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죄수들(3)
용마인의 상태를 확인한 제이슨은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 당장 제이슨은 용마인을 죽일 방법이 없었다. 제이슨이 가진 전력으로도 생채기나 나는 정도였으니까.
하긴 이런 녀석이니 혼자서 왕국을 파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수천 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지만, 쇠약해진 그의 몸조차 죽일 수 없었다.
제이슨은 쓰러진 용마인을 감싸고 있는 쉐일링을 바라보다가 엘하르트를 불렀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아직 네 실력으로는 용마인을 못 죽이는가 보군.
“그러니까.”
-지금 내 상태로는 너와 계약하게 도와줄 수가 없어. 봉인의 사슬로 묶도록 해.
제이슨은 그 말에 봉인의 사슬을 휘둘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봉인의 사슬이 용마인의 몸을 두르자 그의 몸이 다시 사람의 몸으로 돌아왔다.
이대로라면 죽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엘하르트가 말렸다.
-아서라. 봉인의 사슬을 제대로 쓴 것도 아니고 힘을 억제하는 것일 뿐이라 죽일 수는 없어. 몸이 반응할 테니까. 궁금하면 검을 휘둘러 보든가.
엘하르트가 이 정도로 말하니 더는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녀석만 상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상대해야 할 자가 더 있었다.
아크 리치.
마법을 사용하는 놈도 상대해야 하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끌고 가야 하나?”
-당장은. 내가 힘이 회복될 때까지는 쉐일링의 도움을 얻어서 구속해 놔.
제이슨은 봉인의 사슬에 쉐일링의 힘이라면 용마인을 온전히 구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봉인의 사슬을 사용할 때는 제이슨의 팔목에 연결되어 있어서 이 자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점이었지만.
제이슨은 용마인을 챙기다가 그곳에 널브러져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제이슨을 바라보다가 나이트급 기간트에서 뽑혀 나온 사내가 입을 열었다.
“마갑의 기사?”
제이슨은 자신의 이명을 기억해 내는 이들을 보고는 살짝 인상을 굳혔다. 란진 왕국에 자신이 왔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제이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장치를 하나 꺼내서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납작한 장치가 가동하는 것을 확인한 제이슨은 그곳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통신 장비를 모조리 먹통으로 만든 제이슨은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가장 깔끔한 것은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저들이 이곳을 탐색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자신이 먼저 발견한 것도 맞고 뒤따라 들어왔다면 선점한 던전을 노리고 왔으니 죽여도 할 말이 없다.
제이슨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사내가 힘겹게 무릎을 꿇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이슨은 지금 당장 아크 리치를 잡으러 가야 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제이슨은 그들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이곳에는 이런 놈이 하나 더 있다. 나는 그놈을 잡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고.”
이곳이 고대 던전이라고 여기고 따라 들어왔다가 용마인을 만나서 박살 났다. 저런 괴물이 있는 곳. 제이슨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소문만큼이나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았다.
기간트가 멀쩡할 때도 어쩌지 못했던 상대가 기간트가 모두 파손된 상태에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나 마갑의 기사는 오러 유저들을 벌써 몇이나 죽였는지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이를 상대로 도박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칼데안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마갑의 기사이신 줄 알았다면 뒤따라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이슨은 담담히 말했다.
“시끄럽고. 나는 지금 잡으러 가야 할 놈이 있어서 가봐야 하니 이곳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기다리고 있다면 살려주지. 하지만 이곳에 돌아왔는데 없다면.”
제이슨의 미소가 진해졌다.
“더 말할 필요는 없겠지? 도망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도망쳐 봐.”
“감사합니다.”
제이슨은 바닥에 놓인 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있는 이상 외부로 연락은 안 되니까 헛심 쓰지 말고.”
말을 마친 제이슨은 용마인을 옆구리에 끼고는 곧장 몸을 날렸다. 단숨에 감방을 찾아서 움직인 제이슨은 열쇠가 빠져서 그런지 작동하지 않는 던전의 함정들을 보면서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막상 던전의 감옥이 어디 있는지는 명확히 알지 못했다.
“쉐일링. 혹시 아크 리치의 감옥을 알아?”
그 물음에 마치 답하듯 그림자가 쭉 길어지더니 방향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그 방향으로 달렸다.
곧 감옥을 찾아낸 제이슨은 그 앞에서 인상을 굳혔다.
“없는데?”
감옥의 문은 부서져 있었고, 아크 리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튄 것 같은데 혹시 쫓아갈 방법 없어?”
-기회다 싶어서 튀었나 보네. 찾을 방법은 없지.
“진짜 없어?”
-사도들이야 놈을 추적할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런 잔챙이를 추적할 방법은 없지.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만한 놈이면 사고를 쳐도 보통 큰 사고가 아닐 거고, 그러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까.
제이슨은 자신의 옆구리에 끼고 있는 용마인을 바라보았다. 이만한 녀석이라면 사고도 보통 사고가 아니다. 그런 놈을 막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마스터는 자신보다 강할 테지만, 마스터라고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다. 쉐일링이나 용마인 둘 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자들.
아크 리치가 날뛰기 시작하면 과연 막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싶었다.
“너무 태평한 거 아냐?”
-내가 지금은 조금 힘들고 봉인을 하나 더 풀면 놈이 날고 기어도 가서 때려잡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제이슨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니 믿기로 했다. 아크 리치라는 존재가 흑마법을 기반으로 움직인다면 그를 추적할 방법이 흑마도공학자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영지로 돌아가야겠다. 이미 이곳에서 얻을 것은 얻었다.
쉐일링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 용마인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다.
엘하르트가 잘하면 이 자와도 계약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만약 용마인까지 얻을 수 있다면 그때는 엘하르트를 얻은 것보다 지금 당장은 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제이슨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장치를 설치했다. 외부에서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방식을 마련한 후에 제이슨은 천천히 돌아갔다.
과연 그들은 이곳에 남아있을까? 제이슨은 그들이 떠나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들이 떠났다면 잡으러 가야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남아있다면 그들을 데리고 할 일이 있었다.
제이슨이 돌아간 곳에는 기간트를 모두 역소환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이슨이 다가오자 칼데안이 몸을 일으켜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제이슨은 마갑을 입은 채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베제트를 역소환하고는 그들의 앞에 섰다. 아직도 용마인은 깨어나지 않은 채였다.
“이곳을 찾아온 것을 보면 트레저 헌터들인가 보군.”
“예. 트레저 헌터 팀 블레이드입니다. 제가 팀장인 칼데안입니다.”
유명한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팀원들의 장비는 뛰어난 편이었다. 열두 명의 팀원 중 네 기의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무엇보다 이곳까지 찾아온 것만 봐도 이들은 단서만 있다면 추적을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고대 룬어를 해석할 줄 아는 이가 있나?”
제이슨의 물음에 칼데안의 뒤편에 있던 여인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석할 수 있습니다.”
“헨젤이라는 친구인데 제국 아카데미 수석 졸업생입니다.”
제이슨은 헨젤이라는 여인을 바라보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해석했다면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텐데. 이곳은 고대 감옥이야. 보시다시피 이런 괴물들이 있는 곳이지.”
헨젤이 고개를 푹 숙이자 제이슨은 덤덤히 물었다.
“조사하는 데 얼마나 걸렸지?”
“조사에 6개월. 이곳을 탐색하는 데 1개월이 걸렸습니다.”
제이슨은 그들을 빤히 돌아보았다. 칼데안은 말을 조심하고 있었다. 그들이 제이슨보다 강했다면 분명 시비를 걸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들이 탐색하고 있을 때 제이슨이 몰래 들어온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제이슨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곳은 란진 왕국의 고대 던전이고,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알려지면 안 되겠지. 그래서 말인데.”
칼데안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소리쳤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무덤까지 이것을 비밀로 하겠습니다.”
제이슨은 칼데안의 처세에 미소를 지었다. 나이트급 기간트 라이더라면서 트레저 헌터를 하는 것도 웃겼지만, 이렇게 빠르게 숙이고 들어오니 갈등이 생겼다.
앞으로도 수많은 고대 던전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위치를 대략 표시해 놓은 지도도 있었다. 그걸 이용한다면 더 빠르게 찾을 수 있겠지만, 자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고대 던전이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만 목을 매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들은 도움이 될 이들이었다.
“내가 제안을 하나 할 건데.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주면 좋겠군.”
열두 명이 동시에 마른침을 삼키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제이슨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내 지원을 받으며 앞으로도 고대 던전 탐사를 계속하는 게 어떨까?”
“예?”
칼데안은 지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살인멸구를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들을 지원해주겠다니?
“전속으로 말입니까?”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아닙니다!”
이곳에서 죽어도 할 말이 없는데 살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내가 지원해주는 것은 비밀로 하고 대륙 곳곳의 고대 던전들을 찾아오는 것이 자네들이 할 일이야. 어때?”
칼데안도 그 말을 수긍했다. 제이슨이 있는 트랑 왕국이 지금 대륙에서 가지는 위치는 뜨거웠다. 벌써 하이젤 왕국과 알제리 왕국을 무너트리면서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 왕국의 고위 귀족이 타국을 들쑤시고 다니면 좋게 볼 곳이 없었다. 고대 던전을 발굴해도 모든 이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컸다.
칼데안은 그제야 제이슨이 뭘 원하는지 알아냈다. 다른 왕국에서 고대 던전을 찾아 그것을 비밀리에 차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대 던전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트레저 헌터들은 대륙 곳곳에 정보를 찾기만 하면 어디든 찾아간다. 그렇게 찾아낸 고대 던전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몰래 해먹을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그게 또 어렵다.
하지만 지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제이슨 같은 고위 귀족이 지원해준다면 앞으로 골드 걱정은 안해도 되리라.
“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대 던전 탐사팀을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럼 내 영지로 와. 나를 만났다는 것도 비밀로 하고 영지로 오면 그때 얘기하지.”
제이슨은 거기까지 말하고 용마인을 옆구리에 낀 채 말했다.
“계약하기로 했으니 도망은 치지 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이슨은 미소를 짓고는 그들과 헤어졌다. 이들은 이곳에서 물러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릴 테니 자신은 이 짐 덩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제이슨은 고대 감옥을 벗어나 연못 밖으로 나왔다. 물을 지나오면서 수중 호흡 아티펙트가 없던 용마인은 물을 먹고 깨어났다. 연못 밖으로 나온 용마인이 입에 들어온 물을 토해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거 안 풀어!”
제이슨은 시끄럽게 구는 용마인의 턱을 후려쳤다. 봉인의 사슬 덕인지 아니면 목숨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는지 비늘은 튀어나오지 않았고, 용마인은 그대로 기절했다.
“이걸 어쩌지?”