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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8화 (109/151)
  • 중독(2)

    평원에 있던 모두가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에 휘말린 주변 기간트들마저 박살이 났다.

    그 주변을 전장으로 삼던 이들은 샤이드 대공의 기사단과 성기사들이었다. 양측의 주전력들이었지만, 폭발에 휘말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그만큼 강렬한 폭발이었다. 그렇게 양측의 주 전력이 사라진 상황이었지만, 신성 교국 측에서는 오히려 기회라고 여겼다. 그들의 최대 전력이 폭발에 휘말렸지만, 수호검 샤이드 대공의 에고 기간트가 보이지도 않았다.

    신성 교국의 좌군 수장이 통신을 통해서 외쳤다.

    “마스터가 죽었다!”

    그 외침이 미친 파장은 컸다. 에고 기간트는 어지간한 마법은 융단 폭격을 당해도 끄떡없었는데 조금 전의 폭발에는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 파장은 컸다.

    제국의 절대 강자. 황제를 수호하는 수호검. 신벌에서도 살아 돌아온 자.

    그에 대한 수많은 이명이 있었지만, 그가 쓰러진다는 것은 제국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폭발에 휘말려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제국군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신성 교국의 기간트들이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실력 면에서라면 제국의 기간트 라이더들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수호검을 잃은 상황에서 사기가 꺾인 그들은 점점 뒤로 밀렸다.

    신성 교국의 병력이 밀어붙이자 제국군은 진형을 짜면서 천천히 후퇴를 시작했다. 비록 샤이드 대공을 잃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훈련된 이들이었다.

    중구난방으로 도망쳤다면 큰 피해를 입었겠지만, 진형을 짜고 천천히 후퇴하는 그들에게 피해를 강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들도 더는 신성 교국을 노리지 못할 거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신성 교국도 물러나는 제국군을 보고는 뒤쫓지 않고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지금 공격을 가하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원에서의 전투는 마스터와 그들의 주요 기사단이 소멸하는 것으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엘페린이 천천히 눈을 뜨고는 엘카소를 돌아보았다.

    “놓쳤다.”

    “그래 보이더군. 폭발할 때 공간 왜곡장을 걸어 놓았는데 그 와중에 빠져나간 것을 보면 요즘 마법도 제법 쓸만해 진 것 같아.”

    “그게 그렇게 웃고 말 일인가?”

    “네가 끝장내지 못한 것도 있잖아.”

    엘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투덜거렸다.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해서 나이트급 기간트로 만들었더니 확실히 부족해. 제대로 싸우려면 히어로급 기간트 정도는 되어야 하겠어.”

    “오러 유저들이 너무 적어. 강제로 만들 수도 없고.”

    엘렌의 말에 엘페린이 엘카소를 돌아보았다.

    “만들 수 없어?”

    “솔직히 오러 유저들은 필요 없지. 히어로급 기간트에 네 정신을 연결만 해 놓아도 되니까.”

    “그래? 그럼 비장의 무기로 그렇게 만들까?”

    엘카소는 담담히 말했다.

    “히어로급 기간트를 몇 개 사야 할 거야.”

    “뚝딱 못 만드나?”

    엘렌이 한심하다는 듯 엘페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신력만 가지고는 힘들어. 그보다 중독은 확실히 된 건가?”

    “맞아. 중독은 됐어.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을까?”

    “오러만 보고 사는 자들은 오러가 독이 되었을 때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곧 죽게 될 거다.”

    “그럼 다행이군.”

    엘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평야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만들었던 폭심지가 이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뭉게뭉게 올라오는 먼지구름을 보며 엘페린이 미소를 지었다.

    “젠장. 블랙 드래곤 용병단을 다시 키우려면 골드 깨나 깨지겠군.”

    “하지만 너희들이 원하던 이름값은 얻게 되었지.”

    아무리 자폭으로 처리했다고 하지만, 마스터를 처리했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무게는 남달랐다. 지금 당장은 살아남았다고 해도 결국 중독될 테니 그것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사람들이 몰려들 수도 있으리라.

    이제 더 큰 힘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도들을 찾기가 쉬워진다. 조금씩 그들의 계획이 앞으로 나아갔다.

    훈련 중에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곳으로 온 이가 있었다. 제이슨이 검을 내리고 돌아보니 그곳에는 헤이튼이 다급한 기색으로 다가와 있었다.

    “제국 황제로부터 영상 통신이 왔습니다.”

    “황제 폐하에게서?”

    결혼식 주례까지 서준 그였기에 제이슨은 헤이튼을 따라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제이슨은 서재로 들어가 책장을 두드렸다. 좌우로 책장이 밀리고 나타난 문으로 들어간 제이슨은 그곳에서 영상 통신구를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펠레드가 있었다. 그가 그렇게 초조해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폐하?”

    -오!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샤이드 대공이 장거리 텔레포트로 돌아왔는데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네. 신관들이 없어서 궁정 마법사에게 물었는데 치료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군.

    “회복 포션이 안 듣는 겁니까?”

    -포션의 문제가 아니야. 그의 오러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자네가 봐줬으면 하네.

    제이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좋아. 황궁 좌표를 보내주도록 하지. 이걸 이용하면 단번에 올 수 있을 걸세.

    제국의 국경에서 한 번, 황궁에 입구에서 한 번, 총 두 번의 공간 이동을 하고 나서 마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그 시간만 족히 몇 시간은 걸릴 터.

    그러니 아예 황궁 내부의 좌표를 알려준다고 했다. 그렇게 시급한 일이고, 제이슨을 믿는다는 얘기였다. 수호검이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또 다른 마스터를 황궁으로 들인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제이슨은 그곳에 가기 전에 만나볼 이가 있었다.

    마탑으로 달려간 제이슨은 그곳에서 라마란스를 만났다.

    “나랑 같이 제국의 황궁으로 가자.”

    “황궁?”

    “그래. 샤이드 대공의 오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데 보통 문제는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오러에 대한 것이라면 라마란스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마법적 지식은 상식을 초월한다. 그러니 그에게 맡기는 것도 좋으리라.

    라마란스에게 좌표를 일러주자 그가 곧장 주문을 외웠고, 둘은 동시에 황제가 일러준 좌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좌표에 도착한 제이슨은 자신의 앞에 선 이들을 바라보았다.

    황실 근위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제이슨과 라마란스를 확인하고는 그들을 안내했다. 그들을 따라간 곳에는 침대에 샤이드 대공이 쓰러져 있었고, 그의 앞에서 펠레드가 서성이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연달아 신성 교국에서 위급한 지경이 되어 돌아온 샤이드 대공 때문에 그는 무척이나 불안해하고 있었다.

    제이슨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갔을 때 펠레드가 다가와 손을 잡았다.

    “제발 샤이드 대공을 도와주게.”

    “살펴보겠습니다.”

    오러란 가장 뛰어난 생명력의 힘이다. 그러다 보니 오러 유저는 병에 걸리는 경우도 드물고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마스터의 오러다.

    그 성질 자체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는 마스터의 오러에 문제가 생겼다니?

    제이슨은 같은 마스터라고 자길 불러준 펠레드의 뜻에 따라 샤이드 대공에게 다가갔다. 그는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러는 불길한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제이슨도 주춤거릴 정도로 불길한 기운.

    그때 뒤에 서 있던 라마란스가 앞으로 나왔다.

    “내가 잠시 살펴봐도 되겠나?”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나자 펠레드가 물었다.

    “누군가?”

    “흑색 마탑의 수석 마도공학자입니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니 한 번 맡겨보시죠.”

    “살려만 주면 무엇이라도 들어주지.”

    라마란스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샤이드 대공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검은빛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다가가 샤이드 대공의 오러에 닿았다.

    라마란스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말했다.

    “이걸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 고대에 전해지는 독으로 오러라는 것을 전하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도에 연관된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은 제이슨이 물었다.

    “치료는 가능해?”

    “중독된 상태라면 그 오러를 태워야만 해. 영구적 소실이 된다.”

    라마란스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 기준으로 따진다면 이만한 양의 오러를 잃게 되면 그는 오러 유저 수준까지 떨어지겠군.”

    제이슨의 시선이 펠레드를 향했다. 수호검이 오러를 잃고 수호검이 아니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펠레드는 처음에는 당혹스러워 하는 것 같더니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오러를 영구적으로 소실하게 된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나?”

    “그래 본 적이 없어서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샤이드 대공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겁니다.”

    제이슨의 말을 들은 펠레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마란스는 확답을 듣자 품에서 몇 가지 장치를 꺼내며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상당히 괴로울 거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눈을 뜬 샤이드 대공의 말을 들은 라마란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치 몇 개를 그의 몸에 붙였다. 장치들이 공명하기 시작하더니 샤이드 대공의 몸이 들썩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샤이드 대공을 보고 펠레드가 인상을 구긴 채 뒤돌아섰다.

    “부탁한다.”

    펠레드가 떠나고 나서 제이슨은 작정하고 그의 오러를 불태우는 라마란스 덕분에 샤이드 대공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새삼 사도가 쓴 독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거 나도 위험할까?”

    -너라면 안 당하지.

    담담하게 답한 엘하르트가 설명해주었다.

    -내가 나서지 않고 쉐일링만 나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이건 오직 오러를 쓰는 이들에게만 통하는 독이다.

    “그런 건가?”

    -그건 그렇고 이걸 보면 엘카소도 깨어났나 보군.

    “엘카소?”

    -사도 중에서 마법을 담당하는 녀석이다. 인간과 골렘을 만들 때 가장 앞서 나선 녀석이기도 했고, 녀석은 사도들 중에서 상대하기 까다롭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들 거다.

    “순수 능력만으로?”

    -그래. 신력이 없이도 강한 녀석이야. 라마란스와 샤워도 해볼 만할 정도로 강한 녀석이다.

    제이슨은 사도들 쪽에서도 전력이 증강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라마란스와 카젠, 쉐일링을 얻은 것처럼 저들도 사도들을 하나씩 늘린다.

    저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신력을 더 강하게 다룰 수 있다고 했으니 쉽지는 않으리라.

    제이슨이 엘하르트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라마란스의 작업도 끝났다. 샤이드 대공도 탈진했는지 혼절한 상태였다.

    라마란스는 장치들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독은 태웠다. 그중 일부는 추출도 했으니 연구해보면 해독제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지금 당장 샤이드 대공을 구할 수 없어서 중독된 오러를 태웠던 것뿐. 시간이 있다면 해독제를 만들어 볼 수도 있었으리라.

    제이슨은 샤이드 대공에게 다가와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오러 홀이 줄어든 것은 아니니 차차 회복할 수 있겠어.”

    “다행인 건가?”

    “당연하지. 이 정도라면 회복에 시간은 들어도 예전의 기량은 충분히 회복할 수 있어.”

    제이슨은 옆을 지키고 있던 황실 근위 기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폐하에게 소식을 전해주게.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지.”

    “알겠습니다.”

    황실 근위 기사 하나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던 제이슨은 샤이드 대공을 내려다보았다. 샤이드 대공이 깨어나야 사도들이 누구 편에 붙었는지 알 수 있게 되리라.

    지금까지 특정 짓지 못했던 자들의 위치를 파악할 열쇠를 샤이드 대공이 가지고 왔다. 그를 바라보는 중에 달려온 펠레드가 샤이드 대공의 손을 잡고는 물었다.

    “괜찮은가?”

    “치료는 잘 끝났습니다. 그리고 회복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다행이야.”

    펠레드가 샤이드 대공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는 모습에 제이슨은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그 눈물이 손등에 닿았을 때 샤이드 대공이 눈을 떴다.

    샤이드 대공은 미소를 지은 채 반대편 손을 가져와 펠레드의 손을 꼭 쥐었다.

    “샤이드! 깨어났나?”

    “예. 폐하.”

    “다행이다. 다행이야.”

    펠레드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샤이드 대공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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