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26화 (127/151)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퀸(2) >

지금까지는 이렇게 마음이 조급해 진 적이 없었다. 사도와의 싸움도 싸워야 한다니까 싸운다는 마음이 강했는데 이제는 그들을 격멸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사도들과의 전투는 벌어진 상황이었으니까.

제이슨의 시선이 엘하르트를 향했다.

“언제쯤 녀석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겠어?”

지금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가짜 신이 된 엘드라고다. 그가 더 큰 힘을 얻기 전에 그를 잡아야만 하니까. 그가 온전히 힘을 회복하고 사도들을 이용해서 더 신력을 뽑아내게 된다면 그때는 신벌을 감당할 수 없게 되리라.

“얼마 안 남았어. 그 전에 퀸을 찾아와라.”

“그러지.”

제이슨의 시선이 라마란스를 향했다. 그는 제이슨의 시선에 퉁명스럽게 말했다.

“마법사도 아닌 존재가 마음껏 공간 이동을 하는 아티펙트를 만들기 쉬울 줄 아나?”

“그래서 언제 돼?”

“하루만 기다려.”

“좋아. 하루는 기다리지. 그럼 오늘 하루는 아이젠이랑 보내야겠다.”

“그렇게 해라.”

제이슨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젠을 찾아갔다. 그런 제이슨을 바라보던 엘하르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아이를 가졌다? 부러운 일이군.”

“부럽나?”

엘하르트는 라마란스를 보았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아크 리치가 된 그 또한 자식은 낳을 수 없었으니까.

“부러우면 지는 거지. 아티펙트나 만들어 줘. 나도 삼 일이면 될 것 같으니.”

“알겠네.”

대답을 마친 라마란스가 떠나자 엘하르트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봉인을 푸는 속도가 올라간 지금. 이쪽도 사도들을 상대할 인원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었다.

퀸까지 가세한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제이슨이 아이젠의 방으로 찾아갔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고 왔소.”

“농담이죠? 세상에서 여기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 있다고.”

대륙에서는 제이슨의 이름을 마스터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있었다. 마스터인 뇌속의 창을 꺾은 것으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실상은 광휘의 검도 쓰러트렸지만, 그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제이슨을 마스터 위에 올려놓는 것을 주저하는 이는 없었다.

성급하게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지만, 제이슨은 대륙 최강자로 꼽았다. 그런 제이슨의 성이다.

게다가 이 성에는 흑색 마탑도 있었고, 스노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조심하라는 말을 하니 얼마나 자식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저한테는 그만큼 신경을 안 써주시더니.”

“미안하오. 내가 더 신경 쓰리다.”

제이슨의 진심이 느껴져 아이젠은 맑게 웃더니 말했다.

“아직은 밝히면 안 되겠죠?”

“신관들이나 되어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지금 알릴 필요가 있겠소? 흑색 마탑에는 미리 얘기를 해두었으니 당신이 위험할 일은 없을 거요.”

가기 전에 카젠에게도 말할 생각이었다. 그녀의 안전을 책임질 이들을 준비하고 제이슨은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디 가셔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하루 정도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여 내일 떠날 생각이오.”

“꼭 가셔야 하는 거죠?”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소.”

아이젠은 제이슨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마스터가 되었고, 이제는 대륙 최강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였으니 그가 필요하다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리라.

“그럼 오늘 하루는 뭘 할까요?”

“혹시 먹고 싶은 것 없소?”

“음. 새콤한 게 먹고 싶어요.”

“내 구해오리다.”

새콤한 것으로 따지면 제국의 남부 특산품인 호롱의 열매가 딱 떠올랐다. 제이슨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제국으로 들어갔다.

제국의 국경에 도착한 제이슨이 자신을 밝히자 국경은 발칵 뒤집혔다. 제이슨은 그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타국의 마스터가 국경에 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나 어찌 된 일인지 제국의 국경 내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래서 제이슨은 곧장 워프 게이트를 통해서 제국의 남부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남부의 가장 큰 도시인 페린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호롱의 열매를 파는 곳에 도착한 제이슨이 열매를 고르고 있을 때 가게 앞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것은 만날지도 모른다고 여겼던 인물이었다.

“여기까지는 어쩐 일인가?”

샤이드 대공이 뒷짐을 진 채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담담히 말했다.

“호롱의 열매를 사러 왔습니다.”

“말만 하면 우리가 보내줄 수도 있는데.”

“급해서요.”

샤이드 대공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제이슨은 호롱의 열매를 계산하고 있었다. 골드를 지불한 제이슨이 호롱의 열매를 챙겨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샤이드 대공이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란진 왕국과 전쟁 중이 아니었나?”

“그런 곳에 제가 가면 가만 있으실 겁니까?”

“뭘 어쩌겠나? 난 아직 회복이 안 됐는데.”

제이슨은 흘끔 그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오러는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전과 달라져 있었다. 벽을 넘은 것으로 보이는 그는 지금 제이슨이 작정하고 붙어도 쉬운 상대는 아닐 것 같았다.

기간트를 타기 전에는 승부를 점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샤이드 대공이었다.

“저는 전쟁에 나설 마음은 없습니다.”

“그런가?”

“그거 물어보러 오신 겁니까?”

샤이드 대공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온다는 연락도 없었는데 떡하니 마스터가 국경 지대에 공간 이동으로 나타났으니 제국이 발칵 뒤집혔지. 게다가 자네를 만나러 올 만한 이는 나나 황제 폐하뿐이니 별수 있나?”

황제가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이었다. 제이슨이 돌아가는 길에 워프 게이트까지 따라온 샤이드 대공이 입을 열었다.

“다음에 올 때는 연락이라도 하고 오게.”

제이슨은 새삼 자신의 위치를 알았다. 이건 카이트 국왕에게도 해명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개인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요.”

“그게 뭔지 모르지만 축하하네.”

제이슨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 샤이드 대공은 그런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국경에 들르지 않고 트랑 왕국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네.”

“감사합니다.”

제이슨은 샤이드 대공의 배려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곧장 트랑 왕국으로 워프 게이트를 이용했다. 그렇게 성으로 돌아온 제이슨은 아이젠을 찾아가 호롱의 열매를 직접 까줬다. 의자에 앉아 제이슨이 까주는 호롱 열매를 먹으면서 그 새콤함에 코를 찡긋거리는 아이젠은 지금 순간 자체를 즐겼다.

세상 누가 마스터가 까주는 호롱 열매를 먹어보겠나?

제이슨이 한창 호롱 열매를 까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이트 국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제이슨은 그렇지 않아도 카이트 국왕에게 보고해야겠다고 여겼는데 그가 직접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니 카이트 국왕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듣고도 믿기 어려운 보고를 들어서 말이네.”

“일단 안으로 드시죠.”

카이트 국왕이 안으로 들어오기에 아이젠이 일어나 고개를 숙여 보였다.

“됐네. 그보다 이거 사러 간 건가?”

제이슨은 미소를 지은 채 직접 호롱 열매를 까서 건네줬다.

“드시죠. 새콤하니 맛이 좋습니다.”

“아니. 아무리 급해도 내게 말하면 구해다 주었을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이트 국왕은 못 이기는 척 호롱 열매를 받아먹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자리에 앉은 카이트 국왕이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자네는 본국을 대표하는 이네. 그리고 공국의 주인이기도 하고. 그런 이가 그리 걸음을 가벼이 해서 쓰겠는가?”

제이슨은 카이트 국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과연 그것인가 해서 바라보니 카이트 국왕이 헛기침하고는 말했다.

“그래. 제국에 가서 누굴 만났나?”

“수호검이 나오셨더군요.”

“뭐라던가?”

“저보고 전장에 왜 안 나갔냐고 묻더군요.”

“뭐라 했나?”

카이트 국왕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인지 그 마음을 떠올린 제이슨은 담담히 답해주었다.

“제가 나가면 가만있을 거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아직 다 낫지 않아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런가? 그게 제국의 뜻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카이트 국왕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제이슨은 그 모습에 심통이 났지만, 기분 좋은 날.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카이트 국왕은 제이슨이 까놓은 호롱 열매를 먹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제이슨과 아이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호롱 열매를 바라보았다.

“자네 혹시 좋은 소식이 있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제국에 직접 가서 사 왔다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제이슨이나 되니 제국까지 별다른 검문 없이 다녀온 것이지 다른 이들이었다면 가서 사오는 데만 며칠은 걸렸을 일이다.

그 말은 제이슨이 직접 갔어야만 했다는 뜻.

카이트 국왕의 물음에 아이젠은 미소를 지었고, 제이슨은 코를 쓱 훔쳤다.

“허? 회임이라도 했다는 건가?”

제이슨은 과연 카이트 국왕의 눈치가 빠른 것은 인정해줘야겠다고 여기며 순순히 인정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짐작될 뿐입니다.”

“허허허! 그렇다면 내가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군. 신관을 보내주겠네.”

“괜찮습니다.”

신관들은 안 된다. 신 자체를 적으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신관은 가장 멀리해야 할 상대들이니까.

“그럼 회임했을 때 좋은 것들을 준비해 주겠네.”

“그것까지 마다치 않겠습니다.”

카이트 국왕은 호롱 열매를 한 조각 더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슨은 그를 배웅하며 물었다.

“연합군의 세력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충분하네. 게다가 그들의 연합도 오래가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카이트 국왕 정도 되는 이라면 이미 외교적으로 손을 써놨으리라.

“혹시 마스터가 나온다면 제게 말해주십시오.”

“그리하겠네.”

카이트 국왕을 보내고 돌아온 제이슨은 아이젠에게 물었다.

“제법 많이 사 왔는데 부족하네요. 국왕 전하가 오실 줄은 몰라서.”

아이젠은 맑게 웃고는 말했다.

“호롱 열매는 충분히 먹었어요. 산책이나 함께 해요.”

“그럽시다.”

단 하루.

라마란스는 하루 만에 방향만 찍으면 하늘로 공간 이동할 수 있는 아티펙트를 만들었다. 마법사가 아닌 만큼 아티펙트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마나를 수급하기 위해서 고급 마정석들이 사용되기는 하지만 그만한 성능의 아티펙트를 만들었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마정석만 있다면 무한정 공간 이동이 가능한 물건이었으니까.

제이슨은 라마란스가 만들어 준 아티펙트를 들고 폴과 함께 나란히 섰다.

“혼자 가는 거면 훨씬 더 쉬웠을 텐데 둘이 함께 보내려고 하다보니 마정석이 많이 들어가게 됐어.”

“괜찮아.”

고급 마정석이 비싸다고 하나 그거 아낄 정도로 가난한 상황은 아니었다.

제이슨은 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가자.”

제이슨은 퀸의 팔찌가 전해주는 방향으로 폴과 함께 공간 이동했다. 방향만 알고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밀하게 조절하며 공간 이동을 한 횟수는 무려 스물두 번.

제이슨과 폴은 퀸의 팔찌가 가리키는 곳 앞에 섰다.

[진짜 여기라고?]

폴의 물음에 제이슨은 팔찌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맞아. 여기야.”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퀸(2) > 끝

ⓒ 다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