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2화 (93/151)
  • 【92】 광휘의 검(3)

    제이슨은 아이젠과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쉽네요. 그렇게 떠날 줄은 몰랐는데.”

    성기사 후보였던 마커스가 그냥 떠났다고만 알렸다. 추방되었다고 말하면 걱정할 테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한 말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말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방당한 것을 마커스가 숨길 리는 없었다. 그가 숨긴다고 해도 그들의 신 행세를 하는 사도가 분명 말할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여론을 조성해서 이곳을 노린다고 해도 제국이 신성 교국의 편을 들어줄 리는 없었다.

    제국이 대륙 제패라는 꿈을 포기하게 한 것이 그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따로 세를 불리는 것도 아니어서 그들을 공격할 명분도 부족했다.

    그러니 자력으로 해결하려 할 터. 그렇다면 그들은 카젠이 어떤 놈인지 깨닫게 되리라. 감옥에서 쇠했던 그의 몸은 이제 예전의 힘을 거의 되찾았다.

    고작 마스터 하나로 어찌할 수 없는 상대다.

    제이슨은 석양에 물든 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보내주신 건축가들 덕분에 영지 재건이 빨라지고 있어 다행입니다.”

    “그 정도를 도움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이젠은 제이슨이 이렇게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다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홀로 모든 것을 이룩한 이. 지금까지 그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함께 하리라.

    처음에는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홀로 후작의 위까지 올라온 그는 마스터에 한 발 더 다가갔다.

    괜히 무관의 마스터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마스터에 가까이 선 자.

    성기사 후보나 되니까 찾아왔지 다른 무소속 오러 유저들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상황. 그들을 꺾다 보면 제이슨은 어느 날 마스터와 같은 높이에 도달하게 되리라.

    그러나 지금 그를 시기하는 이들이 많다. 트랑 왕국의 고위 귀족들에게 벡스 공작과 제이슨 후작은 눈엣가시다. 그러니 혼인을 통해서 제이슨을 향한 뒷말을 없애야 했다.

    그러나 먼저 얘기를 꺼낼 수는 없는 일.

    아이젠이 넌지시 물었다.

    “다음 계획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제이슨은 급한 불은 모두 껐다. 게다가 이번에 얻은 이들이 있으니 성의 안전은 물론이요 전장에 참여하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을 세울 수 있었다.

    란진 왕국에 마스터가 있다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의 목을 따오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당분간은 영지를 돌볼 생각입니다.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정말 마스터가 되실 생각이신가 보네요.”

    제이슨은 그 말에 씨익 웃었다.

    “그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죠.”

    아이젠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를 바라보았다.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마스터 잡는 마스터가 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도 마스터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건 자신의 힘이 아니다. 지금은 쉐일링의 도움을 얻어야만 그들을 이길 수 있으니 스스로 힘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아이젠은 제이슨의 포부를 듣자 더 노력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만큼 제이슨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제이슨은 품에서 작은 진동이 오자 찻잔을 내려놓았다.

    “오늘의 티 타임은 여기까지 하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럴까요?”

    아이젠은 조금 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여겼지만, 제이슨이 먼저 끝내자고 한 것에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하고 순순히 따랐다.

    제이슨은 그녀가 묵고 있는 방에 그녀를 데려다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제이슨의 앞으로 불쑥 라마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침입자가 있어.”

    “아까 알려줘서 들었어. 누군지 파악은 됐어?”

    “몰라. 하지만 이렇게 겁도 없이 들어오다니 어이가 없군.”

    제이슨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 있는지도 파악됐어?”

    “내성으로 들어와서 빠르게 이동 중이야. 하지만 위치는 대략적으로 파악되고 있어.”

    라마란스가 보여준 수정구에 나타나는 표시를 보고 제이슨은 그가 내성을 돌아다니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가만히 뒀다가는 괜한 잡음이 날 수도 있으리라.

    제이슨은 그 자리에서 입을 열었다.

    “카젠. 듣고 있어?”

    [무슨 일이냐? 지금 간식 시간이야.]

    “널 찾아온 손님이 있다. 지금 성에서 널 찾고 있는데 아예 연무장에 가서 기다려. 괜히 다른 것들 부수지 말고.”

    [귀찮게 하는군. 죽여 버려도 되나?]

    “살려줘.”

    [봐서.]

    대화를 마친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돌아보았다.

    “그때 온 성기사 후보만 특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르니까 마탑으로 돌아가 있어.”

    “괜찮겠나?”

    “내 실력 봐서 알잖아.”

    라마란스는 자신의 데스 나이트들을 손쉽게 목을 따던 제이슨을 떠올리고는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필요하면 불러라.”

    그 말과 함께 라마란스가 사라졌다. 제이슨은 카젠을 찾아온 이가 누구인지 구경하러 갈 생각이었다. 사도가 부릴 수 있는 이 중 가장 강한 이라면 광휘의 검이지만 과연 그렇게 드높은 이름을 가진 자가 암살자로 이곳에 나타날 수 있을까?

    차라리 넘치도록 많은 골드로 사람을 사서 보내지 않았을까?

    제이슨은 연무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연무장의 담벼락은 기간트 훈련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보니 높이가 무려 10미터에 달했다.

    그런 연무장의 담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연무장 안에 들어온 카젠이 마구 기세를 뿌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여기 있으니 용무가 있는 녀석은 찾아오라는 듯 뿌리는 기세였다.

    그 기세를 읽은 제이슨은 헛웃음을 흘리며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곧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제이슨은 투명화 망토를 두르고 자신의 기척까지 완전히 숨겼다. 마스터라면 자신을 감지할 수 있을 테지만 옆에서 저렇게 마구 기세를 뿌려대는 카젠이 있으니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은 작았다.

    그렇게 기척을 숨기고 있으니 곧 한 인영이 담을 넘어 연무장에 내려섰다.

    검은색 로브에 가면까지 쓴 사내. 그는 잠시 연무장의 담에 올라서 그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훌쩍 뛰어내렸다. 연무장의 중앙에서 기세를 뿌리고 있는 카젠은 그의 등장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성 교국에서 왔냐?”

    잠깐 움찔했던 사내는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무엇 하나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검. 하지만 검을 뽑아 드는 순간 느껴지는 기세가 달라졌다.

    그걸 느낀 제이슨은 마스터들은 또 그들만의 특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카젠은 그런 상대를 향해 히죽 웃었다.

    “너희 신도 이제 감이 많이 죽었나 보다. 날 상대하는 데 고작 애송이 하나 보내다니.”

    카젠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다. 그를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도 넷이 필요했다. 사도 넷이 불러낼 수 있는 신력의 양이 아니었다면 그는 잡히지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안델로프의 기세가 험악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비록 이런 일을 하는 처지라고 해도 그는 평생을 오직 신을 위해 검을 들었던 이였다.

    고아로 자란 그는 신전에서 컸고, 재능을 인정받아 성기사가 된 후에 최연소 마스터가 될 때까지 신을 위해 검을 들었다.

    마스터는 자신의 길을 가야만 오를 수 있는 경지였지만, 그렇게 얻은 경지로 그는 신의 검이 되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신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아니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왜 신이 저 자를 죽이라는 신탁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 주위에 다른 이들도 없는 상황. 최단 시간에 목을 따고 돌아갈 생각에 안델로프의 검에는 새하얀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카젠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짓을 했는지 궁금하군.”

    제이슨은 검에 맺히는 새하얀 빛을 보고는 상대가 누군지 확신했다. 카젠이 신성 교국이 믿는 신이 사도 중 하나라고 했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그런 난리를 치고 곧장 찾아온 존재가 마스터 광휘의 검인 것을 보니 확실히 그들의 신은 사도가 분명했다.

    제이슨은 그보다 안델로프의 검에 맺힌 기운에 관심을 보였다. 오러 유저가 쓰는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힘을 읽은 제이슨은 감탄했다.

    오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저것은 신성력이었다. 순수한 신성력과 함께 맺힌 오러를 바라보던 제이슨은 과연 저것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할지 궁금했다.

    그때 카젠은 손에 들고 있던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는 태연히 상대를 향해 걸어갔다. 무방비해 보이는 그 모습에 인상을 굳힌 안델로프가 그대로 튀어나가며 검을 날렸다.

    단번에 목을 베어버리려는 듯 날리는 검격. 새하얀 궤적을 그리며 나아간 검을 카젠이 덥석 잡았다. 카젠의 손은 팔뚝까지 비늘이 뒤덮여 있었다.

    카젠의 눈이 세로로 갈라지며 안델로프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미약하지만 신력이 담겨 있군.”

    카젠의 손바닥에는 작은 생채기가 나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젠의 감상평을 듣던 안델로프는 믿기 힘들었다.

    안델로프는 전력을 다했다. 무방비인 상대라고 하나 신성 모독을 한 이를 향해서 자비를 베풀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단숨에 끝내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는데 너무나 간단히 막혔다.

    상대가 무기를 들어서 막았다면 이해했겠지만, 손으로 자신의 검기를 받아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게 꿈인가 싶었지만, 상대의 눈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건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그리고 4대 종족 누구의 눈도 아니었다.

    “너, 인간이 아니군.”

    “시끄럽고.”

    카젠이 검을 내리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카젠의 주먹이 날아들 때 안델로프는 훌쩍 뒤로 몸을 빼냈다. 카젠은 자신의 주먹을 피한 안델로프를 보고는 험악한 미소를 지었다.

    “어쭈. 피해?”

    안델로프가 검을 놓고 도망칠 줄은 몰랐던 카젠은 손에 든 검을 바닥에 던졌다. 그사이 안델로프는 품에서 새로운 검을 꺼냈다.

    검면에 화려한 고대 룬어가 금빛으로 새겨진 검. 그건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광휘의 검이 쓰는 에고 기간트였다.

    다른 것들과 다르게 소환이 아니라 저 검이 변한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저 검은 세상 어떤 검보다 단단하다는 평을 듣는다.

    안델로프가 자신의 검을 들고 카젠을 바라보았다. 심유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안델로프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이 일검에 끝을 보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걸 보고 카젠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그냥 죽어라.”

    카젠이 튀어나오자 안델로프의 전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강렬한 빛이 어둠을 밀어내는가 싶더니 그 빛이 한점으로 모여들었다.

    검에 맺힌 빛. 그 찬란한 빛은 조금 전에 보였던 것과는 그 수준이 달랐다.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명필이 좋은 붓을 들면 더 뛰어나지는 법.

    안델로프가 자랑하는 광휘의 검이 그대로 카젠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스터의 육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찌르기는 카젠이라고 해도 쉽게 피할 수 없었다.

    카젠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찌르기를 보고 그대로 왼팔을 휘둘러 쳐냈다.

    꽈앙!

    안델로프는 당혹스러움에 잠시 몸이 굳었다. 마스터가 된 이후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검기를 누군가 쳐낼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신성력과 오러를 일으켜 만든 그의 검기는 무엇을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지워낸다는 평을 들었다. 그런데 그런 검기를 손등으로 쳐내는 존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파고든 카젠의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안델로프가 황급히 고개를 꺾었지만, 카젠의 주먹은 그리 쉽게 피할 수 없었다.

    빠각!

    안델로프는 평생 처음으로 겪는 고통에 정신이 새하얗게 물들며 혼절했다. 카젠은 그런 안델로프를 향해 다시 주먹을 내리쳤지만, 그 주먹을 잡는 이가 있었다.

    카젠이 고개를 돌리자 쉐일링을 팔에 두른 제이슨이 고개를 내저었다.

    “내게 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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