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4화 (95/151)
  • 【94】 압박(2)

    새롭게 모인 용병들을 데리고 훈련 시키는 판톤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렌이 입을 열었다.

    “언제쯤 쓸만해 질 것 같아?”

    “아무리 노력해도 쓸만한 수준은 되지 않아. 페라도만 있다면 저런 것들 다 필요 없는데.”

    “페라도는 구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좀팽이 같은 것들. 그거면 다 해결됐을 텐데.”

    엘렌은 엘페린의 말에 인상을 굳혔다. 엘페린은 사도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강자.

    페라도는 그들이 과거 만들었던 기생 생물이었다. 영혼을 넣지 않은 기생 생물인 페라도는 엘페린이 자신의 정신으로 통제하면 수많은 기간트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었다.

    혼자서 군단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엘페린은 고대 골렘족들과의 싸움에서 그 힘을 마음껏 사용했다. 그 뒤로 페라도는 엘페린을 견제한 다른 사도들이 박멸했다.

    덕분에 엘페린의 힘은 예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해졌다. 대인전에는 여전히 강하지만, 대규모 전투에는 그 힘이 약해진 상황.

    엘렌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페라도를 다시 만들 수는 없지만, 인간들을 그렇게 만들 수는 있을 텐데.”

    “무슨 소리야?”

    엘렌은 기간트에 탑승한 채 훈련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을 강제로 연결하는 거지. 그러면 페라도의 대체품이 되지 않을까?”

    “그게 가능하겠어?”

    엘렌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부분은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야. 그런 부분이라면 엘카소를 깨워야 해.”

    “엘카소는 어디서 잠든 거야?”

    “엘카소의 흔적은 찾지 못했어.”

    엘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찬탈자와 신과의 전투 이후에 사도들은 분열했다. 찬탈자를 가둔 후에 그들끼리 알력이 생겼고, 그들은 오랜 시간의 싸움 끝에 고대 마도 시대를 끝내면서 모두가 흩어졌다.

    어떤 이는 스스로 봉인했고, 어떤 이는 떠났고, 어떤 이는 봉인 당했다.

    그리고 그들 중 승자는 신이 되어 있었다.

    사도 간의 대결에서 패해 봉인 당했던 엘페린은 엘렌이 봉인을 풀어 주었을 때 복수를 떠올렸다. 하지만 찬탈자의 얘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사도 간의 전쟁은 치열했고, 한 시대를 저물게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시기와 질투는 찬탈자에게 있었다.

    신에게 도전해 그를 직접 만난 찬탈자에 대한 사도들의 시기심은 스스로도 주체 못 하던 것. 게다가 찬탈자는 사도들에 대해서도 좋게 보지 않는다.

    패배한 그를 가두고 봉인한 것이 자신들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이니 우선은 찬탈자를 상대할 준비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만든 블랙 드래곤 용병단은 생각보다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자신의 재능을 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그 힘 또한 쓸 방법이 없었다.

    엘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이곳은 잠시 판톤에게 맡기고 우리는 엘카소를 찾아보자.”

    사도들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스스로 봉인된 자. 그를 찾는다면 협조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다른 누구도 아닌 찬탈자가 깨어났으니까.

    “하긴 셋만 모여도 뭔가 해볼 수는 있지.”

    스스로 신이 된 사도도 있지만, 그 또한 신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일 뿐. 셋 이상의 사도를 한 팀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면 이쪽에서도 신의 힘을 빌려올 수 있다.

    엘렌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곳이 의심 가는 곳이 있기는 해. 하지만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인간의 신이 되었던 녀석도 못 찾았어. 쉽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해야지.”

    인간을 페라도 대용으로 쓰는 방법을 이용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엘렌과 엘페린은 뜻을 함께하기로 하고 엘카소를 찾기 위해 떠났다.

    성의 절반 이상이 연무장으로 되어 있는 무를 숭상하는 내성에서도 특별히 준비한 개인 연무장에는 붉은 머리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삐죽거리며 튀어나와 있는 검기가 환상처럼 떠올라 있었다. 평상시에도 검의 수련을 멈추지 않는 그는 대부분 시간을 연무장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중년인이 검을 펼치는 중에 연무장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있었다.

    자신이 수련하는 시간에는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했는데 이곳으로 오는 이가 있다면 그건 보통 일이 아니리라.

    중년인은 시선을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연무장의 문이 열리고 시종장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중년인은 간단히 손짓해서 그를 물렸다.

    그리고 로브의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는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선 자의 경지를 읽은 중년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재미있군. 오러 유저를 호위로 두는 분은 누구신가?”

    그러자 두 명 중 뒤쪽에 있던 이가 후드를 벗었다. 그 얼굴을 확인한 중년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이거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군.”

    “오랜만이오. 환영검 테오 대공.”

    “이쪽으로 오시오. 내 술 한잔 대접하지.”

    테오 공작은 자신을 찾아온 교황 발데르크에게 자리를 권했다. 발데르크가 다가와 자리에 앉자 테오 공작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술병과 잔을 꺼내 들었다.

    발데르크는 그가 꺼내든 잔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 술잔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습니까?”

    “하하하하. 그때는 그대가 종군 신관이었었지.”

    “그때는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였던 대공께서도 이제는 어엿한 마스터가 되지 않았습니까?”

    “벌써 40년도 넘은 일이군.”

    테오가 꺼내든 술잔은 전장에서 쓰던 찌그러진 양철로 된 술잔이었다. 하지만 테오가 그걸 꺼내 든 것은 자신에 관한 호의라는 것을 안 발데르크는 미소를 지은 채 술잔을 받았다.

    같이 온 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 테오의 대범함에 미소를 지은 발데르크는 술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쭉 비웠다. 오랜만에 맛보는 독주에 발데르크가 잔기침을 하자 테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여전히 술은 약하군.”

    “나이를 먹어도 취향은 변하지 않는군요.”

    “그런 셈이지.”

    미소를 지은 테오는 발데르크를 바라보았다. 신성 교국은 대륙에서 제국에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강국이다. 그곳의 교황이라는 자리에 오른 발데르크가 이렇게 암행하듯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가벼운 일은 아닐 터.

    당연히 호기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무슨 일인가?”

    “신탁이 내려와 그걸 이루기 위해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신탁에 도움을?”

    신성 교국에서 신탁이라는 것이 얼마나 드물게 내려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거의 100년에 한 번 내려올까 말까 한 일. 하지만 그 신탁을 시행하기 위해서 신성 교국은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마다치 않았다.

    신탁 하나에 목숨을 거는 이들. 그때의 그들은 광신도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그들이 신탁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자 가벼이 들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트랑 왕국의 무관의 마스터. 그의 죽음을 원하십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 들려오자 테오 공작은 발데르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세월의 흐름을 피하지 못해 주름이 늘어났지만, 그 눈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교활하면서 영특하게 빛나는 눈빛. 발데르크는 종군 신관에서 교황까지 올라선 입지전적인 인물.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 뜻을 할 이들을 찾았고, 그렇게 모은 이들에게도 이득을 주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겨왔다.

    그렇게 올라선 자리가 교황. 그런 그는 오랜 시간이 변했음에도 더욱 노련해졌다. 늙은 여우를 바라보며 테오 공작이 물었다.

    “자네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군.”

    “예. 가까이 있었다면 그 목을 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목만을 원하는 것이라면 광휘의 검이 있지 않나?”

    “광휘의 검이 움직이면 제국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그러니 트랑 왕국을 이번 참에 혼 좀 내주도록 하죠.”

    “트랑 왕국은 제국이 비호하고 있지 않나?”

    “광휘의 검과 뇌속의 창이 움직인다면 제국은 다시 그쪽으로 수호의 검을 비롯해 병력을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렇기는 하지.”

    “그때를 노린다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테오는 잠시 고민했다.

    “신탁이라면 신성 교국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걸어야 할 텐데?”

    “광휘의 검을 제외한 신성 교국의 성기사단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종군 신관을 파견하죠.”

    “무관의 마스터를 상대하면서 마스터를 보내지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이지?”

    발데르크는 품에서 주먹만한 구슬을 꺼냈다. 푸르스름한 눈을 바라보던 발데르크의 인상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그거 설마?”

    “예. 성물 ‘아베크의 눈’이라는 겁니다. 두 개가 하나일 때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있어도 무병장수에 마나를 흡수하는 속도가 늘어난다고 알려진 물건이죠.”

    아베크의 눈은 신성 교국이 가진 성물들 중에 그 효능이 잘 알려진 것으로 유명했다. 저것을 이용해서 성기사들이 빠르게 마나를 쌓다 보니 오러 유저들도 다른 왕국에 비해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테오는 그걸 보면서 잠시 주저했다. 자신의 기사단을 강하게 만드는데 저건 상당히 유용했다.

    “하지만 납작 엎드려 있는 트랑 왕국을 칠 명분은 없네.”

    “그건 저희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테오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좋네. 명분만 만들어 준다면 왜 우리를 제국이 건드리지 못하는 곳인지 알려주지.”

    “이건 선금입니다.”

    아베크의 눈을 받아든 테오는 자신의 손을 타고 들어오는 마나의 흐름을 읽으며 감탄했다. 자신에게는 미미한 수준이지만 처음 수련을 시작하는 이들은 이걸 이용하면 빠른 성장을 보일 수 있으리라.

    흐뭇한 미소를 짓는 테오를 바라보며 발데르크도 미소를 지었다.

    제이슨은 라마란스의 연구실에 와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벌써 되살린 거야?”

    약속한 시각보다 빨리 깨어난 안델로프가 그곳에 서 있었다. 라마란스가 순수하게 그를 평했다.

    “신성력이라는 힘을 못 쓰게 되니까 제구실하지 못하는 부분이 마음에 안 들더군. 그래도 영혼이 남아있어서 쓸만해. 게다가 에고 기간트도 이용할 수 있으니 새로운 형태의 데스 나이트일세.”

    제이슨은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데스 나이트가 에고 기간트를 탄다고?”

    “영혼이 남아있어서 가능했지. 살아생전의 기억을 털어봤는데 정말 무료하게 산 인간이더군.”

    “그래?”

    “사도에 대한 정보는 없었네. 오로지 검만 익혀온 자여서 아는 것도 거의 없어.”

    “실망이네. 그런데 에고 기간트 탄 걸 볼 수 있을까?”

    “그건 훈련장으로 가지.”

    라마란스가 눈앞에 워프 게이트를 여는 모습을 보고 새삼 그의 능력에 놀라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제이슨이 훈련하는 개인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라마란스가 눈짓하자 안델로프가 에고 기간트를 소환했다. 신장 8미터에 흑색 갑옷에 금빛 고대 룬어가 멋들어지게 그려진 에고 기간트.

    엘자르타라는 이름을 지녔던 에고 기간트가 그곳에 서 있었다.

    대륙에 다섯 기밖에 없는 에고 기간트 중 한 기를 손에 넣었다.

    “전투 기능은 어때?”

    “살아생전의 기술은 다 쓸 수 있어. 그의 오러를 음차원 에너지로 전환해서 다크 오러를 쓰게 됐지. 일반 오러 유저들은 몸이 감당 못 하는데 마스터의 몸이라서 전환 과정이 부드럽게 넘어갔네.”

    엘자르타의 대검 위로 맺히는 검은 빛의 오러 블레이드에 제이슨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스터들의 에고 기간트를 처음 보았는데 그 위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만한 이가 전장에 투입된다면 적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무기는 많을수록 좋지.”

    사도들이 신이 되었다고 하니 신을 상대하는 일. 마스터가 탄 에고 기간트를 무기로 쓸 수 있다면 도움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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