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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7화 (108/151)
  • 중독(1)

    중독

    제국의 기세는 거침없었다. 벌써 그들은 국경 부근을 점령했고, 차분하게 진격을 시작했다.

    광휘의 검이 없다는 가정하에 진행된 전쟁이었고, 실제로 3천 기의 기간트 라이더와 마법 병단이 신벌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승산이 충분하다고 여기고 벌인 전쟁이었다.

    거침없이 진격하던 제국군은 테로이트 평원에 신성 교국의 병력이 모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병력을 집결시켰다. 이번에 밀고 들어가는 전력은 모두 5천에 달하는 기간트.

    중군으로는 샤이드 대공이 이끄는 3천의 기간트가 있었고, 좌우로는 1천 기의 기간트를 나눠 진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병력은 이제 25만이 남았다. 30만이었던 것이 국경에 있던 세 개의 성을 점령하며 5만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진격해 들어가는 제국군을 맞이하기 위해 나선 것은 4천 기의 기간트와 수도승과 신관으로 이뤄진 병력 1만과 일반 병사들로 이뤄진 20만의 인원이었다.

    병사들을 모으는 것은 성전이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하다못해 농기구라도 손에 들고 뛰어드는 병사들은 넘쳐나는 신성 교국이었다.

    하지만 훈련된 정병은 아니다 보니 그들을 전력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적들의 진격을 막고 전선을 길게 늘어트리기 위한 방벽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적들의 병력이 포진했다는 말을 듣고 샤이드 대공은 담담히 말했다.

    “광휘의 검이 없다면 이 전쟁은 해보나 마나다. 저들의 특이사항이 있나?”

    “예. 블랙 드래곤 용병단이 합류했다고 합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

    “S등급 용병인 판톤이 새로 만든 용병단인데 이번에 드래곤급 용병단으로 이름이 올라갔다고 하더군요.”

    “드래곤급 용병단은 모두 사라졌지?”

    “예.”

    “그런데 신성 교국의 편에 섰다?”

    샤이드 대공은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있음을 암에도 불구하고, 광휘의 검이 없다고 판단되는 와중에 신성 교국의 편에 섰다는 것이 의아했다.

    샤이드 대공이 잠시 말이 없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변수는 좋아하지 않았다.

    “뭘 믿고 이렇게 나온 건지 확인해 보자.”

    그 말을 끝으로 샤이드 대공은 지도에 두 손을 짚으며 말했다.

    “저쪽에서 특별히 수작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으니 한 번 붙어보지. 신벌이 아니라면 두려워할 건 없으니.”

    샤이드 대공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테로이트 평원에 포진한 기간트들은 그 넓은 평원을 막아서는 일대 장관을 보여주었다. 그런 기간트들 사이에 눈에 띄는 기간트들이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 도색한 기간트들. 나이트급 기간트가 스무 기나 되었고, 워리어급 기간트는 오십 기나 되었다. 드래곤 용병단의 이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원 편성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대기 중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판톤이 서 있었다.

    “정말 가능할까?”

    -아직도 나를 못 믿는 건가?

    “상대는 마스터다.”

    -그래 봐야 반쪽짜리. 걱정하지 마라.

    판톤은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을 꺾은 것을 보면 상대는 확실히 특별한 존재였다. 게다가 본신이 에고 기간트인 그들이지만 마스터가 없는 에고 기간트는 반쪽짜리다.

    그러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저들과 한배를 타기로 한 이상 지켜보기로 했다.

    평원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기간트 대군을 보면서 판톤은 한숨을 내쉬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 신성 교국의 총사령관을 맡은 것은 광휘의 검의 제자이자 그의 뒤를 이은 첫 번째 검. 발바로의 연락이 들려왔다.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잊지 않았소. 길을 열어주시오.”

    -그대를 믿지.

    솔직히 믿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아직 제국의 진영이 완성되기 전에 신성 교국의 성기사단이 전진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적진에도 변화가 생겼다.

    수호의 검을 나타내는 깃발이 가장 앞으로 나오면서 제국군도 간을 보지 않고 제대로 싸우고자 했다. 그것을 보고 발바로가 말했다.

    -너희 가치를 보여다오.

    그 말에 블랙 드래곤 용병단이 일시에 튀어나갔다.

    “샤이드 대공만 저희가 막습니다.”

    -그만 없으면 충분히 싸울 수 있소.

    판톤이 앞으로 나가자 그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기간트들이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 샤이드 대공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샤이드 대공도 자신을 따라나서는 기사단이 있었다.

    그런데 블랙 드래곤 용병단이 샤이드 대공을 막아서는 순간 뒤따라오던 신성 교국의 성기사들이 그대로 돌진해 기사단을 쳐냈다.

    파도처럼 밀려와 기사단을 밀어붙이는 솜씨가 마치 이것을 계획한 것 같았고, 샤이드 대공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

    오러 유저 하나와 나이트급 기간트 20기에 워리어급 기간트 50기. 고작 저 인원으로 자신을 상대할 수 있겠다 여기는 것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샤이드 대공이 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고 정면으로 치고 나갔다. 다섯 기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동시에 달려드는 모습을 보고 샤이드 대공이 일검에 그들을 베어내기 위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단숨에 베어 넘기고 다른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움직이는데 두 기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휘두른 검이 샤이드 대공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다.

    쩌엉!

    순간 당황했지만, 샤이드 대공은 빠르게 몸을 틀어서 다음 공격을 피했다. 어떻게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가 막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로 적들을 빠르게 베어 넘겼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막혔다고 해도 그냥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에고 기간트를 타고 훈련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샤이드 대공의 실력은 이미 마스터를 넘어서고 있었다.

    달려드는 나이트 기간트의 검이 뭔가 특별한 수작을 부렸다면 닿지 않으면 그만이다.

    검을 피하면서 휘두른 발이 나이트급 기간트의 무릎을 부쉈다.

    빠각!

    그리고 검을 휘둘러 가슴을 베어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부드러웠는지 누구도 그에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어서는 혼자서 이 기간트들을 당해낼 수 없다.

    혹시나 해 재차 휘두른 오러 블레이드가 다시 막혔다.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막는 모습을 보니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건 강자를 상대하기 위한 연수합격이었다.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기 위해서는 두 기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필요했고, 그런 그 사이로 틈틈이 검을 찔러넣는 워리어급 기간트들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공격해왔다.

    예전이었다면 상대할 방법도 찾아내지 못하고 무작정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다가 당했을지도 몰랐을 정도로 뛰어난 연수합격이었다.

    그런데 싸우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연습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마친 한 명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머리로 이 수많은 기간트들을 장기 말 다루듯 다루는 느낌.

    하지만 이들은 골렘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기이한 기분이 들다니 짜증이 치솟았다. 문제는 쉽게 상대를 떨쳐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벽을 넘어섰다고 해도 오러 홀이 넓어지지는 않았으니 오러에는 한계가 있다. 에고 기간트는 그 크기만큼이나 오러를 잡아먹는 양도 많았으니까.

    오러 블레이드가 통하지 않는 지금 상대를 힘으로 압살하지 못하니 치열한 싸움이 되어갔다. 제이슨과의 대련이 아니었다면 어이없게 당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대련을 통해서 벽을 넘어선 이후에 깨달음을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그래서 싸울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엘페린의 옆에서 엘렌이 입을 열었다.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고 했는데 쉽지 않은 모양이네.”

    엘카소는 엘렌의 앞에 띄워놓은 전장의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엘페린의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군. 너희들이 말했던 마스터의 능력을 상회 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고작 전투 보조 에고를 가지고 저만한 전투력을 보여주는 것은 상정 범위를 넘어섰으니까.”

    “하긴 가지고 온 물건들이 워낙 수준이 떨어지니까.”

    나이트급 기간트와 워리어급 기간트만 가지고 마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엘카소가 인첸트한 무기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내면서 단숨에 승부를 내려고 했는데 승부가 길어지고 있었다.

    쉽지 않은 전투가 되고 있었다.

    “방법이 없을까?”

    “불가능하지는 않아. 그러려고 기간트들을 손본 거니까.”

    이번 전투로 블랙 드래곤 용병단은 대륙에 한 획을 그을 생각이었다. 마스터를 죽일 수 있다면 더는 마스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용병단이 되면 그 이름값이 달라진다.

    그렇게 이름값을 올리고도 멈추지 않는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은 자신들을 숨기고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한 방편일 뿐이니까.

    엘카소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오늘 우리는 마스터를 잡는다.”

    “그래. 그보다 엘드라고의 위치는 파악됐어?”

    “아니. 그동안 무슨 수를 부렸는지 제법 잘 숨어있어. 찾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하긴 그 긴 시간 동안 홀로 깨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엘드라고의 위치를 파악한다고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상태로 싸울 수는 없다. 그러니 이렇게 힘을 가지고 그걸 이용해서 다른 사도들을 찾아야 했다.

    엘드라고가 벌인 일은 찬탈자보다 더 끔찍한 일. 사도들이 안다면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을 알았다.

    “이제 시작하지.”

    샤이드 대공이 묶여 있다고 해도 제국의 전력이 약한 것은 아니다. 신성 교국의 성기사들과 제국의 기간트 라이더들은 훈련양 부터가 달랐다.

    제국은 애초에 훈련을 험하게 하기로 유명했고, 그들의 결속력은 뛰어났다.

    샤이드 대공은 묶었지만, 그의 기사단은 성기사단을 막아냈다. 그래서 판톤의 인상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샤이드 대공을 묶었음에도 승기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된 거야?”

    -뒤로 물러나라.

    판톤은 그 말에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샤이드 대공은 그사이 나이트급 기간트 일곱 기와 워리어급 기간트 열세 기를 쓰러트렸다.

    전장에 자신이 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기에 판톤은 뒤로 물러났고, 기간트들이 일제히 샤이드 대공을 향해 돌진했다. 샤이드 대공은 제대로 방비하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샤이드 대공의 오러 블레이드에 나이트급 기간트 세 기가 베였고, 연달아 뻗는 검에 두 기의 나이트급 기간트가 더 베였다. 하지만 그사이에 기간트들이 샤이드 대공의 엘제크에게 달라붙었다.

    샤이드 대공은 그제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들이 뭘 계획하고 있는지.

    “웃기는군.”

    샤이드 대공은 신벌에서도 살아남았다. 자신이 괜히 수호의 검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오러를 보호막처럼 펼칠 수 있기에 붙은 이름이었다.

    샤이드 대공은 나이트급 기간트와 워리어급 기간트가 자신을 끌어안은 채 빛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오러를 코어로 주입해 전신으로 뿜어냈다.

    그리고 거센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콰쾅!

    신벌도 견뎌낸 샤이드 대공은 전보다 더 실력이 늘어났다. 이정도 공격은 당연히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다.

    “응?”

    샤이드 대공은 자신의 오러로 만든 보호막이 검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이건 단순한 폭발이 아니었다. 엘제크가 뿜어낸 오러 보호막이 검게 물들면서 몸 안으로도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샤이드 대공은 전력으로 오러를 일으켜보았지만, 오러 보호막을 검게 물들인 기운은 빠르게 잠식해 왔다. 그래서 샤이드 대공은 코어에 오러를 주입하는 것을 멈췄다.

    콰콰쾅!

    오러의 주입을 멈춘 샤이드 대공의 엘제크가 폭발에 휩싸였다. 전장 한복판에 치솟은 거대한 불기둥은 평야 어디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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