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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28화 (129/151)
  •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엘젠트(1) >

    엘젠트

    제이슨은 자신을 찾아온 엘하르트와 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나보고 퀸이랑 계약을 맺으라고?”

    “골렘족 중에서 오직 퀸만 가능하고, 퀸의 격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은 지금까지 본 중에는 너밖에 없다는군.”

    “그런데 중복 계약 아냐?”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겠네.”

    제이슨의 시선이 퀸을 향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아. 나도 계약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지. 실제로 계약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

    “그럼 시작하죠.”

    제이슨이 손을 내밀자 퀸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손과 손이 닿고 그녀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운명이 정해 놓은 인과에 의해 나 퀸은 제이슨에게 맹약을 요청한다. 맹약을 받아들이겠는가?”

    맹약이라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맺자고 하는 것을 보면 이 맹약을 만든 이들을 태초에 불공정 거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제이슨은 그러나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엘하르트와도 맹약을 맺었고, 이제 퀸과 함께 한다면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도들과의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니 그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 제이슨 폰 하르트는 퀸과의 맹약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퀸은 제이슨의 손을 꼭 쥐고 입을 맞췄다. 제이슨도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자 손등에 새로운 문양이 새겨졌다. 손등에 별 모양의 문양이 만들어지자 제이슨은 퀸의 손등에도 새겨진 문양을 보고는 픽 웃었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달라진 것이 없네요.”

    그 말을 끝냈을 때 제이슨은 가슴에 차오르는 기이한 힘을 느꼈다. 그것은 오러와는 다른 성질의 것. 그 힘은 전율스러운 힘이었다.

    제이슨이 당혹스러워할 때 엘하르트도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인간에게 신력을 나눠준 건가?”

    “일부이지만 신력을 나눠쓰게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눠 준 것보다는 제가 얻은 것이 더 많으니 일석이조네요.”

    “이게 신력이라고요?”

    제이슨은 자신의 몸에서 꿈틀대는 힘을 느꼈다. 오러와는 다른 성질인데 그 자체를 몸에 품은 것만으로도 제이슨은 자신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힘을 부리니 사도들이 그렇게 강했던 것이었다. 제이슨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제이슨이 검을 내려다보자 그를 바라보던 엘하르트와 퀸이 그의 검에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인간 중에서 내 격을 감당할 수 있는 이가 제이슨뿐이라 맹약을 맺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네요. 저 힘을 그대로 부릴 수 있을 줄은.”

    “그러게 말이야.”

    제이슨의 검에 타오르고 있는 힘은 단순한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그 안에 미약하지만, 신력을 품어 넣었다. 그것도 생명 창조의 힘을 지닌 퀸의 신력 중 일부라서 그런지 검에 피어오르는 오러 블레이드에는 신성력에 가까운 힘이 느껴졌다.

    “그런데 저거 쓸모가 있으려나?”

    어떤 상처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은 오러 블레이드라니? 무엇이라도 벨 수 있는 오러 블레이드의 성질을 생각하면 상반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라마란스에게는 치명적이겠군.”

    흑마법의 정점에 선 라마란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검. 하지만 다른 활용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엘하르트에게 퀸이 웃으며 말했다.

    “생명 창조의 힘은 그 자체로 신력이 있어서 저 신력의 형태가 저렇게 검의 형태가 된다면 검사에게 큰 도움이 되겠죠. 사도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그런가?”

    “당신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얘기였겠죠.”

    엘하르트는 픽 웃고는 말했다.

    “그대는 어떤가?”

    “전보다 확실히 신력이 강화된 것 같아요.”

    “그런가? 그렇다면 진즉에 맹약을 맺지 그랬나?”

    퀸은 엘하르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 생각에는 당신과 맹약을 맺은 인간이기에 제게 어울리는 격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당신의 첫 번째 맹약자이기 때문에 제 맹약자가 될 수 있었던 걸 거예요.”

    “그런가?”

    “예. 신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아요.”

    엘하르트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그를 또 만날 생각인가요?”

    엘하르트는 제이슨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그래. 또 만나야지. 내 존재의 이유니까.”

    퀸은 그런 엘하르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제이슨을 보았다. 그가 휘두르는 검을 보면서 퀸은 자신과의 맹약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들에게도 독이 될 무기를 얻었으니까.

    제이슨이 참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란진 왕국은 대회전을 걸어왔다. 어차피 성에 움츠리고 있겠다 해도 마법 방어진 무효화 창을 가진 트랑 왕국군이니 그들과 싸우면서 성안에 숨어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성안에 숨어있기보다 오히려 대회전을 걸어왔다.

    란진 왕국은 비록 테오 공국을 내주었지만, 그 자체로도 굉장한 군사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호전적인 그들은 테오 공작의 복수까지 외치며 모여들었다.

    그리고 테오 대공이 살아있을 때 주변 왕국들에 베푼 빚들이 그가 죽은 후에 살아나 연합군이 되었다. 그렇게 도합 네 개의 왕국이 란진 왕국 편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래서 트랑 왕국의 병력보다 연합군의 병력이 더 많았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병력.

    제국이 굳이 트랑 왕국을 제재하지 않았던 것은 연합군의 기세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이슨도 참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아예 신경을 껐다.

    지켜보고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제재는 없었다. 그리고 제국도 이들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성 제국.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국경 부근에 집결시킨 병력을 회군시키지 않은 것만 보아도 황제의 뜻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대회전이 벌어졌다.

    벡스 총사령관은 사령부에 있는 펠릭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말 가능하겠나?”

    “계획 대로만 된다면 우리가 처리해야 할 적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원을 해주기야 하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적 지휘부를 박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세.”

    벡스 총사령관이 기간트들을 지원해주었지만, 적 지휘부를 박살 내는 것은 오직 스노우 기사단이 맡아서 하는 일이었다. 펠릭스는 그의 질문에 픽 웃고는 말했다.

    “한 번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제이슨을 따라가더니 허풍이 많이 는 것 같군.”

    “그건 보시면 아시겠죠. 훈련 중 흘린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 신조는 여전하군.”

    펠릭스는 저 멀리 전장을 보며 물었다.

    “언제 시작합니까?”

    “대응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성격에 맞지 않잖아.”

    불꽃 전차라고 불리는 벡스의 말이다. 펠릭스는 새삼 그때가 떠올랐다. 동부 전선에서 전쟁을 벌일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그 규모가 몇 배나 늘었다.

    펠릭스는 오히려 전보다 부실한 병력을 이끌고 있었다. 오러 유저였던 제이슨이 떠났으니까.

    하지만 그가 없다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강한 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굴렸던 이들.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들로 아직 오러 유저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들이 기간트에 타고 있을 때는 충분히 강하다.

    히어로급 기간트에 버금가는 기간트의 성능. 그런 이들이 열 명이다.

    그런 이들을 데리고 맹훈련을 했다. 그러니 이제 그들과 함께 전장에 선다. 그들의 성과를 볼 수 있는 순간.

    “시작한다!”

    벡스의 외침에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황금의 창을 쏘아내는 거대 포탑이다. 황금의 창은 공성전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적진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다섯 기의 거대 포탑이 모습을 드러내자 적진이 술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연합군의 병력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거리를 좁히고 싸우고자 하는 마음은 알지만, 그러기에는 늦었다.

    황금의 창이 연달아 발사되었고,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연합군측의 기간트들이 방패를 소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콰콰콰쾅!

    기간트들이 쓰는 대형 방패도 황금의 창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황금의 창 하나가 지나가는 길에는 몇 기의 기간트들이 박살 났다.

    황금의 창에 쓸려나가는 기간트들을 보며 벡스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전장에서는 원거리 공격으로 선제 타격을 하는 것이 좋다.

    대기간트 전에서의 전장에서는 잘 쓰지 못하지만, 일단 쓰면 그 효과는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게 쓸려난 기간트들을 제외하고도 병력은 아직 연합군 측이 압도적이다. 그들의 병력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보면서 벡스가 손짓했다.

    좌군과 우군의 기간트들이 돌진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트랑 왕국은 빠르게 성장해서 기간트들이 많이 늘었지만, 고급 전력은 늘어나지 않았다. 다른 왕국과 전쟁 중에 오러 유저들은 척살 1순위 대상이다 보니 그들을 영입하지 못했다.

    그러니 오러 유저의 수는 그대로였다.

    연합군에는 더 많은 오러 유저들이 있다. 각 왕국에서 한 명씩 오러 유저들이 나온 데다가 란진 왕국에도 오러 유저가 모두 나왔다.

    란진 왕국은 왕국의 전통이 무를 숭배하는 왕국답게 그들은 오러 유저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네 명이었는데 지금 전장에 나선 이들을 보니 족히 일곱은 되어 보였다.

    오러 유저라고 압도적인 것은 아니다. 제이슨이 특별해서 그렇지 일반 오러 유저들의 히어로급 기간트는 나이트급 기간트와 워리어급 기간트들의 물량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벡스가 자신도 직접 검을 뽑아들었다. 비록 마스터가 되지는 못했지만, 오러 유저들을 줄 세워 놓으면 이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자신이 있는 그도 놀고 있을 수는 없었다.

    “펠릭스. 최대 넷의 오러 유저가 대기하고 있을 수도 있네.”

    “괜찮습니다. 저희는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네.”

    벡스가 손짓하자 거대 포탑이 움직였다. 그들이 노리는 곳은 적진의 지휘부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다. 황금의 창이 요란하게 날아가는 것을 보고 펠릭스가 달리면서 소리쳤다.

    “스노우 기사단!”

    기간트들이 도열했다. 새하얀 색으로 도색한 기간트들의 선두에서 펠릭스도 새하얗게 도색한 기간트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펠릭스의 뒤로 스노우 기사단 나이트급 기간트 열 기가 따라 달렸다.

    그런 기사단의 뒤편으로는 트랑 왕국의 정예 기사단들이 따라붙었다. 중앙 기사단의 기간트 100기가 뒤를 따르니 본진의 가장 강력한 전력이라고 할 만했다.

    그렇게 펠릭스를 보낸 벡스는 전장에서 그가 펼치는 검을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펠릭스의 수준은 잘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이는 실력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마스터인 제이슨을 따라가더니 그사이 실력이 크게 늘어 있었다.

    게다가 그를 따르는 이들의 실력 또한 나이트급 기간트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출중했다. 적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것을 보고 벡스는 미소를 지었다.

    “저건 성능의 문제인가?”

    단순히 기간트 라이더의 기량이라고 보기에는 실력의 차이가 컸다. 그렇게 거침없이 달린 펠릭스가 이끄는 스노우 기사단과 중앙 기사단이 적의 본진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벡스가 손짓했다.

    “좋아. 그럼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하늘을 향해서 녹색 신호탄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신호탄을 필두로 연합군의 진영이 출렁였다. 좌우측에 포진하고 있던 안트라 왕국군과 바젤 왕국군이 연합군의 다른 연합군을 공격했다.

    두 배에 달하는 연합군이었지만, 두 개 왕국이 배신하면서 그 차이는 미미해졌다. 벡스는 기간트에 오른 채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이대로 밀어붙인다!”

    트랑 왕국군이 전력으로 적진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우왕좌왕하는 연합군의 군대가 파국으로 치달렸다.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엘젠트(1) > 끝

    ⓒ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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