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9화 (110/151)

함정(1)

함정

샤이드 대공은 펠레드와 잠시 얘기를 나눈 사이에 다시 혼절했다. 오러를 태운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가 혼절한 사이에 펠레드는 제이슨과 라마란스를 초대했다. 간단한 티 타임 중에 펠레드의 시선은 라마란스에게 집중되었다. 궁정 마법사부터 시작해서 황궁의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라마란스의 재능은 충분히 증명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상대가 마스터인 제이슨의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인재는 어디서 구한 건가?”

제이슨은 미소로 화답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펠레드도 확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나?”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돌아보았다. 라마란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혹시 황궁 보고를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황궁 보고?”

펠레드는 미소를 지었다. 황궁 보고는 제국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온갖 것들이 들어있었다. 과거 정복 전쟁 때는 다른 왕국의 국보급 보물들도 쓸어왔었으니까.

그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좋네. 샤이드 대공을 구해줬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둘 모두에게 하나씩 가지고 나올 기회를 주겠네.”

제이슨은 그 말에 정중히 부탁했다.

“제 기회를 라마란스에게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괜찮겠나?”

“예. 사실 오늘은 제가 한 일이 없으니까요.”

펠레드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게. 바로 구경을 갈 텐가?”

“그럴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펠레드가 황실 근위 기사 하나를 불러서 라마란스를 황궁 보고로 데려다주라고 전하고는 팔찌를 풀어서 건넸다. 제이슨은 펠레드가 참 겁도 없다고 여겼다.

마음만 먹으면 라마란스는 황궁 보고를 다 털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어떤 장치를 해놓았든 그걸 다 파훼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이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제국과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아직은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라마란스가 황실 근위 기사를 따라가고 나자 펠레드가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샤이드 대공은 위험하기에 이곳으로 돌아왔지만, 전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참전할 수 있겠나?”

제이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샤이드 대공께서 저리 부상을 당하고 온 상황에서 제가 나서는 것은 국왕 전하의 뜻을 따르기도 해야겠지만, 이건 제국의 전쟁입니다.”

“그렇지.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이네.”

제국의 마스터가 아니기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샤이드 대공도 위험해졌던 곳에 제이슨을 보낼 수는 없었다. 샤이드 대공이 치료가 되었다고 해도 마스터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상황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와서 도움을 준 것은 고맙네. 고작 보물 두 개로 보답이 될지 모르겠군.”

제이슨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라마란스가 간 이상 보고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 둘을 가지고 나올 터였다.

그것은 골드로도 살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제이슨은 충분한 보답이 될 것을 알았다.

“충분한 보답이 됩니다. 솔직히 와서 한 일도 별로 없었으니까요.”

펠레드는 손짓을 했고, 곧 시종이 다가왔다.

“치우고 술로 가져오게.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으니 술 한잔하지.”

금세 차려진 술상의 술을 따르며 펠레드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비밀일세.”

“무덤까지 가지고 가죠.”

픽 웃음을 흘린 펠레드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고는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는 단숨에 비웠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군.”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들으셨습니까?”

“블랙 드래곤 용병단이 자신들만으로 샤이드 대공을 막았다고 하더군. 그리고 성기사단이 주력 기사단을 막는 중에 폭발이 있었네.”

“신벌도 막아내신 분이 폭발 정도에 당할 리는 없을 텐데요?”

“자네도 보다시피 중독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제대로 오러를 다루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지.”

제이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그 폭발과 중독이 모두 블랙 드래곤 용병단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사도가 그쪽에 붙어있다는 말이다.

그들이 한창 술잔을 비우며 제국이 앞으로 전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라마란스가 돌아왔다.

“벌써 돌아왔나?”

라마란스는 펠레드 황제의 앞으로 두 개의 물건을 꺼냈다. 하나의 갑옷과 한 자루 검. 둘 다 척 보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고대 유물로 두 개를 가져왔군.”

“괜찮겠습니까?”

“한 입으로 두말하는 취미는 없네.”

“감사합니다.”

라마란스는 눈앞에서 물건들을 챙기자 펠레드가 그에게도 술잔을 따라줬다. 라마란스는 그걸 앞에 놓고 잔을 비우지는 않았다. 아크 리치인 그는 뭔가를 먹을 수는 없었으니까.

영생과 무한한 마나를 손에 얻었지만, 그는 먹을 것을 먹을 수 없었다.

펠레드는 더 권하지 않고, 그들의 술자리는 곧 끝났다. 제이슨은 샤이드 대공이 깨어나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샤이드 대공에게서 알아내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미 얻었으니까.

영지로 돌아온 제이슨은 라마란스가 가지고 온 물건에 대해서 물었다.

“이건 대체 뭐기에 집어 온 거야?”

제이슨의 물음에 대한 답은 엘하르트가 직접 현신하며 말을 꺼냈다.

“저 검에는 신의 의지가 미약하지만 깃들어 있군. 그거 설마 대장장이 야토가 만든 물건인가?”

라마란스가 엘하르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야토와 친분이 있지 않았나?”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라마란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신의 의지라는 것은 내가 다룰 수 있는 물건은 아니야. 그건 당신이 가져. 내가 필요한 것은 이것에 사용된 금속일 뿐이니까.”

엘하르트가 손을 내밀어 검을 만졌다. 그의 손으로 희미한 빛이 빨려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왜 느끼지 못했지?”

“사실 신의 의지가 깃든 것은 저 검이 아니야. 저 검을 만들었던 망치와 모루였지. 사도들이 만들어 인간들에게 준 몇 안 되는 신물들이었어. 그러다 보니 그것을 통해 만들었던 물건에 미약하게나마 신의 의지가 깃들어 있는 거다.”

“도움이 되겠어?”

“없는 것보다는 낫지.”

“다행이네.”

라마란스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 금속. 연금술이 필요하긴 한데 이걸 녹여서 몇 가지 조합식대로 조합하면 그 독을 막을 수 있다. 두 개 다 녹여봐야 고작 팔찌 하나 분량이겠지만, 그거면 적어도 중독의 위험은 없겠지.”

“얼마나 걸려?”

“사흘 정도.”

제이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들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해도 지금 당장 공격을 갈 수는 없었다. 그들이 가진 독에 대한 방비가 우선 되어야 했다.

“그래도 많이 좁혔네.”

제이슨의 말을 들은 엘하르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사도들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야.”

엘하르트는 가볍게 제이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제이슨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준비되면 사도들과 싸우게 될 거야.”

라마란스도 눈에서 귀광을 번뜩이며 답했다.

“최대한 빨리 준비해 보도록 하지.”

“잘 부탁해.”

밖으로 나온 제이슨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엘하르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블랙 드래곤 용병단을 만들고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걸까?”

-그들도 필요해서 그랬겠지. 이유 없이 그럴 놈들은 아니니까.

“우리에게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일을 벌일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지?”

-그래. 분명 이유가 있다. 다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가 그들을 분쇄해버리면 의미가 없는 거지.

제이슨은 픽 웃음을 흘리고는 그 말에 느껴지는 자신감에 맞춰주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제이슨도 엘파이트를 얻은 후에 기간트에 올랐을 때는 마스터를 압도할 만큼 강해졌지만, 그들의 상대는 마스터가 아니다.

사도들은 모이면 신의 힘을 다룰 수 있다고 하는 존재들. 하나일 때는 오러 유저인 벡스에게도 당했지만, 실제로는 마스터들도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들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엘카소라는 마법사가 합류했다고 하니 더 준비해야 했다.

오러 중독과 폭탄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무장한 그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 꺼낸 무기가 그 정도라면 실제로 그들이 가진 무기는 어떤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이쪽도 충분한 무기가 있다는 점이다. 라마란스와 쉐일링, 카젠. 모두 세 명 이상의 사도와 싸울 수 있는 전력들이라고 했다.

세 명 이상이 모여서 신력을 다뤄야 잡을 수 있는 괴물들.

그런 그들이 있으니 싸울만 하리라. 무엇보다 라마란스의 합류가 있으니 엘카소와도 어떻게든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이슨은 연무장으로 가며 입을 열었다.

“카젠. 연무장으로 와라.”

오늘은 카젠과의 대련으로 몸을 데울 생각이었다.

제이슨은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이들을 보았다. 넉넉히 챙겨줬음에도 고생을 해서인지 그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고생 많이 했군.”

칼데안은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고생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곳에 고대 던전이 있었습니다.”

고대 던전 탐사를 주력으로 하는 트레저 헌터에게 정확한 이정표가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이룬 업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업적을 쌓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트레저 헌터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업적을 쌓을 생각에 칼데안은 잔뜩 기뻐하는 중이었다.

“아직 안을 확인하지는 않았고?”

“예. 저희 팀만으로 조사는 가능하겠지만, 보고가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같이 가지.”

제이슨은 이번에 고대 던전 탐사에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던전의 어지간한 함정 따위는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좋은 자가 있었다.

“카젠!”

제이슨의 부름에 입에 갈비뼈 하나를 문 채 카젠이 나타났다. 창문에 불쑥 나타난 카젠을 보고 칼데안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아무래도 둘의 첫 만남이 위험했던 만큼 그를 보자 몸이 반응했다.

“왜 불렀어?”

“나랑 같이 갈 데가 있다.”

“어디?”

“고대 던전을 하나 찾았다. 가서 털어오자.”

카젠이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그런 것까지 해야 하냐?”

“몸 좀 푼다고 생각해. 곧 사도들과 만나게 될 테니까.”

카젠은 귀찮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어디야?”

제이슨의 시선이 향하자 칼데안이 품에서 손바닥만한 판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판이 넓어지면서 안에 들어있는 마법진이 나타났다.

“공간 이동 장치를 설치하고 왔습니다.”

“일 잘하는 친구군.”

카젠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법진 위에 섰다. 제이슨도 그곳에 올라서자 마지막으로 칼데안이 올라섰고, 강렬한 빛과 함께 그들은 컴컴한 동굴에 섰다.

“오셨어요!”

환하게 웃으며 헨젤이 인사하자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들의 앞에 섰다. 엘하르트가 예상했던 이곳은 고대 던전 중에서 마법 연구소라고 했다.

그랬던 만큼 칼데안에게 혹여 찾더라도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위험한 곳이니까.

제이슨은 베제트를 소환해 몸에 두르고는 카젠을 돌아보았다.

“잘 따라와.”

마법 연구소인 만큼 어떤 마법 트랩이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는 곳. 그러니 카젠을 앞장세워야 했다.

라마란스가 중요한 것을 만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를 데리고 왔을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몸으로 때우는 것이라면 카젠만한 이가 없다.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카젠이 갑자기 사라졌다.

“응?”

제이슨은 카젠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제이슨에게 엘하르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건 생각 못 했네? 라마란스 불러와라. 공간 전이 마법 트랩이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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