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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5화 (106/151)
  • 블랙 드래곤 용병단(2)

    제이슨은 작위 수여식이 끝나고 결혼식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 그래서 자신이 나설 수 없음을 알고 라마란스에게 뒤를 맡겼다.

    어차피 라마란스는 작위 수여식을 참여하던 중에 슬그머니 사라졌다. 기척을 죽이고 벽을 투과해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은 제이슨이 시선을 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마법을 알아볼 만한 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라진 라마란스는 그대로 블링크를 이용해서 나타났다. 라마란스가 도착한 곳은 기간트 훈련장의 성벽이었다. 라마란스가 모습을 나타낸 곳에는 두 명의 인물이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라마란스는 곧장 알아보았다.

    라마란스는 슬쩍 대전 쪽을 바라보았다. 두 명의 사도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자가 있었다.

    엘렌과 엘카소. 그중에 엘카소는 마법에 능한 자라 승부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와 승부를 가리려면 밑천을 다 드러내야 했다.

    잡을 자신은 있지만, 작위 수여식과 결혼식은 이어지지 못한다.

    라마란스가 쏘아보자 그를 바라보던 엘렌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떻게 나온 거야?”

    엘카소도 조금은 놀란 눈으로 라마란스를 바라보았다. 사도 중에서 마법의 끝을 본 엘카소. 그는 라마란스를 잡을 때는 일조하지 않았었지만, 그가 잡혀 왔을 때 만났었다.

    감옥을 만들 때 엘카소가 손을 쓴 부분도 있었기에 라마란스가 잡혀 왔을 때 그가 벗어나지 못하게 손을 썼었으니까.

    신의 의지가 깃든 열쇠도 중요했지만, 라마란스가 어떤 마법도 쓰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었다. 그 덕에 라마란스는 그 긴 시간 동안 마법을 한 번도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굴려 왔었다.

    그랬던 라마란스가 자유를 얻었다. 가벼이 볼 일은 아니었지만, 엘카소는 여유가 있었다. 싸운다고 해도 쉽게 승부를 내기는 어려우리라.

    마법사. 그것도 극의를 본 마법사들의 싸움이라면 승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니까.

    라마란스가 손가락을 꿈틀거릴 때 엘렌이 두손을 들어 보였다.

    “오늘은 구경을 온 것뿐이야.”

    “이곳에는 왜 구경을 온 거지?”

    “새로운 마스터라고 하니까. 영입할 수 있나 보러 왔는데 엘카소가 이곳에 오니 찬탈자의 기운이 미미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구경하는 것뿐이었어.”

    “찬탈자?”

    “너도 알지 않아?”

    “그는 죽지 않았나?”

    수천 년을 감옥에서 지내온 라마란스는 능숙하게 거짓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음을 흘린 엘렌이 어깨를 으쓱였다.

    “살아있나 보더라고. 그래서 구경하던 것뿐이야. 싸울 마음은 없어.”

    “그럼 꺼져주실까?”

    라마란스의 대꾸에 엘렌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크 리치인 네가 있는 줄 알았다면 이렇게 조촐하게 오지는 않았을 거야. 아마 다음에 만날 때는 서로 웃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그만 갈게.”

    엘렌이 엘카소를 돌아보자 그가 지팡이로 가볍게 바닥을 찧었다. 그러자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메스 텔레포트.

    그것도 보통 장거리가 아닌데 탐색 마법조차 쓸 수 없게 꼬아놓았다. 과연 사도들의 대표 마법사. 사도 중에는 권능에 기대지 않은 존재가 셋이 있었는데 마법을 다루는 엘카소와 골렘을 부리던 엘페린, 그리고 검을 다루는 엘제드가 있었다.

    그중 마법사인 엘카소를 만났는데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흥. 다음번에는 이리 쉽게 가지 못할 거다.”

    처음이니 침입을 허했지만, 다음에는 이리 쉽게 파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만나보기 전에는 그들을 특색 지을 수 없었지만, 직접 만나봤으니 그들의 생체 파장에 치명적인 마법을 만들 수 있다.

    라마란스는 그 자리를 떠나 대전으로 돌아갔다. 결혼식의 주례는 카이트 국왕 대신 펠레드가 서 있었다.

    대공 작위 수여식은 카이트 국왕이 해야 했지만, 결혼식의 주례는 꼭 그가 해야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카이트 국왕은 펠레드에게 주례를 양보했다.

    펠레드도 제이슨과 연을 맺어두면 좋겠다 여겨서 주례를 맡았다.

    제국의 황제가 타국에 와서 결혼식의 주례를 서는 이례적인 모습에 그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집중했다.

    펠레드의 주례가 진행되는 동안 제이슨은 라마란스에 신경이 쓰였지만 애써 무시했다. 트랑 왕국 제일 미녀라는 별칭조차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게 꾸민 아이젠은 일생 중에 오늘이 가장 아름답다고 할 정도로 한껏 멋을 부렸다.

    그런 아이젠과 나란히 선 제이슨은 허리에 명검 자르카를 착용하고 왼손에는 인장을 낀 채 그 자리에 섰다.

    “둘이 영혼으로 맺어졌음을 나 제국의 황제 펠레드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반지는 준비가 되었나?”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고 옆을 돌아보자 로크가 다가왔다. 로크가 손에 든 고풍스러운 상자에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새로이 마스터가 된 제이슨이 결혼한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브랙스가 만든 반지가 왔다. 드워프들에게 보석 세공을 맡겨서 그런지 다이아몬드는 보는 것만으로 넋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제이슨은 반지를 꺼내 아이젠의 손에 끼워줬다. 아이젠의 곁에는 조안나가 서 있다가 반지를 건넸다. 진금으로 만든 반지를 아이젠은 제이슨의 손에 끼워줬다.

    제이슨은 반지를 끼고 나서야 진짜 결혼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축하한다.

    ‘넌 결혼해 봤어?’

    -우리는 그런 거 없었지. 너 내 본체를 보고도 인간과 같은 결혼을 떠올리는 거냐?

    제이슨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에고 기간트인 엘하르트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제이슨을 보고 아이젠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제이슨은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단순히 사교계의 꽃이라고 여겼던 그녀는 안주인으로서 역할 수행에 문제가 없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다가온 그녀에게 제이슨도 마음을 기대기 시작했다.

    언제나 함께 하는 엘하르트와 쉐일링이 있지만, 마음을 기대는 것은 또 달랐다.

    “둘은 약속의 의미로 입을 맞추는 것으로 이 결혼의 순서를 마치겠다.”

    제이슨은 아이젠에게 다가가 그녀의 면사를 들어 올리고는 턱을 당기며 입을 맞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작위 수여식 때보다 더 힘찬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제이슨이 아이젠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뒤돌아서자 사방에서 꽃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그런 제이슨의 뒤에서 펠레드가 웃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이슨이 돌아보자 펠레드가 손뼉을 치고 있었다. 저 고고한 황제의 박수를 받을 줄은 몰랐다. 제이슨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자 아이젠도 따라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흐뭇하게 웃은 펠레드가 손을 내밀었다.

    “자네야 뭐 필요한 것이 없을 테지만 공작부인은 다르겠지. 결혼 선물이니 받아.”

    펠레드가 건넨 것은 하나의 팔찌였다. 제이슨은 그 팔찌를 보고는 물었다.

    “이게 뭡니까?”

    “고대 마도 시대의 아티펙트다. 앱솔루트 베리어를 세 번은 치게 해줄 수 있는 장비지. 충전도 가능해. 그만한 마력을 쏟아부을 마법사만 있다면.”

    라마란스가 있어 고대 마도 시대의 아티펙트를 양산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걸 떠나서 저런 아티펙트라면 말 그대로 부르는 것이 값인 물건이었다.

    그런 것을 결혼 선물로 가져왔다는 말에 제이슨은 새삼 펠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 서 있던 샤이드 대공과 칸트도 다가와 선물을 내밀었다.

    그들은 선물을 제이슨이 아닌 아이젠에게 했다.

    샤이드 대공이 건넨 것은 와이번의 가죽으로 만든 흉갑이었는데 마탑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것으로 입으면 어찌나 얇은지 속옷 대신 입어도 좋다고 이름난 물건이었다.

    제국에서만 잡을 수 있는 와이번이기 때문에 그 수가 적기도 하다 보니 골드가 있어도 쉬이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물리 방어는 물론이고 마법 방어 기능도 있었다. 펠레드가 준 팔찌에 비할 바는 아니나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칸트 공작이 건넨 물건은 목걸이였다. 진은으로 만든 목걸이의 펜던트를 본 제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뭡니까?”

    “세계수의 이슬이라고 불리는 보석이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피부가 고와지고, 노화를 늦춘다고 하더군.”

    아이젠이 눈에 띄게 좋아하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물었다.

    “이거 귀한 건가 봅니다.”

    “대륙에 딱 다섯 개 있는 물건이네.”

    “예?”

    “황비 마마와 내 아내가 가지고 있고, 제국이 보유한 마지막 것이네. 나머지 두 개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

    아이젠이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선물이었다.

    “고맙습니다.”

    “내 아내가 황비 마마에게 직접 부탁해서 제국의 보물 창고에서 꺼내온 물건일세.”

    제국의 재상이나 되니 이 정도 선물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이젠도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칸트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이제 연회장으로 가는 건가?”

    “가시죠.”

    작위 수여식과 결혼식에는 참석 못 하지만 연회에는 참석하는 귀족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그들은 제이슨이 직접 안내한 이들을 보고는 기겁했다.

    제국의 황제와 수호검 샤이드 대공, 제국의 재상인 칸트에 더해서 트랑 왕국의 카이트 국왕과 벡스 공작까지 우루루 들어오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새삼 제이슨의 위치를 느낀 그들은 이 자리에 선 것 자체를 뿌듯해했다. 연회에 초대된 이들에 따라서 연회의 격이 달라지는 법. 그런 면에서 제이슨의 연회는 대륙 최고의 격을 자랑했다.

    대륙에서는 결혼식을 한 날은 정말 죽어라 술을 먹인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는 새벽에 아내와 함께 방으로 가는데 그렇게 술을 먹고 아내를 공주님처럼 안고 방으로 들어가면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낭설이 돌았다.

    가장 상석에는 제이슨과 아이젠이 앉고 그 왼쪽으로 펠레드와 제국측 인사들이, 오른쪽으로는 카이트 국왕과 트랑 왕국의 인사들이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펠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앞으로 결혼 생활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술을 주는데 마스터가 오러로 그 기운을 모조리 태워버리면 의미가 없어 준비한 것이 있다.”

    펠레드가 가지고 온 물건을 꺼내 놓자 제이슨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오러를 쓸 마음은 없었지만, 지금 황제가 꺼낸 물건은 오러 유저들의 오러를 봉인하는 팔찌였다.

    그걸 차고 있다고 위험할 일은 없다. 오러를 사용하면 빛을 내며 팔찌가 깨져 나가니까. 대체 저런 물건을 왜 만들었나 싶었는데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나?

    그 물건을 가지고 왔을 줄은 몰랐다.

    제이슨이 팔찌를 차자 펠레드가 가장 먼저 술을 가득 따라줬다. 제이슨이 술을 그렇게 즐겨 먹지 않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무리하기로 했다.

    단숨에 술잔을 비운 제이슨에게 이번에는 카이트 국왕이 잔을 채워줬다. 이거 이들이 주는 술잔만 비우다가 쓰러질 판이다.

    제이슨이 술잔을 가득가득 채우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잔을 비울 때마다 그의 옆에 앉아서 스노우를 품에 안고 있던 아이젠은 안절부절못했다.

    이 전통에서 살아남은 술고래들이 얼마나 된다고 이걸 하는 건지.

    그래도 아이젠은 조금은 기대했다. 새로운 마스터인 제이슨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보통 마스터들은 마스터가 되기 전에 결혼한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나이들이 있으니 그때면 이미 결혼한 후. 그러다 보니 제이슨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걸 다른 사람들도 생각했는지 제이슨의 잔에 거의 한 병의 술을 부어주고 있었다. 연회장에 모인 모두의 술을 다 받아 마셔야 하는데 그러자면 족히 50병은 넘게 마실 판이었다.

    지금 따라주는 이들이야 제이슨도 쉽게 못 하는 이들이다 보니 그렇게 많이 따라주지만 다른 이들은 감히 그렇게 따라주지는 못하리라.

    그래도 50병은 될 판이라 걱정이 앞섰다.

    그런 아이젠의 걱정을 읽었는지 스노우가 그녀의 손바닥을 핥았다. 겨울 여우 정령인 스노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젠은 조바심을 내며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이슨은 열 병 정도 술잔을 비웠을 때 엘하르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만 퍼마시고 쉐일링에게 맡겨.

    ‘어떻게 맡겨?’

    -쉐일링 일족이 정말 말술이지. 쉐일링. 이제 네가 마셔라.

    무슨 소린가 싶었을 때 제이슨은 기묘한 경험을 했다. 마치 그림자가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 그리고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조금의 취기도 전해지지 않았다.

    제이슨은 아이젠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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