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87화 (88/151)
  • 【87】 아크 리치(3)

    대륙에 삼대 봉우리 중 하나인 고르안 산의 정상에는 만년설이 녹지 않은 채 있었다. 사람은 살지도 못하는 곳. 동물조차 오르지 못하는 그 정상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정확하게는 해골이었다. 영겁의 시간을 살아온 아크 리치 라마란스는 그곳으로 와서는 고고하게 서서 시간을 보냈다.

    감옥에 수감 된 이후로 시간의 흐름은 잊고 살았다. 그 안에서 직접 마법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마법의 연구는 질리고 질리도록 했다.

    그래서 감옥에 갇혔을 때보다 더욱 높은 경지에 올랐다. 하지만 그런 그도 탈옥은 꿈꾸지 못했다. 감옥의 핵이 되는 열쇠. 그것은 신의 의지가 깃들어 있어 마법적으로 접근해서는 도달할 수 없었다.

    그걸 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지고한 경지에 올랐는지 알 수 있었다. 마법의 한계를 넘어 신의 힘을 엿보는 경지에 도달했던 것.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자신에게 아무리 긴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시간을 보내며 마법적 지식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보내던 중에 갑자기 감옥의 핵이 사라졌다.

    그걸 깨달은 순간 라마란스는 그대로 공간 이동을 펼쳤다. 초장거리 텔레포트였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그런 한계조차 초월한 그였으니까.

    그렇게 텔레포트를 한 곳은 과거 자신의 왕국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고르안 산뿐이었다.

    자연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리치가 되었을 때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대부분 것을 내려놓았다. 오로지 진리에 목매달았다. 그래서 왕자였던 라마란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숙부를 죽일 수 있었다.

    마스터였던 숙부를 죽이기 위해서 아크 리치가 되어 나타나 자신의 왕국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했다. 그리고 사도들이 나타났다.

    그들과 싸우면서 깨달았다. 자신의 경지로도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4명의 사도에게 잡혀서 감옥에 갇혀 살아오면서 더 강해지고자 했고, 더 높은 곳에 오르고자 했지만 다 부질없었다. 감옥을 나오기 위해서 쌓아왔던 모든 것이 감옥을 나왔으니 필요가 없어졌다.

    갑자기 얻게 된 행운에 고향으로 와보았지만, 고향은 사라졌다. 자신이 파괴했던 왕국의 땅에 새로운 왕국이 들어와 있었다.

    부질없었던 복수심도 흩어졌고, 목적의식도 없어졌다. 그래서 이곳에 무작정 왔다. 그리고 며칠간 생각을 정리했다.

    세상은 변했다.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얼마나 많이 변했겠는가? 그 모든 것을 파악하려면 이 시대의 마법사를 하나 잡아다가 머릿속의 내용을 털어보면 된다.

    하지만 그러다가 사도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감옥이 파괴되었다는 것만 파악해도 사도들이 날뛰기 시작할 터였다.

    지금이라면 전보다 더 강하게 저항할 수 있을 테지만, 확신은 들지 않는다. 사도들이 강한 이유는 개개인의 강함이 아니라 그들이 신의 힘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의 사도들을 감당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은거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돈이야 구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고, 원한다면 사도들 조차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만들 자신도 있었다.

    그때 라마란스가 고개를 돌렸다.

    “응?”

    음차원 에너지를 탐색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아득히 먼 거리에서 발동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훑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도가 자신을 찾을 때는 이런 식으로 찾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을 가릴 방법으로 자신을 은폐하고 있었다.

    음차원 에너지를 탐색하는 것이라고 해도 자신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걸 느낀 순간 이미 음차원 에너지를 숨겨놓았으니까.

    하지만 라마란스는 통찰력으로 지금 자신을 탐색한 이 방식을 누가 했을지 깨달았다. 누군가 감옥을 부쉈고, 자신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감옥을 부쉈다는 것 자체가 사도의 반대편에 섰다는 뜻.

    그래서 궁금했다. 라마란스는 그걸 확인하기 무섭게 역으로 위치를 추적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공간 이동을 했다.

    라마란스가 도착한 곳은 아득한 상공. 그곳에서 자신의 기척을 온전히 지운 채 라마란스는 영지를 내려다보았다. 상당한 크기의 영지였다.

    성도 한창 증축 공사를 하면서 외성의 일부를 허물었고, 외성벽도 커지는 공사 중이었다. 그런 성을 내려다보던 라마란스는 탐색을 해보았다.

    성 전체를 훑어보던 라마란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감옥에서 함께 수감되었던 이들이 둘이나 이곳에서 느껴졌다. 라마란스는 자신의 탐색 마법을 인지하는 것도 알아챘다. 마법의 종주라고 불렸던 드래곤의 사생아.

    용언을 익힌 그가 자신을 느낀 것을 감지한 라마란스는 그대로 플라이 마법을 통해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라마란스가 내려선 곳은 커다란 연무장이었다.

    그곳에는 쉐일링과 함께 있는 사내와 드래곤의 사생아가 서 있었다.

    라마란스가 내려서자 드래곤의 사생아가 손을 들어 보였다.

    “이렇게 얼굴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라마란스는 로브 아래에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쉐일링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의 사생아는 용언 마법을 다룰 수 있지만, 마법이라는 면에서 생각한다면 자신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실제 드래곤이라고 해도 잡을 자신이 있었는데 사생아 따위야.

    문제는 쉐일링이다. 일반 쉐일링도 아니고 일족의 모든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최강, 최후의 쉐일링은 쉬이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 쉐일링과 함께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빨리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를 찾으려고 한 건가?”

    “그래. 찾고 있었지.”

    “이유는?”

    “어떻게 할지 찾아야 결정할 수 있으니까.”

    라마란스는 그 말에 해골을 덜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결정한 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 건가?”

    “사고 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 거였지. 우선은 대화를 먼저 할 생각이었어.”

    라마란스는 가만히 사내를 바라보았다. 쉐일링과 카젠을 모두 데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감옥을 연 자일 가능성이 컸다.

    “그대가 감옥을 연 건가?”

    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열었지.”

    “그래서 저 둘을 거둔 거고?”

    사내는 카젠을 돌아보고는 담담히 답했다.

    “거둔 건 아니지. 뜻이 같아서 함께 하는 거니까.”

    “뜻이 같아?”

    “사도를 때려잡기로 했거든.”

    라마란스는 그 말에 안광을 뿜어냈다. 눈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을 받으며 사내는 씨익 웃었다.

    “이들은 아직 복수를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사도와 만나야 하니 복수할 기회를 주기로 했지.”

    “사도를 그리 쉽게 상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적어도 이들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강하다고 꼬리를 말지는 않는다는 얘기지.”

    라마란스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사내의 몸 위로 마갑이 뒤덮였다. 그건 라마란스도 아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있을 때는 저 코어는 개발되지 않았었다.

    라마란스가 멈칫할 때 제이슨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사도한테도 꼬리 마는 주제에 자존심을 새우겠다면 상대해주지.”

    라마란스는 오랜만에 분기를 느꼈다. 수천 년의 삶 동안 연구만 몰두해 왔기 때문일까? 속을 긁는 소리에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런 감각을 느끼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래서 라마란스는 픽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한 번 볼까?”

    마법사는 시간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강해진다고 했다. 물론 재료를 줬을 때 더욱 강해지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도 수천 년의 시간이 주어졌던 라마란스는 강했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으로 소환한 것은 데스 나이트 열 기였다. 그것은 자신이 무너트렸던 왕국의 기사단. 전원이 오러 유저로 이뤄졌던 이들을 이용해서 만들었던 이들.

    그들의 몸 위로 음차원 에너지가 검게 맺히면서 아지랑이처럼 타오른다.

    일반적인 데스 나이트를 아득히 상회 하는 힘을 지닌 열 기의 데스 나이트.

    라마란스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쉐일링이나 카젠이라면 이 정도로 승부를 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지금 나선 것은 쉐일링마저 내려놓고 앞으로 나선 제이슨이었으니까.

    “네 말을 증명해 봐라.”

    그 말에 제이슨이 튀어나왔다. 열 기의 데스 나이트를 상대로 달려오는 모습에 라마란스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만든 데스 나이트는 고대 시대에 만들었던 것이 발전하고 더 발전했다.

    지금이라면 둘만 모여도 당시의 마스터였던 숙부를 벨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렇게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를 향해 데스 나이트들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그때 제이슨의 검이 움직였다.

    스걱.

    첫 번째 데스 나이트의 목이 베어질 때 라마란스는 인상을 살짝 굳혔다. 조금 전에 펼친 검은 데스 나이트를 구성하는 음차원 에너지까지 베어냈다.

    그래서 힘없이 목이 날아갔다. 무너지는 데스 나이트를 지나치며 제이슨이 연달아 검을 휘두른다. 그런데 살아생전의 검술을 그대로 지닌 데스 나이트들이 일검을 받아내지 못했다.

    삽시간에 데스 나이트 열 기를 베어 넘긴 제이슨은 검을 비스듬히 내리고 라마란스를 바라보았다.

    “꼬리를 말만 하네.”

    라마란스의 안광이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보고 카젠이 한마디 했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라마란스는 용언을 다루는 카젠이 끼어들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상대할 자신은 있지만, 만만치 않게 귀찮아질 수 있는 상대였으니까.

    라마란스가 마법을 쓰려고 들어 올리던 손을 멈췄다. 카젠은 그 모습을 보고는 담담히 물었다.

    “진짜 쫀 거야?”

    라마란스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보자 카젠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 자는 쉐일링과 계약까지 했어. 자네가 제대로 힘을 쓴다면 쉐일링도 나설 거야. 그리고 이 녀석은 사도와 싸울 때 충분히 힘이 될만한 녀석이야.”

    “너는 사도를 겪어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겪어 봤으니 하는 말이지.”

    라마란스는 저 무식한 놈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바라보았고, 카젠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사도는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지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너는 상상해 본 적이 있나?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라마란스는 카젠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신의 의지가 깃든 열쇠로 감옥의 핵을 만들었던 만큼 아무나 가두는 곳이 아니었다.

    그중 하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저들은 그 수천 년의 시간을 버텨온 괴물들이다. 하나하나가 왕국을 파괴할 정도의 괴물들.

    이들과 함께라면 사도를 상대할 수 있을까? 라마란스가 답을 내놓지 못할 때 제이슨이 마갑을 거두며 다가왔다.

    “왜 사도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쪽에는 이 친구가 있다.”

    제이슨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던 라마란스는 그의 뒤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완벽한 인물.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찬탈자?”

    엘하르트는 그 말에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미소에 라마란스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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