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91화 (92/151)
  • 【91】 광휘의 검(2)

    신성 교국의 수도 함브레이트. 그곳에서도 교황이 기거하는 황성에는 세 곳은 금지로 지정되어 있었다.

    교황이 머무는 성탑과 성녀가 기거하는 기도의 탑, 그리고 신성 교국의 첫 번째 검이라 불리는 광휘의 검이 지내는 검탑이 금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 금지 중 하나인 검탑의 문이 오랜만에 열렸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이의 앞에 나타났던 검탑의 수호자들은 상대를 확인하고는 예를 취하고는 물러났다.

    홀로 검탑의 수호자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걸음을 옮겨 검탑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다.

    탑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지만, 이 탑은 위보다 아래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비밀을 아는 이들은 검탑의 수호자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검탑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는 한 사내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신성 교국의 첫 번째 검이자 대륙의 마스터 중 하나인 광휘의 검. 안델로프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은빛의 머리칼에 새하얀 피부.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은빛 눈동자의 미남자. 그의 외모는 고작 스물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스터는 육체의 재구성을 겪는데 그때의 모습으로 재구성이 된 채 노화가 멈춘다.

    고작 스물의 나이에 마스터에 오른 희대의 천재 검사. 신성 교국의 긴 역사를 통틀어도 그만한 이는 없었다.

    안델로프는 자신의 수련장에 온 여인을 보고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성녀께서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신성 교국의 성녀 샬로트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신탁이요?”

    신성 교국은 그 몸집이 거대한 만큼 모든 것이 분리되어 있었다. 정치는 교황이 하고, 전쟁은 광휘의 검이 한다. 그리고 성녀는 신탁을 받는다.

    신탁은 쉽게 내려지지 않는다. 광휘의 검이 마스터가 되고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신탁은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잘 내려야 100년에 한 번이나 내려올까 말까 한 것이 신탁.

    그런 신탁이 내려왔다는 말에 안델로프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를 부르시지 않고.”

    “당신에게만 전해야 할 신탁이기에 그렇습니다.”

    “제게만 말입니까?”

    “예.”

    성녀가 품에 손을 넣더니 작은 물병을 꺼냈다. 성수가 든 물병을 그녀가 허공에 뿌리니 쏟아진 물줄기가 허공에서 넓게 펼쳐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안델로프는 거울처럼 펼쳐진 물줄기 안쪽으로 한 사내의 모습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인상의 미남자.

    “이 사내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안델로프는 그 사내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 자가 누구입니까?”

    “죄악의 결정체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혹시 아십니까?”

    “트랑 왕국입니다.”

    안델로프는 뺨을 긁적였다. 신탁이라는 것이 이렇게 구체적인 것이었나 싶었다.

    샬로트는 그런 의문에 답하는 대신 자신의 말을 이었다.

    “트랑 왕국의 하르트 후작성에 있다고 합니다.”

    안델로프는 그 이름을 기억했다. 요즘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었다.

    “무관의 마스터입니까?”

    오러 유저들을 학살한 무관의 마스터. 에고 기간트가 없어 마스터라고 불리지 못하는 무관의 마스터라는 이름을 받은 이가 나타난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그런 그의 영지에 신탁이 내려졌다.

    “아무도 모르게 그만 죽이고 와야 합니다.”

    안델로프는 그 말에 처음으로 표정이 굳어졌다.

    “암살하란 말입니까?”

    “예.”

    “정말로 신탁이 그렇게 내려왔습니까?”

    “예.”

    성녀 샤로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안델로프는 인상을 굳혔다. 자신의 평생에 걸쳐 처음 받은 신탁이 고작 암살이라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관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자와 함께 있는 자를 죽이는 일이다. 그것이 밝혀지면 트랑 왕국은 제국과 힘을 합쳐서 신성 교국을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 하지만 마스터로서의 자긍심마저 버려야 하는 신탁이라니 짜증을 숨길 수는 없었다.

    “쉬운 일은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안델로프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대신 공간 이동을 허락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리하죠.”

    마탑의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면 아무리 안델로프라고 해도 자신을 숨길 수 없다. 그러니 신성 마법으로 만드는 공간 이동을 펼쳐야 했다.

    마탑에서도 모르는 신성 교국만의 비밀. 신성력을 기반으로 펼치는 공간 이동으로 단숨에 날아간 다음에 암살하면 되리라.

    깨어난 마커스는 이번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왜 쓰러졌는지 모르기에 제이슨은 다시 한번 무례를 범했음을 알렸다. 비록 사도가 들어온 것이었다고 해도 그가 막말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납작 엎드린 마커스를 제이슨은 냉정하게 추방했다. 그의 눈으로 사도가 세상을 보는 것을 보면 사도와의 인연이 깊어 보였다.

    신성 교국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성녀뿐이라고 하더니 다 거짓말이었던 건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마커스가 특별하거나.

    마커스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추방당했다. 굳이 그와 대련을 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필요는 없을 거라 여겼다. 사도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그들이 방심해야 뭔가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커스는 자신이 두 번이나 연달아 무례를 범했기에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마커스를 내쫓고 나서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찾아갔다.

    흑색 마탑은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까지 완성되어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매우 까다로웠다. 성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는 흑색 마탑의 일원들을 제외하고는 제이슨이 유일했다.

    그런 제이슨을 반긴 라마란스가 기록 수정구 세 개를 띄워놓고 작업하며 그를 반겼다.

    “그렇게 하면서 내 말을 들을 수 있겠어?”

    “걱정하지 마. 오랜만이라 이렇게 하는 거야. 옛날 같았으면 열두 개는 켜놓고 했을 걸?”

    새삼 라마란스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이 됐다. 제이슨은 마커스가 왔을 때 있었던 일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라마란스는 잠시 뚱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그러니까 예상대로 신성 교국의 신은 사도가 맡고 있고, 카젠의 말을 빌리자면 엘드라고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하는군.”

    “신성 교국의 신으로 행세하고 있다면 꽤 귀찮은 상황이군.”

    “맞아. 그래서 그런데 그쪽에서 뭔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성의 방비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이 있을까?”

    라마란스는 그제야 시선을 제이슨에게 고정했다.

    “그런 걱정이라면 안 해도 돼. 외성까지는 아직 손을 못 썼지만, 내성이라면 이 마탑을 핵으로 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사도들도 막을 수 있는 거야?”

    “사도들도 이곳에는 몰래 들어올 수 없다.”

    제이슨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이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사도들이 작정하고 움직인다고 해도 신성 교국이 트랑 왕국을 노릴 수는 없다.

    사도들이 직접 오지 않는다면 그가 보낼 수 있는 것은 잘해야 광휘의 검과 그를 따르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온다면 카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니 걱정할 일은 없으리라.

    그들이 괜히 다른 이들을 노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미리 신경 쓰고 있었네. 고마워.”

    “이곳이 내 레어가 아니라고 해도 제자들의 마탑이다. 당연히 신경 써야지. 그래서 말인데 필요한 물건들을 말해 놓았다. 시세로는 대략 100만 골드가 조금 넘는다고 하더군.”

    “캐리에게 말해 놓았나?”

    “그래.”

    “그러면 그건 내가 처리하지.”

    “고맙다.”

    제이슨은 라마란스가 다시 일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캐리의 연구시를 찾아가니 그녀는 두 개의 수정구를 띄워놓고 작업 중이었다.

    “동시에 두 개 작업이 가능해요?”

    “아, 쉽지는 않은데 이것도 연습해야 한다고 해서요.”

    캐리가 연구하는 것을 흘끔 바라본 제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한테 했던 실험이네요?”

    “예. 그 마갑의 성과가 좋아서 확인해 보고 있어요. 마갑을 입힌다면 데쓰 나이트의 전력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이슨은 그것이 신기해서 옆에서 물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라마란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나요?”

    “모든 것을 물어볼 수는 없죠. 이건 제 개인 연구에요.”

    좋은 스승을 두었다고 그에게만 기대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이슨은 품에서 100만 골드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탑의 이름으로 연맹에 요청하면 재료들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연맹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연맹에 들기 전에야 암시장을 통해서 구했지만, 연맹을 통하면 수수료를 떼어도 그게 더 남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골드를 쭉쭉 써 줘야 시선이 달라질 거예요.”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수익도 내지 않고 있어서 미안해서 그러죠.”

    제이슨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가지고 있는 원천 기술들이 얼마나 골드가 될지 알잖아요. 지금 당장은 못 써도 금세 골드는 넘치도록 벌 거예요. 그러니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캐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저 요청한 거 다 사러 갑니다.”

    “그렇게 해요.”

    제이슨은 캐리가 마탑 연맹에 골드 쓰러 가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어쩐지 신나 보였다.

    워프 게이트는 마탑 연맹의 중요 수입원인만큼 좌표 설정부터 안전까지 모든 것이 확보되어 있었지만, 신성 교국의 공간 이동은 쓰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상당한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 근처에 있는 수련행 중인 성기사가 있어 그를 통해서 좌표를 딸 수 있었다.

    마커스는 하르트 후작성을 나와 떠나기 전에 교국에서 온 연락대로 성을 벗어난 거리까지 나와서는 좌표를 보냈다.

    그리고 그 좌표로 빛의 입자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곧 형체를 이뤘다. 그곳에는 온통 검은색으로 몸을 가린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눌러쓴 후드와 복면까지 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마커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예를 취하지 마라.”

    마커스가 고개를 들었다. 인자한 눈빛으로 가장 존경하던 이가 생각지도 못한 물음을 던졌다.

    “하르트 백작성에서 대련은 어땠느냐?”

    “그게 제가 무례를 두 번이나 범해서 추방당했습니다.”

    “추방?”

    신성 교국의 역사에 수련행 중에 추방을 당한 경우는 없었다.

    “대체 어떤 실수를 했기에 그러느냐?”

    “제가 정신을 잃고 후작의 손님을 공격했습니다.”

    안델로프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마커스는 가장 촉망받는 성기사 후보였다. 오러라는 면에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신성력은 어지간한 고위 신관들을 압도하는 이였다.

    그런 그가 현혹을 당할 리도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잃고 누군가를 공격했다니?

    한 번이면 실수라고 하겠지만 두 번이나 그랬다니 믿을 수 없었다.

    “누구를 공격했느냐?”

    “그게 굉장한 미남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날 뿐입니다.”

    안델로프는 인상을 굳힌 채 물었다.

    “언제 그 일이 있었느냐?”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안델로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신탁이 내려온 것은 마커스가 표적과 싸우고 난 후의 일이다.

    마치 마커스의 눈으로 그를 발견하고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안델로프는 손을 들어 마커스의 어깨에 올리고는 말했다.

    “수련행을 마치고 교국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아직 1년이나 더 남았습니다.”

    “성녀에게 가서 네가 겪었던 일을 그대로 전해라. 지금은 수련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커스는 안델로프의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기 전에 제가 수발을 들겠습니다.”

    안델로프는 복면 아래로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바로 돌아가라. 나는 이곳에서 볼 일이 있다.”

    마커스는 불안한 눈빛으로 안델로프를 바라보았다.

    “지금 나를 걱정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가거라.”

    마커스가 떠나고 나자 안델로프는 팔짱을 낀 채로 석양에 붉게 물드는 하르트 후작성을 바라보았다.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살인을 저지를 생각하니 자조 섞인 웃음이 비집고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안델로프가 하르트 후작성을 향해 은밀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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