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102화 (103/151)
  •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여파(2)

    신벌이 내려졌을 때 호수 아래를 탐사하던 엘렌과 엘페린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엘페린의 거친 말투에 옆에서 듣고 있던 엘렌이 고개를 내저었다.

    “혼자서 어떻게 신력을 쓴 거지?”

    “이게 무슨 신력이야. 신력을 흉내 낸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엘페린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신력을 흉내 냈다고 하지만 신이 나타나지 않는 지금 저것은 신력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힘이었다.

    그 여파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할 정도였으니까.

    “찬탈자만이 문제가 아니네.”

    찬탈자는 모든 사도가 질시하는 존재였지만, 같은 사도 중에서 홀로 신력을 다루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더는 같은 사도로 분류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었다.

    게다가 엘페린 같은 경우에는 당해서 봉인까지 당한 상황이었다. 자신이 깨어난 것을 알았다면 신벌을 이쪽으로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호수의 수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호수의 수면을 보고 엘페린이 인상을 굳히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에 떠오른 엘페린이 밑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뭐야?”

    엘렌은 오히려 수면이 들끓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신벌을 우리만 느낀 것이 아닌가 보네.”

    “그렇기는 하겠지.”

    이렇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여실히 내보냈으니 그걸 느낄 수 있는 존재들은 모두 느꼈으리라. 그리고 그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수면 위로 익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오르는 사이 아래에서 커다란 기포가 연달아 올라와 터지더니 곧 거대한 기체가 솟구쳤다.

    거대한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10미터의 거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고대 룬어로 도배된 로브를 걸친 존재는 허공에 떠올라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엘렌과 엘페린과 눈을 마주친 거체는 곧 빛에 휩싸이더니 인간의 형상으로 변했다. 새하얀 수염이 턱까지 내려온 노인이었는데 그 눈빛은 금안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곳까지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널 찾고 있었다.”

    엘페린의 말에 노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날 찾아올 이유가 있나?”

    “도움을 요청하려고.”

    “내 도움을?”

    “그래.”

    “천하의 엘페린이 도움을 요청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엘페린은 씹어뱉듯 말했다.

    “찬탈자가 깨어났다.”

    그 말에 노인의 눈이 커졌다. 그런 노인을 바라보며 엘페린이 말을 이었다.

    “게다가 스스로 신이 된 녀석은 신벌을 내리고 자빠졌지.”

    “그건 나도 느꼈다. 아무리 변질하였다고는 하나 흉내 내서는 안 될 것을 흉내 내다니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엘페린이 살짝 놀랐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엘카소.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사도들끼리 싸우는 것에 염증을 느낀 것과 이건 다르다. 사도로서의 본분을 잊은 행동이니까.”

    엘카소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린 채 말했다.

    “이건 찬탈자와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다.”

    엘렌은 그런 엘카소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

    엘카소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뭘 도와달라는 거지?”

    “찬탈자가 깨어나기는 했지만, 그의 봉인은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았어. 그러니 그를 다시 재봉인 해야만 해. 그러려면 우리에게는 힘이 필요해.”

    엘카소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찬탈자를 정리하고 나서 신의 흉내를 내는 엘드라고를 만나러 가야겠군.”

    “그건 좋은 생각이군.”

    과거 은둔을 택했지만 엘카소의 능력은 엘페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강자였다. 마법에 특화된 그의 힘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엘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다른 사도들의 행적을 아는 이가 있어?”

    엘카소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가장 먼저 떠났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소식은 모르지.”

    “아쉽군.”

    가볍게 혀를 찬 엘렌에게 엘페린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보다 이제 제대로 블랙 드래곤 용병단을 다뤄보자고.”

    단순한 전쟁 용병단 수준을 넘어서는 이들. 엘페린이 자신의 힘을 모두 쓸 수 있게 된다면 그들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엘카소는 지팡이를 내밀며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나?”

    제국의 황성에서 다시 만난 펠레드의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표정을 숨기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맙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뇌속의 창을 꺾고 제국의 영토를 모두 되찾아 주었는데 그게 어떻게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하겠나?”

    제이슨은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이다.

    “칠왕국 연합에는 내가 따로 손을 쓸 테니 신경쓰지 않아도 좋네.”

    제국의 기간트 3천이 잿더미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기간트는 아직도 7천기 이상이 남아있었다. 최정예는 아니라고 하나 그들만 가지고도 칠왕국 연합을 박살 내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특히나 뇌속의 창이 가진 에고 기간트는 수리에도 한참이 걸릴 일이었다.

    “그보다 신성 교국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광휘의 검이 나오지 않아서 신성 교국의 수도를 손에 넣을 뻔 했던 순간에는 이제 신성 교국의 힘을 손에 쥐고 대륙을 쥐락펴락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신벌 한 번에 그 모든 계획이 어그러졌다.

    신성 교국과 척을 진 이상 각 성에 있는 신전들은 모두 철수할 터. 앞으로 제국은 신관의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늘 아래 오롯한 자가 제국의 황제다. 그보다 높은 곳에 있는 이가 없다고 해도 될 자리에 있던 펠레드는 처음으로 자신이 어쩌지 못할 존재를 만났다.

    직접 만나지 못했다고 하나 들은 보고만으로도 충분히 경악할 일이었다.

    “포션이야 삼 대가 써도 될 만큼 쌓여 있으니 그것으로 견뎌야지. 그보다 광휘의 검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광휘의 검이 있었다면 국경에서 싸움이 있었겠죠.”

    제국은 마법 병단을 비롯해 기간트를 제외하고도 강력한 병단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신성 교국도 성기사와 신관들을 이용한 병단이 따로 있었는데 그들이 직접 나섰다면 국경에서 엎치락뒤치락했을지언정 수도까지 그들이 공격해오는 꼴을 보고 있지 않았으리라.

    신벌이 나타나 그 사건을 덮었다고 하지만, 광휘의 검이 부재중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가 없다고 해도 감히 신성 교국을 공격할 수 있는 이들은 없을 테지만.

    “그렇지?”

    “예.”

    “그래서 말인데 다시 신성 교국을 공격할 생각이네.”

    “예?”

    제이슨이 놀라서 묻자 펠레드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들의 성을 공략했을 때는 신벌이 내리지 않았네. 수도는 그들의 성지이니 신이 지키고자 했겠지만, 다른 성도 그럴까?”

    그건 확답할 수 없었다. 펠레드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래서 그들의 성을 공격할 생각이네. 그리고 협상을 해야지.”

    신성 교국의 성을 손에 넣은 후에 하는 협상. 성을 손에 넣었을 때 신벌이 내리지 않는다면 펠레드는 어쩌면 수도만 남겨 놓고 모조리 무너트릴지도 몰랐다.

    신벌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그의 패기에 제이슨은 순순히 감탄했다.

    인간의 크기 자체가 다르다. 어쩌면 자신이 나서지 않기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트랑 왕국과의 약속은 지키겠네. 그리고 따로 원하는 것이 있는가? 원한다면 내 조카와의 혼담도 내줄 수 있네만.”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런가? 아쉽군.”

    차근차근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했던 제이슨은 순식간에 마스터가 되어 버렸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네가 제국의 영토를 되찾아 준 것에 대한 보답은 내가 따로 해주겠네.”

    “감사합니다.”

    “물러가도 좋네.”

    “샤이드 대공을 만나고 가도 되겠습니까?”

    펠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슨은 이미 마스터 둘을 꺾었다. 환영검과 뇌속의 창을 꺾은 그가 샤이드 대공을 노리려나 싶었지만, 그런 미친 짓을 벌일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개인이니까.

    이럴 때는 오히려 신뢰를 보이는 것이 좋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 있네.”

    “감사합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제이슨이 대전을 나오자 칸트 공작이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샤이드 대공한테 간다고?”

    “예.”

    “같이 가세. 내 마차를 이용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제국의 재상이 이런 배려를 해준다는 데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칸트가 이렇게 다가온 것도 뭔가 이유가 있어 보였고.

    제이슨이 칸트와 함께 마차에 오르자 그가 입을 열었다.

    “폐하의 뜻을 들었나?”

    “신성 교국을 다시 공격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칸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겪었던 신벌은 인간 위주의 사람들에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일이었다. 그런데도 황제가 다시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니 재상인 칸트 공작으로서는 미칠 노릇이리라.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겠나?”

    “제가 뭐라고 폐하의 뜻을 막겠습니까?”

    칸트라고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제는 마스터가 된 제이슨을 보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 황제의 마음을 돌리겠는가?

    “괜한 말을 했군.”

    제이슨은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칸트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그보다 환영검을 꺾고, 뇌속의 창도 꺾었으니 자네를 그랜드 마스터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네.”

    “한참 부족합니다.”

    기간트를 탔을 때 한정이라면 어떤 마스터라도 꺾을 자신이 있었다. 제이슨은 셋의 마스터를 상대하면서 생사결을 겪어서인지 지금은 오러 홀의 크기가 전에 비하면 몇 배나 더 커졌다.

    게다가 에고 기간트 자체가 다른 마스터들을 아득히 웃돈다. 50% 출력 상승만으로 그들보다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니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름에 부족함이 없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마차는 샤이드 대공의 저택에 도착했다. 황성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도착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이슨이 마차에서 내리자 칸트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결혼식 때는 초대장을 보내게. 아내가 겸사겸사 트랑 왕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하더군.”

    “꼭 보내겠습니다.”

    칸트 공작의 아내는 카이트 국왕과 남매이니 이런저런 연락이 닿나 보다. 아이젠이 놀랄만한 손님이 되겠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은 제이슨에게 다가오는 저택의 경비병들에게 칸트 공작이 설명했다.

    “마스터 제이슨 대공이다. 샤이드 대공의 손님이니 안내해라.”

    아직 별명이 붙지 않은 제이슨의 등장에 경비병들이 감탄하는가 싶더니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귀찮은 자기소개 없이 안으로 안내 받아 들어간 제이슨은 샤이드 대공을 만날 수 있었다.

    몸을 회복하는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는 웃옷까지 벗어젖힌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탄탄한 근육 위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마스터의 몸에서 땀이 날 정도로 훈련했다는 것에 제이슨은 감탄했다.

    샤이드 대공은 검을 바닥에 내리더니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어쩐 일인가?”

    “몸을 회복 중이라고 하셔서 문병차 와봤습니다만.”

    “문병은 무슨.”

    샤이드 대공은 오러 홀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뭔가 달라졌다. 같은 마스터라고 하기에 뭔가 달라진 기분.

    제이슨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손을 내뻗었다. 오러를 다루는 기술이 늘어서 그런지 저 멀리 떨어져 있던 훈련용 검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샤이드 대공은 그런 제이슨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대련이라도 해주려고 온 건가?”

    “뭔가 깨달음을 얻으신 것 같은데 후배에게도 가르쳐 주시죠.”

    샤이드 대공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자네 정말 마스터가 되었군.”

    샤이드 대공은 이번에 신벌을 몸으로 겪으면서 쏟아지는 낙뢰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마스터라고 인간의 정점에 섰다고 했던 자신이 신의 힘 앞에서 얼마나 작고 약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그는 거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것에 좌절할 정도라면 마스터에 오르지도 못했다.

    좌절하지 않고 그걸 넘어서기 위해서 검을 휘두르던 그는 그 자체만으로 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귀신 같이 제이슨이 그걸 알아보았다.

    샤이드 대공도 지금의 깨달음을 확인해 볼 상대가 필요했다.

    “내 가르침은 아플 걸세.”

    제이슨도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과는 다를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