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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3화 (94/151)
  • 【93】 압박(1)

    마스터는 지고한 자리다. 단순히 에고 기간트를 얻은 것을 넘어 전투 보조 에고가 선택할 만한 수준의 강자들.

    마스터에 올라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제이슨이 본 수호의 검이나 광휘의 검 모두 그들이 오른 경지가 눈에 보였다.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극의에 오른 자들.

    그런 자가 꺾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광휘의 검은 검을 잡은 이후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마스터가 된 최연소 마스터.

    성기사 수련행 중에도 손에 꼽히는 오러 유저들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마스터까지 오른 이.

    그런 그가 처음 겪은 패배. 그는 눈빛이 꺾여 있었다.

    제이슨은 그런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광휘의 검 안델로프 맞으십니까?”

    안델로프는 그러거나 말거나 대답도 없었다. 라마란스를 부르지는 않았다. 사도가 안델로프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었기에 그를 부르지는 않고, 우선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그를 죽일 생각도 했다. 우선은 그를 살려뒀지만, 마스터를 적의 손에 주느니 죽이는 것이 좋다.

    제이슨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안델로프의 뺨을 거세게 올려붙였다.

    쫘악!

    안델로프는 별이 번쩍이는 느낌에 정신이 들었다. 안델로프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자 제이슨은 그의 앞에 앉은 채 말했다.

    “광휘의 검 안델로프가 맞습니까?”

    “···이미 알고 묻는 것 아닌가?”

    제이슨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대화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신성 교국의 첫 번째 검께서 야심한 밤에 제 손님을 공격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안델로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제이슨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련행 중인 성기사도 그러더니 이제는 신성 교국의 마스터까지 찾아온 상황. 신성 교국에서는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 겁니까?”

    안델로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평생 처음으로 패배했다. 그것도 자신의 자긍심을 모두 내려놓고 시도한 암살에서.

    게다가 하르트 후작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상황. 신성 교국의 누가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제이슨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뭐 솔직히 당신을 국왕 전하에게 넘기는 것이 가장 편하기는 한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델로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안델로프를 보면서 제이슨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국왕 전하께서야 당신을 어쩌지 못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제국에 아주 비싼 값에 팔아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델로프의 인상이 굳어졌다. 트랑 왕국에서는 자신을 인질로 잡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제국이라면 다르다. 제국에서 자신의 신병을 구속하게 되면 신성 교국과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안델로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게 뭘 원하는가?”

    “제게 뭘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안델로프는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마스터가 암살을 행했다. 게다가 이번에 올 때는 마탑의 워프 게이트도 쓰지 않았으니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안델로프가 입을 다물자 제이슨은 씨익 웃었다.

    “마커스와는 다르군요.”

    “무슨 말인가?”

    “그는 제 손님을 봤을 때 다른 이가 몸에 들어왔죠. 그런데 당신은 아니군요.”

    마커스의 말을 들었을 때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신이 그에게 강림한 것일까? 안델로프의 시선이 제이슨을 향했다.

    “나는 마스터일세.”

    비록 이름도 모르는 자에게 패했지만, 자신은 마스터다. 자신이 신을 위해 검을 드는 것은 오직 자신의 뜻. 누군가 자신의 정신을 파고들 수는 없다.

    마스터에 오른 자들은 오직 자신의 길을 걷는 자들. 사도라고 해도 빙의는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제이슨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신성 교국을 위해서 신성 교국을 버리십시오.”

    안델로프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눈빛이 사납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움직였다면 그건 신성 교국의 뜻일 터. 하지만 이런 비겁한 일에 당신 정도를 고용했다면 그들의 뜻은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버리고 신성 교국을 버리고 이곳에 남으십시오.”

    “나보고 자네의 식객이 되라는 건가?”

    “예. 그리된다면 더는 그들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제이슨은 몸을 천천히 앞으로 숙이며 안델로프의 눈을 직시했다.

    “어차피 돌려보내면 적의 전력이 늘어나는 것인데 그럴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안델로프는 제이슨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우습군.”

    “뭐가 말입니까?”

    “내가 그 말을 들을 거로 생각하는 건가?”

    안델로프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마스터 정도 되면 무기가 없어도 충분히 강하다. 그걸 믿고 달려드는 안델로프의 일격을 옆으로 물러나며 피한 제이슨이 고개를 내저었다.

    “후회할 텐데?”

    “무관의 마스터라는 말이 허명은 아닌 것 같군.”

    안델로프는 서늘하게 웃고는 손을 내밀었다.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그의 손에 검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가 다루던 검. 카젠에게 한 방 먹였던 검이 소환되어 잡히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혀를 가볍게 찼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나도 생각을 달리해야겠군.”

    “생각을 달리해?”

    “살려서 둘 수 없으면 죽여서 써야지.”

    제이슨의 차가운 말을 들은 안델로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카젠에게 첫 패배를 했다고 하지만, 자신은 그 외에는 패배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굳이 에고 기간트를 소환할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한 합에 상대를 죽이고 돌아간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안 이상 다른 방식으로 신탁을 이뤄야 했으니까.

    자신의 패배가 알려져서 좋을 것도 없었다.

    안델로프의 검에 선명하게 맺히는 기운을 보고 제이슨은 베제트를 소환했다. 베제트를 몸에 두른 제이슨을 향해 안델로프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습군.”

    기간트도 아니고 고작 마갑을 입은 정도로 마스터와 오러 유저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는다. 오러 유저 몇 죽였다고 자신을 상대할 수 있을 줄 아는 상대를 향해 안델로프는 자신의 검을 뻗었다.

    카젠이 오기 전에 승부를 낸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검격을 그대로 상대를 향해 날렸다.

    안델로프가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스터와의 실전 경험은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제이슨은 검을 뻗었다. 상대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운명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 엿보는 것도 아니고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실낱같은 길이 보였다.

    그 찰나의 순간을 향해 제이슨은 참격을 날렸다.

    촤악!

    운명의 길이 조금 더 잘 보였다. 마갑을 입은 상태로는 이제 엘하르트와도 손속을 몇 차례나 주고받을 수 있었고, 쉐일링과 시도 때도 없이 대련을 해왔기에 보인 틈을 향해 부드럽게 검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어깨를 파고드는 이질감에 제이슨은 인상을 찌푸렸다.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번에 보인 길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끝낼 수 없는 길이었다.

    참격을 막느라 잠시 주춤했던 안델로프가 다시 뻗은 검을 어깨로 받아내며 상대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다.

    안델로프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느꼈다. 쉐일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마스터 하나의 숨통을 끊었다는 것을.

    그 희열에 제이슨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크헉!”

    안델로프가 서서히 무너졌다. 이곳에서 그는 두 번의 패배를 했고, 숨이 끊어졌다.

    마스터라는 존재는 살아서 써먹어야 효용성이 있었다. 그 뛰어난 검술이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하려면 살아있어야 했는데 상대는 자신에게 협조할 마음이 없었다.

    자신의 자긍심마저 버릴 정도로 신성 교국에 충성하는 것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여겼지만,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델로프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라마란스.”

    그 부름에 곧 뒤편 공간이 일렁이더니 라마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투덜거리려던 라마란스는 안델로프의 시신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번에 찾아온 마스터 아닌가?”

    “맞아.”

    “이거 나 줄 건가?”

    제이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캐리와 로크도 흑마도공학을 연구중이지만 마스터 수준의 시체를 다룰 수는 없다.

    “그래. 그리고 저자의 손에 들린 검이 에고 기간트야. 그러니 그것도 연구에 사용해.”

    라마란스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그려졌다.

    “뭘 그리 좋아해?”

    “이런 최고의 재료를 얻으면 흑마법사들은 모두가 좋아한다. 게다가 이제 막 죽어서 아직 혼백이 남아있는 상태의 마스터 시체는 구하고 싶어도 쉽게 못 구하는 거거든.”

    라마란스가 안델로프의 이마에 그의 피로 육망성을 그려 넣더니 각 귀퉁이에 고대 룬어를 써놓았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좋았어. 이걸로 준비는 다 됐군.”

    라마란스가 안델로프의 시신을 어깨에 걸쳐 메며 말했다.

    “앞으로 10일간 날 찾지 마. 정성 들여서 손봐야 하니까.”

    “그렇게 해.”

    라마란스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포션을 꺼내 부었다.

    “크윽!”

    신성력과 오러의 혼합 공격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포션을 부으니 오히려 더 통증이 심해지며 상처 부위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뭐하는 짓이야?

    제이슨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림자가 일어났다. 쉐일링은 제이슨의 팔에 난 상처를 후벼팠다. 치솟는 핏물을 보며 제이슨은 이를 악물었다.

    쉐일링은 거의 팔을 절단할 듯 도려냈고, 그렇게 뿜어져 나온 핏물이 방을 어지럽혔다.

    -신성력으로 가렸다고 해도 그건 분명 오러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포션을 붓다니 미쳤군.

    “이런 공격은 처음 당해봐서 그래.”

    신성력이 마치 독처럼 작용했었다. 그부분을 쉐일링이 완벽하게 도려내 주자 포션이 효과를 발휘했다. 상처가 빠르게 아무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호의 검은 도저히 넘볼 수 없다고 여겼는데 그에 버금가는 광휘의 검을 꺾었다. 그것도 베제트의 도움은 얻었지만, 쉐일링의 도움도 없이.

    에고 기간트를 탄 상황이었다면 더 까다로웠겠지만, 처음으로 마스터를 베었다는 것에 묘한 충족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곳에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신성 교국의 교황 발데르크 12세는 자신을 찾아온 성녀 샬로트에게 시원한 차를 내준 채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오셨소?”

    교황은 정치를 하지만 신성 교국에서 신앙의 정점에 선 것은 성녀. 그녀의 위치는 교황의 밑이 아니었다.

    샬로트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광휘의 검이 죽었어요.”

    발데르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검탑에서 수련만 하는 그가 어떻게 죽었다는 겁니까?”

    샬로트는 아무런 말 없이 발데르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발데르크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저건 농이나 던지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가 왜 죽었습니까?”

    “신탁이 내려왔었어요.”

    “그런데 제게 말도 하지 않은 겁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이행해야 할 신탁이었으니까요.”

    발데르크는 굳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삼권분리가 되어 있는 신성 교국에서 두 곳이 함께 움직였다. 자신만 모르게. 그리고 그 결과는 실패였다.

    “그래서 지금 저에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트랑 왕국의 하르트 후작. 그가 데리고 있는 자의 죽음을 원해요.”

    발데르크는 자신의 찻잔 안에 비치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미남자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잘생긴 사내. 그를 바라보던 발데르크가 고개를 들었다.

    “신의 뜻입니까?”

    “물론이에요.”

    발데르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당신은 광휘의 검이 아니라 날 찾아왔어야 합니다. 그걸 증명해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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