강력했으리라. 신력 하나 쓰지 않고 이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자신이 상대해야 할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깨달았다.

    앞으로 나올 아이를 위해서라도 사도들과의 싸움을 끝내고자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제이슨은 쉐일링과 함께 전장으로 돌아갔다. 전장은 이제 막바지에 달했다. 연합군에 배신자들이 생기면서 승부의 추는 완전히 기울어졌다.

    제이슨은 자신이 더 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물러나기로 마음먹었다. 제이슨이 팔찌를 만지자 공간 이동 마법진이 나타나 흑색 마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라마란스는 제이슨과 함께 온 쉐일링을 보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사도를 만났어.”

    “사도?”

    “엘젠트를 만났다.”

    제이슨의 대답에 라마란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용케 살아 돌아왔군. 쉐일링과 함께여서 그런 건가?”

    제이슨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혼자서도 거의 때려잡았었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마지막에 엘카소와 엘렌이 구해가지 않았다면 내가 죽일 수 있었어.”

    “그래? 엘젠트가 그리 약했나?”

    제이슨이 슬쩍 검에 손을 올리자 라마란스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너랑 놀아 줄 시간 없어. 그보다 우리도 서둘러야겠군. 상황이 안 좋네.”

    “그러게 말이야.”

    사도가 하나하나 더해질 때마다 다룰 수 있는 신력이 는다. 특히나 가짜 신인 엘드라고까지 생각한다면 가벼이 볼 일이 아니었다.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엘젠트(3)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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