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3)
샬로트는 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기도의 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당황한 와중에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누구냐?”
“카젠.”
이름을 말한다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는 못했다.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에게 카젠이 웃으며 말했다.
“소리 지르고 싶으면 질러도 돼. 어차피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는 않으니까.”
“난 교국의 성녀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들어오기 쉽던데?”
태연히 대꾸한 카젠이 그녀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도실의 중앙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샬로트의 앞에 카젠이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샬로트는 상대가 난생처음 보는 미남에다가 그 눈이 세로로 갈라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다!
당황한 샬로트를 바라보던 카젠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100일 동안은 네가 사라진 것을 아무도 모르겠군.”
샬로트는 그 말에 100일 기도가 오히려 저들에게 기회를 줬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이곳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도 이곳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100일 동안 자신이 사라진 것을 모른다면 찾을 방법도 없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곳까지 몰래 들어올 정도의 자라면 자신이 반항할 수도 없으리라.
그래도 신성 마법을 쓰면 외부에서도 알게 되리라. 그런 마음을 먹고 샬로트가 신성 마법을 쓰려고 할 때 어느새 그녀의 목에 카젠의 손이 닿아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르게 보였나?”
씨익 웃은 카젠이 그녀의 목을 틀어쥐고는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수작 부리면 팔 하나 자르고 얘기한다?”
가볍게 얘기했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언제든 팔을 뽑아낼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샬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젠은 씨익 웃더니 그녀의 목을 틀어쥔 채소 품에서 꺼낸 장치를 눌렀다.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 같더니 곧 샬로트는 시커먼 벽돌로 된 방 안에 들어온 것을 깨달았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처음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보다 더한 미남이 있었다. 모르고 봤다면 신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로 완벽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음침한 인상의 사내가 있었는데 위화감이 느껴져 신의 눈이라는 능력을 사용했다. 신이 내려주신 능력으로 상대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렇게 바라본 상대의 본 모습을 본 샬로트는 흠칫 놀랐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자신의 모습을 봐도 상관없다는 듯 여유 있게 말한 해골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나?”
완벽한 미남이 다가와 샬로트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그의 빨려들 것 같은 눈을 바라보면서 샬로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다가 미남이 입을 열었다.
“역시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하게 연결된 존재라고 하더니. 수작을 부려놨군.”
“수작?”
“그래. 찾을 수 있겠어. 그보다 연락을 끊으면 안 되니 이곳의 흔적을 온전히 지울 수 있나?”
“신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지. 어차피 그녀의 눈으로 볼 테니까 환상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런 거라면 가능하지.”
해골은 샬로트의 곁으로 다가와서는 물었다.
“그보다 뇌만 뽑아내면 안 되나? 굳이 살려야 할 필요가 있어?”
“살려는 둬야 돼.”
“쯧. 손이 많이 가는군.”
한 마디 중얼거린 해골은 샬로트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샬로트의 고개가 들리자 그녀의 입으로 정체 모를 보라색 액체를 쏟아부었다.
끔찍한 맛에 비명을 내지르려고 했지만, 이미 목을 타고 넘어오는 액체 때문에 소리치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 액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삼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냥 목을 넘어갔다.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 때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해골과 다른 이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기도실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아냐! 이건 환상이야!’
하지만 그녀의 눈과 의식은 주위의 환경을 그대로 인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샬로트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통한 것 같군.”
“뭐 성녀라고 하지만 그래 봐야 인간이니까.”
샬로트의 고개를 좌우로 돌려본 라마란스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잡아 와도 상관없는 건가?”
“어차피 잡아 올 생각이었는데 마침 100일 기도를 한다고 하니 적어도 그동안은 저들도 파악하지 못할 거야.”
100일 뒤에 발칵 뒤집히겠지만,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엘하르트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추적은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 추적을 시작하면 꼬리가 잡힐 거야. 적어도 봉인 두 개는 더 풀어야 해. 마침 100일의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에 들키지만 않게 해.”
샬로트를 잡아 가둔 곳은 흑색 마탑의 지하. 이곳을 엘드라고가 알아챈다면 하늘에서 신벌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걸 사용하려면 저들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그걸 견뎌낼 수는 없었다.
라마란스는 자신에게 아무리 시간이 주어져도 그걸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믿을 것은 엘하르트 뿐이었다.
엘하르트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내가 이곳을 지킬 거다. 그러니 미리 겁먹지 마.”
카젠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내가 뭘 더 도울 것은 없나?”
성녀 납치라는 희대의 사건을 벌였지만, 카젠은 아직 더 도울 수 있었다. 이번에 만났던 사도들을 끝장내지 못하고 온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뭔가 더 일을 벌이고 싶었다. 그 얘기를 들은 엘하르트가 담담히 말을 꺼냈다.
“지금 고대 던전을 찾기 위해서 움직이는 녀석들이 있어. 그 녀석들 좀 도와서 찾아봐.”
“나보고 던전이나 찾으라고?”
“그래. 그 던전에는 내 무기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운이 좋다면 네가 쓸만한 무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몸보다 좋은 무기는 없어.”
“야토가 만든 물건이다.”
카젠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녀석들 어디서 조사하고 있는 거지?”
“칠왕국 연합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한 것은 제이슨에게 물어 봐.”
“그러지.”
카젠이 신난다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엘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네가 준비해 줄 것도 있다. 성녀는 얻었지만, 놈의 위치 파악 말고 하나 더 알아내야 할 것이 있거든.”
“그게 뭐지?”
“골렘을 찾아야 해.”
“골렘? 그거 사도들이 다 정리했잖아?”
“아니. 골렘들도 살아남았다. 그들을 찾아내.”
“왜?”
라마란스는 마법사. 당연히 호기심이 넘치는 이였다. 그의 질문에 엘하르트는 씨익 웃었다.
“맹약을 맺어보니 알겠더군. 인간과 골렘 모두 사도가 만들었지만, 그것조차 신의 뜻이라는 걸.”
“신의 뜻이라고?”
“그래. 모두 그의 그림이다.”
라마란스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재수 없군.”
“맞아. 재수 없지. 그러니 골렘을 찾아봐. 그들을 만났을 때 뭔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다.”
“좋아. 한 번 알아보지.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있나?”
“지하를 찾아봐.”
“지하?”
“그래. 드워프들과 연락을 취하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다.”
“어렵군.”
“쉬운 일이라고는 안 했어.”
“알아보지.”
엘하르트는 멍한 눈빛의 샬로트를 바라보더니 곧 자신의 방을 찾아갔다. 흑색 마탑에 새롭게 구한 방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켜 놓았다.
들어가는 문조차 없는 곳. 하지만 엘하르트는 자신의 몸을 영체화 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엘하르트는 방을 돌아보고는 그 중심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봉인을 풀기 위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카젠이 자신을 찾아왔기에 물었다.
“정말로 납치했어?”
“내가 실패할 줄 안 건가?”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미친 것들이 진짜로 신성 교국의 성녀를 납치할 줄은 몰랐다.
사도들과 싸우기도 쉽지 않은데 일이 더 커졌다.
“100일 기도라는 것에 들어가서 100일 동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제이슨은 카젠이 그런 것 신경 안 쓰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냥 납치하러 갔는데 운 좋게 100일 기도에 들어가서 얻어걸렸다. 자신이 나서지 않은 것도 자신이 나서게 되었을 때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아직 외부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을 아는 것은 사도들뿐이니까. 하지만 자신의 얼굴은 너무 알려져 있었다.
“성녀는 어디 있어?”
“흑색 마탑의 지하에 가뒀다.”
“어떻게 할 건데?”
“엘하르트가 봉인을 조금 더 풀어야 한다고 하더군.”
“봉인을 더 풀어야 한다고?”
“그래. 두 개의 봉인을 더 풀어야만 꼬리 잡히지 않고 위치 추적이 가능할 거라고 하더군.”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봉인이 풀리면 풀릴수록 봉인을 푸는 속도가 빨라질 거라고 했으니까. 그러니 두 개를 푸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리라.
“100일 안에 될까?”
“모르지.”
머리를 긁적인 제이슨이 물었다.
“그래서 왜 찾아온 거야?”
“칼데안이라고 했지? 고대 던전 탐사에 들어간 애들?”
“맞아.”
“그들을 도우러 갈 거다.”
제이슨은 카젠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칼데안은 아직 카젠을 두려워한다. 첫 대면부터 이제 막 감옥에 나왔던 카젠의 손에 죽을 뻔했었으니까 그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왜?”
“엘하르트가 말하더군. 야토의 던전을 찾는 것은 서둘러야 한다고.”
제이슨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야토의 던전에는 기대하는 것이 많았다. 우선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야장이었다고 하니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는 했다.
엘하르트의 무기를 얻을 수 있다면 사도와의 싸움에서 크게 도움이 될 터. 게다가 그는 신의 의지가 깃든 망치와 모루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것만 얻어도 어딘가?
제이슨은 품에서 연락용 통신 구슬을 꺼내주었다.
“말했지만, 내가 연관된 게 알려지면 전쟁이야. 알지?”
“그보다 골드나 내놔 봐. 여행 기간 배곯을 수는 없잖아.”
당당하게 골드를 뜯어내는 카젠에게 제이슨은 10만 골드를 내주며 말했다.
“이거면 배곯을 일은 없을 거야.”
“던전을 발견하면 연락하마.”
카젠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긴 숨을 토해냈다. 엘하르트가 현신하고는 사도와의 싸움이 본격화됐다. 직접 붙어본 사도는 제이슨의 격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엘하르트가 본신의 힘을 되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자신 또한 그에 걸맞은 강함을 손에 넣어야 했다.
고대의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러 운명을 엿보는 수준이 아니라 운명을 만들어내는 수준까지 올라야 했다.
“갈 길이 멀군.”
제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젠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이슨이 다가가 살며시 그녀를 포옹하고는 물었다.
“어쩐 일이오?”
“전하께서 찾아오셨어요.”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바라볼 때 문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흠흠. 들어가도 되겠나?”
“어서 들어오시죠.”
카이트 국왕은 안으로 들어와서는 제이슨과 아이젠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둘의 금슬이 좋은 것을 보니 곧 후계도 볼 수 있겠군.”
아이젠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그녀의 허리를 살며시 안으며 물었다.
“그보다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 수호검을 이길 수 있나?”
“예?”
카이트 국왕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제국과 싸우게 된다면 자네가 그를 이길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거네.”
가뜩이나 사도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에고 기간트를 탄 상태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수호검이 분명 강하지만 그건 인간일 때의 이야기고 에고 기간트를 탄다면 제이슨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 그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카이트 국왕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려졌다. 어째 더 불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