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21화 (122/151)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폴(1)

    블루 마운틴 일족의 흑맥주는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딱히 맥주를 더 즐겨 먹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어지간한 명주조차 우습게 볼 정도로 깊이가 있는 맛이었다.

    그런데 이건 맥주인 주제에 왜 이리 도수가 높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술을 마구 비우던 제이슨은 어느새 자리가 술 싸움 분위기로 넘어가자 쉐일링에게 넘겼다.

    쉐일링이 쭉쭉 흑맥주를 받아먹으면서 기분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드워프들을 모두 쓰러트린 제이슨은 드워프들의 열띤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어째 불사조를 잡고 태양석을 구해왔을 때보다 더 환대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들과 교류하지 않기에 인간 최초로 그들의 친구가 된 것도 보람이 있었지만, 여기서 얻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크가 안내한 곳에서 그들이 지금까지 제작한 수많은 물건들을 볼 수 있었다.

    제이슨은 신검이라고 불릴만한 물건들을 바라보다가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치 자신을 위해서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균형 잡힌 무게감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바스타드 소드 대신 롱소드를 위주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 딱 맞았다. 그래서 제이슨은 앞으로 자신의 애병으로 삼기로 하고 검을 받았다.

    그런데 더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펠릭스의 무기도 하나 건네줬다. 그들이 신병이기를 만들어도 드워프들이 쓰는 무기가 아니면 창고에 쌓아만 놓다 보니 기회가 왔을 때 내준 것 같았다.

    그 덕에 펠릭스도 자신의 무기를 바꿨다.

    새로운 무기가 마음에 드는지 그 무뚝뚝한 펠릭스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제이슨은 그 뒤로 골렘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태양석 교체 작업도 지켜봐야 했다.

    50미터 천정에 박힌 것을 어떻게 뽑나 싶었는데 더크가 발에 이상한 신발을 신고 벽을 밟고 올라갔다. 천정에는 거꾸로 서야 했는데 신기하게도 신발은 딱 천정에 붙어 있었다.

    마법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가 싶었지만, 더크는 굳이 그것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고 천정에 박힌 태양석 교체 작업을 했다.

    어렵지 않게 태양석을 뽑아낸 더크는 다시 태양석을 꽂아 넣었다.

    우우웅.

    전과 다르게 도시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더니 그곳을 중심으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농담처럼 들었는데 대체 마법도 없이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한가 싶었다.

    제이슨은 그렇게 환하게 도시를 비추는 태양석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전에 쓰던 태양석 제게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걸 달라고?”

    불사조의 심장. 그 힘이 거의 다 됐다고 하지만 굉장한 물건임은 틀림없었다. 더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이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반을 주지.”

    “감사합니다.”

    불사조의 심장이라면 라마란스가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망치를 꺼내든 더크는 절묘하게 태양석을 반으로 쪼개서는 제이슨에게 던져줬다.

    제이슨은 태양석을 받아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는 더크와 함께 돌아왔다. 도시의 드워프들은 태양석이 돌아온 것에 대해 열광하고 있었다.

    신나서 흑맥주 축제가 벌어지는 것을 뒤로하고 제이슨은 더크와 개별 면담했다.

    “더크. 저는 골렘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더크는 제이슨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내가 말해줄 것은 골렘족들이 어디인지는 알려줄 수 없네. 다만 골렘 중 하나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어 그것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일 뿐일세.”

    제이슨은 누구든 골렘족을 만나면 상관 없다고 여겼다. 이미 멸종한 줄 알았던 그들을 다시 만나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떨리는 일이었으니까.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에 대한 전설이 남아있네.”

    제이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쩐지 뭔가 더 남아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더크는 길게 끌지 않고 설명해줬다.

    “전대 불사조 사냥을 도왔던 골렘이 있네. 그가 그때 사용했던 창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 자네가 사용했던 창일세.”

    “그랬군요.”

    “그 골렘은 어디로 갔습니까?”

    “더는 이 세상에 살 수 없으니 스스로 봉인에 들어간다고 했네.”

    “혹시 그 위치도 아십니까?”

    더크는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세 마리 용이 만나 눈을 감은 곳. 그곳에 잠들겠다고 했네.”

    “예?”

    제이슨이 이건 또 무슨 참신한 소리인가 싶어서 바라보자 더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우리에게는 그 말만 남겨 놓았네.”

    제이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더크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부린 값으로는 너무 싼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제이슨을 따라 일어난 더크가 손을 내밀었다.

    “일족의 친구인 자네는 언제든 환영이네.”

    “그럼 다음에 찾아뵙도록 하죠.”

    제이슨은 이 인연을 마다치 않았다. 자신을 부린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많은 것을 얻은 일정이었으니까.

    제이슨은 펠릭스와 만나 공간 이동으로 라마란스에게 돌아왔다. 선문답 같은 소리에 대한 답을 제이슨은 알지 못했으니 라마란스에게 묻기로 했다.

    일행 중 가장 똑똑한 이는 그였고, 고대 시대를 살아왔으니 골렘의 마지막 말에 대한 단서를 알 수도 있을까 싶었다.

    제이슨이 돌아온 것을 보고 라마란스는 담담히 물었다.

    “뭔가 잔뜩 고생만 한 표정이군.”

    “잔뜩 고생만 한 건 아닙니다.”

    제이슨이 품에서 태양석을 꺼내 들자 무심코 그곳에 시선을 주었던 라마란스의 눈이 커졌다.

    “아니, 이걸 어디서 구한 건가?”

    “알아본 건가?”

    “이거 불사조의 심장 아닌가? 비록 반쪽이라고 하나 불사조는 고대에도 멸종이 되어버린 녀석들이었는데.”

    블루 마운틴 일족이 사육하고 있었으니 멸종이라고 할 만도 했다. 그 정보를 밖으로 빼내지 않았을 테니까.

    제이슨은 담담히 답했다.

    “어때?”

    “비록 반쪽에다가 가장 중요한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충분히 뛰어난 물건이다.”

    “이걸로 뭔가 할 수 있어?”

    라마란스는 보기 드물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 이용하면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나올 거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는군.”

    이렇게 라마란스가 좋아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제이슨은 기뻐하는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골렘이 떠나면서 남긴 수수께끼가 있는데 풀어 줄 수 있어?”

    “말해 봐.”

    수수께끼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한 라마란스에게 제이슨은 자신이 들었던 말을 해줬다.

    “세 마리 용이 만나 눈을 감은 곳. 그곳에 잠들겠다.”

    그 말을 들은 라마란스는 바로 답을 해줬다.

    “세 마리의 용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강을 이르는 말이지. 고대에나 쓰던 말인데 확실히 골렘이 남긴 말 같군. 라카이 강과 글누 강, 엔실리 강이 만나는 곳이야.”

    “눈을 감았다는 말은?”

    “그곳에 깊은 동굴이 있나 보지. 아무튼 그곳으로 가봐야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

    “같이 갈 건가?”

    “아니.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위치를 하나 알아냈으니 그곳으로 보내주지.”

    “이번에는 혼자 가는 건가?”

    “쉐일링이 있잖아.”

    그리 말한 라마란스가 손을 내밀자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제이슨이 말하기 전에 그를 날려보냈다. 라마란스는 제이슨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는소리 하지 말라고, 지금 할 일이 자네 덕분에 팍팍 늘어났으니.”

    그리 말하며 라마란스는 태양석을 작업대 위에 올려 놓았다.

    첨벙.

    아무리 수중에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고 하지만 드넓은 호수 중앙에 제이슨을 공간 이동한 덕분에 물에 빠져 버렸다. 제이슨은 물 위로 올라와 수면 위에 떠서는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수중 호흡기를 꺼낸 제이슨은 그걸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마스터가 되도 달라진 것이 없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 잠수를 시작했다. 세 개의 강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인 만큼 대륙의 젖줄로도 불린다. 그러다 보니 그 강의 너비는 반대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

    그런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 어찌나 넓을 것인가? 이곳에 온 이들은 그곳이 바다인 줄 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압도적인 크기 덕분에 수평선이 보이는 곳이었으니까.

    그런 곳의 아래에 있을 수중 동굴을 찾으라고 했다. 제이슨은 수중 호흡기를 차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서는 빛도 닿지 않는 컴컴한 곳에 시선을 주었다.

    얼마나 깊은지 남색에서 검게 변해버리는 곳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품에서 구슬을 하나 꺼냈다. 가볍게 터치하자 구슬이 빛을 뿜어내며 주위를 밝히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그 불빛에 의지한 채 수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려가던 제이슨은 자신이 밝힌 불빛이 사방에서 뭔가를 불러들인 것을 깨달았다.

    그걸 본 제이슨은 고개를 내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제이슨의 주위에 나타난 것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수중 몬스터들이었다. 그 중에는 10미터에 달하는 길이를 지닌 서펀트도 있었다.

    제이슨은 그것들을 시야에 담고는 검을 고쳐 쥐었다. 단 일검에 저들 모두를 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곳은 깊은 물 속.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곳이었다.

    그때 제이슨의 뒤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방으로 검은 어둠을 쏘아냈다.

    퍼퍼퍼퍽!

    다가오던 괴물들이 모조리 머리가 터져 죽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새삼 이 어둠이 자신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에는 쉐일링이 활개치기 좋은 곳이었다.

    제이슨은 머리를 아래로 발을 위로 올리고는 발을 내저어 점점 더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니 그의 앞에 한 명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을 보고 제이슨은 픽 웃음을 흘렸다.

    “눈 호강 시켜줘서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제이슨이 검으로 겨눌 때 그의 앞으로 쩍 벌린 입이 보였다. 그 입의 크기는 10미터가 넘었다. 엘파이트를 타고 있었다고 해도 삼켜질 상황이었다.

    제이슨이 나서기 전에 쉐일링이 상대의 벌어진 입을 막았다. 입이 위아래로 벌려진 채 당황하는 괴물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제이슨은 그사이 참격을 날렸다.

    쩌억!

    괴물이 반으로 갈리며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짙은 혈향을 맡으며 제이슨은 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 와중에 자신을 현혹했던 헐벗은 여인이 사실은 괴물의 머리 위에 달린 미끼였다.

    제이슨은 그걸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째 이 길이 순탄치 않아 보이네.”

    제이슨은 그 혈향을 맡고 몰려드는 수많은 수중 괴물들을 보았다. 깊어질수록 강력한 괴물이 나온다. 골렘은 어떻게 이런 곳 아래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궁금하지만 멈춰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제이슨이 조금 더 깊이 들어갔을 때 그의 곁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수중 괴물들 사이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깊은 해저 동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인 것처럼 웅웅 울리는 목소리였다.

    [누가 나의 잠을 깨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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