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기간트 마스터-85화 (86/151)
  • 【85】 아크 리치(1)

    깨어난 용마인 카젠은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니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밤하늘의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그 지긋지긋했던 감옥에서 나왔음을. 대부분 시간을 잠으로 때웠다고 해도, 자신이 드래곤의 혼혈로 마나를 이용하는 것만으로 섭식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수천 년이다 보니 미칠 듯한 허기가 느껴졌다.

    특히나 지금은 고기의 기름을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데 몸에는 이상한 사슬이 둘려 있었다. 그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대체 무슨 사슬인지 풀리지도 않는 건 물론이고 변태도 불가능했다.

    그제야 카젠의 시선이 사슬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이제는 사라진 드래곤과의 인간 혼혈인 그는 마나의 축복을 받았고 미약하지만, 용언까지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는 몸을 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라 그렇게 다뤘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마법에 대한 지식도 뛰어났다. 같이 수감 생활을 하던 아크 리치에 비하면 부족할 테지만, 그도 봉인의 사슬에 적혀 있는 고대 룬어를 읽을 수 있었다.

    “대체 뭘 잡으려고 이런 걸 만든 거야? 미친 것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작정하고 만든 봉인의 사슬이었다. 이 정도 고위 술식은 사도들이나 다룰 수 있던 것. 그러니 쇠약해진 자신이 도저히 풀 수 없었다.

    카젠은 봉인의 사슬을 풀기를 포기하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에서 구워지고 있는 토끼들을 보았다. 네 마리의 토끼와 이름 모를 새 두 마리가 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길 너머에 자신을 제압한 녀석이 앉아있었다.

    카젠은 굳이 그를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 봉인의 사슬이 묶인 것은 둘째치고 이제야 볼 수 있었다. 녀석의 뒤편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쉐일링이다.

    쉐일링은 카젠에게 있어서는 선배나 다름없었다. 같은 고대 시대에 잡혔다고 하지만 수감자들은 갇혀 있던 시기가 다 달랐다. 쉐일링은 자신보다 거의 한 세대 전의 괴물이었다.

    쉐일링 일족의 염원을 담아 모두가 희생해서 만들어낸 초유의 괴물.

    하지만 그런 그도 사도들의 벽을 넘지 못했었다고 들었다. 온전히 힘을 회복한다고 해도 쉬이 상대할 수 없는 강자가 쉐일링이었다.

    자신처럼 섭식을 통해서 육체적인 능력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이미 쉐일링은 강한 존재였다. 햇빛이 있는 곳에서는 힘이 약해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괴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

    어둠 속에서는 그만한 강자도 드물다.

    그런 그가 얌전히 함께 하는 것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어이.”

    고기를 구우며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상대가 대답했다.

    “왜?”

    “난 카젠이다.”

    그제야 상대의 시선이 카젠과 마주쳤다. 카젠은 그 두 눈을 바라보았다.

    “제이슨.”

    묻고 싶은 것은 산더미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싸운다면 지지는 않겠지만, 이길 자신도 없는 상대. 쉐일링이 함께 하는 상대를 밤에는 싸워봤자 남을 것이 없었다.

    “이것 좀 풀어주지?”

    “널 뭘 믿고?”

    “쉐일링이 있으니 위험할 일은 없잖아.”

    제이슨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왼손을 가볍게 털었다. 길게 늘어나 있던 봉인의 사슬이 풀리자 가볍게 몸을 풀면서 카젠은 물었다.

    “그런 물건은 어디서 난 거냐?”

    제이슨은 자신의 손목에 감긴 봉인의 사슬을 보았다. 처음 엘하르트를 만났을 때 그는 이런 봉인의 사슬 네 개와 목에는 특수 봉인이 된 고리까지 씌워져 있었다.

    새삼 엘하르트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다. 이 봉인의 사슬로 제대로 봉인 술식을 발동하지 않아도 용마인의 변신을 막을 수 있는 것을 보면 굉장한 술식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어쩌다가 주웠지.”

    카젠은 몸을 일으켜 모닥불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물었다.

    “이거 먹어도 되나?”

    “나 혼자 먹을 생각이었으면 그냥 육포나 뜯었을 거야. 네 몫도 있으니 먹어.”

    카젠은 그제야 손을 내밀었다. 불길이 닿았지만, 고작 이 정도 불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카젠은 가장 먼저 이름 모를 새를 들어서 우득 뼈째 씹어먹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토끼를 꿰어놓은 꼬치를 하나 뽑아와 뜯기 시작했다. 군 시절에는 종종 이렇게 요리를 해 먹고는 했지만, 전역하고 나서는 이럴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잘 익은 고기는 간단한 향신료만으로 맛의 품격이 올라갔다.

    우물거리며 토끼의 다리를 뜯던 제이슨은 눈을 크게 떴다. 카젠은 미친 듯이 먹어치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새는 물론이고 토끼까지 다 먹어치웠다.

    남은 것은 제이슨의 손에 들린 토끼 한 마리였다. 아직 다리도 다 안 뜯었는데 카젠의 먹는 속도는 경이적이었다.

    “오래 굶었군.”

    “흥. 잡힌 그 날부터 먹을 것은 내주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살아남았지?”

    “자면 돼.”

    오랜 시간 거의 잠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잠을 자는 중에는 마나 호흡으로 허기가 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무슨 잠자는 숲속의 왕자님도 아니고.”

    피식 웃음을 흘린 카젠이 말했다.

    “더 먹을 건 없나?”

    제이슨은 왼손에 들고 있던 토끼 꼬치를 카젠에게 건넸다. 카젠은 그걸 받아들고는 우악스럽다고 할 정도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뼈째 씹어 먹었다.

    제이슨은 그 몰상식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배를 채워 넣겠다는 모습이었으니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저런 식이라면 비싼 향신료는 뿌릴 필요도 없었으리라.

    제이슨은 손에 든 토끼 뒷다리를 깨끗하게 발라 먹고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차차 알아봐야지. 날 이렇게 가둬 놓았던 사도 놈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낸 후에 움직일 생각이다.”

    “사도는 왜?”

    “놈들은 뭉치면 뭉칠수록 강한 놈들이지. 따로 떨어져 있다면 충분히 내가 죽일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을 찾아서 하나씩 찢어 죽여야지.”

    제이슨은 카젠의 말에 흥미가 일었다. 그 말은 사도와 싸우고 싶다는 말이었으니까.

    적의 적이라면 한시적으로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할래?”

    카젠은 입을 쩝쩝 다시며 물었다.

    “그 전에 나도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물어봐.”

    “쉐일링은 어떻게 된 거냐?”

    “계약했지.”

    “뭘 조건으로?”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쉐일링과 계약했다면 자신이 이길 방법은 없었다. 보통 놈이 아니니 이 자와 함께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오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사도는 어떤가? 아직도 그들이 대륙을 좌지우지하나?”

    “아니. 지금은 내가 아는 건 사도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어. 다른 사도들에 대한 것은 들은 것이 없는데?”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못해도 수천 년은 지났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면 넌 날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나?”

    “따뜻한 밥과 안전?”

    “안전?”

    솔직히 안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죽이고자 해도 죽이기 어려운 녀석이었으니까.

    “나도 사도들에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원하는 것이 같으니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사도들의 목을 내게 양보한다면.”

    제이슨은 손을 내밀었다.

    “사고 치지 말자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카젠을 손에 얻었다.

    마탑에서도 통하는 신분증을 만드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제이슨은 카젠을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이제는 란진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국경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다.

    코어 카트를 타고 달리면서 제이슨은 카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래곤처럼 마법을 다루지 못한다고 하면서 뒷짐을 진 채 코어 카트의 속도를 따라오는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산보나 나온 듯 그렇게 가면서 카젠은 매 끼니 무지막지하게 먹어 치웠다.

    함께 하기로 한 이상 그를 믿고 사냥도 시켰는데 사냥이 이리도 쉬웠나 싶었다.

    제이슨도 사냥이라면 어려울 것이 없기는 했는데 카젠은 기감에 걸리면 살짝 피어를 흘려서는 가서 집어왔다. 섭식하면서 그는 점점 더 빠르게 과거의 힘을 회복하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쓰지 못했던 능력을 몇 개나 회복했는데 용언 마법은 놀라울 정도였다. 어지간한 마법은 용언 마법을 쓰는 것만으로 대부분 해결이 됐다.

    투명화 마법까지 용언 마법으로 해결한 채 따라오는 그와 함께 국경을 넘은 제이슨은 트랑 왕국의 마탑을 이용해서 영지로 돌아왔다.

    갈 때는 혼자였지만, 돌아올 때는 둘이었다. 게다가 함께 온 이가 눈이 돌아갈 정도의 미남자라 영지 내의 모두가 놀라워했다.

    제이슨은 영지의 중요 인사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 영지에서 가장 중요한 이들은 기사단을 맡은 펠릭스와 마도공학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고 있는 캐리였다. 그리고 함께 하는 로크와 조안나까지 한 자리에 나왔다.

    에르도는 연구에 바쁘다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제이슨은 모인 이들에게 이번에 데리고 온 카젠을 소개해 줬다.

    “이번에 고대 던전에서 만난 일행이에요. 앞으로 영지에 머물 겁니다.”

    “고대 던전에서 만났다고? 트레저 헌터야?”

    “아뇨. 트레저 헌터는 이번에 팀을 하나 구해서 앞으로 그들을 지원해서 운용할 생각이고 이쪽은 뜻이 맞아서 같이 온 카젠이라고 해요.”

    펠릭스는 카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이슨이 데리고 왔던 엘하르트는 모두가 감탄할 정도의 외모를 지녔지만, 카젠은 약간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난 이곳의 기사단장 펠릭스다.”

    “카젠.”

    카젠의 말투에 펠릭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제이슨은 그런 펠릭스를 얼른 말렸다.

    카젠이 작정하고 날뛰면 이 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하지만 식탐이 대단한 카젠은 먹을 것만 주면 순해진다. 그도 목적이 같은 제이슨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기에 더는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고대 생존자라는 것을 알면 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지만, 굳이 밝히지는 않았다. 제이슨은 간단히 소개를 마쳤다.

    “그냥 신경 쓰지 않으시면 돼요. 하지만 영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력이 될 친굽니다.”

    “영지의 전력이 될 거라고?”

    제이슨은 씨익 웃었다. 사실 섭식을 통해서 힘을 되찾아가는 중인 카젠은 마스터가 와도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강자였다.

    제이슨은 카젠에게 이곳까지 오는 동안 미리 말해뒀다. 밥을 먹여주는 만큼 영지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카젠은 순순히 응했고, 제이슨은 그를 소개해주며 말했다.

    “카젠. 이곳에 있는 이들은 영지 내에서 가장 우선해서 지켜야 할 이들이다.”

    카젠은 그 말에 일행들을 돌아보다가 간단히 답했다.

    “너희들이 위험해지면 내가 알게 된다.”

    조금 긴 용언이었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았다. 일행 모두의 몸에서 빛이 나자 펠릭스는 덤덤했지만, 캐리와 로크의 표정은 변했다.

    마법을 배우는 것은 과거의 마법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당연히 지금 마법이 어떤 것인지 대충 파악했다.

    “서, 설마···?”

    제이슨은 검지를 들어 입을 가렸다. 마법의 종주라고 불리는 드래곤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는데 굳이 그걸 지금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지금 필요한 것은 딴 것이었다.

    “그보다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어떤 걸 말이죠?”

    “혹시 아크 리치를 탐색할 방법이 있을까?”

    제이슨의 물음에 로크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형. 아크 리치 같은 것은 전설이에요. 고대 마도 시대에서조차 아크 리치는 단 한 번 나타났다고 알려질 뿐이에요. 갑자기 사라졌지만, 그는 딱 사흘 만에 왕국 하나를 박살 냈다고 알려진 괴물이라고요.”

    “그래서 찾을 수 있어? 없어?”

    제이슨의 물음에 장난기는 보이지 않았다.

    “형···농담 아니에요?”

    “이런 거로 농담 안 해.”

    로크는 그 말을 듣고는 반사적으로 카젠을 바라보았다. 드래곤도 있는데 아크 리치라고 없을까? 하지만 아크 리치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는 아득한 경지의 마법사. 그를 추적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찾을 방법은 없어요.”

    그때 캐리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있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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