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워프(1)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카이트 국왕은 별거 아니라는 듯 그의 서재를 돌아보다가 말했다.
“지금까지는 상관없었지만, 우리가 란진 왕국을 도모하려고 하고 있거든.”
“란진 왕국을요?”
“제국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 수 있을 거야. 신성 교국과 일이 계속 틀어지고 있으니. 그래도 신벌이 신성 교국의 수도에 떨어지면서 교국의 입지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
“성녀가 100일 기도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그렇게 쉽게 신탁을 내릴 신이 아니니까.”
신탁은 100년에 한 번 내려오면 많이 내려오는 실정이었다. 대신 그만큼 신탁의 무게가 무거웠었다. 그런데 또 신탁이 내려온다?
그럴 일은 없다고 여겼다.
“뒤숭숭할 거야. 그러니 우리는 그사이에 도모한다.”
“가능하겠습니까?”
“벡스 장군이 이미 병력을 모아서 국경으로 이동 중이다.”
제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전하가 생각하시는 끝은 어디 십니까?”
카이트 국왕은 그 물음에 눈을 빛냈다.
“사실 지금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더군.”
카이트 국왕은 제이슨에게 다가와 그 손을 잡았다.
“신성 교국은 신벌의 도움을 얻었지만, 이제는 지는 해일세.”
성녀를 납치한 입장에서 그 말은 옳았다. 이제 그들은 지는 해다. 특히나 그 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죽이게 된다면 그들이 믿는 신성 마법조차 사라지게 될 터.
그렇기에 그들은 지는 해다.
“그러니 제국을 견제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제이슨은 그 말에 고래를 내저었다.
“전하. 그 뜻은 맞겠으나 홀로 제국을 맞설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부족하겠지. 하지만 왕국들을 병합하다 보면 우리는 제국에 비견되는 힘을 가지게 될 걸세.”
제국은 단순히 마스터 하나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호검이 계속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가진 전력 자체가 다른 왕국들이 전부 합쳐야 할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었다.
제이슨이 작정하고 나서지 않는다면 제국과의 전쟁은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저희가 다른 왕국들을 계속 병합해 나간다면 제국에 명분을 주는 일이 됩니다. 그들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습니다.”
카이트 국왕은 제이슨이 계속해서 반대하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자네는 내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것인가?”
제이슨은 솔직히 사도들만 처리하고 나면 마음 놓고 쉬고 싶었다.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계획이었는데 카이트 국왕의 뜻을 따라주다가는 평생 전장에만 서게 될 판이다.
게다가 제국과도 싸울 판이지 않은가?
“저는 전장에서 삶을 마무리할 마음은 없습니다.”
카이트 국왕의 표정이 굳어질 때 제이슨이 말을 이었다.
“제가 나서야 할 자리에는 나서겠습니다.”
마스터는 마스터를 막을 때만 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불문율. 다른 마스터들을 꺾은 제이슨에 대한 기대치가 드높았지만, 카이트 국왕의 말을 따라 뛰어다니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자네의 기사단은 어떤가?”
스노우 기사단은 충분히 강하다. 단장부터 오러 유저인데다가 기사단 전원이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들이니까. 게다가 그들의 기간트는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들의 전력은 기사단 이상의 것이 될 터였다. 에고 기간트를 연구하면서 전투 보조 에고들에 대한 것도 얻었으니 그들이 전투에 나선다면 확실히 희대의 기사단이 되리라.
그리고 제이슨은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주의다.
“기사단은 내드리겠습니다. 포상만 적절히 해주신다면요.”
“알겠네. 그렇게 하지.”
제이슨의 대답을 들은 카이트 국왕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란진 왕국도 그냥 왕국을 내주지는 않을 걸세. 연합국들을 부르기도 할 테고.”
“그래도 꼭 전쟁을 치르실 계획이십니까?”
“지금이 기회니까.”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제국이 움츠러들었을 때 확장해서 그들이 손을 쓰기 전에 그들의 대항마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이 기회였다.
“알겠습니다. 스노우 기사단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
“고맙네.”
카이트 국왕이 떠나고 나서 아이젠은 제이슨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제이슨이 돌아보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거절할 줄은 몰랐어요.”
“뭘요?”
“마스터들은 전장에 서기를 원하잖아요.”
사실 마스터들은 전장에 서고 싶어도 설 수 없는 위치였다. 제이슨이 마스터가 되고 나서 계속 전장에 서서 그랬을 뿐이다.
제이슨은 미소를 지은 채 살며시 아이젠을 끌어안았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것들이 정리되고 나면 전 가족과 함께 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군을 전역했다. 고생 안 하고 전장에 서기도 싫어서. 그런데 계속해서 전쟁에 나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었다. 이제 그걸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나오면 검을 가르쳐줄 거죠?”
“물론이죠.”
제이슨은 결혼했지만, 아직 자식에 대해서까지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온다면 검은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젠이 다르게 보였다.
어딘지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제이슨은 오늘의 훈련을 뒤로 제치고 그녀의 허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바쁜 일 있소?”
“지금 대낮이에요.”
“그게 무슨 상관이겠소?”
태연하게 말한 제이슨의 가슴을 살짝 두드린 아이젠은 그의 목을 먼저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눈치 있는 쉐일링이 빠져 준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낸 제이슨은 잠든 아이젠을 보고 가만히 머리를 쓸어넘겨 줬다. 기분 좋은 미소 짓는 그녀를 바라보던 중에 어느새 다가온 스노우가 폴짝 뛰어올라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불 속으로 꼼지락거리며 들어가는 스노우를 끌어안고 더 깊은 잠이 든 아이젠의 등을 살짝 쓰다듬어 준 제이슨은 밖으로 나갔다.
쉐일링이 돌아와 그림자가 되어주었다. 제이슨은 흑색 마탑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갇혀 있을 성녀를 생각한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갇혀 있는지도 모를 터. 일을 허술하게 할 이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제이슨은 좋았던 기분이 축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전장에서 멀어지고자 하지만 어째 점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제이슨이 훈련장으로 가니 스노우 기사단이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펠릭스는 기본적으로 험하게 훈련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이였다.
미친 들소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만큼 혹독한 훈련 중에 기사단원들의 성취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돌격 대대의 대대장답게 방어보다는 굉장히 공격적인 진형을 훈련하고 있었다.
제이슨이 다가가자 펠릭스가 기척을 읽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어쩐 일이신가?”
“전하께서 잠시 들르셨습니다.”
“뭐라 하시던가?”
“란진 왕국을 도모하는데 스노우 기사단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파견 나가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싫으시다면 안 나가셔도 됩니다.”
“실전이 없다면 실력은 정체되네.”
펠릭스는 험악하게 구르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런 임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제가 못 가볼 수도 있습니다.”
“마스터는 함부로 움직이는 거 아니야. 그러니 자주 나설 생각하지 마.”
제이슨이 픽 웃을 때 펠릭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위험할 때 네가 도움을 줬으면 좋겠군.”
전쟁에서 마스터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없다면 언제든 수적 우위에 짓눌리게 된다. 전술 하나만 잘못 짜도 죽을 수 있는 존재들.
전장에서 충분히 위협적인 창끝이 될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해진다. 그걸 알았기에 제이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거둔 기사단을 그냥 죽게 놔둘 마음은 없었다.
“언제든 위험한 순간에 저를 호출할 수 있게 해두죠.”
제이슨은 펠릭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말했다.
“100일 기도 안에 전쟁을 벌인다고 하셨으니 슬슬 준비해두셔야 합니다.”
“그런 준비라면 걱정하지 말게. 내 전문이니까.”
지금 당장 전장에 끌려가도 쓸 수 있을 정도로 훈련 시키는 것이 펠릭스였다. 하지만 진짜 전장에 나가기 전에 받는 훈련은 전에 받던 훈련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혹독하다.
제이슨은 펠릭스에게 얘기를 전하고 흑색 마탑을 찾아갔다. 성녀와 마주칠 일은 없게 조치해 놨을 테니 그에게 스노우 기사단을 준비시켜 달라고 부탁하러 찾아갔다.
제이슨이 안으로 들어가자 바삐 움직이는 스켈레톤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고,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흑마법으로 이뤄진 일들이 벌어진다.
제이슨이 들어온 것을 느꼈는지 형 클레버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로 캐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웃으며 물었다.
“라마란스 어디 있습니까?”
클레버가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에 제이슨은 안으로 들어가 마법진에 섰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스켈레톤 메이지가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제이슨은 공간 이동으로 도착한 곳에서 라마란스를 볼 수 있었다.
라마란스는 대륙 지도를 띄워놓고는 뭔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엘하르트의 부탁으로 골렘을 찾는 중이다.”
“골렘?”
“그래. 골렘족이라고 해야겠군.”
제이슨은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마법으로 만든 골렘 말고 진짜 골렘족을 말하는 거지? 태초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종족?”
“맞아.”
“그걸 왜 찾아?”
“필요할 것 같아서.”
“아니. 그보다 다 죽은 것 아니었어?”
“다 죽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더군.”
제이슨은 잠시 대륙 지도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래서 찾았어?”
“아니. 하지만 지하에서 살고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조사 중이야.”
“지하라고?”
“그래.”
“그런 거라면 드워프들에게 물어봐야지.”
라마란스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워프들과 골렘족이 연을 맺고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지하에 사는 그들이 뭔가를 알고 있지 않을까?”
라마란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시도해 볼만 하군. 지금 예상 지역을 세 곳으로 좁혔어. 저 곳을 찾아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근처에 드워프들이 살고 있다면 그들과 접촉해보는 것도 좋겠군.”
“드워프와 만나는 것이라면 펠릭스를 데리고 가면 좋을 텐데.”
“기사단장? 왜?”
“드워프들이 굉장히 폐쇄적인 존재들이라서.”
“흐음. 그럼 같이 가볼까?”
제이슨은 그런 라마란스를 바라보았다.
“내가 다녀올게.”
“네가?”
“그래. 그러니 너는 그 동안 스노우 기사단의 기간트들을 수리해줘. 전투 보조 에고도 넣고, 기간트 성능도 향상시켜줘. 최대한 빨리.”
“전투 보조 에고는 이미 준비가 되었고, 기간트 성능 향상도 문제는 아니야. 그런데 왜?”
“란진 왕국과 전쟁할 때 그들을 파견 보내기로 했거든.”
“그러니까 그것들 손 봐주는 동안 네가 내 일을 대신해주겠다는 거지?”
“대신은 아니지만, 내가 가지.”
“나쁠 것 없군. 그럼 그렇게 해. 세 곳 모두로 공간 이동할 수 있는 아티펙트를 만들어 주지.”
“고마워.”
수련도 수련이지만 엘하르트가 원한 것이라면 골렘을 찾는 것이 더 급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제이슨도 궁금했다. 정말 골렘족이 살아있을까?
“너무 기뻐하지 마. 그들이 너를 반긴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고대의 신비를 찾아가는 모험자에게 악담을 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