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23화 (124/151)
  • 신전(1)

    신전

    골렘의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그는 편하게 흑색 마탑 안에 앉아있었다. 그 상태로도 10미터에 달하는 키라 위압적으로 보였다.

    엘하르트는 인간 형태로 돌아와 그런 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골렘은 얼마나 나았지?”

    [내가 기억하기로 일족은 대략 100 정도 남은 것 같다.]

    “다들 영면에 들었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얼마 되지 않아. 내가 기억하기로 100여 체밖에 남지 않았다.]

    “멸족에 가깝군.”

    [하지만 도움이 되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군.”

    엘하르트는 느긋하게 의자를 가져다 앉고는 다리를 꼬았다.

    “연락할 방법은 있나?”

    [있었지만 지금은 될지 모르겠군.]

    “가능하다면 해 봐라.”

    골렘은 잠시 눈을 감는가 싶었지만, 곧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군.]

    “모두 잠이 든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엘하르트는 입을 열었다.

    “골렘 족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나?”

    [전해지는 이야기?]

    “인간들은 우리와 맹약을 맺을 수 있지만, 골렘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들어 본 적이 없군.”

    [흐음.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군.]

    “뭔가 이야기가 있을 거다. 혹시 너희들의 성지가 있나?”

    [그 부분이라면 내가 잠들었던 곳에 있다. 그곳으로 가보겠는가?]

    엘하르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당장은 내가 움직일 수 없다. 네가 온 것을 느끼고 나와 본 것이지 아직은 봉인을 온전히 풀지 못했으니까.”

    [무엇을 찾는지 알아야 할 텐데?]

    엘하르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나도 뭘 찾아야 할지. 다만 그곳에 가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제이슨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 깊은 심해로 다시 들어가봐야 하게 생겼다.

    “좋아. 우선은 가보자. 찾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제이슨의 말을 들은 라마란스가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시간이 된다면 나도 가보고 싶었는데.”

    “작업은 어떻게 돼 가?”

    “거의 끝나 간다. 하지만 히어로급 기간트도 작업을 해야 돼서 시간 내에는 무리야.”

    제이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라마란스 부탁하지. 이곳에는 카젠까지 있으니 걱정할 건 없을 거야. 나는 폴과 함께 가겠다.”

    엘하르트는 그런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골렘에게 전해지는 전설이 있을 거야. 사도들이 그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신의 의지가 깃든 일일 거다. 아마 그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것이 틀림없을 터. 그러니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아와.”

    “뭘 찾는지도 모르지만 찾아야 한다는 거지?”

    제이슨의 시선이 라마란스를 향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들이 있어.”

    “뭐든 말해 봐. 도와주지.”

    제이슨은 자신이 던전 탐사에 필요한 것들을 말했고, 라마란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하나둘 꺼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제이슨의 시선이 폴을 향했다.

    “가자. 폴.”

    [그러지.]

    제이슨이 팔찌를 만지자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나 제이슨과 폴을 감싸 안았고, 둘은 곧 사라졌다. 그 자리를 바라보던 엘하르트가 돌아서자 라마란스가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어?”

    “곧.”

    간단히 대답한 엘하르트가 사라졌다.

    호수 위에 나타난 제이슨은 폴과 함께 물속에 빠졌다.

    [날 잡아라.]

    잠수하는 데는 무거운 폴과 함께 있으면 된다. 가만히 있어도 물에 빠질 수 있는 폴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덕분에 제이슨도 그를 따라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제이슨은 이 어두움 속에 눈이 익기를 바랐지만, 역시 무리였다. 그래서 제이슨은 품에서 이번에 가지고 온 마법 구를 작동 시켰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주위의 어둠이 밀려났다. 폴이 그걸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면 온갖 것들이 꼬일 거다.]

    제이슨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괴물을 보았다.

    “이것들 다 죽여도 되는 건가?”

    제이슨이 묻자 폴이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의 성지를 지키는 존재들이니까.]

    그리 말하고 폴이 격을 개방했다. 그 존재감에 다가오던 괴물들이 후다닥 물러났다. 폴은 그렇게 자신의 기운을 뿜어내며 수면 아래로 향했다.

    그렇게 수면 아래로 내려가던 폴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제이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저건 아닌가 봐.”

    폴이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다가오는 존재가 있었다. 길이만 4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존재.

    “저건 대체 뭐야?”

    [호수의 지배자.]

    폴이 그 앞에 서며 말했다.

    [정확히는 새로운 지배자라고 해야겠군. 내가 잠들 때까지만 해도 없던 녀석이니까.]

    그제야 제이슨도 거대한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그 이빨 하나의 크기가 제이슨보다 더 큰 거대한 물고기. 그 날카로운 비늘이 사방으로 일어서며 찬란하게 빛났다.

    제이슨은 그런 상대를 바라보며 스노우와 함께 만났던 괴물을 떠올렸다. 운명을 엿볼 수 있었던 괴물. 이 지역의 패자나 다름없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조차 없는 괴물. 그 괴물을 바라보던 제이슨이 폴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이라면 더 오래 산 괴물이 여기 있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도와줘?”

    [아니. 이곳의 주인이 우리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줘야지.]

    폴은 그리 말했고, 제이슨은 뒤로 수영해서 물러났다. 그런 제이슨을 바라보던 폴의 시선이 물고기를 향했다. 말이 물고기지 이미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

    [말조차 깨우치지 못한 조잡한 것아. 이 호수는 우리의 것이었다. 내 영면을 깨우는 짓은 용납하지 않는다.]

    물고기가 크게 입을 벌렸다.

    크와아아아!

    바닷물이 그 외침에 밀려날 정도로 거대한 광량. 폴은 그런 물고기를 바라보다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둘의 간격이 줄어들었을 때 폴이 주먹을 내뻗었다.

    그의 주먹이 닿는 곳은 그 자체가 지워진다. 그것이 그가 깨달은 능력. 지금 그의 주먹이 나아가는 곳에서 물고기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움직임으로 그 주먹을 피했다.

    유려하게 미끄러져 피한 후에 날아든 꼬리에 폴이 주먹을 마주 휘둘렀다.

    콰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으나 물고기의 꼬리 비늘이 깨졌을 뿐. 꼬리는 멀쩡했다. 그리고 그 꼬리에 부딪힌 폴이 뒤로 쭉 밀려났다.

    제이슨은 자신이 있는 곳까지 밀려난 폴의 어깨에 올라서며 말했다.

    “도와줘?”

    [됐다!]

    폴이 진심으로 감정을 표하는 것 같아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 그런 데도 그 성격은 남아있었다.

    폴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연달아 주먹을 내뻗었다. 비늘이 깨져 나가더라도 큰 손해는 입지 않을 정도로 물고기는 단단했지만, 상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제이슨의 참격에 버금가는 가공할 권격. 그것을 연달아 쳐내니 물고기도 입을 열었다. 그리고 토해낸 것은 날카로운 이빨들이었다.

    자신의 이빨을 무기처럼 쏟아내는 공격. 그 공격에 제이슨도 눈을 크게 떴다. 저 이빨들은 폴의 권격을 뚫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왔고, 또한 단단했다.

    그 와중에 많이 부서졌지만, 몇 개는 폴의 몸에도 박혔다. 그게 폴의 신경을 건드렸다.

    폴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물고기에게 더 접근해서 치고받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자신을 향해 날아온 이빨을 검으로 쳐냈다가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폴의 단단한 장갑은 제이슨의 참격도 견뎌냈었다. 그런 폴의 장갑에도 박힐 정도로 단단한 이빨을 가진 물고기와의 싸움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었다.

    그만큼 물고기는 강했다.

    하지만 폴은 조금씩 승기를 가져왔다. 폴 정도 되는 이가 이런 개싸움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구경하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20미터짜리 골렘과 40미터짜리 물고기의 싸움.

    그 싸움이 점점 심화되는 것을 보며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간다면 폴이 이기겠지만, 상처투성이가 되어서야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제이슨은 검을 들었다. 엘파이트에 타지 않은 상태. 하지만 검의 크기는 그가 펼치는 검격에게 의미가 없었다.

    어지러이 치고받는 폴과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제이슨은 숨을 골랐다. 흐릿하게 보이는 운명의 선. 이 선이 제대로 보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선이 어지러이 휘어져 보였다. 참격을 날릴 수 없는 형태.

    하지만 제이슨은 어쩐지 그 형태를 따라 검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제이슨은 그 길을 따라 검을 뻗었다.

    이리저리 꼬인 검로를 따라 뻗어 나가는 검. 그렇게 뻗어 나간 검은 폴의 옆구리를 지나 물고기의 심장에 닿았다.

    비스듬히 찔러 들어간 참격. 그렇게 베어졌다.

    폴의 주먹질에도 버티던 비늘이 마치 두부가 갈라지듯 갈라졌고, 그렇게 나아간 검은 물고기의 몸을 사선으로 베어냈다.

    제이슨도 자신의 검이 어떻게 물고기를 베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오직 운명을 엿보는 검에 집중했고, 그 운명의 길이 어지러웠다고 하나 결국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렇게 물고기가 베어졌다.

    [무슨 짓이냐!]

    “미안. 잠깐 깨달음이 있어서.”

    폴은 그 말에 더는 화를 내지 못했다. 같이 사도를 상대하기로 한 이상 제이슨은 아군이었다. 그가 얻은 깨달음을 펼치기에 이만한 상대가 없었다는 말이니 그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가 펼쳤던 검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자신의 장갑이 견뎌냈던 참격과 달랐다.

    세상이라도 베어낼 것 같은 참격은 사선으로 뻗어 나가는 검격이 되었고, 그 날카로움은 더해졌다. 그것은 자신의 장갑도 견디지 못할 참격이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

    폴은 가만히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바라지도 않았어. 그보다 이거 사체 내가 가져도 되나?”

    [내가 먹을 것도 아니고, 가져가라.]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 물고기의 시체를 넣었다. 꼼꼼히 비늘부터 시작해서 이빨까지 수거했다. 그렇게 집어 넣으니 아공간 주머니가 꽉 찼다.

    내단과 같은 것은 스노우에게 먹이고 나머지는 라마란스에게 줄 생각이었다. 이 비늘은 지금까지의 어떤 합금도 도달하지 못했던 것. 그 가치는 무궁무진할 터였다.

    제이슨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폴이 말했다.

    [그 혈향 때문에 모두가 도망간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곳의 지배자나 다름없었던 물고기의 피였다. 이름조차 모르지만, 그 혈향에 괴물들이 도망가는 것은 당연한 일.

    폴은 제이슨이 작업을 마치도록 기다렸다가 앞장 섰다.

    [거의 다 왔다.]

    제이슨이 폴의 어깨에 오르자 다시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깊고 깊은 곳에 처음으로 라마란스가 일으킨 마법의 불빛이 닿았다.

    바닥에 닿았을 때 먼지가 뿌옇게 일어 시야를 가렸다. 잠시 기다리니 먼지가 가시면서 그곳의 전경이 드러냈다.

    “이게 다 뭐야?”

    이끼가 끼고, 더렵혀 졌다고 하지만 제이슨의 증축한 성보다 더 거대한 신전이 그곳에 있었다.

    [이곳은 우리의 성지. 사도들이 신력을 빌려서 가라앉힌 곳이다.]

    이만한 크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제이슨은 가만히 그 성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뭘 찾아야 하는 거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성지이니 정말로 우리의 탄생에 대한 비화가 있다면 이곳에 남아있겠지.]

    제이슨은 자신을 압도하는 크기의 신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곳에 정말로 신이 골렘을 탄생하게 한 이유가 남아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