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22화 (123/151)

폴(2)

제이슨은 그 목소리에 고개를 내려 더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곳. 그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문제는 제이슨이 물 속에서 말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제이슨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대답 대신 검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러를 한껏 집어넣었다.

촤아악!

주위를 밝히는 강렬한 빛. 제이슨은 그 빛으로 저 아래를 겨누고는 방출했다.

상대가 골렘이라면. 이런 목소리를 내는 상대라면 과연 자신의 오러에 어떻게 반응할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제이슨이 쏘아낸 오러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아득하게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던 빛이 사그라지기 전에 저 아래에서 강렬한 빛이 일었다.

그것은 제이슨이 쏘아낸 오러가 폭발하는 장면.

제이슨은 그래서 더 재미있겠다 싶었다.

[무례하군.]

한마디 대답과 함께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감이 여실히 느껴지는 상대를 바라보던 제이슨은 저 어둠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존재가 쏘아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처음 보는 느낌의 오러였다. 마치 강철처럼 단단함이 느껴지는 오러. 그 순도 높은 오러를 향해 제이슨은 참격을 날렸다.

쯔걱.

반으로 갈라진 오러. 그리고 그 뒤를 향해 날아간 참격이 막혔다.

쩌엉!

그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제이슨의 참격을 몸으로 받아내는 존재가 있었다. 그가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제이슨은 자신의 참격이 베어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그런 제이슨을 향해 어둠 속에서 주먹을 뻗는 존재의 형체가 이제는 눈에 들어왔다.

검은 형체에 그 신장이 무려 20미터에 달하는 거구. 에고 기간트조차 우습게 볼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다. 그런데 검은 골렘이 쏘아낸 주먹에서 날아든 것은 거대한 공기포였다.

쾅!

제이슨이 그걸 참격으로 받아냈을 때 수면 방향으로 쭉 밀려났다. 그리고 그제야 저 주먹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참격이 세상을 베어낼 수 있는 검격이라면 저 골렘이 뻗은 주먹은 일정 공간을 파괴하는 공격이었다. 제이슨의 공격과 비슷한 격을 지닌 공격기.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참격을 몸으로 받아낸 상대였다. 이거 어째 위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제이슨은 수면 위로 도망쳤다.

그러나 상대의 속도가 제이슨보다 훨씬 빨랐다. 게다가 무례한 자신을 향해서 골렘은 거침없이 주먹질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참격으로 그 공격을 받아내면서 그 힘의 충돌 여파를 이용해서 수면 위로 쭉쭉 밀려났다.

골렘도 그제야 제이슨이 도망치려는 것을 깨닫고는 주먹질을 멈추고 위로 솟구쳤다. 손을 내뻗어 거머쥐려는 골렘의 손아귀를 향해 검을 휘둘러 그 여파를 이용해 수면 위까지 솟구친 제이슨이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제이슨의 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무지개를 일으킬 때 수면이 검게 물들며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악!

사방으로 흩날리는 물방울들이 그려내는 무지개를 바라보며 제이슨은 엘파이트를 소환했다. 엘파이트에 오른 제이슨을 보고 골렘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골렘과는 다르다. 기계로만 보였던 골렘과 다르게 지금의 골렘은 인간에 가까웠다. 인간을 닮은 얼굴. 그 얼굴에 담긴 표정까지 읽혔다.

그런 골렘은 엘파이트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마도 시대에 인간이 만들었던 헛짓거리군.]

냉담한 말투. 하지만 제이슨은 개의치 않았다. 고대를 살아왔던 골렘일 테니 마도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엘파이트는 단순한 기체가 아니다.

엘파이트는 엘하르트에 의해서 더욱 강화된 상태였고, 그 성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제이슨이 탑승하고 있었으니까.

제이슨은 엘파이트에 오른 채로 골렘을 향해 검을 겨누며 말했다.

“네 잠을 깨운 것은 사도와 대적하기 위해서다.”

골렘은 그 말에 가만히 제이슨을 내려다보았다. 엘파이트에 오른 상태에서도 골렘은 까마득히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골렘의 표정을 보고 제이슨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저만한 크기의 골렘에게 인간과 같은 표정을 볼 수 있다니 우스울 따름이다.

골렘은 가만히 제이슨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주먹을 쥔 채 입을 열었다.

[인간의 오만함은 여전하구나. 사도와 대적하겠다고?]

골렘이 주먹을 내리쳤다. 제이슨은 그 주먹질을 향해 마주 검을 휘둘렀다.

콰앙!

참격으로만 받아낼 수 있는 주먹질. 수면 위에서 주루룩 뒤로 밀리며 발밑에서 물보라가 일었다. 제이슨은 엘파이트가 수면 위에서 싸울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다.

물론 지속적으로 오러가 소모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수면 위에서 싸울 수 있으니 골렘과 정면에서 대적할 수 있었다.

“그게 네 대답인가? 사도에게 쫄아서 저 깊은 호수 아래에 영면을 핑계로 도망친 것이?”

골렘의 푸른 눈이 더욱 사납게 빛났다. 그가 재차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인간들은 잊었는가? 사도에게 도전하고 마도 시대라고 칭하던 너희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골렘이 재차 내리치는 주먹을 제이슨은 참격으로 튕겨냈다.

퍼엉!

골렘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스러움이 생겼다. 제이슨이 자신의 공격을 튕겨낼 줄은 몰랐나 보다. 제이슨은 기간트에 오른 이상 보여줄 수 있는 한계치가 아득하게 올라간 상황이었다.

제이슨은 골렘을 향해서 재차 검을 휘둘렀다. 제이슨의 참격을 골렘은 팔을 들어 받아냈다.

꽈앙!

하지만 바닷 속에서 받아냈을 때와는 다르다. 기간트에 올랐을 때만큼은 제이슨은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으니까. 몸이 반쯤 물에 잠겼다가 다시 올라선 골렘의 인상이 굳어져 있음이 보였다.

제이슨은 골렘이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끌고 갈 마음이었다.

“그렇게 꼬리를 말고 잠이나 쳐 잘 거라면 이 자리에서 그냥 영원히 잠들게 해주마.”

제이슨이 연달아 검을 뻗으며 쉐일링에게 뜻을 전달했다. 수면 아래로 움직인 쉐일링이 골렘의 팔과 다리를 구속했다.

[쉐일링?]

같은 시대를 살아서 그런지 멸족한 쉐일링에 대해서도 아나 보다. 제이슨은 골렘이 쉐일링을 뿌리치기 전에 그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쩌엉!

가슴에는 코어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펼친 공격이었다. 죽으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긴 일격. 코어만 회수해서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뻗었던 공격이었는데 코어를 지키는 힘은 또 달랐다.

골렘은 제이슨의 공격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전신에서 강렬한 기파를 터트렸다.

쉐일링도 그 충격에 잠깐 밀려났을 때 골렘의 눈이 붉게 변했다. 푸르게 빛나던 때와는 그 분위기가 돌변했다.

진심으로 싸우겠다는 것이 느껴지는 상대에게 제이슨은 솜털이 곤두서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고 둘의 간격이 완전히 줄어들었다.

쩌저정!

제이슨은 날아드는 골렘의 주먹질을 모조리 쳐내기 시작했다. 호수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물보라 덕분에 사방에 무지개가 피어오를 때 제이슨은 골렘의 능력을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골렘의 신장을 움직이는 코어의 힘을 생각한다면 그 출력량은 에고 기간트들을 아득히 상회한다. 게다가 참격과 같은 격이 높은 저 주먹질.

그 일격에 담긴 힘을 튕겨내기조차 쉽지 않았다.

제이슨은 이렇게까지 위기에 몰리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그 공격을 흘려내는 것에만 집중하던 제이슨은 검으로 흘려내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상대의 힘을 온전히 흘려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의 일부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이라 그렇게 검에 상대의 힘의 일부를 남겼다가 되받아치면서 써버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점점 익숙해졌다.

엘하르트에게도 배우지 않았던 것. 제이슨은 그렇게 조금씩 골렘의 공격을 검 끝에 매달아 놓았다. 그렇게 모은 힘을 이용해서 제이슨은 참격을 날렸다.

제이슨의 반격을 보고 골렘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스걱.

평상시처럼 팔로 막아내지 않고 피했지만, 둘의 간격이 너무 좁았다. 게다가 제이슨의 검도 예상을 웃돌 정도로 빨랐다. 그래서 골렘의 어깨 갑옷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방어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골렘은 양 주먹을 힘껏 내뻗었다. 제이슨은 그것을 아래로 찍어 누르고는 그 충격을 이용해서 뒤로 훌쩍 날아 수면 위에 내려섰다.

쉐일링이 돌아와 제이슨의 그림자가 되었다.

제이슨은 숨을 돌리며 골렘에게 물었다.

“골렘은 모두 너처럼 강한가?”

제이슨의 물음에 골렘은 자신의 잘려나간 어깨를 바라보다가 제이슨에게 시선을 주었다. 붉었던 눈이 푸른 빛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일족의 전사장 폴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도 이제 내 소개를 하지.”

제이슨은 폴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나는 마스터 제이슨 폰 하르트 대공이다. 쉐일링의 계약자이자 엘하르트의 맹약자. 그리고 라마란스와 카젠을 데리고 사도와 대적하고자 한다.”

폴의 표정이 변했다.

[아크 리치 라마란스와 용마인 카젠?]

“그래. 감옥에서 꺼냈지.”

폴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엘하르트가 설마 찬탈자인가?]

“맞아.”

폴은 가만히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찬탈을 꿈꾸는가?]

“그건 모르지. 하지만 사도는 쓰러트리겠다고 했으니까.”

폴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말했다.

[우선 찬탈자를 만나고 싶다. 네 말만 믿을 수는 없으니까.]

“나와 함께 갈 준비는 됐나?”

[물론이다.]

골렘을 만나겠다고 했던 엘하르트의 말이 떠올랐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 라마란스가 준비해 준 팔찌를 이용했다. 이렇게 거대한 상대를 만날 줄은 몰랐지만,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빛과 함께 나타난 마법진을 통해서 그들은 흑색 마탑에 도착했다.

쿵!

공간 이동하는 공간은 흑색 마탑 내부의 장소로 기간트 수리도 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도 폴에게는 좁았다. 폴은 머리를 부딪치고는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소동을 듣고 나타난 라마란스는 폴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정말로 골렘을 찾았군. 그곳에 있던가?”

“맞아. 이름은 폴. 골렘 일족의 전사장이었다고 하더군.”

라마란스를 바라보던 폴이 입을 열었다.

[이름은 들었었다. 아크 리치 라마란스.]

라마란스는 키득거렸다.

“이거 영광이군. 골렘 일족이 사라진 지도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내가 이름을 떨쳤는데.”

[일족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드워프들을 도와주었다.]

제이슨은 그 말에 불사조를 잡았을 때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를 떠올렸다. 그 거대한 창. 엘파이트에게는 랜스 차징에나 쓸 만한 물건이었지만, 전사장 폴에게는 일반 창이나 다름 없었으리라.

폴은 라마란스를 보고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찬탈자를 만나고 싶다.]

폴의 대답에 라마란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지금 봉인을 풀러 갔다.”

[그런가? 볼 수 없는 건가?]

폴의 중얼거림에 대한 답이 들려왔다.

“나를 찾았다고?”

폴이 고개를 돌린 곳에 엘하르트가 서 있었다. 그를 본 폴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겠다. 찬탈자. 그대는 진정 사도들을 쓰러트릴 건가?]

“당연한 말을 하는군. 별것 아닌 것들이 신인양 행세하는 꼴을 볼 순 없으니까.”

엘하르트는 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앞에서 신의 행세를 하는 자는 죽는다.”

그 말에 담긴 의미가 그대로 전해졌다. 폴은 천천히 무릎을 꿇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일족의 원수. 12사도와 싸우겠다고 한다면 일족의 전사장 폴. 그대에게 내 목숨을 걸겠다.]

엘하르트는 본체로 현신해서는 무릎 꿇은 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난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이번에야말로 신을 죽여주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