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7화 (98/151)
  • 【97】 도발(2)

    교황 발데르크는 성녀 샬로트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제국의 병력이 이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을 보니 제국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그는 광휘의 검도 이기지 못한 상대에요.”

    “무슨 수를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함정에 빠지면 당할 수 있소. 하지만 전쟁에서는 그런 얕은수는 부리지 못할 것이오.”

    샬로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답했다.

    “어차피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겠죠.”

    “성기사단과 신관을 보내지만, 그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가 골드로 막을 수 있는 거이니 손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오. 그보다 언제까지 광휘의 검의 부재를 숨길 생각입니까?”

    “그게 걱정이에요. 검탑의 성기사들이 아직 숨겨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으니까요.”

    “그보다 에고 기간트를 찾지 못한 상황이 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교국에서 에고 기간트가 없던 적이 처음이라.”

    “그건 괜찮을 거예요. 에고 기간트는 주인을 찾는다고 했으니까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야 할 텐데 말이죠. 우선은 묻어 둡시다. 전쟁의 소란이 가실 때쯤에야 밝혀야지 지금 자리에 없다는 것을 밝히면 더 곤란해집니다.”

    “그건 그렇겠네요.”

    찻잔을 내려놓던 샬로트가 고개를 들었다. 교황과 성녀가 가지는 티 타임에 누군가 들어오다니 살짝 불쾌했다. 샬로트의 시선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어 들어온 사내는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성하! 제국의 대군이 국경을 넘어 진격 중이라고 합니다!”

    발데르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뭐라고 했나?”

    “샤이드 대공을 필두로 제국의 대군이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마법 병단을 비롯해 제국의 전력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발데르크가 들고 있던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광휘의 검이 없는 상황에서 적들의 진격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발데르크는 손을 들어 얼굴을 덮고 긴 숨을 토해내더니 잠시 침묵했다.

    샬로트가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가 천천히 손을 내리더니 말했다.

    “병력을 천천히 물려라. 싸우지 말고 성을 내줘도 좋다. 칠왕국 연합과 연락을 취해라. 내가 직접 얘기하겠다.”

    “예. 준비하겠습니다.”

    발데르크는 샬로트를 돌아보았다.

    “제국이 이를 드러낸 이상 명분은 이쪽에 있소. 잘 해결 될 거요.”

    샬로트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발데르크를 보고는 새삼 그가 이 거대한 신성 교국의 교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광휘의 검의 부재를 이런 식으로 숨기는 것을 보면 역시 그는 늙은 여우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이였다.

    제국이 신성 교국을 거침없이 치고 들어가는 사이에 칠왕국 연합이 거세게 밀어 올라갔다. 칠왕국 연합의 총사령관은 뇌속의 창. 그는 거침없이 병력을 끌고 제국의 영토를 치고 들어갔다.

    병력을 데리지 않고, 오직 기간트 라이더만 이끌고 제국을 치고 들어갔는데 제국은 자신의 영토를 짓밟는 그들을 손대지 않고 오히려 신성 교국을 치고 들어갔다.

    제국이 신성 교국을 밀고 들어가는 것부터가 대륙의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2강이라고 불리는 둘의 전쟁이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제국이 도발을 참지 못하고 움직인다고 여겼다.

    칠왕국 연합이 저번에 도발했을 때 국경으로 병력을 배치만 했던 제국이 신성 교국은 참지 못하고 공격해 들어가는 모습에 모든 호사가들이 얘기했다.

    드디어 제국이 오랜 침묵을 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에 대륙의 모든 왕국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왕국 연합이 매섭게 치고 올라갔을 때 그들에게는 길을 내주면서도 제국이 신성 교국을 밀어붙일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신성 교국에서는 성이 몇 개가 넘어가도록 광휘의 검이 나서지 않고 있었다. 제국은 처음에는 광휘의 검이 왜 나서지 않는가 고민하다가 오히려 병력을 나눠서 빠르게 신성 교국의 영토를 밀기 시작했다.

    수호의 검인 샤이드 대공이 나서지 않아도 제국은 대륙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대륙에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샤이드 대공이 있는 본진은 물론이고 좌군과 우군으로 나눈 곳들도 파격적으로 성을 무너트렸다. 그들이 성을 무너트리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은 하이젤 왕국이 만들었던 마법 방어진 무효화 창 덕분이었다.

    신성 교국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빠르게 성들이 무너졌다.

    신성 교국이 열두 개의 성이 무너지는 동안 칠왕국 연합은 딱 두 개의 성을 차지했다. 제국은 국경 부근의 성에 막대한 방어 마법진을 설치했고, 그것을 부수는 데는 뇌속의 창이 직접 나서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신성 교국이 빠르게 무너지는 것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란진 왕국이 트랑 왕국의 국경을 넘었다.

    제국과 신성 교국의 전투에 시선이 집중되어 그렇게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전쟁은 전쟁이었다.

    란진 왕국은 테오 대공을 총사령관으로 하고 트랑 왕국의 국경을 넘었다. 알제리 왕국과 맞댄 국경이었던 곳에 있는 넓은 평야에는 트랑 왕국의 기간트들이 모여 있었다.

    일천오백 기의 워리어급 기간트와 300기의 나이트급 기간트.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선 것은 벡스의 베르캄프와 그 옆에 선 마갑을 입은 제이슨이었다.

    뒤편으로는 스노우 기사단도 있었지만, 제이슨은 자신의 뒤편에 검은 갑옷을 전신에 두른 안델로프를 두었다. 광휘의 검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데스 나이트가 되면서 어쩔 수 없었다.

    제이슨은 적군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다가 앞으로 나섰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라마란스에게 마법 확성기를 받았다. 지금까지 나온 어떤 확성기보다 성능이 좋았다.

    이거라면 전장 구석구석 어디라도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 그래서 제이슨은 적군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적군은 보자마자 돌진하지는 않았다. 호전적이지만 그만큼 명예를 아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명령 없이 개전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무리가 갈라지며 테오 대공을 필두로 그의 제자들로 이뤄진 환영 기사단이 뒤를 따랐다. 적군의 주력이라 할만한 이들.

    제이슨은 그들이 앞으로 나서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제이슨 폰 하르트 후작이오. 트랑 왕국 부사령관으로서 이 자리에 섰소.”

    제이슨의 목소리가 마법 확성기로 전장 구석구석까지 뻗어 나갔다. 잡음 하나 없이 퍼져 나가는 목소리에 적군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란진 왕국에서 국경을 넘어 침공했음을 공식적으로 지탄하며 이 전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대장전을 신청한다!”

    제이슨의 외침이 전장 구석구석까지 퍼졌을 때 란진 왕국 측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장전은 왕국 간의 전쟁 중에서는 거의 쓰는 일이 없지만, 룰은 간단했다. 각 대표가 나와서 생사결을 치르고 그걸로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간단한 방식.

    영지전에서 대장전이 벌어지면 그에 걸맞은 증인과 그걸 위해서 각 진영에서 거는 것도 있다. 영지의 일부를 걸거나 그에 걸맞은 것들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왕국 간의 전쟁에서는 대장전이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상대가 대장전을 걸어왔다는 것에 란진 왕국에서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이곳에는 마스터 환영검 테오 대공이 있었다. 그런데 대장전을 걸어온다니.

    우스울 따름이었다.

    테오 대공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재미있군. 무관의 마스터라고 불린 다더니 진짜로 마스터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테오 대공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서 전해지자 제이슨은 씨익 웃고는 말했다.

    “우리는 이번에 알제리 왕국에서 얻었던 모든 성을 내걸겠다. 란진 왕국은 무엇을 걸 텐가?”

    “진심인가?”

    테오 대공은 지금 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사납게 묻는 목소리에 제이슨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진심이다. 란진 왕국은 무엇을 걸 텐가?”

    “내 공국을 걸지.”

    테오 대공이 작정하고 나서는 것을 보고 제이슨이 소리쳤다.

    “증인으로 세울 이가 있는가?”

    “마스터의 대장전에 누가 증인으로 나설 수 있겠는가?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증인이다.”

    그 자신감을 보면서 제이슨은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넘어왔다. 그래서 확성기를 끄고는 중얼거렸다.

    “엘하르트. 혹시 에고 기간트라면 내가 탈 수 있나? 전투 보조 에고가 있으니 대충 자격은 될 것 같은데.”

    베제트처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묻자 엘하르트가 담담히 답했다.

    -베제트만한 성능은 안 되지만 쓰지 못할 정도는 아닐 거다. 어쩌면 내가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

    -일단 가져와 봐.

    “그래.”

    나직하게 대답한 제이슨이 앞으로 나서자 테오 대공도 앞으로 나섰다. 제이슨은 마갑을 입은 상태. 그 모습을 보고 테오 대공이 입을 열었다.

    “무관의 마스터라고 하더니 탈만한 기간트가 없는 건가?”

    히어로급 기간트와 에고 기간트의 차이는 크다.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간극이 느껴질 만큼.

    “그래서 내려와 줄 건가?”

    “그럴 리가.”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걸려있는 크기가 다르다. 이곳에서 테오 공작이 죽는다면 증인의 여부와 상관없이 공국을 빼앗긴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마스터를 죽인 순간 무관의 마스터가 아니게 될뿐더러 에고 기간트가 그를 선택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제이슨의 시선이 테오 공작의 에고 기간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10미터에 달하는 거체에 뿜어내는 포스가 남달랐다. 출력 자체가 일반적인 히어로 기간트와는 급이 다르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광휘의 검도 에고 기간트는 꺼내기 전에 죽었기에 실제로 에고 기간트를 마주하는 것은 처음.

    게다가 마갑만 입은 상태로 쓰러트려야 하니 더 까다롭다.

    “준비는 됐나?”

    전장의 중앙에 마주 선 것은 제이슨과 테오 대공뿐이었다. 다른 누구도 돕지도 못하는 위치. 서로 마주한 상태에서 제이슨은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테오 대공의 에고 기간트 엘파이트도 검을 뽑아 들었다. 신장이 10미터짜리 에고 기간트다보니 검의 길이 자체가 3미터가 넘었다.

    게다가 에고 기간트의 출력은 저 검을 테오 대공이 휘두르는 것처럼 휘두를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에고 기간트가 위험하다고 하는 거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인류가 가진 최고의 병기라고 하는 에고 기간트. 하지만 이쪽에서는 저들이 상상도 못 할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은 자신의 기량으로 부딪치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는 쉐일링의 도움까지 받을 생각이었다.

    이쪽도 저쪽도 걸려있는 것이 많았다.

    “그럼 시작하죠.”

    시작은 제이슨이었다. 첫 일격은 제이슨이 가진 가장 강력한 일격. 제이슨이 날린 참격을 보고 엘파이트가 옆으로 이동했다. 그 움직임은 인간의 것과 다를 바 없는 부드러움까지 내포하고 있어 과거 인간들이 신에 도달하기 위해 만들었던 에고 기간트의 성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참격을 피한 엘파이트의 검이 제이슨을 향해 날아들었다. 제이슨의 전방을 뒤덮는 수많은 검의 그림자들. 극한의 가속으로 만들어낸 검들.

    어느 하나 허상이 없다.

    테오 공작에게 환영검이라는 이름을 얻게 한 그의 절기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에고 기간트와의 싸움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마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에고 기간트를 탄 마스터와 싸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다.

    그래서 더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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