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6화 (107/151)
  • 블랙 드래곤 용병단(3)

    제이슨이 워낙에 술을 잘 마셔서 그런지 사람들은 예상보다 술을 많이 줬고 제이슨은 꼬박 100병의 술을 비우고 나서야 아이젠 앞에 설 수 있었다.

    눈빛 하나 변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특히 펠레드는 감탄했다.

    “대단하군. 오러도 안 쓰고 그걸 버티다니.”

    제이슨은 미소를 지은 채 아이젠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제이슨은 스노우에게 눈짓해서 내리게 하고는 자신의 기행을 바라보던 이들의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모두 즐거운 연회 되십시오.”

    제이슨이 아이젠을 안고 떠나자 펠레드가 카이트 국왕을 돌아보았다.

    “그럼 이제 우리도 중요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왕궁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인공이 떠났으니 떠날 이들은 떠난다. 제이슨이 아이젠과 좋은 시간을 보내러 간 사이 펠레드는 카이트 국왕과 함께 연회장을 떠났다. 벡스까지 포함해 왕국의 중요 인사들과 제국의 중요 인사들이 빠진 자리.

    그 자리는 연회 주최자의 가족들이 이끄는 자리였다. 펠레드나 카이트 국왕이 있으면 거트 공작이나 트레버 백작이 자리를 이끌기 어려웠기에 그들이 빠져주는 것이 연회 분위기에는 더욱 도움이 됐다.

    그렇게 연회가 무르익는 동안 제이슨은 아이젠과 함께 방에 도착했다. 이미 시녀들이 켜놓은 향초와 꽃잎으로 장식해 놓은 방에 들어온 제이슨은 아이젠을 얌전히 침대에 내려놓았다.

    긴장한 아이젠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겉옷을 벗으며 속으로 말을 꺼냈다.

    ‘엘하르트. 쉐일링을 데리고 오늘 하루만 나가 있어라.’

    제이슨의 말을 들은 엘하르트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쉐일링과 함께 사라졌다. 아이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제이슨은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제이슨은 아이젠에게 다가가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으며 침대에 눕혔다. 마스터라고 해도 결혼은 처음이라 조심스럽게 침대에 그녀를 눕힌 제이슨은 곧 뜨겁게 키스를 시작했다.

    왕궁의 밀실에서 마주한 펠레드는 카이트 국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성 교국을 칠 거라는 얘기는 들었나?”

    “들었습니다.”

    “뇌속의 창이 나설 것 같지는 않아. 아무래도 엘로몬이 망가졌으니 그걸 수리할 때까지는 나서지 못하겠지.”

    카이트 국왕도 그리 여기고 있었다.

    “만약을 위해서 이렇게 찾아온 걸세.”

    “만약이라면···?”

    “늙은 여우의 능력을 생각하면 뇌속의 창이 아니라 절망의 검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신벌의 이름을 팔아서 그를 움직이게 되면 귀찮아져.”

    “그때 제이슨 대공의 힘을 빌려달라는 거군요.”

    “기간트도 지원을 해주면 충분히 사례하지. 아무래도 신성 교국을 이번에는 점령전으로 가야 해서 필요한 기간트가 많으니까.”

    아마 제국에 위치한 기간트 공방들은 지금 매일 같이 기간트를 만들어내고 있을 터. 그렇게 보충한다고 해도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나 지원을 원하십니까?”

    “워리어급 기간트와 기간트 라이더라면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지만 나이트급 기간트는 달라. 그러니 그런 고급 인력들을 부탁하지.”

    “꽤 비쌀 겁니다.”

    펠레드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든 내지.”

    절망의 검이 움직이면 그를 막아달라는 말. 그때 나이트급 기간트까지 지원해 달라는 것은 절망의 검이 움직이면 역습을 취할 마음이라는 얘기였다.

    신성 교국만이 아니라 다른 왕국까지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제국의 전력. 신벌 때문에 많이 잃지 않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전력이었다.

    새삼 대단하다고 여긴 카이트 국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고맙군.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해서 좋아.”

    펠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이트 국왕도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술이라도 한 잔 더 하시죠.”

    펠레드는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그건 신성 교국과의 전쟁이 끝나면 축하주로 마시지. 그때는 내가 초대하겠네. 제국의 숙수들 솜씨를 보여주지.”

    펠레드가 그리 말하고 떠나자 카이트 국왕은 벡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이트급 기간트를 내주는 것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나 제이슨이 함께 간다면 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그보다 뭘 받아낼 수 있는지부터 생각하시죠.”

    “그런가?”

    제이슨이 가줄지 안 가줄지 모르지만, 일단 자신은 지원을 해주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그 대가를 떠올려야 했다.

    테오 공국을 차지하면서 란진 왕국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 그러니 이번 기회에 란진 왕국을 손에 넣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였다.

    마스터인 제이슨을 전격적으로 활용하면 란진 왕국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지금까지는 마스터들이 서로 견제하느라 쉽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다른 마스터들을 압도한 제이슨이 있다면 거침없는 전쟁을 벌일 수 있을지 몰랐다.

    제국의 눈치가 보이기는 했지만, 마스터를 손에 얻은 이상 그 눈치의 강도도 많이 약해졌다. 그러니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리라.

    “란진 왕국에 대한 보고를 올리라고 전하게.”

    벡스는 카이트 국왕의 생각을 읽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곧 보고 올리겠습니다.”

    마스터인 제이슨의 작위 수여식과 결혼식이 대륙을 떠들썩하게 한지 보름 만에 제국은 신성 교국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제국 내의 신전을 철수한 신성 교국의 행태를 비난하며 즉각적으로 일으킨 군사는 기간트 총합 5천 기에 달하고 일반 병사들의 수는 무려 30만에 달하는 인원이 국경을 넘었다.

    전에는 기간트가 빠르게 점령하고 떠났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성을 차지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점령군을 주둔시키겠다는 각오와 함께 국경을 넘어선 제국군의 총사령관은 샤이드 대공이었다.

    압도적인 군세가 국경을 다시 넘자 발데르크는 공황에 빠졌다. 신벌을 정면으로 받고, 샤이드 대공 하나 살아남아 도망갔다. 신벌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신벌을 받았던 기간트들은 재생 불가였다.

    그대로 폐품이 되어 버린 상황.

    재활용도 못 하다 보니 신성 교국의 피해가 제법 컸다. 물론 제국의 피해는 더 컸지만, 그걸 무시하고 다시 군사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니 새삼 제국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발데르크는 마주한 성녀 샬로트를 보며 물었다.

    “신벌을 다시 내릴 수 없겠습니까? 제국의 황성에 신벌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우리를 향해 군사를 일으킬 곳이 없을 텐데.”

    샬로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저희의 뜻을 읽어주셨다면 이 지경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발데르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그가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작정하고 밀고 들어오는 제국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도까지 쳐들어오게 해서 다시 한번 신벌에 기대해볼 수도 있었지만, 펠레드가 바보도 아닌 이상 수도까지 밀고 들어오지는 않으리라.

    “그렇다고 이대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전쟁을 수행할 광휘의 검이 없는 지금 믿을 건 교황 성하뿐입니다.”

    발데르크가 어떻게 절망의 검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신관 하나가 다가왔다. 발데르크가 돌아보자 신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장이 찾아왔습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

    발데르크도 처음 들어 보는 용병단이었다. 드래곤이라는 이름을 용병단이 가지게 되면 그들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오러 유저를 포함해서 나이트급 기간트와 워리어급 기간트를 다수 가지고 있어야 그 이름을 용병 길드에서 받을 수 있었다.

    대륙 3대 용병단이 무너지고 나서 그 이름을 쓸 수 있는 이들이 없어졌는지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이름을 들었다.

    골드라면 차고 넘치니 드래곤급 용병단을 구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들어오라 일러라.”

    광휘의 검은 없지만, 그 뒤를 잇는 신성 교국의 성기사들이 지키는 회의실에 들어선 자는 검은 피부의 사내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들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당당히 고개를 든 채 왼쪽 가슴에 오른쪽 주먹을 붙였다. 과거 마스터였던 용병왕이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한 이후에 생긴 그들만의 예의였다.

    살며시 양손을 맞잡고 인사를 받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의 단장 판톤입니다.”

    “반갑네. 교황직을 수행하고 있는 발데르크라고 하네.”

    발데르크가 자리를 권하자 회의실의 탁자에 판톤이 앉았고 여인은 그 뒤에 섰다. 발데르크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군.”

    “드래곤의 이름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대단하군.”

    판톤이라는 이름은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홀로 용병 일을 하던 이였는데 언제 용병단을 만들었나 싶었다. 그것도 전쟁을 수행할 수준의 드래곤급 용병단을.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전쟁의 냄새를 맡고 왔습니다.”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건가?”

    “예.”

    발데르크는 가만히 판톤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가 무슨 생각으로 신성 교국의 편에 서서 전쟁을 치르겠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신성 교국의 편에 서려고 하는 건가?”

    “그래야 더 이름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요.”

    “패배하면 그 이름은 처음부터 오명이 되는 걸세.”

    “패배할 생각은 없습니다.”

    “상대는 수호검일세.”

    판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수호검이 강하다고 하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를 저희 용병단에서 상대할 테니 나머지 제국군을 막아주십시오.”

    마스터는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홀로도 마스터는 충분히 강하다. 아무리 드래곤급 용병단이라고 해도 그 하나를 막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

    그런데 그걸 해낼 테니 나머지를 막아달라는 청을 했다.

    잠시 고민하던 발데르크가 물었다.

    “원하는 것이 있나?”

    “대신관 한 명을 용병단에 지원해주십시오. 영구적으로.”

    대신관이 중하다고 하나 전쟁에서 수호검을 막는 가치로는 싸다.

    “그거면 충분한가?”

    “이번에는 이름을 알리기 위한 전쟁입니다. 그러니 그것만 용인해주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은 일이군.”

    “대신 선불입니다.”

    발데르크는 가만히 판톤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구른 그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발데르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돌아가는 길에 바로 대신관 한 명을 보내주지. 원하는 전장은 어디인가?”

    “이미 국경을 넘은 마당이라 성을 내주지 않을 수는 없겠더군요. 원하는 전장은 테로이트 평원입니다.”

    발데르크는 사실 평원에서 전쟁을 치를 생각은 없었다. 수호검을 막아낼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물러나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 싸워야 한다면 도박을 해볼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준비하지.”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판톤과 여인이 떠나자 발데르크가 샬로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보십니까?”

    “전쟁은 교황 성하가 하실 일이죠. 저는 기도를 올리러 가겠습니다.”

    발데르크는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듯 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여겼다. 신벌이 내리면서 성녀의 이름값이 교국 내에서 하늘을 찌르는 상황.

    이번 전쟁은 자신의 이름으로 승리하면 될 것 같았다.

    블랙 드래곤 용병단이 움직였지만, 그들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절망의 검과 뇌속의 창도 어떻게든 자신이 움직여야겠다고 여기며 발데르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돌아가는 길에 판톤이 엘렌에게 물었다.

    “정말 그거면 충분해?”

    “왜? 골드가 더 필요해?”

    “아니. 하지만 제대로 대가를 받지 않고 움직여 본 적이 없어서.”

    “대신관이면 충분해.”

    대신관을 구하기만 한다면 엘카소가 신의 행세를 하는 엘드라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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