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19화 (120/151)
  • 불사조의 심장(1)

    세 가닥 수염의 드렐을 따라간 제이슨과 펠릭스는 도시 중앙에 있는 5층 높이의 탑까지 걸어갔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갑옷을 입은 일단의 무리들 사이에서 부리부리한 눈매에 떡 벌어진 어깨. 상의를 벗어젖힌 새하얀 수염의 드워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딱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영감이라고 부르는 족장이 그라는 것을.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또한 오러를 익혔으며 그 경지가 대충 봐도 오러 유저의 한계는 넘어가 있었다.

    마스터에 한 발 걸친 것 같은 모습.

    그래서 그런지 영감도 한눈에 제이슨을 알아보았다. 그는 느릿하게 들고 있던 창으로 제이슨을 겨눴다. 제이슨은 검을 뽑지 않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영감은 창으로 제이슨을 겨눈 채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

    “여쭤 볼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제이슨이 정중하게 말을 걸자 영감은 가만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드렐. 이 미친놈아! 어디 허락도 받지 않고 인간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냐!”

    “너무 뭐라고 하지 마쇼. 지금 도시 문제를 생각하면 두더쥐 발이라도 빌려야 할 판 아뇨!”

    “뭐? 그래서 인간의 도움을 얻자고?”

    “별수 있소? 아무튼, 뭐 우리한테 바라는 것이 있나 본데 그럼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아뇨? 그럼 난 가보겠소!”

    손을 휘휘 흔들어 보인 드렐이 후다닥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영감은 제이슨을 바라보다 그의 곁에 선 펠릭스에게 시선을 줬다.

    “응? 넌 누구냐?”

    “그레이 마운틴 일족의 검은 수염의 아들 펠릭스라고 합니다.”

    “검은 수염? 아! 그 엉덩이 가벼운 꼬마 말이구나.”

    영감은 그리 말하고는 아직도 제이슨을 겨눈 창을 천천히 거뒀다.

    “좋아. 드렐 저 미친놈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만 이미 들어온 이상 쫓아내기도 힘들겠군. 따라와라.”

    영감이 뒤돌아서자 그의 뒤를 따라 나온 이들도 옆으로 길을 열어줬다. 제이슨은 펠릭스와 함께 그 뒤를 따라갔다. 탑에 들어가니 제이슨은 새삼 이들이 드워프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을 깎아서 만들었는데도 흠잡을 데 없는 명품 조각들이다. 제국의 황실조차 이것에 비하면 평범해 보이는 조각들.

    제이슨은 그때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밖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의 50미터 높이의 천장에서 도시를 밝혀주던 빛이 사라졌다.

    대낮처럼 환하지는 않았지만, 주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빛이 사라졌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 이들에게 저런 물건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잠시 후 다시 밝아졌다. 보이지 않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는지 영감은 이미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다른 드워프들도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앉아.”

    제이슨은 과연 앉아도 되나 싶은 명품 돌의자를 바라보다가 앉았다. 펠릭스도 자리에 앉자 그제야 영감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더크다. 블루 마운틴 일족의 족장을 맡고 있지.”

    “제이슨이라고 합니다.”

    제이슨이 소개하자 그를 바라보던 더크가 옆에 놓인 창을 천천히 들어 제이슨을 가리켰다.

    “왜 찾아왔는지 우선 들어 볼까?”

    제이슨의 경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기에 이렇게 주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제이슨은 아직도 검을 뽑지 않고, 그의 물음에 답했다.

    “골렘을 찾고 있습니다.”

    “골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인지 더크는 잠시 멈칫했다가 제이슨에게 물었다.

    “갑자기 골렘은 왜 찾아?”

    “어디까지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사도들과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12사도를 말하는 건가?”

    제이슨은 더크가 의외로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더크는 창을 거두더니 제이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가 골렘을 찾는 건가?”

    “찬탈자요.”

    “찬탈자? 그가 아직 살아있나?”

    이제는 제이슨이 궁금해졌다. 더크는 어떻게 그들까지 아는 것일까? 제이슨의 눈빛을 받으면서 더크는 입을 열었다.

    “뭘 그렇게 봐?”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겁니까?”

    “인간들은 그들에 대한 역사를 지웠겠지만, 우리는 아니니까.”

    담담히 답한 더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골렘을 찾고 있다?”

    “예.”

    “그 단서를 줄 테니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

    제이슨은 다시 주위가 캄캄해지자 답했다.

    “도울 수 있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 후에 다시 주위가 밝아지자 더크는 손을 들어 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태양석이라고 부른다. 불사조의 심장인데 저렇게 깜빡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수명이 다 된 것 같아.”

    “그래서 설마 불사조를 잡아서 심장을 뽑아오라는 부탁을 하는 겁니까?”

    “인간 치고 말이 통하는군.”

    말이 통하는 것은 둘째치고 제이슨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불사조라는 것이 정말 있기는 한 겁니까?”

    “그렇다네. 위치도 알지만 쉽게 잡을 수가 없네.”

    “당신이 있는 데도 말입니까?”

    제이슨의 물음에 더크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 혼자서는 무리네. 기간트가 있어야 하니까.”

    “기간트가 필요합니까?”

    “불사조의 크기는 날개 길이만 50미터에 달하네. 두 발로 서 있어도 10미터가 넘지. 게다가 어지간한 무기는 통하지도 않네. 극 고열의 몸을 뚫을 수 있는 무기는 만들었지만, 그건 기간트를 이용하지 않으면 다루지도 못할 크기라서.”

    더크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것도 어지간한 기간트로는 안 돼.”

    “그거라면 괜찮을 겁니다. 에고 기간트가 있으니까요.”

    더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세.”

    “그러죠.”

    더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불사조가 사는 곳은 성지이기도 하니 그곳으로 가는 것은 나와 자네 둘만일 걸세. 그사이에 저 친구는 이곳에서 지내야 되겠네.”

    “그러시죠.”

    제이슨은 더크가 왜 펠릭스가 이곳에 남기를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일종의 인질과 같은 신세. 제이슨은 더크를 따라가기로 했다.

    더크는 제이슨을 데리고 탑의 뒤편. 도시의 끝자락까지 갔다. 그곳에는 중무장한 드워프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제이슨을 보고 긴장한 그들에게 더크가 창을 들어 보였다.

    “됐다. 내가 데리고 왔다.”

    드워프들이 길을 열어주자 더크가 컴컴한 동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횃불을 건네주는 것을 받아든 더크가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더크는 어깨에 창을 걸친 채 걸어갔다. 굳이 인간과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는지 말없이 걷던 더크는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오자 그중 왼쪽으로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간 곳에는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더크는 문을 열었고, 그 안에 들어간 제이슨은 왜 기간트가 필요하다는지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벽에 걸린 길이 20미터짜리 창이 눈에 들어왔다. 제이슨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거 통짜 진금으로 만든 겁니까?”

    “아니. 일족의 야금술로 만든 합금이다. 젠트로 합금이라는 것인데 족장에게만 전해지는 레시피가 있지. 저 창을 만드는 데만 무려 100년이 걸렸다.”

    척 보기에도 진금의 함유량이 높아 보이는 창. 가격은 따질 수도 없는 무기다.

    “저걸로 불사조를 잡을 수 있는 겁니까?”

    “그 불길을 견딜 수 있는 합금이지.”

    “그럼 챙깁니다.”

    제이슨은 창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특대 아공간 주머니여서 다행이지 일반 아공간 주머니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크기였다.

    제이슨이 창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더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때는 마법이 부럽군.”

    “원하신다면 아공간 주머니를 하나 선물로 드리죠.”

    아공간 주머니가 비싸다고 하지만 드워프 일족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됐네. 가지.”

    더크는 제이슨을 데리고 다시 동굴을 따라 걸어가서 갈림길에서 반대편으로 걸었다. 말없이 그 뒤를 따랐던 제이슨은 어째 점점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끝에 불사조가 있습니까?”

    “그렇다네.”

    “그런데 불사조는 왜 지하에 있는 겁니까?”

    더크는 손짓했다.

    “가보면 알아.”

    그렇게 더크를 따라간 제이슨은 동굴이 점점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게다가 걸으면 걸을수록 더위가 심해졌다.

    오러를 순환시켜 더위를 물리친 제이슨은 더크와 함께 길을 계속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거대한 철문을 보았다. 검은 사슬이 칭칭 감긴 철문 앞에서 더크가 입을 열었다.

    “불사조는 이곳에 갇혀 있네.”

    “가둬놓기는 했는데 잡지는 못한 겁니까?”

    “맞아. 어때? 함께 잡아보겠나?”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파이트를 소환했다. 엘파이트에 오른 제이슨을 돌아본 더크가 문에 손을 댔다. 그가 몇 가지를 조작하자 곧 사슬이 떨어지고, 문이 열렸다.

    굉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훅 밀려왔다. 엘파이트에 탑승한 채로도 느껴지는 열기에 제이슨은 새삼 불사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가공할 열기. 제이슨은 그 열기를 느끼며 앞으로 걸어갔다. 문 안쪽에는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곳에서 한가로이 날개를 펄럭이며 목욕하고 있는 불사조가 보였다.

    엘파이트가 작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몸. 그 심장을 뚫어야 했다.

    제이슨이 아공간에서 창을 뽑아 들었다. 그때 제이슨은 더크가 철문을 감싸고 있던 사슬을 끌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슬을 질질 끌고 와서는 말했다.

    “기회는 한 번일세. 이 사슬로 놈을 묶을 수 있지만, 저 열기는 오래 버티지 못해.”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창을 잡은 자세를 고쳤다. 그때 불사조가 그들을 인지하고 용암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간, 드워프, 멸망한 줄 알았던 이도 왔구나.]

    머릿속을 울리는 울림. 제이슨은 불사조의 뜻이 전해지자 몸을 가늘게 떨었다. 저만한 격을 지닌 자를 죽여야 한다고?

    딱 보기에도 그 격은 사도들보다 높았다. 사도들이 신력을 부렸을 때 엘렌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

    정말 한 번에 사냥이 가능할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단번에 쉐일링을 알아보는 것을 보면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더크가 곧장 사슬을 휘둘렀다. 쇠사슬의 굵기는 그가 간신히 두 팔로 감싸 안을 정도였는데 길이는 족히 100미터는 되어 보였다.

    길게 날아드는 사슬을 보고 제이슨은 더크가 얼마나 훈련된 자인지 알았다. 저만한 사슬은 제이슨이 기간트를 타고도 휘두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피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불사조가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비틀 때 사슬이 허공에서 뱀처럼 비틀려 불사조를 휘감았다. 불사조는 자신을 휘감는 사슬에 분노를 토했다.

    [무슨 짓이냐!]

    더크는 사슬을 힘껏 당기며 소리쳤다.

    “네 심장이 필요할 뿐이다.”

    [미친 것이냐!]

    불사조의 가공할 불길에 사슬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땅을 박찼다. 단숨에 거리가 좁혀지고 제이슨의 창이 불사조의 심장에 꽂혔다.

    쿠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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