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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14화 (115/151)
  • 반격(1)

    엘하르트는 인간의 형상을 유지한 채로 사도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엘카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찬탈자는 상정하지 않았는데.”

    엘페린도 인상이 구겨졌다.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보이는군.”

    엘페린은 엘렌을 돌아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곳에서 죽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

    엘렌의 상태는 그녀의 힘을 한 번 빌린 것으로 끝났다. 그녀가 회복하지 않으면 두 명 분의 신력만 사용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엘하르트는 상대할 수는 없다.

    엘페린의 굳은 표정을 보고 엘카소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내가 막지.”

    “미쳤어?”

    “돌아가서 사도들을 더 구해라. 찬탈자를 막자고 한다면 도움을 줄 거다.”

    “헛소리 그만둬.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를 놈들을 어떻게 구하라는 거야?”

    “엘렌이 해주겠지! 가라!”

    말을 마친 엘카소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본체로 변신했다. 그렇게 앞으로 나선 엘카소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본체로 쓸 수 있는 마법은 또 다르다.

    엘카소가 전력을 다하겠다는 모습을 보이자 엘하르트가 씨익 웃으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빛과 함께 엘하르트도 본신의 모습을 갖췄다.

    12미터에 달하는 신장과 육중한 몸. 달려가는 것만으로 박력이 남달랐다. 엘카소가 쏟아내는 마법은 인간의 형체일 때와는 달랐다.

    수없이 쏟아지는 상대의 마법을 엘하르트가 부숴버릴 때 제이슨도 움직였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자는 있을 수 없었다. 제이슨이 쫓아가며 참격을 날렸지만, 엘카소는 그쪽으로 마나 쉴드를 펼쳤다.

    제이슨의 참격은 받아낼 수 없었음에도 상대는 그걸로 찰나의 시간을 벌었다. 엘페린이 엘렌과 판톤을 데리고 몸을 빼내려고 할 때 쉐일링이 그들의 뒤에 소리 없이 나타났다.

    쉐일링이 그들을 향해 낫을 휘둘렀다. 그림자로 만든 낫이 날아드는 것을 보고 엘페린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엘페린은 쉐일링을 혼자서는 상대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신력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쉐일링은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상대였다.

    콰칵!

    그래서 상처를 각오하고 지나갔다. 어깨가 베였지만, 쉐일링을 지나칠 수 있었다. 엘렌을 안은 판톤이 그 뒤를 바짝 쫓아왔다.

    그런 그들의 앞을 카젠이 막아섰다.

    “어딜 가시려고?”

    엘페린은 자신이 소환한 기간트를 이용해도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적어도 넷은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고작 셋. 그것도 엘카소까지 빠져서 둘이서는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자들이다.

    엘페린이 다시 상처를 입을 각오로 카젠을 향해 달려들었다. 쉐일링이 뒤를 붙잡으려고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제이슨은 처음 참격을 날리고 옆으로 돌아서 뒤쫓으려다가 엘하르트의 모습을 보고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엘하르트가 봉인이 풀리고 현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만큼이나 봉인이 풀린 적도 없었는데 봉인이 풀린 엘하르트는 마법을 쏟아내는 엘카소의 마법을 봉인의 사슬로 뚫고 들어가 그의 팔을 잡아 뜯고 있었다.

    별다른 기교도 필요 없었다. 압도적인 힘과 격의 차이를 보여주며 말 그대로 상대를 농락하고 있었다. 홀로 싸울 때 라마란스와도 박빙으로 싸웠던 엘카소가 본신으로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카소도 그냥 당하지는 않았다. 팔이 뜯겨나갈 때 그 팔이 폭발했다.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사용한 마법이 엘하르트의 몸을 휘감았지만, 그는 그 마법을 그대로 견딘 채 앞에 선 엘카소의 목을 틀어쥐었다.

    엘카소가 컥컥 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엘하르트가 말했다.

    “잊어버렸나 보군.”

    엘하르트는 엘카소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엘카소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잊었을까? 네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됐는데.”

    엘카소는 하나 남은 손으로 자신의 심장에 찔러넣었다. 엘하르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엘카소가 소리쳤다.

    “너를 본 순간부터 준비했었다. 언제고 너를 다시 만날 순간을 위해서.”

    그 말과 함께 엘카소의 전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엘하르트는 그것을 본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엘카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가공할 마나를 담아 놓은 코어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 조차 우습게 볼 정도인 사도의 코어. 그것을 이용해서 터트린 자기희생 주문.

    지금까지 사도는 단 한 번도 이런 미친 짓을 하지 않았었다. 엘하르트는 봉인의 사슬을 휘둘러 엘카소의 몸을 휘감았다. 자기희생 주문까지 막아내지는 못하겠지만, 이대로 폭발하게 두면 신성 교국의 수도가 날아갈 정도다.

    그걸 막기 위해서 엘하르트가 엘카소의 몸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찰나 하늘에서 한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대저택 전체의 크기를 뒤덮을 가공할 벼락.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 엘하르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콰콰콰콰쾅!

    엘하르트가 들어온 주먹을 중심으로 솟구친 거대한 빛줄기가 벼락과 부딪치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이 어찌나 강했는지 대저택을 휘감고 있던 온갖 마법들도 파괴되었다.

    그 여파에 제이슨도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고, 쉐일링도 그에게 돌아와 엘파이트 전체를 휘감았다.

    카젠도 그 여파를 견디기 위해 몸을 움츠렸고, 라마란스도 황급히 보호 마법들을 겹쳐서 사용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모조리 찢겨 나가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엘하르트도 그 충격에 무릎까지 바닥에 박힌 상태였다. 엘하르트는 그 충격의 여파가 가라앉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봐라?”

    그의 앞에 있던 엘카소와 엘페린, 엘렌이 모두 사라졌다. 엘하르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럴 가치가 있었다는 거지?”

    엘하르트의 중얼거림에 대한 답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제이슨이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주위는 이미 남아있는 것이 없는 지경이었다.

    단순하게 대저택이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신성 교국 수도의 15% 정도가 박살 난 상태였다. 그들도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달려오는 중이었다.

    제이슨의 시선이 엘하르트를 향했다. 엘하르트는 인상을 쓴 채 입을 열었다.

    “라마란스. 일단 돌아가자.”

    엘하르트의 말에 달려온 라마란스가 곧장 일행의 발밑으로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달려오는 이들이 그들을 확인하기 전에 빛과 함께 그들은 그곳에서 사라졌다.

    제이슨은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자리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엘하르트에게 물었다.

    “그건 뭐였어?”

    엘하르트는 제이슨의 물음에 담담히 답했다.

    “신벌.”

    “신벌?”

    샤이드 대공도 간신히 버틸 수 있었다고 한 신벌이었다. 그때는 사방으로 내리쳐 3000기에 달하는 기간트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가공할 신벌.

    이번에는 오직 한 명에게만 떨어졌다. 그리고 엘하르트는 그것을 받아냈다.

    그 여파로 잠시 몸이 굳었다고 해도 그만큼이나 위험한 공격을 버텼다는 건 엘하르트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진면목이었다.

    엘하르트는 담담히 답했다.

    “엘카소가 손을 쓸 때처럼 변형된 신력이었다고 하나 그 힘은 충분히 강했다. 지금 당장은 나도 막아내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엘하르트는 인상을 구긴 채 말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신력을 쏟아내면서 사도들을 데리고 갔다.”

    “사도들을?”

    “그래. 사도 셋을 더 데리고 가서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신벌은 지금과는 수준이 달라질 거다.”

    “녀석들 잡으러 갔다가 오히려 무기를 쥐여준 건가?”

    엘하르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포장해 놓은 상태에서 가져갔으니 아마도 엘드라고는 좋다고 그들을 가져갔을 거다. 반항이나 제대로 했을지 모르겠군.”

    “정말 엘드라고가 신이 된 건가?”

    “가짜 신이 된 거지.”

    엘하르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라마란스와 카젠, 쉐일링까지 형체를 이루고 나타나 있었다. 그들을 돌아보던 엘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붙어보니 어때?”

    카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작 셋인데도 쉽지 않아. 그 구성 인원에 따라 이렇게까지 힘이 달라질 수 있나 싶네.”

    엘카소의 합류는 확실히 수감 되기 전의 사도들보다 강했다. 카젠의 대답에 이어 라마란스도 말을 이었다.

    “마법의 정점이라고 하더니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모든 계열의 원소 마법을 그렇게 한계까지 깨우친 놈이 있을 줄은 몰랐지.”

    흑마법의 정점에 서 있는 아크 리치인 라마란스는 엘카소에게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엘카소는 분명 강했지만, 그를 막을 수는 있었으니까.

    문제는 엘카소가 신력을 다룰 때였다. 그때의 엘카소는 지금의 라마란스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엘하르트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대로 패했으리라.

    “빌어먹을 사도들 같으니.”

    라마란스가 나직하게 쏟아내는 욕설에 카젠도 동의했다.

    “빌어먹을 일이지.”

    카젠의 시선이 엘하르트를 향했다.

    “그런 놈을 아주 혼자서 박살 내던데?”

    엘하르트는 담담히 답했다.

    “봉인을 다 푼다면 12사도 모두가 나서도 날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신이 나섰던 거고.”

    “그래도 패했잖아.”

    카젠의 말에 엘하르트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찾고 있는 거다.”

    “뭘?”

    “내 무기. 그리고.”

    엘하르트의 시선이 제이슨을 향했다.

    “내 맹약자.”

    “무슨 소리야? 맹약자가 있다고 뭐가 달라져?”

    엘하르트는 씨익 웃고는 답하지 않았다. 카젠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신벌이란 거 저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신력이라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거 한 번 쓰면 사도들도 몇 날 며칠은 제대로 운신도 못 하는 것이 신력이야. 그들에게만 허락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이라도 쉽지 않은 힘이지.”

    엘하르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서 그런 힘을 손에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녀석이라고 해도 그런 힘을 남발할 수 없을 거다. 제국군에 신벌을 쏟아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신벌을 내렸어. 사도들을 잡아들일 수 있을 거라 믿고 무리한 게 틀림없다.”

    “그럼 당분간은 신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건가?”

    “그래. 신벌 걱정은 필요 없지. 하지만 이제는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무슨 방법을 이용해서 놈들을 데려갔는지 모르겠지만, 놈들의 신력을 뽑아내게 되면 진짜 신에 가까워질 거다.”

    카젠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공간 주머니에서 먹을 것들을 꺼냈다. 엘하르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낚아채서 입에 넣더니 말했다.

    “지금까지는 너희 도움 필요 없었는데 이제는 너희 도움이 직접적으로 필요하겠다.”

    카젠은 엘하르트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 먹은 것에 입을 비죽 내밀더니 아공간 주머니에서 다른 것들을 꺼내서 입에 넣기 시작했다.

    “어떤 도움?”

    “잡아 와야 할 인간이 있다.”

    “잡아 와야 할 인간?”

    “가장 엘드라고와 가까운 자. 인간들 중 가장 엘드라고와 가까운 자를 잡아 와.”

    제이슨이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너 지금 성녀를 잡아 오라는 거야?”

    “성녀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잡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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