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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기간트 마스터-88화 (89/151)
  • 【88】 마탑(1)

    라마란스는 엘하르트와 잠깐의 면담 후에 일행으로 합류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라마란스의 합류는 영지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었다.

    뛰어난 마도공학자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르도가 영지에 온 것도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구 주제가 있었기에 그런 것이지 월급을 준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로 몸값이 비싸다.

    그런 상황에서 고대부터 통틀어 최고의 마법사를 구했다. 아크 리치는 흑마법의 정점인 리치가 됐지만, 그렇다고 마법에 약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이미 그 끝을 본 자.

    그래서 그는 폴리모프를 통해서 자신이 아크 리치인 것을 숨겼다. 창백한 안색의 그는 척 보기에는 그저 병약해 보이는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는 제이슨이 새로 영입한 마법사라는 소개를 받고 들어와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에르도와 차 한 잔 마시는 사이에 그를 현혹해서는 그가 가진 고급 정보들을 모조리 갈취해 냈다.

    에르도는 마도공학자라고 하지만, 대륙에서 스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마도공학자다. 그만큼 마법에도 박식했지만, 제대로 된 마법사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고대부터 지금까지 어떤 이도 도달하지 못했던 아크 리치에 도달한 이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가진 마법적 방호 장비도 대단했지만, 라마란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라마란스는 단숨에 그를 현혹해서는 그의 머릿속을 탈탈 털었다. 그것을 처음 보는 구슬 안에 넣고는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이게 돼?”

    제이슨이 멍한 표정의 에르도를 보면서 어이없어하자 라마란스는 담담히 말했다.

    “우선 이 어린 친구가 문제 될 것은 없을 거야. 내 앞에서는 주종관계를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

    라마란스는 구슬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몇 가지 잡스러운 기술은 늘어났는데 중요한 것들은 오히려 퇴보했군. 이래서야 기간트가 제대로 출력도 나오지 않을 거야. 손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군.”

    “그런 기술들 풀어놔도 되겠어?”

    “사도들이 알아볼까 봐?”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아 있지.”

    라마란스는 담담히 말했다.

    “그 부분은 어렵지 않아. 내가 가진 원천 기술은 못 쓰겠지만, 조금 개발하는 정도라면 어렵지 않아. 그리고 자네 고대 공방을 찾았다고 했지?”

    “맞아.”

    “그러면 그것에서 빌릴 수 있는 기술들은 내가 정리해서 알려주지. 그곳에 한 번 같이 가자고.”

    “좌표 찍어주면 바로 갈 수 있나?”

    “당연하지. 마탑 새끼들 알아보니까 완전 양아치 짓 하고 있던데. 워프 게이트에 골드 받아 처먹는 것 봐.”

    제이슨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좌표만 찍으면 텔레포트 가능한 장비도 만들 수 있나?”

    “어려울 것 없지. 하지만 공간 왜곡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는 단번에 갈 수 없어. 만약 그런 곳으로 가려면 아주 높은 곳으로 좌표를 잡아야겠지.”

    제이슨은 그런 높이에서 떨어져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이건 써먹을 곳이 많았다. 특히 고대 공방에서 발견했던 비행정을 만들 수도 있으리라.

    제이슨은 말을 이었다.

    “캐리와 로크, 조안나에게는 현혹을 걸지 마. 너를 찾는데 필요한 장비를 만들면서 너란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차라리 그들은 제자처럼 이것저것 가르쳐 줘.”

    “그건 계획에 없던 건데?”

    “할 수 있잖아.”

    “하긴 이 녀석 머릿속에서 나온 내용을 돌아보니 이 시대는 흑마법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대로군. 그 뒤를 잇고 있는 녀석들이니 가르쳐 줘야지.”

    라마란스가 가르쳐준다는 말에 제이슨은 미소를 짓고는 좌표를 건네줬다. 라마란스는 간단히 말했다.

    “바로 갈까?”

    “그래. 후딱 다녀오자.”

    라마란스가 손을 내밀자 바닥에 곧장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왜 이제야 만났나 싶었다.

    엘하르트보다 훨씬 효과가 즉각적이다.

    라마란스와 함께 올라가자 그대로 공간 이동이 가능했다. 그렇게 공간 이동을 해서 공방에 간 라마란스는 그곳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오호.”

    감탄한 라마란스는 안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이거 나 주면 안 되나?”

    “이걸?”

    “그래. 내 레어로 쓰고 싶군. 안에 있는 기술들은 필요 없고. 이 장소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

    아크 리치 정도 되면 자신의 레어를 가지고 싶은 걸까? 제이슨도 굳이 이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

    라마란스의 가치는 써먹지도 못하는 이곳보다 훨씬 중요했다. 캐리의 꿈이었던 마탑 개설은 라마란스의 등장으로 놀라울 정도로 가까워졌다.

    제이슨은 라마란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독자적인 기간트도 개발할 수 있나?”

    “못할 것도 없지. 왜?”

    “그럼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가 쓸 수 있는 히어로급 기간트도 가능하나?”

    라마란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영혼을 이식하는 수준이 되어야 해.”

    “살아서는 못 움직인다는 건가?”

    “오러를 대용할 것이 필요하니까. 그러니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그만해.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가 감당할 수 있으려면 에고 기간트를 만들어야 해.”

    제이슨은 그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에고 기간트라면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가 다룰 수 있다고?”

    “전투 보조 에고를 넣으면 그걸 운용할 수 있지. 그러려고 만든 것이 에고 기간트니까.”

    “그거 마스터들만 쓸 수 있는 거 아냐?”

    제이슨의 물음에 라마란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에르도의 기억을 살펴보니까 마스터들의 에고 기간트에 대해서 나오던데 그건 말 그대로 전투 보조 에고를 넣은 거야. 그런데 그것들이 마스터만 선택하게 된 것은 처음에 만든 에고 기간트는 그 시대의 마스터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지.”

    “왜?”

    라마란스는 빠르게 공방의 자료들을 살피며 말했다.

    “인간이 기간트를 왜 만든 건 줄 아나?”

    “왜?”

    마도공학으로 만든 기간트의 탄생 비화는 제이슨도 알지 못했다. 라마란스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럼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라마란스는 그제야 제이슨을 돌아보았다. 라마란스가 손짓을 하자 어디선가 의자와 테이블이 튀어나왔다. 라마란스가 의자에 앉기에 제이슨도 의자에 앉았다.

    “사도와 싸우기로 한 이상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으니 이야기 하나를 해주지.”

    라마란스는 손을 내밀었고 테이블 위에는 손바닥만 한 뼛조각 괴물이 나타났다. 라마란스는 그런 뼛조각 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신이야.”

    “신? 신성 교국에서 믿는 그 신?”

    “아, 그건 신 아니야.”

    “응?”

    라마란스는 덤덤히 말했다.

    “대충 훑어본 바로는 그래. 어떤 놈이 그 행세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이야기를 해도 될까?”

    제이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마란스가 말을 이었다.

    “잘 봐. 이게 신이야. 그리고 그를 따르는 12사도가 있었지.”

    신의 형상을 닮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라마란스는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신은 사도들을 창조하고는 사라졌지.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지. 신이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자 사도들은 엉뚱한 생각을 했어. 그들은 모두 함께 일 때는 신의 힘을 빌릴 수 있었거든. 그리고 전원이 함께 일 때는 신의 힘. 그 창조의 힘까지 쓸 수 있었지.”

    제이슨은 인상을 굳혔다.

    “그래서 사도들은 인간을 창조했어. 그건 자신들의 정신체를 닮은 모습이었지.”

    “사도들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그래. 하지만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골렘도 창조했지.”

    “골렘을 창조했다고?”

    “최초의 골렘은 창조했지. 나중에 만들어진 골렘들은 인간이 만든 거지만 최초의 골렘은 창조되었어.”

    “그럼 골렘들로 이뤄진 종족이 있었다는 건가?”

    “그랬다고 하더군. 하지만 내 세대에만 해도 그들은 사라져서 보지는 못했어. 골렘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수준이 되었지.”

    “좋아. 그럼 4대 종족은 그때 다 만들어진 거야?”

    “아인종은 인간을 만들 때 실패한 것들이야. 형상은 인간과 비슷했지만, 가진 능력들이 다른 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것을 전해줘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거든.”

    어떻게 보면 가장 열등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들이 가장 사도들의 정신체에 가까웠다는 말을 듣자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라마란스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인간은 열등하다고 여겼지?”

    “사실이잖아.”

    “하지만 그들은 머리가 있었고, 사도처럼 욕망이 있었지.”

    “욕망?”

    “신을 닮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이 뭔데?”

    “기간트를 만들고 그것과 하나가 되면 신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제이슨은 그 말에 한 가지를 깨달았다.

    “사도도 신이 되고 싶었던 건가?”

    “신이 되었다기보다는 신을 애타게 찾은 거지. 창조의 힘까지 쓰면서 그 난리를 치면 볼 수 있을 줄 알았을 거야. 하지만 신은 그 힘을 빌려주고도 나서지 않았지. 그가 나선 것은 단 한 번이야.”

    “단 한 번?”

    “그래. 찬탈자가 나섰을 때. 그때 처음으로 신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신을 목격했지. 그리고 찬탈자는 그 전투에서 패했다. 그 대결이 어땠는지 알기에 그 시대를 살았던 자들은 찬탈자를 기억하는 거지.”

    제이슨은 찬탈자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건 줄 알았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신위를 찬탈하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제대로 미친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반했냐?

    ‘그래. 반했다.’

    미치려면 그 정도는 돼야지.

    “어쨌든 그래서 인간들은 신을 넘기 위해서 시도했고, 그러다 보니 전투 보조 에고를 쓸 수 있는 이들은 마스터로 고정되었던 것일 뿐이야. 그걸 오로지 기간트 운용에만 쓴다면 히어로급 기간트를 엑스퍼트인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들도 쓸 수 있지.”

    “가능은 하다는 거네.”

    “하지만 권장하지는 않아. 전투 보조 에고를 사용하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사도들이 난리 칠 일이니까.”

    “그런가?”

    사도들에 대해서는 라마란스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그럼 사도들이 모이기 전에 공격해야 되겠군.”

    “각개격파가 가장 좋지만, 놈들도 그걸 알고 있을 거야. 특히나 감옥이 파괴된 것을 알아냈다면 그들도 지금은 긴장 타고 있을 거다.”

    하긴 라마란스만 해도 사도 넷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신의 힘을 다루는데도 불구하고 넷이나 모여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라마란스가 강하다는 얘기. 다른 이들도 비슷했다.

    사도들도 쉽지는 않은 일.

    “우리가 먼저 쳐야 할 텐데 그들을 찾을 방법은 없어?”

    “없지.”

    라마란스 정도 되는 이가 찾을 방법이 없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당장은.”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야?”

    라마란스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대륙 최고의 마법사였던 것은 맞지만, 빈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어. 이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모든 것을 준비할 수 있으니 상황은 달라졌다고 봐야지.”

    제이슨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다행이군. 내가 지원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줄 테니 한 번 놈들을 추적해 봐. 찾기만 하면 우리가 선공을 취할 수 있어.”

    라마란스는 제이슨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도를 먼저 치자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아직도 쫄아 있는 건 아니지?”

    라마란스는 제이슨을 차가운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이 봐. 진짜로 한 판 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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