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10화 (111/151)

함정(2)

고대의 마법. 그 정점에 선 것이 라마란스.

아무리 일이 급하다고 해도 카젠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말에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호출했다. 그가 만들어준 장치는 거리를 신경 쓰지 않고 통신할 수 있었으니까.

라마란스는 제이슨의 얘기를 듣고는 드물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곧장 공간 이동을 해서 찾아왔다. 라마란스는 마법 연구소 앞에 서서는 미소를 지었다.

“왜 지하에 이런 것들이 만들어졌는지 아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당시에도 마탑이 몇 개 있었는데 내가 다 날려버렸거든. 나를 막아보겠다고 나서기에 시범 삼아 몇 개를 통째로 날렸더니 숨어들기 시작했지.”

라마란스는 귀엽다는 듯 카젠이 한 걸음을 내디딘 곳을 살폈다.

“어? 정말 죽었을 수도 있겠는데?”

“어지간하면 죽지 않을 놈이야.”

“카젠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숨을 못 쉬면 죽어. 카젠의 능력으로도 나올 수 없는 지하에 갇혔군.”

“그런 지하가 있어?”

“나를 상대하기 위한 장치인가 본데? 아마 그곳에는 마법을 방해하는 온갖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겠지. 그래서 이건 여기서 꺼내줘야 돼.”

“꺼낼 수 있어?”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아.”

씨익 웃은 라마란스가 마법진 위에 손을 올리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곧 마법진이 빛나는가 싶더니 흙무더기와 함께 카젠이 나타났다.

“카학! 이런 썅!”

고함을 내지르는 카젠을 보고 제이슨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 솔직히 어지간한 마법은 몸으로 때우면 될 줄 알았어.”

카젠은 기세 좋게 나섰다가 창피한 꼴을 당해서인지 인상을 구긴 채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로 갔던 거야?”

“몰라. 어떤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관 같은 곳이었는데 박살 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나올 수가 없었다.”

라마란스는 그런 카젠을 향해 드물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거기서 네 힘을 모두 끌어냈다면 죽었을 거다.”

“내가 그리 쉽게 죽을 것 같아?”

“그 유리관 안에서는 아마 마법을 쓰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나 정도 되면 그걸 부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리고 그곳에서 마법을 썼을 때는 지맥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어.”

“지맥에?”

“그래. 네가 난동을 피웠다면 아마 그곳을 중심으로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거다.”

“미친놈들 아냐? 천재지변을 일으키면 죽어도 좋다는 거야? 뭐야?”

“그때 놈들은 나를 그렇게 두려워했지.”

“미친놈들.”

가볍게 투덜거린 카젠이 말했다.

“내가 나설 곳이 아닌 것 같다. 널 위해서 만든 함정들이라면 네가 뚫어.”

라마란스는 픽 웃더니 말했다.

“네가 멍청했던 거지. 용언은 뒀다 뭐하냐?”

“용언?”

“용언이 통하지 않는 마법의 경지에 든 것은 나뿐이다. 그러니 모조리 멈춰 버려.”

카젠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지간한 마법은 다 몸으로 때우면 됐는데 귀찮게 됐군.”

어지간한 마법은 흠집도 나지 않는 카젠은 용언도 잘 구사하지 않았었다. 카젠은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소리쳤다.

[모두 멈춰라!]

카젠의 외침이 던전 구석구석까지 뻗어 나갔다. 그의 목소리가 닿는 곳에 이뤄지는 기적.

대체 이런 괴물을 잡은 사도들은 또 어떤 녀석들이란 말인가? 그들이 부리는 신력이라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제이슨은 카젠이 모든 마법 트랩을 멈춰 놓은 것을 보고는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던 칼데안과 팀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용언 마법으로 모든 마법 트랩을 무효화하고 당당히 걷는 모습. 기간트도 맨주먹으로 때려잡던 카젠의 모습을 보았었지만, 이런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그냥 몸으로 때웠다는 말에 명언이 떠올랐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그러나 그렇게 기세 좋게 걸었던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함정에 당했다. 앞장서 걷던 카젠이 밟은 바닥이 달칵 소리를 내더니 머리 위의 복도 천장이 쏟아져 내렸다.

카젠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천장을 받아냈다. 그런데 카젠의 팔이 굽혀지더니 무릎이 구부러졌다.

제이슨이 검을 휘둘러 참격을 날렸다.

카젠이 들고 있던 복도 천정이 그대로 베어졌다. 좌우로 떨어진 바위를 바라보던 카젠이 인상을 굳혔다.

“이 미친 것들이 진짜 제대로 함정을 준비했네.”

제이슨의 참격은 예전과 비할 데 없이 강력해졌다. 그래서 지금 잘라낸 천정에서 떨어진 바위가 반으로 갈렸는데 그 크기가 지상의 햇빛이 닿을 정도였다.

무슨 짓을 했는지 지하에 위치한 고대 마법 연구소 위쪽으로 전부 내려앉았다. 말 그대로 산이 내려앉는 것을 떠받든 모양새였다.

제이슨은 자신의 참격으로 산을 갈랐다는 것보다 그걸 받쳐 든 카젠에게 놀랐다.

제이슨은 카젠의 어깨를 잡아 줬다.

“계속 너만 고생하게 해서 미안하군.”

카젠은 어깨를 빙글빙글 돌려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앞은 못 쓰겠는데?”

반으로 갈려서 떨어졌다고 하지만 산이 쪼개진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그 충격으로 던전은 거의 못 쓰게 되다시피 했다. 라마란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앞으로 향하자 곧 그의 앞으로 깔려있던 바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을 거스른 것이 아니고 중력을 조작해서 앞을 가로막은 것들을 치워냈는데 그것만 보아도 라마란스 또한 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칼데안은 조금 전부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곳에서 라마란스가 감탄했다.

“이거 최후의 마탑이었나? 뭐가 이리 많아?”

마법 연구소의 내부에는 온갖 아티펙트들이 종류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제이슨이야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걸 보는 라마란스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황궁 보고보다 더 가치 있겠는데?”

“그 정도야?”

“솔직히 황궁 보고에 있는 물건들은 그다지 대단한 물건들은 없고, 잡동사니들이 많았지. 하지만 워낙 이것저것 모아놔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올 수 있었어.”

라마란스는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것들은 당시의 마법 정수라고 해도 될만한 물건들이야.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아티펙트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군.”

“대단하네. 사용법도 바로 알아낸 거야?”

“자세한 사용법을 알아내려면 연구해야 되겠어. 보다시피 양산하지 않고 오로지 성능만을 중시해서 만든 것들이야.”

“효과는?”

“천차만별인데.”

라마란스가 손을 내밀자 반지 하나가 날아와 손에 잡혔다. 라마란스는 그 반지를 보이며 말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지. 여긴 헬파이어 마법진이 그려져 있어. 물론 헬파이어인만큼 그 막대한 마력을 이 안에 담아 놓을 수는 없었지. 사용자의 마나를 빨아들여서 쏘는 물건인데 이건 시험작이라고 해야겠군. 성능은 좋지만, 이건 대마법사 수준이 아니면 마법을 발현할 수 없어. 대마법사에게는 도움이 되겠군. 별다른 주문 없이 헬파이어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라마란스는 그리 말하고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말을 이었다.

“몇 가지는 대마법사들이나 쓸 법한 아티펙트들이야. 뭐 저것들만 있으면 고위 마법도 마음껏 쓸 수는 있겠군.”

아크 리치인 라마란스는 마나라면 넘치도록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작정하고 아티펙트를 쓴다면 캐스팅도 없이 고위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제이슨의 시선이 라마란스를 향했다.

“이거 순전히 너에게 좋은 것 아닌가?”

“자세히 살피면 너에게도 쓸만한 것들이 있을 거다. 그런데 연구에 시간이 걸릴 것 같군.”

“고마워. 이 중에서 일반인도 쓸 수 있는 호신용 아티펙트가 있으면 골라줘. 팀원들에게 나눠 줄 거야.”

“이거 얼마짜린 줄은 알고 하는 말이지?”

“얼마짜리인데?”

“주인만 잘 만나면 하나에 기간트 값 이상 나가는 거야.”

“상관없어.”

고민하지 않고 답하는 모습에 칼데안과 팀원들이 눈을 반짝였다.

“이들이 내 밑에 있는 이들이라는 것을 숨기고 활동하다가 어떤 적을 만나도 도망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왕국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 블랙 아울만 봐도 상황이 벌어지면 왕국에서는 그들이 자국민이라고 보호하지 않는다. 제이슨이 란진 왕국에 보내 정보 요원으로 훈련받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

제이슨의 말을 들은 칼데안이 감격에 서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카젠은 만났었지만, 라마란스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던 그들은 그의 마법 능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산처럼 무거운 바위를 받아드는 카젠이나 그걸 반으로 쪼개는 마스터 제이슨이나 그 모든 것을 들어 올리는 라마란스나 모두 그들의 상식을 붕괴했다.

게다가 그들이 찾은 마법 연구소는 끔찍할 정도의 함정들이 즐비했다. 용언 마법이라는 전설적인 능력도 사용하는 괴물 같은 카젠조차 처음에 죽어버릴 뻔했다.

그들이 그냥 무작정 들어왔다면 전멸을 면치 못했을 끔찍한 던전이었다. 함정이 강력했던 만큼 그 과실은 달고 달았다.

제이슨은 칼데안을 돌아보고는 물었다.

“이곳은 라마란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영지로 돌아가지.”

“예.”

제이슨이 라마란스를 돌아보았다.

“영지로 보내줘.”

“그러지.”

영지로 돌아가는 것도 막대한 돈이 들 일이지만 라마란스가 있다면 무료다. 마정석에서 뽑아내야 할 마나조차 그가 품고 있는 마나로 대체하면 되니까.

그가 그려준 마법진에 오르니 빛과 함께 영지로 돌아왔다. 카젠은 배고프다고 식당으로 뛰어갔고, 제이슨은 칼데안을 자신의 서재로 데리고 갔다.

제이슨은 칼데안에게 주머니 하나를 건네줬다.

“던전 안의 물건 중 앞으로 요긴하게 쓰일만한 것들로 하나씩 준비해 주지. 던전 안의 보상을 계산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이건 포상금으로 쓰게.”

제이슨이 건네준 주머니를 칼데안은 품에 넣었다. 마스터가 된 제이슨이라면 넉넉하게 넣어줬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이건 다음 던전 탐색에 필요한 경비일세.”

제이슨이 건넨 주머니까지 받아든 칼데안이 눈을 빛냈다.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런 골드보다 새로운 고대 던전을 찾는 것이었다.

제이슨은 그 마음을 읽었기에 새로운 고대 던전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칠왕국 연합 쪽에 있는 것이라 특히나 조심해야 했지만, 그곳에 고대 던전을 찾을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엘하르트가 찍어준 고대 던전 중 기대가 되는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고대 던전들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궁에서 가져온 보검을 만든 대장장이 야토의 고대 던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니 그곳을 찾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라 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쓸 수 있는 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엘하르트의 무기를 만든다고 했는데 그사이에 신에게 도전했다가 봉인되어 버렸다고 했다.

아마 그때 몸을 숨겼을 거라고 하니 대장장이 야토의 던전을 찾으면 실제 엘하르트를 위해 만들었던 무기를 얻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엘하르트를 쓰지 못하지만 엘파이트의 무기로 쓰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위치가 칠왕국 연합인만큼 이번에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 있으니 아티펙트가 선별되면 떠나도록 하게. 그동안은 편하게 쉬도록 해.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언제고 연락만 주시면 바로 떠나겠습니다.”

칼데안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제이슨은 천상 트레저 헌터인 그를 구하기를 잘했다고 여겼다. 이번에 챙겨준 골드만 해도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골드였음에도 그는 다음 던전을 찾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야토의 던전을 찾을 수 있을까?”

엘하르트가 그 말에 답했다.

-찾을 수만 있다면 가장 빠르게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일 거다. 녀석은 내 취향을 잘 알고 있으니까.

엘하르트의 맞춤 무기. 제이슨도 그게 어떤 무기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바쁘네.”

던전 덕분에 사도들이 만든 독의 대비가 늦어졌지만, 새로운 아티펙트를 많이 얻었으니 손해는 아니다. 오히려 이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법 아티펙트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고대의 모든 마법의 총아를 손에 넣은 상황. 큰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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