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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12화 (113/151)
  • 사도(2)

    대저택은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제대로 점수를 땄나 보네.”

    블랙 드래곤 용병단은 자폭이라는 수단까지 써서 마스터인 샤이드 대공을 물러나게 했다. 그것을 인정해 준 것인지 그들은 성기사까지 보내서 저택의 호위를 서주고 있었다.

    제이슨은 성기사들이 있다고 해도 관심 없었다. 기척을 숨기고 접근하는 것은 그에게 이미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대저택의 담벼락을 따라 걷던 중에 라마란스가 나섰다.

    “제법이군.”

    “왜?”

    “들어가는 것을 들키지 않을 방법은 없다.”

    “그 정도야?”

    아크 리치인 라마란스조차 몰래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솔직히 충격이었다. 제이슨이 놀라서 바라보자 라마란스는 담담히 답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곳에서 그들도 나갈 수 없게 준비할 수는 있으니 그렇게 하고 진입하자.”

    잡으러 들어갔다가 놓치면 그보다 속이 뒤집어질 일은 없었다.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켜보는 사이에 라마란스가 몇 개의 장비를 꺼내 바닥에 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것들을 이번에 쓰게 될 줄은 몰랐군.”

    제이슨은 그가 내려놓은 조각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척 보기에도 괴기스러운 뭔가의 뼈이거나 심장등 장기들이었으니까.

    그것들을 내려놓은 라마란스가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지. 마법적인 방비는 내가 뚫지.”

    말을 마친 라마란스가 손을 내밀어 담벼락에 손을 올리자 벽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렸다. 그렇게 열린 길로 라마란스가 들어갔고, 그 뒤를 제이슨과 카젠이 따랐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나타나는 자들이 있었다. 척 보기에도 잘 정련된 것 같은 인간들. 하지만 그 눈빛을 본 제이슨은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열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는데 그들의 시선은 마치 하나처럼 느껴졌다.

    샤이드 대공이 했던 말이 떠오르는 장면. 제이슨은 가볍게 혀를 차고는 검에 손을 얹었다. 그런 제이슨의 뒤에서 카젠이 나섰다.

    “내가 처리하지.”

    말을 마친 카젠이 그대로 튀어나갔다. 카젠이 달려들자 열두 명의 사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데 그건 마치 거대한 하나의 의지로 움직이는 개체들 같았다.

    그렇게 카젠이 공격하는 방향에서는 뒤로 물러나고 좌우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이상적인 대처법을 펼쳤지만, 상대가 나빴다.

    콰직!

    그들이 물러나는 속도보다 카젠이 달려드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고, 상대는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갔다. 게다가 카젠이 휘두르는 손톱을 따라 길게 늘어난 날카로운 기운에 걸린 상대는 그대로 조각났다.

    그렇게 열두 명이 죽는데 걸린 시간은 촌각에 지나지 않았다. 제이슨은 자신이 한 일도 없이 저들이 보낸 것들을 처리했지만,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제이슨이 성큼 걷자 그의 앞으로 나타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얼굴은 제이슨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S급 용병 판톤. 그가 블랙 드래곤 용병단의 단장이라는 얘기는 들었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던 그.

    그런데 오러 유저였던 그의 기세가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가 마스터에 올랐다면 그에게는 정말 슬픈 일이지만 그건 외부에 밝혀지지 않으리라. 오늘 이 자리에서 그는 숨이 끊어질 테니까.

    사도의 편에 선 이상 살려둘 마음은 없었다.

    제이슨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그를 바라보던 엘렌이 미소를 지었다.

    “트랑 왕국에서 보았던 자로군.”

    “나를 기억하네?”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하는 엘렌은 지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외모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미 트랑 왕국 최고의 미녀와 함께 살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엘하르트를 보아왔다. 요즘에는 카젠을 만나 눈이 높아진 제이슨은 덤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본질은 에고 기간트였다. 쇳덩이인 그녀에게 반할 이유는 없었다.

    제이스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때는 여러 가지로 엮여 있어 싸울 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겠네.”

    “이곳에 온 것을 보면 뭔가 알고 왔다는 뜻이겠지? 특히나 저 흉악한 재앙들을 데리고 온 걸 보면?”

    제이슨은 카젠과 라마란스를 바라보았다. 왕국 파괴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범죄자라기보다는 재앙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맞아. 너희들이 사도라는 것도 알고 왔지.”

    엘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대적하려고 하지?”

    제이슨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엘렌은 그런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너희의 창조주야. 너희에게는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라고.”

    “그래서?”

    제이슨은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검을 들어 엘렌을 가리켰다. 엘렌의 앞을 막아서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제이슨이 바라보자 카젠이 그의 이름을 말했다.

    “엘페린. 오랜만이군.”

    “흥. 너희를 살리자고 했던 녀석들을 찾아가 지금 이 꼴을 보여주고 싶군.”

    “걱정하지 마. 다 찾아서 보여줄 테니까.”

    태연하게 대꾸하는 카젠을 보며 엘페린이 씨익 웃었다.

    “여전히 변함없이 오만한 녀석이군.”

    “솔직히 너 혼자 왔으면 죽었을 거잖아.”

    엘페린이 그 말에 눈썹을 꿈틀거릴 때 엘렌이 나섰다.

    “어차피 말싸움하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괜히 힘빼지 마.”

    엘페린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하자 곧 그곳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 인원의 수가 꽤 많았다.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이는데 그들 중에는 성기사의 복장을 한 이들도 있었다.

    성기사들을 내주었더니 그들을 저렇게 꼭두각시로 만들었나 보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라마란스가 오브를 내밀자 카젠의 손에 찢겼던 이들의 사체가 하나로 모여 커다란 골렘을 만들었다. 뼈와 근육,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골렘이 몸을 일으키자 라마란스가 품에서 뭔가를 하나씩 던졌다.

    골렘의 몸에 뼈가 갑옷처럼 감싸 안더니 커다란 곧 손에 커다란 무기를 쥐었다. 어떤 괴물의 넓적다리뼈인지 모를 것에는 가시가 박혀 있어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엘페린이 픽 웃음을 흘렸다.

    “우습군. 우리를 상대로 고작 골렘이라고?”

    엘페린의 뒤편에서 스무 기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샤이드 대공이 말했던 이들.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낸다고 했으니 특수한 가공이 되어 있을 무기를 든 이들에게 골렘 한 기로는 힘들 것 같았다.

    라마란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품에서 몇 개의 뼛조각을 던졌다. 그곳에서 몸을 일으키는 2미터가 넘는 존재들이 뿜어내는 기운을 읽은 엘페린이 감탄했다.

    “용아병이군.”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 수 있는 용아병까지 등장하자 엘페린은 엘카소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라마란스를 보고 있었다.

    “네가 맡을 수 있지?”

    “물론이네.”

    사도들의 마법사. 엘카소의 대답을 들은 라마란스가 씨익 웃었다.

    “감옥의 봉인이 너무 강해서 그곳에서는 마법을 쓰지 못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한 라마란스는 제이슨과 함께 있으면서 수많은 재료를 구했다. 그리고 이번에 마법 연구소를 얻으면서 수많은 물건을 얻었다.

    하지만 상대는 수천 년의 시간을 살아온 존재였다. 자신이 갇혀 있는 동안 꾸준히 실험하며 자신의 기량을 갈고닦았을 존재. 쉽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제이슨은 그들이 서로 싸우려는 것을 보고는 뺨을 긁적였다. 자신은 사도를 죽이기만 하면 된다.

    사도가 뭉치면 쓸 수 있는 신력이라는 것이 위험한 것이지 사도 개개인의 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특히 엘렌 같은 경우에는 벡스에게도 당했던 존재. 당시의 벡스보다 제이슨은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면 엘페린과 카젠, 엘카소와 라마란스가 싸우는 동안 엘렌만 죽이면 된다고 여기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끝을 보자.”

    제이슨은 담담히 선고하고 그대로 엘렌을 향해 돌진했다. 그런 제이슨을 따라 다른 둘도 동시에 움직였다. 라마란스의 앞에 진영을 짜고 있던 골렘이 달려나가고, 용아병들이 움직였다.

    마스터를 이용한 데쓰 나이트까지 가지고 있는 라마란스도 지금은 간을 보는 중이었다. 그런 라마란스의 공격에 엘카소가 지팡이를 내밀었고 하늘에 나타난 것은 섬뜩한 크기의 불덩어리였다.

    집채만 했던 불덩어리들이 회전하며 줄어들더니 어른 주먹만 해지면서 용아병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데 그때 골렘이 앞으로 나서며 몸으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콰콰콰쾅!

    커다란 폭발 속에서 골렘은 갑옷의 일부가 부서졌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용아병들이 좌우로 엘카소를 향해 덮쳐갔다.

    엘카소는 허허 웃으며 뒤로 블링크 하더니 재차 마법을 준비했다.

    라마란스와 엘카소의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사이 카젠이 엘페린이 소환한 기간트와 격돌했다. 카젠은 어느새 용마인의 상태로 변한 상태.

    그의 일격을 검으로 받아내면 뒤로 주룩 밀려 나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간트의 몸이 박살 났다. 카젠도 제이슨과 대련을 하면서 단순히 자신의 단단한 몸과 힘만 믿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연마했다.

    그런 그의 공격이다 보니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기간트들이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엘페린의 얼굴에 낭패가 서리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최대한 빨리 엘렌을 처리해야겠다고 여겼다.

    그렇게 다가간 제이슨의 검이 그대로 엘렌의 목을 베었다.

    스걱.

    그런데 엘렌의 목은 잘려나가지 않았다. 제이슨은 자신의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엘렌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당해줄 줄 알았던 거야?”

    제이슨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뛰어난 환영술. 제이슨의 시선이 엘카소를 향했다. 라마란스와 박빙으로 싸우고 있는 엘카소를 향했던 시선을 거둔 제이슨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엘렌은 있다. 사도들은 뭉쳐야 강해지는 이들. 이곳에서 몸을 빼냈다면 오히려 기회라고 여길 수 있었다.

    제이슨이 기를 감지하려는 사이에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의 힘을 쓰고 있군.

    ‘조금 전의 환영도 신의 힘을 빌린 거야?’

    -맞아. 이거 잘만하면 이곳에서 봉인을 많이 풀 수 있겠어.

    ‘어떻게 하면 돼?’

    -저들이 신의 힘을 쓰게 만들어. 그러면 그 힘을 가져와야겠다.

    제이슨은 그 말에 씨익 웃고는 쉐일링을 불렀다.

    “찾아!”

    제이슨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바닥 전체가 검게 물드는 것을 보고 엘페린이 인상을 구겼다.

    “쉐일링도 데리고 있던 거냐!”

    제이슨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저택 전체가 검게 물드는 것을 보면 곧 엘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제이슨이 기다리고 있는데 대저택의 저편이 무너져 내리며 엘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본신의 모습을 드러낸 엘렌은 제이슨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맺히는 강대한 기운을 읽은 제이슨이 피하려고 하자 엘하르트가 말했다.

    -피하지 마!

    제이슨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섬광이 날아들었다. 거대한 빛줄기. 그 빛줄기를 막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릴 때 제이슨의 앞으로 엘하르트가 현신했다.

    인간의 형태로 등장한 제이슨이 손을 내밀어 날아드는 섬광을 한 손으로 막아냈다. 강대한 빛은 엘하르트의 손에서 찬란하게 빛나더니 곧 서서히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엘하르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 섬광과도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맙다. 엘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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