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신전(2) >
드넓은 신전을 돌며 제이슨은 폴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다 이렇게 커?”
폴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는 않다. 나는 일족의 전사장. 보통은 10미터 내외지. 특별하게 태어난 아이들은 15미터 정도 된다.]
“골렘도 태어나?”
[그래. 사도들이 가장 먼저 파괴한 것이 우리 골렘을 태어나게 하던 퀸이었다.]
“퀸?”
[그래. 우리들의 여왕. 그녀의 죽음으로 우리는 멸족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다.]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비통함이 전해졌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없이 신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수중 탐사용 장비들이 있다고 하지만 워낙에 넓은 신전인 데다가 무엇보다 고대 골렘의 언어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신전에 새겨진 조각들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했다.
“조각이 아름답군.”
[당시 최고의 드워프들이 만든 거니까.]
제이슨이 돌아보자 폴은 다른 쪽을 살피며 답했다.
[드워프들과 골렘의 관계는 무척이나 가까웠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불사조를 잡아준 것이기도 했고. 너도 블루 마운틴 일족을 통해서 내 소식을 들은 것이 아닌가?]
“맞아. 원래 드워프들이랑 친했었군.”
폴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성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성지라고 부르는 이 신전의 크기는 제이슨의 성에 버금가는 곳이다 보니 샅샅이 뒤지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제이슨은 품에서 영상 기록 장치를 꺼냈다. 자신이 찾아보지 못하겠다면 이곳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찍어서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제이슨이 불쑥 물었다.
“그런데 넌 왜 영면에 든 거지?”
[복수는 꿈꿀 수 없었고, 일족의 끝이 보였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군. 그래서 영면에 들어갔다.]
“그런가?”
여왕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이슨은 말없이 신전의 모습을 구석구석 찍어주었다. 그렇게 신전을 찍던 제이슨은 멈칫했다. 그들이 만든 벽화 중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 물속에 있어서 이끼가 끼어 있는 벽화. 제이슨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 모습에 폴이 붉은 눈빛을 보내왔지만, 그건 이끼만 깔끔하게 깎아내는 신기에 가까운 검술이었다.
제이슨은 그렇게 이끼가 밀려 사라진 벽화를 보았다.
“흐음.”
제이슨의 옆으로 다가온 폴은 함께 벽화를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벽화는 없었는데?]
“지금 농담할 땐가?”
[농담 아닌데? 원래 이곳에 있던 벽화는 퀸의 죽음이다.]
“이거 보면 새로운 골렘의 탄생으로 보이지 않아?”
제이슨의 물음에 폴의 안색이 굳어졌다. 골렘의 뱃속에서 아기 골렘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이슨이 물었다.
“그런데 골렘이 성장하나?”
[아니. 태어날 때부터 더 성장은 하지 않는다. 격은 성장할지 몰라도.]
“그럼 저렇게 작은 골렘은 어떻게 된 거야?”
[저렇게 작은 골렘은 본적이 없다. 저건 골렘이라기 보다는 인간이 아닌가?]
제이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퀸이라는 골렘이 얼마나 큰지 몰라도 그 뱃속에서 나온 크기는 인간의 크기 정도였다. 제이슨이 그걸 가만히 바라보자 폴이 앞으로 나섰다.
[이럴 리가 없다.]
폴이 벽화에 손을 가져다 대자 손이 쑥 벽화 안쪽으로 들어갔다. 폴의 안색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도 그의 어깨로 다가가 앉았다.
“환영 마법인가?”
[누가 감히!]
이곳은 골렘에게 있어 성지나 다름없는 곳. 이곳에서 영면을 택했던 폴은 이곳에 누군가 손을 댔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런 폴의 어깨에 오른 채 말했다.
“들어가 보자.”
[그러지.]
분노한 폴이 쑥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곳에서 폴은 가만히 서서 더는 걷지 않았다. 그런 폴에게 제이슨이 물었다.
“왜?”
[이럴 수는 없다.]
그곳에는 20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골렘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배 부분이 열려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그 안에 누군가 타고 있다가 내린 것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제이슨은 벽화에서 보았던 모습에 물었다.
“퀸의 무덤이었어?”
[아니. 그분의 무덤은 이곳이 아니다. 사도들이 공격할 때 그들의 앞을 막아서다가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시신도 수습 못 한 거야?”
[그래. 그랬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가?]
폴은 퀸의 곁으로 다가가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제이슨은 그때 훌쩍 어깨에서 내려 퀸의 주위로 수영을 해갔다. 그리고 열린 뱃속을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기간트의 속과는 다르게 생겼지만, 확실히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이거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제이슨은 그런 퀸의 뱃속을 바라보다가 폴에게 말했다.
“안에 누가 타고 있었던 것 같은 상황이야. 정말 퀸이 맞아?”
폴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답했다.
[나도 확답을 못 하겠다. 내가 알던 퀸의 모습 그대로이거늘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는가? 성지가 가라앉고 이곳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키다가 잠이 들었는데? 그 세월만 천 년이 넘는다!]
폴의 외침에 제이슨은 잠시 고민했다. 폴이 이곳을 지키면서 살필 때와 달라진 점은 하나뿐이다.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것.
그 말은 이 벽화는 인간에게 반응하는 것이었다는 건가?
제이슨도 혼란스러웠지만,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제이슨의 시선이 폴을 향했다.
“폴.”
[왜 그러는가?]
“이게 정말 골렘의 퀸이라면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까지 신전에서 살핀 것 중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이니까.”
폴의 눈이 푸른 빛을 뿜어냈다. 그는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분노했지만, 굳이 분노를 터트리지 않았다.
상황은 그가 보아도 이상했으니까.
“네가 보살피는 천 년 동안 반응하지 않던 것이 내가 오고 나서 변했다면 이건 인간과도 무관한 문제로 보여. 그러니 여왕의 시신을 가지고 돌아가자. 엘하르트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폴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제이슨과 자신이 아무리 이야기를 떠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폴은 천천히 몸을 숙여 퀸의 몸을 안아 들었다. 천천히 일어난 폴이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부탁하지.]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찌를 만졌다. 성지인 신전을 찍는 것도 좋지만, 이것보다 확실히 의심 가는 것은 없었다. 그러니 우선은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제이슨의 팔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제이슨과 폴을 휘감았다. 그들은 그대로 공간 이동을 했다.
흑색 마탑으로 돌아온 제이슨은 폴이 좁은 공간 때문에 허리를 숙이고 퀸을 내려놓는 사이에 라마란스에게 연락했다. 이쪽으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을 이미 알았는지 라마란스는 곧장 공간 이동을 해왔다.
그리고 라마란스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퀸을 보고는 물었다.
“새로운 기간트를 구해온 건가?”
폴의 서늘한 눈이 향했지만, 라마란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제이슨은 그런 라마란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라마란스는 턱을 괴고는 퀸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벽화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이 자네 때문인 것 같다고?”
“내 생각은 그래. 그런데 그런 마법이 가능한가?”
“못할 것은 없지. 단순히 인간에 대응한 건지, 아니면 자네에게 특별히 대응한 건지는 모르겠군.”
“맞아.”
제이슨의 대답을 들은 라마란스는 폴에게 물었다.
“내가 퀸을 살펴봐도 되겠나?”
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다. 폴은 허공에 떠올라 퀸에게 다가가서는 제이슨과 마찬가지로 열린 뱃속을 살폈다. 열린 뱃속을 살피던 라마란스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이건 2미터보다 작은 존재가 안에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지. 당연히 그렇지. 골렘은 또 하나의 종족으로 코어를 심장으로 가진 존재들이니까. 섭식 활동이 필요 없는 존재들인 골렘의 뱃속에 뭔가 다른 존재를 품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라마란스는 입가에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더 궁금하군.”
라마란스가 그리 중얼거릴 때 그곳에 엘하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 이리 빨리 돌아온 거냐?”
엘하르트는 입에 사탕을 물고 들어오다가 라마란스가 살피고 있는 퀸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퀸 아냐?”
“너도 퀸을 알아?”
“알지.”
엘하르트는 훌쩍 다가와 퀸의 모습을 보다가 열린 배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이렇게 배를 딴 거야?”
라마란스가 설명해 주었다.
“배를 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살펴 봐라.”
그 말에 엘하르트가 이동해서 그 뱃속을 살피더니 인상을 굳혔다.
“이건··· 확실히 그렇군.”
엘하르트의 말에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엘하르트는 시선을 돌려 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라.”
[성지로 사도들이 쳐들어 왔을 때 그 앞을 막아서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네가 직접 본 것은 아니군.”
[하지만 전장에서 살아남은 골렘들은 모두 그렇게 말했다.]
엘하르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그녀가 이 정도로 대단한 존재인 줄은 몰랐구나.”
[무슨 소린가?]
엘하르트는 빨아먹던 사탕을 우드득 소리가 나게 부숴 먹고는 퀸의 가슴 위에 내려섰다. 폴의 눈이 붉게 물들었지만, 엘하르트는 개의치 않았다.
“껍데기에 연연하지 마.”
[껍데기?]
분노하는 폴을 제이슨이 말렸을 때 엘하르트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으며 답했다.
“그래. 껍데기.”
엘하르트는 퀸의 가슴을 밟고 올라가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퀸이 어떻게 골렘을 낳는지 알고 있나?”
폴은 더 화를 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엘하르트를 따르겠다고 했던 그의 눈에는 아직도 분노가 어려 있었다. 엘하르트는 그러거나 말거나 퀸의 가슴 위에 앉아서는 말을 이었다.
“사도들이 신력을 이용해서 인간들과 골렘을 만들었지. 인간은 남녀로 나눠서 둘이 만나야지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축복을 내렸다면, 그녀에게는 홀로 골렘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엘하르트는 입에 넣은 초콜릿이 다 녹았는지 또 다른 초콜릿을 꺼내서는 입에 넣었다.
“그건 일종의 신력이나 다름없었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이었으니까.”
제이슨은 폴을 바라보았다. 강철로 된 몸을 지녔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인간과 형태가 다르다고 하나 그가 살아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사도들이 골렘을 멸족시킨 것은 사실 퀸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
[무슨 소린가?]
낮게 깔린 폴의 분노한 목소리에 엘하르트는 그를 돌아보았다.
“퀸이 가진 힘. 그것의 위험성을 깨달은 거지.”
[뭐?]
“인간과 다르게 그녀는 홀로 골렘 일족을 만들었다. 그녀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감이 오나?”
제이슨은 그 말에 퀸의 껍데기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녀가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원할 때 골렘을 만들어낼 힘. 그건 창조의 영역이 아닌가?
엘하르트는 쓴웃음을 지은 채 퀸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녀가 이런 선택을 했을 줄은 몰랐군.”
엘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폴과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인간의 형태를 갖췄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인간 형태로 스스로 재탄생했고,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이는군. 그녀를 찾아와라.”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신전(2) > 끝
ⓒ 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