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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8화 (99/151)
  • 도발(3)

    엘파이트가 쏟아내는 검격을 피해내니 제이슨이 있던 자리가 쑥대밭이 되었다. 가공할 속도로 휘두른 검은 그 여파만으로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래도 그 검은 다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베제트를 이용해서 힘을 더한다고 해도 에고 기간트의 출력이 더해진 마스터에게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광휘의 검과 싸운 것도 그가 에고 기간트를 꺼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에고 기간트를 꺼냈다면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제이슨은 적의 공격을 피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느 한 방면으로 정점에 선 자들은 쉽게 볼 일이 아니다. 빈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길을 만들어야 했다.

    제이슨은 환영검을 향해 참격을 날렸다. 무수한 검들의 환영이 참격에 밀려났다. 갈라지지 않고 밀려난 환영의 검들의 틈으로 보인 엘파이트는 쉽게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오히려 엘파이트의 파상 공세가 더욱 강해졌고, 제이슨은 조금씩 뒤로 밀렸다. 그걸 보고 양측 진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란진 왕국 측에서는 당연한 승리를 손에 쥔 것이라고 여겼을 테고 트랑 왕국 측은 움찔하는 것이 지금이라도 대장전을 포기하고 뛰어들어야 하나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다.

    제이슨은 베제트를 탄 채로 이렇게 전력을 다해본 적이 없었다. 엘하르트와 대련할 때라면 모르겠지만, 그건 생사결이 아니다. 광휘의 검과 싸웠을 때는 이 정도까지 길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제이슨은 승리를 운명 짓는 길을 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면서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길을 쫓아 휘두르는 검을 주고받는 중에 환영 검의 검풍에 베제트의 장갑이 부서졌다가 회복되기를 계속했다.

    제이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제이슨은 몸을 내주기로 했다.

    마갑이 부서지는 위험을 무릅쓰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설핏 보이는 길을 보고 제이슨이 조금 더 위험을 무릅썼다.

    처음에는 제이슨을 우습게 보았던 란진 왕국의 인원들도 그의 실력과 승리를 위한 집념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공격이 오고 갔지만, 제이슨은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그걸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제이슨을 상대하고 있던 테오였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것을 보고 테오는 처음으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압도적인 차이가 날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둘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았다. 자신의 검을 피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오히려 역으로 타고 들어오는 제이슨을 보니 자신이 얼마나 이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그것이 즐거우면서도 두려웠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테오의 검은 빠르게 날아들었고, 그만큼 피해는 커졌다. 쌓여가는 피해에도 제이슨은 오히려 조금씩 더 나아갔다.

    오로지 테오의 검과 자신만이 남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그 길의 끝이라도 잡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제이슨의 모습에 테오는 질시의 감정이 쌓였다.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자. 모든 것을 걸고 올라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자.

    그것이 부러웠고, 그렇기에 반드시 꺾고 싶었다.

    테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넣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제이슨이 다가오다가는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테오는 자신의 모든 오러를 주입했다.

    선연하게 타오르는 오러가 환영처럼 빠른 검과 함께하면서 천지사방 피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킨다면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물러나는 순간 오히려 더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으니까.

    하지만 오러 블레이드는 마갑으로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잘못 걸리면 그 순간 잘려나간다. 그것을 알았기에 제이슨은 결판을 내야 함을 알았다.

    제이슨은 팔 하나 내준다는 각오로 몸을 디밀었다. 그제야 또렷하게 보이는 길.

    그 길을 따라 제이슨의 검이 뻗어 나갔다. 그리고 제이슨의 팔을 향해 환영검 또한 날아들었다.

    팔 하나를 날린다면 승기는 자신에게 기운다는 것을 테오는 알았다. 제이슨의 검이 위협적으로 다가오지만, 자신도 팔 하나 날리고 끝낼 마음은 없었다.

    서로 다른 마음을 먹고 검이 날아들었을 때 제이슨의 팔 위로 검은 그림자가 둘러졌다.

    그리고 날아들던 오러 블레이드를 튕겨냈다. 마스터가 일으킨 오러 블레이드가 튕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테오가 멈칫했고, 제이슨은 또렷하게 보이는 길을 따라 검을 뻗었다.

    콰직!

    엘파이트의 가슴을 파고든 제이슨의 검은 그대로 테오 공작의 가슴에 박혔다. 상대의 오러가 주입되면 마스터라고 해도 회복이 쉽지 않다.

    그런 검이 가슴에 박혔다면 테오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마스터는 마스터. 그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엘파이트의 가슴 장갑을 분리했다. 그리고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제이슨도 마갑을 역소환하고는 그런 테오와 눈을 마주쳤다.

    “마지막에 그것은 뭐였나?”

    “그게 없었어도 당신은 죽었어.”

    “그냥 궁금할 뿐이네.”

    제이슨은 죽어가는 테오를 향해 순순히 답해주었다.

    “이제는 잊힌 종족.”

    제이슨의 대답을 들은 테오는 오히려 더 궁금해하다가 눈에서 생기를 잃었다. 제이슨은 숨이 넘어간 테오의 몸에서 검을 뽑고는 바닥에 내려섰다.

    숨이 끊어진 것을 알았는지 엘파이트는 테오를 뱉어내듯 내보내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제이슨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엘파이트를 바라보았다. 고대 마도 시대의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역작들. 그중 하나인 엘파이트를 바라보던 제이슨은 손을 내밀어 엘파이트의 무릎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알람이 울렸다.

    [코드명 파이트. 초기 모델 베제트를 확인. 마스터로 적합한지 분석 중.]

    -시끄럽다.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파이트의 목소리가 지지직거리면서 멀어졌다.

    [간섭 확인. 대응 프로토콜 진행··· 실···패. 자폭 시퀀스 돌입.]

    -시끄럽다고.

    [자폭 시퀀스 강제 종료.]

    -어디 보자.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 엘파이트의 몸에 역소환됐다. 그리고 제이슨의 앞으로 팔찌 하나가 나타났다.

    제이슨이 그걸 주워들자 엘하르트가 말했다.

    -소환해 봐. 성능 좀 확인해 보자.

    제이슨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소환. 엘파이트.”

    제이슨의 뒤로 엘파이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제이슨이 뛰어올라 안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기간트에 올랐음을 알았다. 제이슨은 자신의 오러 홀에 연결된 엘파이트의 코어를 느꼈다.

    에고 기간트들의 출력이 높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엘하르트에 비견될 바는 아니지만 놀라울 정도의 힘이 전해졌다. 이러니 테오 대공이 그런 검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제이슨의 귀로 엘하르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이지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겠군. 에고는 파괴했고, 대신 내가 보조하면 성능을 대략 150%까지 낼 수 있겠어.

    “그래도 돼?”

    -안 될 것도 없지. 하지만 파이트처럼 전투에서 어떤 방식이 좋을지 조언해주는 것은 없어. 그냥 네 의지에 따라서 이걸 움직일 수 있게만 도와줄 거야. 난 바쁘니까.

    “알아. 얼굴 본지도 오래됐다.”

    -맛있는 거나 준비하고 불러. 그냥 부르지 말고.

    “그래. 다음에 보자.”

    제이슨은 영상에서 보이는 화면을 살폈다. 전장에 있는 모두가 새로운 마스터의 등장에 굳어 있었다. 제이슨이 컨트롤러를 조작해서 손에 쥐고 있는 검을 높이 들자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란진 왕국 측은 망연자실해 하고 있었고, 트랑 왕국 측은 축제 분위기였다.

    마스터끼리 싸우는 경우는 근래에 없었기에 마스터가 바뀌는 경우는 스스로 은퇴하거나 노환으로 죽었을 때뿐이었다. 눈앞에서 마스터가 바뀌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대장전. 그들은 평생의 기억에 남을 일이 일어났다.

    제이슨은 그들을 두눈에 담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트랑 왕국의 나 제이슨과 란진 왕국의 테오 대공의 대장전의 증인이다. 불복하는 이들이 있는가?”

    란진 왕국 측에서는 제이슨의 모습을 보고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테오 공국을 넘기는 정도로 끝나지만 여기서 물러나지 않는다면 마스터를 꺾은 새로운 마스터를 필두로 트랑 왕국의 정예병들을 상대해야 했다.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그런 위협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

    테오 대공의 가르침을 받았던 환영 기사단장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당신의 승리를 인정하겠소. 공국을 넘겨주는 조건도 이행하겠소. 그러니 우리가 물러나도록 허락해 주시겠소?”

    제이슨이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미소를 지었다.

    “허락한다.”

    제이슨의 말에 환영 기사단장이 무릎을 꿇고 청했다.

    “대공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기를 청합니다.”

    “허락한다.”

    제이슨의 대답을 들은 환영 기사단장이 테오 대공의 시신을 수습했다.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던 제이슨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엘하르트가 전투 보조 에고를 대신한 상황에서 코어에서 전해지는 그 힘을 만끽하고 싶었다. 오러 홀도 테오 대공과의 사투 속에서 더욱 커져서 코어에서 전해지는 힘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었다.

    오러 홀의 크기만 본다면 이제 마스터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엘하르트가 원하는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과거의 마스터 경지에 오르는 법. 과거와 현재의 마스터를 모두 충족하는 경지가 그리 멀지 않았다.

    제이슨이 적군이 모두 물러나는 것을 보고는 에고 기간트에서 내렸다. 그런 제이슨의 곁으로 벡스와 펠릭스가 다가왔다.

    “진짜로 얻었군.”

    제이슨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엘파이트를 바라보았다. 환영의 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쾌속한 움직임이 가능한 에고 기간트.

    제이슨은 이제야 자신이 마스터가 되었음을 알았다.

    “테오 공국을 처리하는 건 맡겨도 되겠습니까?”

    “대장전을 승리했으니 그렇게 해주겠네. 그보다 롤로 국왕이 아주 미쳤더군.”

    늙은 여우의 꾐에 넘어가 움직였다고 해도 그는 카이트 국왕을 배신했다. 그런 그들을 그냥 둔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다.

    “그런 일에까지 나설 필요는 없겠죠.”

    “물론이네. 하지만 자네 이름값은 해야겠지.”

    제이슨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값은 이제 트랑 왕국에서 줄기차게 써먹을 수 있으리라.

    “직접 움직일 일만 최대한 적게 해주세요. 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제이슨이 트랑 왕국군에게 돌아가자 그들의 열띤 함성이 계속 들려왔다. 제이슨은 그들에 검을 들어 보이고는 스노우 기사단장 펠릭스를 돌아보았다.

    “저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뒷일은 맡기는 건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그렇게 해. 대신 다음에 다시 또 대련하자고.”

    제이슨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펠릭스는 아직 더 싸울 마음이 드나 보다.

    테오 대공이 죽고 제이슨이 새로운 마스터에 올랐다는 것에 대륙은 경악했다. 그리고 그 보고를 들은 펠레드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좋았어!”

    칸트가 빤히 바라보자 펠레드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동맹국이 위험에 처했으니 병력의 파견을 요청해라. 원하는 건 다 들어줘도 좋으니 그를 데리고 와 칠왕국 연합의 앞길을 막아라!”

    “그도 이제는 마스터라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펠레드가 멀뚱히 칸트를 바라보았다.

    “내 말 못 들었나? 원하는 건 다 들어준다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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