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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15화 (116/151)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반격(2)

하늘에서 떨어졌던 거대한 빛줄기.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그것이 내포한 힘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마스터의 벽에 걸려 아등바등 넘으려고 하던 판톤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

세상에 오롯한 힘이었다. 자신 이외에 모든 것을 부정하고 태워 버리는 그럴 가공할 힘이 느껴졌다.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 죽었다고 여겼다. 그 찰나의 순간이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을 때 엘카소를 핍박하던 기간트가 손을 들었다.

하늘을 향한 찌르기. 시간의 흐름조차 역행하듯 그 움직임은 빠르기 그지없었다. 그 주마등처럼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간신히 시야에 담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늘을 향한 주먹을 따라 가공할 힘이 솟구쳤다. 그 힘에 대한 것도 여실히 느껴졌다. 그것은 역천의 힘이다.

오롯이 존재하는 힘을 찢어내는 가공할 힘에 판톤은 몸서리쳤다. 그 힘을 지척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했지만, 그 덕분인지 막막하기만 하던 벽 너머의 세상이 보였다.

그러면 뭐하겠는가? 이대로 죽을 판인데!

그때 마주했던 두 개의 힘이 격돌한 잠깐의 틈 속에서 자신과 일행을 휘감는 처음 보는 마법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시야가 바뀌었다.

판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떠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았다.

한쪽 팔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엘카소와 홀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엘페린.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는 엘렌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망가진 상황. 판톤이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돌아볼 때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처참하군.”

고개를 돌린 판톤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감지하지 못한 사이에 자신의 옆에 한 사내가 다가와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엘페린이었다.

“너였냐?”

“그래. 다 죽을 것 같기에 무리해서 너희를 데리고 왔지.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개소리!”

엘페린이 서늘한 목소리로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뿜어내는 기세를 읽으며 사내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찬탈자와 싸우게 된 건가?”

“사실 찬탈자보다 널 먼저 죽이고 싶었다.”

“나를?”

“그래! 네가 한 짓은 찬탈자보다 더 추악한 짓이니까.”

사내는 맑게 웃고는 답했다.

“그 고집스러운 성격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구나.”

“당연하지!”

엘페린이 본체로 변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엘페린의 몸이 덜컥 굳었다.

“너,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마법사의 영역 안에서는 마법사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잖아.”

“네가 마법사는 아니잖아!”

“그래. 하지만 난 신이지.”

“엘드라고!”

엘페린이 소리를 쳤지만, 엘드라고는 태연했다.

“우리가 만들었던 아이들이다. 너희는 포기했지만, 난 아니야. 그러니 난 인간들의 신이다.”

엘페린이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는 지금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엘페린의 뒤로 엘카소가 일어났다. 그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이 안에서는 너와 뜻을 다르게 할 수 없겠군.”

“맞아. 이곳에서 나는 절대적이지.”

엘드라고는 태연하게 대꾸했지만, 그 말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했다. 엘드라고는 가만히 엘카소를 보더니 말했다.

“많이 다쳤군.”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상대였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선순위를 정하자.”

“우선순위?”

엘드라고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우리의 적은 찬탈자다.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

“당시에는 죽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그를 죽일 기회가 왔다.”

“그의 봉인은 반 이상 풀렸어. 쉽지 않을 거다.”

“그 힘은 이번에 겪어봐서 안다. 지금 내 힘으로는 안 되겠더군.”

“그래서?”

“도와다오.”

엘카소가 가만히 바라보자 엘드라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인간들의 신이 되었지만, 이 힘만으로는 찬탈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너희의 도움이 필요해.”

그 말에 판톤의 품에 안겨있던 엘렌이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무엇이든.”

“몇 명이나 데리고 있어?”

엘렌의 물음에 엘드라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몇 명이냐니?”

“사도 중 몇이나 네가 데리고 있어?”

엘드라고는 턱을 쓰다듬더니 말했다.

“나와 뜻을 같이했던 것은 총 넷이다. 그들은 한뜻으로 날 지원했고 내가 품었다.”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신력을 부리는 거구나.”

엘드라고는 손을 좌우로 펼치며 말했다.

“인간들에게 신의 기적을 보여주고, 신성력을 나눠주기에는 우리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찬탈자가 일어난 이상 우리만으로는 부족해. 함께 하자.”

엘페린이 이를 뿌득 갈면서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 모습에 엘드라고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믿기 힘들 정도로 강한 힘이 짓눌러 엘페린이 무릎을 꿇었다.

“억지로 너희를 품게 하지 말아다오.”

“이 새끼가!”

엘페린이 뿌득 이를 가는 모습을 보고 엘드라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더 싸워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긴 엘페린의 시선이 엘렌과 엘카소를 향했다.

“지금까지 사도 둘의 흔적은 찾았다. 그러니 너희 둘이 그들을 찾아다오.”

엘렌이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답했다.

“이 몸으로?”

엘드라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네 상처는 내가 치료해줄 수 없어. 그 정도 상처를 회복할 방법은 맹약뿐이다.”

“맹약?”

“그래. 맹약.”

엘렌이 헛웃음을 흘렸다.

“맹약의 존재는 알지만, 그것으로 어찌 이 상처가 낫는다는 거야?”

엘렌의 물음에 엘드라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판톤은 그제야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드높은 하늘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고, 주위로 구름이 흐르는 신비한 곳이었다. 엘드라고는 뒷짐을 진 채 말했다.

“우리가 인간을 창조했다.”

판톤은 무슨 개소리냐는 듯 바라보았지만, 엘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인간과 우리는 맹약을 맺을 수 있을까?”

엘렌의 인상이 굳어질 때 엘드라고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말했다.

“과연 인간은 우리가 창조했지만, 우리의 뜻으로 창조한 걸까?”

“무슨 소리야?”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 아닌가 싶어서. 오랜 시간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엘드라고가 말하는 신이 누구인지 깨달은 엘렌의 인상이 굳어졌을 때 그가 돌아서서는 말했다.

“맹약을 맺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오러를 깨달은 인간이다. 그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오러라는 것도 우리가 가르친 것들인데 그것을 깨달은 극소수의 인간만이 우리와 맹약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

엘드라고는 다가가 판톤의 어깨를 잡고는 말했다.

“맹약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거지. 이 녀석은 마침 조건에 차고 넘치는 존재니까 한 번 맹약을 맺도록 해 봐.”

엘렌은 판톤을 돌아보았다. 맹약이라는 것에 대해 떠올린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판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맹약을 맺을래?”

판톤은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내가 왜?”

“에고 기간트가 마스터의 상징이라면 시중에 널려진 허섭스레기들이 아닌 나와 계약하는 건 진정으로 마스터가 되는 길이 될 테니까.”

판톤은 그 말에 잠시 고민했다. 맹약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스터라는 이름은 갖고 싶었다. 마침 벽을 넘어선 것 같은 지금 에고 기간트를 얻어 마스터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엘드라고가 그런 판톤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맹약을 못 맺으면 엘렌은 이곳에서 죽는다.”

판톤이 엘렌을 돌아보았다. 신비로운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던 판톤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 잠시 고민했다. 길가 다 잡혀서 용병단장이 된 것은 강제였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삶을 돌아보면 죽으면 죽었지 원하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의 말을 들었던 걸까?

엘렌의 꺼져가는 눈빛을 보니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왜 그녀의 뜻을 따랐었는지.

그녀가 인간도 아니고 에고 기간트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도왔다.

판톤이 엘렌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 맹약을 맺겠다.”

하늘에서 떨어진 빛줄기가 그 둘을 감싸는 것을 보고 엘드라고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신성 제국의 성탑에서 성녀 샬로트와 마주 앉아있던 발데르크는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진정 연락이 안 되는 겁니까?”

“성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신탁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리 그렇다지만 이렇게 성지의 15%를 날려버리는 신벌이 내려왔는데 그에 대한 화답도 없으시다는 거요?”

“예.”

답답하기는 샬로트 쪽이 더 심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의 공을 인정해서 수도에 대저택을 내주었다. 그들은 이번에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새로운 용병들을 고용하는 중이었다.

마스터를 막은 용병단이라는 말을 듣고 그들의 이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은밀히 그들과 연락을 취해서 마스터조차 도망치게 했던 그 폭발은 어떻게 한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런 그들의 대저택을 중심으로 떨어진 빛줄기는 분명 신벌이었다. 3천 기에 달하는 제국군의 머리 위로 떨어졌을 때와 다르게 오직 한 곳으로 떨어진 신벌.

하지만 그 크기는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거대했다. 그리고 수도의 15%를 한 번에 날렸다. 신벌이 성지에 내렸다는 것 때문에 지금 민심이 들끓고 있었다.

그래도 성탑이나 기도의 탑에 떨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도 수도를 떠나 도망치는 이들까지 생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블랙 드래곤 용병단을 품으려고 했던 계획마저 실패한 상황.

백성들은 신이 노했다며 신전 앞으로 모여드는 실정. 이곳에서 뭔가 답을 해줘야 하지만, 성녀도 아는 것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는데 교황은 또 자신을 불러서 넋두리나 하고 있으니 짜증이 치솟았다.

“100일 기도를 드리겠어요.”

샬로트의 말에 발데르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샬로트의 말처럼 성녀가 100일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면 신전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이들도 100일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당분간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일이지만 성녀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다. 기도의 탑에서 100일간 정말 먹고 자는 것 외에는 기도만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기도실에서 홀로 지내며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끔찍한 고행의 길이다. 그 길을 알아서 걸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그럼 민심은 잠재우도록 하겠습니다. 신탁이 내려오면 좋겠군요.”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샬로트는 성탑을 나와 기도하는 탑으로 올랐다. 그곳에 가는 길에 샬로트는 자신을 따르는 무녀들에게 100일 기도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무녀들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지금 들끓는 민심을 재울 수 있는 일은 100일 기도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행에 가까운 기도를 한다면 민심이 잠잠해지리라.

성녀의 100일 기도 소식은 금세 성국의 백성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그녀의 기도를 따르겠다며 많은 이들이 신전 앞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일 기도가 시작됐다.

100일 기도 동안에는 성기사들이 기도하는 탑을 지킨다. 성녀 평생에 100일 기도를 드리는 경우는 많아야 세 번도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성녀인 샬로트는 처음으로 하는 기도였다. 샬로트는 성수로 목욕하고 성복으로 갈아입고는 기도실에 들어갔다. 기도실 안에는 오직 성녀밖에 없다.

기도실의 중앙에는 태초에 신이 내렸다고 하는 성물이 놓여 있었다. 그 성물의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은 샬로트가 기도를 위해 양손을 모았다.

그런 그녀의 목 앞으로 시퍼런 손톱이 살짝 닿았다. 그 서슬 퍼런 살기에 샬로트가 움찔거릴 때 그녀의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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